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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18. 목요일

멀더요원







지난밤에 꾸었던 꿈 얘기를 해보려 한다.


꿈속에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중동의 여느 산유국들과 마찬가지로 왕이 통치하고 있는 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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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자국민들에게는 종교세 이외에 공식적으로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걷지 않는 것과 달리, 이 나라는 몇몇 귀족들만 세금을 면해주며, 대다수 국민이 애용하는 최근 특정 식물성 기호식품에 '건강'이라는 이유로 매우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등, 자국민들에게 매우 가혹한 통치를 하는 나라였다.



그게 꿈이었으니까 다행이지, 진짜로 그런 나라가 있다면 아마 그 나라는 세계 최고의 '자살률' 기록을 매일 깨나가고 있을 정도로, 아주 하루하루가 스펙타클한 그런 나라일 것 같다.

 

꿈속에서 나는 왕의 '선전부' 소속 연구원이었는데,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왕이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조작'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왕이 어딘가를 돌아다니다가 말을 두서없이 하면, 그의 말을 인간이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바꾸어서 보도자료를 내거나, 그게 너무 뜬금없으면 그럴듯한 해명 같은 걸 만들어 내는, 보기에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아주 '창조적인'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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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그냥 참고자료로서 본문과는 전혀 관련 없음

출처 - 트위터 '자로'


최근 들어 왕의 뻘소리가 '도'를 넘고 있는지라, 나도 변명거리가 궁해져서 창작의 고통으로 머리가 아픈 상황이었다. 그런데 엎친데 덥친 격으로 이 나라에도 중동 산유국에서 발생한 '메르스'라는 바이러스라 전파되어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었다. 이제 기름만 퍼 올리면 이 나라도 OECD가 아니라 OPEC 회원국이 될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때 왕궁에서는 그게 도대체 뭔지, 누가 뭘 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늘 그래 왔듯이 뭘 어쩔 줄 몰라 혼란스러워하며 일단 국민에게 모든 정보를 감추었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결국 다 들어나 평소에 먹을 욕의 두 배 정도 더 욕을 먹을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왕의 한 측근은 '낙타 감기'라며,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낙타 취급하려 들었다. 어설픈 방어였다. 모두가 혼란에 빠져있을 그 무렵, 왕께서 메르스를 '중독식 독감'으로 명명하시어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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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


따라서 외국놈들이든 과학자든 누가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이 이 나라에서는 '중동식 독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찌라시 직원과의 '지난밤 술자리'로 인해 머리가 띵한 상태에서, 왕의 발언을 '맛사지'하고 있었는데, 선전부 대신의 호출을 받고 급히 달려갔다. 그 자리엔 총리 대신 대행과 선전부 대신, 보건부 대신 등 앞잡이, 아니 앞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총리 대신 대행 : 최근에 '중동식 독감'으로 인해 폐하의 지지율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폐하께서 며칠 전에 시장  다녀오셨는데 도무지 지지율이 오르질 않아요. 뭐, 지지율이 오르든 안 오르든 별 상관은 없지만, 폐하께서 가끔 시고 언짢아하셔서... 거참, 조만간 기자회견이라도 해서 뭔가 조치를 좀 해야겠는데 말야. 문제의 병원을 찾아가  사과받는 모습을 보여줘도 별로 효과가 없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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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를 잘 이렇게 해가지고 우리의 그거는 그렇다 생각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선전부 대신 : 기자회견은, 메르스, 아니 중동식 독감 발병 종료 선언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쯤 잡힐 것 같습니까?


보건부 대신 : 그게 언제 잡힐지 모르겠습니다.


총리 대신 대행 : 아니, 여태 그것도 몰라?


보건부 대신 : 아니, 그게...


총리 대신 대행 : 병원 명단 하나 똑바로 관리 못 해서, 다 알려졌잖아! 그 병원 문 닫았어. 당신이 책임질 거야? 근 데 언제 끝날지도 몰라? 당신 월급 받고 하는 게 뭐야?


보건부 대신 : 아니, 그건 전염병이니까... 그리고 당신도 총리 대신 대행 아뇨. 뭔 말을 그렇게 해요?


