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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9. 26. 목요일

펜더










기타, 사랑, 도끼칼, 3

 


윤민수 사범은 특이한 캐릭터로 가득 찬 고명관에서도 이단아였다.

 

검도는 기세에서 밀리면 끝이야. 훈련은 그 기세를 가다듬는 시간이고, 훈련 중에 목소리 내지 않는 놈은 검도할 자격이 안 된 놈이야.”

 

검력에 맞는 이 있는 거야. 유단자가 막도복 입고 다녀봐라. 지금 검도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 유단자면, 유단자에 맞는 이 필요해.”

 

기본이야. 기본만 지키면 검은 강해져. 체력훈련 빼먹지 말고, 후리기만 제대로 해도 기본은 갖게 돼 있어.”

 

윤민수 사범이 훈련을 지도할 때는 관원들 표정부터가 달라진다. 기합을 지르지 않으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졌고, 빠른 머리치기 100번은 기본으로 하는 것이 윤민수 사범이었다. 도복은 또 어떠한가? 검력에 맞는 도복(싸구려라도 정갈하고, 날렵하게 차려 입어야 한다)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 하에 언제나 칼같이 줄 잡혀있는 도복으로 전신의 근육을 감싼다(그 몸은 도저히 40대라 할 수 없었다). 검은 어떠한가? 훈련이든, 연습이든 검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윤 사범과 한 번 대련을 하면, 몸 여기저기에 멍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최민수였다. 폼생폼사, 4차원 캐릭터, 남자의 가오’, 검에 대한 자부심... 고명관의 최민수였다(얼굴도 잘 생겼다. 몸은 또 어떠한가?). 우리관의 또 다른 민수인 김민수와는 정반대 캐릭터였다(김민수 역시 제정신 박혀 있는 캐릭터로는 안 보인다. ‘그림을 그리는 놈이다. 이 한마디로 부연 설명은 생략하겠다. 난 어쩌다 이런 검도관에 들어 온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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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아아아아!”

 

고명관 최대의 이단아 윤민수 사범이 울부짖고 있었다. 검에 살기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잇달은 연타! 뒤이은 몸받음과 코등이싸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상대의 검과 엇갈린 듯 보이더니, 윤민수 사범의 팔꿈치가 팽 돌아갔다. 뒤이어 허공을 가르는 죽도... 상대 대장의 검을 뿌리쳤다. 시합장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죽도.

 

그쳐! 백 반칙!”

 

(검도시합 중 검을 놓치면, 검을 놓친 이에게 반칙이 주어진다)

 

상대 대장의 검을 뿌리친 것이다. 호쾌했다. 방금 전까지 소란스럽던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상대는 향남 A팀의 대장. 그쪽에서는 큰사범으로 불리는 향남의 에이스였다.

 

우라아아아-”

 

적막을 메우려는 듯 윤사범 특유의 기합이 시합장을 가득 울렸다. 향남관 관중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줄무늬 도복 장난 아니다.”

도복 멋지다...”

큰사범님 밀리는 거 같은데...”

 

도복부터가 튀는 윤사범. 거기에 시합장의 정적을 깬 방금 전의 기합. 스스로 정적을 만들고, 그 정적을 스스로 깬 것이다. 잔뜩 독을 품은 맹수의 울부짖음의 느낌? 아니, 상처 입은 늑대의 포효였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작년에 이긴 상대였는데, 1년 만에 다시 만나 개인전에서 패배를 당했다. 자존심 강한 윤사범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단체전 준결승전에서는 중견으로 나왔던 것이 윤사범이 아닌가? 그런데 결승전에서는 대장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지금 윤민수 사범의 마음이 확실히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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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지 (Revenge)...'

 

본래 늑대기질을 가진 사내였다. 그 늑대가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자신의 이다. 그런데 한 번 이겼던 상대에게 그 검이 꺾였다. 검은 곧 수컷의 자존심이다. 수컷 중의 수컷임을 온몸으로 풍기던 윤민수 사범으로서는 오늘 중으로 그 자존심의 일부라도 되가져와야 한다는 절박감과... 빼앗긴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민수형 좀 이상한데?”

