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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원에서 제갈 공명이 죽은 뒤 위연은 반란을 일으킵니다. 촉나라에서 강유를 제외하면 제일의 용장이었고, 촉한을 세운 유비 시절부터 활약해 왔던 백전의 노장이었죠. 제갈량의 신중하지만 지지부진했던 진격론(결과적으로 여섯 번 나가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에 반대하여 대담한 장안 기습 작전을 제기하기도 했을 만큼 지략도 있었던 장수였고요. 제갈량이 죽자 그는 자신의 세상이 왔다고 여기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위연의 배신을 예측했던 공명의 유지에 따라 위연과 앙숙이었던 양의는 “누가 내 목을 베겠느냐?”를 세 번 외쳐 보라고 시키지요. 그러면 항복하겠다고.


이 말을 들은 위연은 하늘을 보고 껄껄 웃습니다. “공명이 살아 있었을 때는 공명이 두려웠으나 그가 죽은 뒤 내가 무엇이 두려우랴.” 그리고는 들뜬 목소리로 부르짖지요. “누가 감히 내 목을 베겠느냐?” 그러자 그때껏 위연과 행동을 함께 하는 듯 했던 동료 장수 마대가 번개같이 칼을 휘두릅니다. “내가 베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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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연은 가히 자신의 인생 절정이라고 생각한 순간, 그 목이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고 맙니다. 자신이 유비에게 처음 귀순했을 때 반골의 상이라고 다짜고짜 목을 치려고 한 이후 자신을 믿어주기보다는 은근히 견제했던 공명, 하지만 머리 하나는 기차게 좋아서 어떻게 해 볼 수 없었던 ‘넘사벽’ 제갈량이 죽었으니 그에게 두려운 것이 없었겠지요.


그 안도감, 해방감, 승리감에 그는 판단력을 잃습니다. 한 치만 더 생각했다면 양의가 시키는 일이 뭔가 이상하다 싶은 낌새가 들었겠지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앞선 겁니다. “누가 나에게 대적할 것인가?”를 외치고 싶어서 말이죠. 바로 그때 뒤에서 칼이 날아듭니다. 지금껏 한 배를 탄 듯 했던 이의 칼이었죠. “이건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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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타임라인에서 촛불을 멈추지 말자는 호소가 간간이 들렸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고개는 끄덕여져도 몸은 반응하지 않더군요. ‘주말이 있는 삶’이 사라진 지 좀 보태 말해서 두 달이다 보니 피곤하기도 하고 날씨도 추워진다고 하니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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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으로 탄핵도 됐겠다, 헌법재판소도 자신들이 탄핵을 기각할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정도는 이해할만한 곳이겠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대세라는 생각도 드는 겁니다. 이 추운 겨울 주말 저녁에 촛불 들고 안 나가고 ‘일상’을 즐기더라도 별 일이야 있겠나 싶기도 하고, 이제 까짓거 니들이 이제 어떻게 하겠느냐? 혁신이고 통합이고 변기공주의 시동들 주제에 ‘누가 촛불의 목을 베겠느냐?’ 외치고 싶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뿔싸 오늘 뉴스를 보다 보니 등 뒤에서 마대의 칼이 날아들어 그 칼바람에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탄핵 심판은 헌재가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법정이라 검사와 변호사 역할이 있습니다. 이미 박근혜 여사의 변호팀은 팀웍 맞추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고 나름 방어 논리의 방패에 쇠를 입히고 있을 텐데, 검사 역을 해야 할 탄핵소추 대리인 구성은 지지부진이었습니다. (왕년의 노무현 탄핵 때 이 검사 역을 맡은 이가 바로 김기춘이었지요.) 이 대리인을 구성하는 국회 소추 위원은 국회 법사위원장입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죠,


그런데 오늘 이 양반이 탄핵 소추 대리인단 구성을 발표하는데 그 중 한 이름에 어처구니가 블랙홀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황정근 변호사라는 분인데 이 분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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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가 최씨 등 3명에 대한 형사소송 결과를 보기 위해 헌재법 제51조에 따라 탄핵심판절차를 6~12개월 정도 중지할 수도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한 사실을 인정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사실관계를 놓고 다툴 것이기 때문에 법원의 형사재판을 기다려야 할 가능성이 높아 1심이 끝날 때까지 최소 6개월이 더 걸릴 수 있다.”


검사가 아니라 변호사의 느낌이 팍 드는 겁니다. 답 적어 놓고 컨닝하라고 답안지 들어 주는 뻔뻔스런 시험생 간지도 나고 말이죠. 그런데 도대체 탄핵 인용에 눈과 입 모두에서 불을 토할 변호사, 법조인들이 많은데 이런 분을 소추 대리인으로 삼는 이유가 뭘까요? 이거 뭐죠?


더구나 이분 “박근혜 정권 1년과 법치주의”라는 행사에 나가서 “생존권 등을 빌미로 격렬하게 법질서에 저항하고 법을 무시하고 초월하는 정치적 행태로 나아가는 것은 (법치주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으며...... 공민의 시민적 덕성을 길러주는 법 교육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분임을 염두에 두고 보면 “이미 탄핵은 된 거고!” 하고 떠들던 제 목덜미에도 칼이 와 닿고 있는 것 같단 말입니다. 그리고 뒤에서 한 마디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베어 주마. 이건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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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탄핵은 된다고 생각하고, 대한민국은 새로워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만 최소한 자만할 때는 아니다 싶은 생각이 더럭 납니다. 위연이 돼서는 안되겠다는 경계심도 스멀스멀 기어나옵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맘 놓은 순간 칼 날아오는 경험과 사례는 동서고금에 널려 있습니다. 이번 주말은 모르겠지만 제야의 종소리 때는 보신각에서 헌법재판소로 가서 촛불로 에워싸야 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변호사 선배의 우려 하나 덧붙여 둡니다.


“대리인은 탄핵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야. 뉴스 보면 말겠지만, 사시 15기 황정근이 이대로라면 팀장이라고. 그 사람이 전략을 짜고 실제로 심리를 진행할 거야. 법정에서 대응할 때 박근혜 쪽 대리인에게 밀려서 기일이라도 몇 번 연장되면 그냥 몇 달 갈 수도 있는 거야.”


그런데 수백만 촛불 들어 이룩한 탄핵이라는 이름의 생선 창고 열쇠를 왜 고양이 형상의 지배인에게 맡기게 된 걸까요? 이거 이래도 되는 걸까요? 촛불은 뒤에서 날아오는 칼에서 안전한 걸까요? 






산하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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