총리 대신 대행 : 닥쳐! 누가 더 높아!


(침묵)


선전부 대신 : 저 제가 보기엔 말입니다. 이게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면, 적어도 폐하께서 기자회견을 하신 이후 에 환자가 감소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지지율이 아주 바닥을 칠 것 같아요. 이 봐, 자네가 조사를 좀 해서 폐하께서 언제쯤 등장하시는 게 좋을지 한번 따져보게나.


나 : 아니, 그건 보건부에서 알지, 전문가도 아닌 제가 어떻게 압니까.


선전부 대신 : 두 시간을 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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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공감가네


아... ㅆㅂ. 자료를 찾자.


어디 보자.


중동식 독감, 아니 ㅆㅂ, 메르스의 발병 특성은 대충 이렇다고 하는군. 잠복기는 이렇고. 저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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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LOS>


일반적인 접촉감염 전염병 곡선(person to person epidemic curve)은, 감염 차수를 넘어갈 때마다 파도처럼 봉우리가 있는데 메르스는 사스랑 가까우니까 이런 비슷한 곡선이 나타날 수도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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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PIVILLE>


최근까지의 메르스 발생현황을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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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CDC>


음, 뭔가 발생 환자 수가 줄고 있는 느낌인데.


게다가, 과학저널 '네이쳐(nature)'에서도 '데이터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한국 전문가의 인터뷰를 포함하여 조심스럽게 보도했네. 물론, 공무원들이 부분적으로는 '불운했다(unlucky)'라고 표현한 한국 전문가가 어떤 입장에 있는지, 그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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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쳐>


위 네이쳐 그래프에 따르면 최고점이 5월 21일, 6월 1일, 6월 13일. 간격이 대충 8~12일. 그렇다면 6월 20일 정도. 20일은 주말이니까, 그럼 그다음 주로 적어도 22일쯤이면 어떻게 될지 알게 되겠군.


WHO도 그렇고, 네이쳐도 그렇고, 외신을 봐도 메르스가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줄어드는 추세로 접어든 것 같은데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폐하 지지율이 계속 내려가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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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리얼미터>


그렇다면 다음 주 정도에 폐하께서 한번 등장하셔서 기자회견 하시고, 메르스 종료 선언까지는 아니어도 적당히 둘러대는 수준만 해줘도 지지율은 올라갈 것 같군. 참, 이번엔 눈물은 빼야겠어. 좀 유치하더라고.


오케이! 다음 주에 폐하 기자회견을 잡아! 근데, 다음 주가 됐는데도 메르스 환자가 자꾸 증가하면 어쩌지?


아, 맞다!


그래서, 폐하께서는 국민에게 손을 잘 씻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왜 멍청한 국민이 손을 똑바로 안 씻어서 걸린 병을 국가 잘못이라고 하냐고. 종편 나가서 따지면 되겠구나! 옳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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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손씻기를 해 봅시다'


그래도 계속 난리치면? 그럼 '종북'이라고 하면 되잖어! 장사 한두 번 하나?


하던 차에, 잠에서 깼다. 전부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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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꿈도 이렇게 허무맹랑한 설정이 나오면 꿈이라는 걸 인식하게 되고 잠에서 깬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이 현실일 리가 없잖아? ㅎㅎ 꿈에서 언제 깨어날지 모르겠지만,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뱀발


1. 영어인 super spreader를 그대로 번역하면서 수퍼감염자, 수퍼전염자, 수퍼 전파자 등으로 쓰이는데, 뭔가 어감상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환자이자 피해자인 사람이 범죄자 취급받는 느낌이랄까. 뭔가 적절한 표현이 필요할 것 같다.


2. 각종 재난 상황에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애국심이니 인간애 등으로 포장되어 혹사당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세월호 잠수사분들이 그랬고 지금 의료인들이 그런 것 같다. 최소한, 정부에서는 국민을 공짜로 지들 필요한 만큼 부려 먹을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사람을 부려 먹는 거, 그거 이 나라에서 그렇게 싫어하는 북한공산당이 하는 짓이다. 이 나라 공무원들이 죄다 빨갱이는 아니잖아?


3.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가족과 헤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하며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나라를 만들어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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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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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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