 

좋게 말하면 기합이 잔뜩 들어간 것이고, 기세가 올라가 있는 모습이지만, 어딘지 부자연스러웠다. 도장에서 보던 윤민수 사범이 아니었다. 손 대면 베일 것 같은 팽팽한 기세를 뿜어내는 모습. 본래 저 모습이 윤민수 사범이고, 도장에서의 모습은 기를 한 번 누른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도장에서의 모습이 본래의 모습이고, 지금의 모습은 억지로 쥐어짜낸 모습일까? 어떤 게 정상인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평소의 윤민수 사범이 아니었다.

 

상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검을 잡는다. 굴욕이었을 것이다. 시합장 한 가운데서 검을 떨어뜨린다는 것. 만약 전장이었다면, 목이 떨어졌을 것이다. 상대도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중단세를 잡은 뒤 한 번 어깨를 움찔했다.

 

이요오오오오-”

 

불 같은 기세였다. 불과 불이 맞붙은 것이다. 2회 화성시 대회의 마지막 시합. 성인부 단체전 결승전의 대장전! 불과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스스로를 불태워 상대방을 집어삼키겠다는 기세! 누가 검도를 정중동의 무도라 그랬던가? 불과 불이 붙었다.

 

검을 비비거나 건드리는 사전 동작이나, 탐색전은 무의미했다. 상대방을 몸받음으로 튕겨버리겠다는 기세로 몸을 날린 두 검사(劍士)! 투기는 정직했다. 손목이나 허리 따위가 아니었다. 정직하게 머리를 노린 칼이 허공을 갈랐고, 불꽃이 튀었다. 뒤이은 연타들은 실업팀 선수의 연타 연습을 보는 듯 했다. 정신없이 허공을 가르는 검! 그 검을 받아내고, 역습을 노리는 검! 한 차례의 칼춤이 끝나면, 뒤이은 몸받음! 윤민수 사범의 어깨가 상대의 몸을 밀치면, 상대는 검으로 맞받는다. 짧은 코등이싸움!! 검과 검을 맞대고 지리한 밀당이 이어질 듯 했지만, 오산이었다. 이들은 검도를 하는 게 아니었다(!?). 시시한 포인트 싸움이 아니었다.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싶은 것이었다. 관중석이 후끈 달아올랐다.

 

고명관 파이팅!!”

향남관 파이팅!!”

 

양쪽 관원들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우직한 수컷들의 자존심을 검에 실어 맞부딪히는 투기의 향연장. 관중들은 압도당했다. 지리한 코등이싸움? 그런 건 없었다. 코등이를 살짝 맞대고 잠시 서로를 노려보던 이들... 보통의 싸움이라면, 대치 이후 전투였지만, 이들은 전투 후 막간의 대치를 가지고 있었다. 상대를 집어삼킬 기세! 내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라! 오늘 네 목을 딸 사내다!’ 무언의 외침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심판이 그쳐를 말하기 전 윤사범이 몸을 뒤로 뺀다. 퇴격일까? 아니었다. 검을 빼듯 몸을 뒤로 물리더니 다시 왼쪽 다리에 힘이 실린다.

 

'내가 물러난 것은 왼쪽 다리에 힘을 싣기 위함이다.'

 

라고 말한 것일까? 퇴격 머리가 들어갈 줄 알았는데, 잠시 뒤로 몸을 빼더니 그대로 다시 몸을 날린다. 적의 품안으로 파고드는 윤민수란 사내의 혼신의 일격이었다. 검은 호를 그리지 않았다. 검도는 직선운동이라고 해야 할까? 매가 상공에서 토끼를 향해 내리꽂듯, 뱀이 쥐를 낚아채듯 순간적으로 머리를 향해 날아가는 검! 뒤이은 손목의 스냅! 상대는 돌발적이고, 저돌적인 윤민수 사범의 일격을 예상치 못했던 듯 보였다.

 

머리!!!!”

 

시합장 바닥을 꿰뚫을 듯 한 발구름과 울림, 윤민수 사범 특유의 포효!! 뒤이은 둔탁한 충격음명징했다. 깨끗한 머리 한 점이 들어갔다. 동시에 3명의 심판이 깃발을 올렸다.

 

우라아아아아아- 머리!!”

 

마지막 존심까지 잊지 않은 윤사범. 반론을 재기할 수 없는 멋진 머리였다.

 

우아아아!”

 

윤민수 사범의 머리와 동시에 고명관 관중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고백하건데, 그때 난 시계를 봤다.

 

버텨! 버티면 돼! 형 정도면, 130초 정도야 우습게 버틸 거 아냐?’

 

이대로 시간을 끌면, 윤사범의 승리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 윤사범을 알고, 검도를 알고(?)있는 나로선 말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 아니, 다 떠나서 정직하게 투기를 겨루는 두 검사를 향해서는 내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둘은 지금 시시하게 포인트 싸움을 하는 게 아니었다. 사내들의 싸움. 누가 강한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윤사범은 내 예상대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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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합장 한 가운데서 검을 마주한 둘. 이들은 심판이 빠지자마자 바로 몸을 날렸다. 힘대 힘, 수컷대 수컷, 검과 검의 정직한 대결이었다. 죽도가 진검처럼 보였다. 허공을 가르는 검에는 살기가 충만했고, 이들은... 미련할 정도로 정직했고, 자존심이 강했다. ‘완벽한 승리이 다섯 글자밖에 눈에 들어오는 게 없어 보였다.

 

정신없는 연타와 뒤이은 몸받음. 거리를 재는 듯 선혁에 맞춰 검을 맞대고 있지만, 그건 튕겨나가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한 거리이상의 의미는 없어보였다. 두 맹수가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 한 쪽이 늑대라면, 다른 한 쪽은 상처 입은 호랑이였다. 상대를 잘못 봤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이빨을 들이밀고 덤벼들 수 있는 맹수. 그게 늑대다. 그 늑대가 이빨을 들이밀고, 덤벼들고 있다.

 

일격을 당한 호랑이. 향남의 큰사범은 조용히 중단세를 가다듬고 있었다.

 

'부동심(不動心)...'

 

몰렸음에도, 일격을 받았음에도, 시간이 등 뒤에서 쫓아옴에도 상대는 완벽한 중단을 보여주고 있었다.

 

, 버텨! 뛰어들어가지마.”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상대의 중단을 보는 순간 어떤 위압감 비슷한 감각을 느껴야 했다. 움직이진 않지만, 그 안에서 맹렬히 타오르고 있는 상대의 투기가 언뜻 느껴졌다. 이 상황에서 중단을 잡고 딱 버티는 저 모습은 보통 검사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 자리에까지 섰겠지'라고 가볍게 치부할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고 있어야지만, 잡을 수 있는 자세이다. 상대는 민수형이 치고 들어올 걸 알고 있었다. 민수형의 성향을 안다고 해야 할까? 아니, 민수형이 남자라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시시하게 포인트 싸움을 하고, 1점에 목숨을 거는 검도가 아니라, 정직한 힘대 힘의 대결을 하고 있다고 두 사람 모두 납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슬금슬금 선혁을 앞으로 미는 윤사범... 슬폇 윤사범 도복 바지에 시선이 흘렀다. 뒷발... 왼발이 슬폇 바지 사이로 보이는 듯 하더니 바지 사이로 들어갔다. 무릎을 굽힌 것이다. 튀어나가려는 것이다! 0.2? 바지 사이로 잠깐 보였다가 사라진 왼발! 뒤이은 기합과 허공을 가르는 검! 윤사범의 몸이 용수철 튕겨나가듯 상대에게 날아갔다.

 

머리!”

손목!!”

 

두 개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 하는 바람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아니, 들린다고 느끼는 거였다(후리기 좀 하면, 죽도가 내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들의 검은 최소한 15년 이상씩 바람을 가른 검들이 아닌가?).

 

'...'

 

청아한 타격음. 그 타격음이 잦아들기 전에 심판의 깃발이 올라갔다. 민수형의 손목에 검이 꽂혔던 것이다.

 

상대는 약 반 박자 뒤에 뛰어들었다. 아니, 거의 동시라고 해야 할까? 검을 보고, 검을 피했다고 해야 할까? 크로스 카운터? 분명 상격이 날 것이라 생각했는데(내 바람이 더 강하게 묻어난 것이지만), 윤사범의 검은 허공을 갈랐고, 상대의 검은 윤사범의 손목에 꽂혔던 것이다.

 

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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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존심과 심판의 외침. 들려있는 깃발. 이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각자 목과 가슴에 상대의 이빨이 한 번씩 꽂혀있는 상태. 피를 흘린 상태지만, 체급이 달랐고, 상황이 달랐다. 상대는 이미 기세가 오른 상태였고, 윤민수 사범은 한 번 기세가 꺾였다. 상처 입은 늑대와 호랑이. 승부의 무게 추는 기울 수밖에 없었다.

 

우라아아아아아!!”

 

다시 한 번 윤민수 사범의 기합이 시합장을 갈랐다. 자기 안에 스며든 패배의 기운을 날려버리 듯,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서 내지른 기합이었다. 상대도 지지 않고, 기합을 토해냈다. 내장을 다 쥐어짜낸 기합. 두 사내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뒤로 도망갈 수도 없다. 다음 판이 끝이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칼날 위에 서 있는 두 사내.

 

윤민수 사범이 가볍게 왼 팔목을 비틀고 있다. 순간 팔목에 찬 보호대가 힐끔 보였다.

 

'엘보우...?'

 

윤민수 사범은 엘보우다. 테니스 엘보우를 아는가? 테니스로 유명하지만, 팔과 어깨의 활동량이 많은 스포츠를 하는 사람에게 종종 찾아오는 게 팔꿈치 통증이다. 보통 테니스 엘보우, 엘보우라고 말한다. 내색은 안했지만, 4단 심사를 위해 몇 달 간 무리를 했고, 4단을 딴 뒤 얼마간 검도관을 쉬어야 했다. 수련을 하기 전 꼭 보호대를 차는 걸 우리는 모르는 척 한다. 팔꿈치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정형외과는 물론, 좋은 한의원이 있다면 먼 길 마다않고 찾는 게 윤사범이었다.

 

손목 타격의 충격이었을까? 아니면, 기세를 잡았을 때는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있던 통증이 기세가 꺾이면서 비집고 들어온 것일까?

 

바른 자세만 취하면 엘보우는 안 와.”

 

웃으며 말했지만, 윤사범의 훈련량을 가늠해 본다면 엘보우가 안 오는 게 이상하단 생각을 했었다. 상처의 깊이는 늑대가 더 깊었다. 버티는 건 무의미했다. 연장으로 가면 필패다. 팔꿈치나 손목에 무리가 갔다면, 검의 힘은 반으로 줄어들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힘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다.

 

...버티는 건 무의미하다. 불과 30초 전까지만 해도 버티라고 외쳤던 나였지만, 이제 남은 건 온 몸의 힘을 끌어 모은 일격이다. 이쪽은 기세도 꺾였고, 몸도 성치 않은 상태다(내 자의적인 판단이다). 초반의 연타와 몸받음, 검을 뿌리칠 때의 기세, 1점 딸 때의 2번의 돌격, 1점 잃을 때의 1번의 돌격. 이미 체력은 다 했는지도 모른다. 윤사범의 어깨가 움직이지 않는가? ...

 

살짝 올라가던 윤사범의 어깨가 조용히 가라앉는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호흡을 들키면 지는 것이다... 베르세르크에서 이름 모를 엑스트라가 가츠의 검에 두 쪽이 나기 전 내뱉었던 대사. 흘려들었던 그 대사의 의미를 검도를 하면서 알게 됐다. 호흡을 들키는 건 죽음이다. 윤사범은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아직 윤사범에게는 30초가 남아있고, 그의 손에는 검이 들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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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력 15년의 기력은 괜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윤사범의 기세도 조용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니, 기세가 가라앉은 게 아니었다. 중단을 잡은 모습은... 도장에서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 보다 상대를 더 잘 아는 윤사범(검을 맞대고 있는 건 윤사범이 아닌가? 작년부터 벌써 3번째 검을 맞댄 상대지 않은가?). 윤사범은 평정을 찾았다. 정중동(靜中動) 검은 맞닿아 있지 않지만, 둘 사이에서 팽팽한 신경전이 흘렀다. 아마 이들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칼들이 오가고, 서로 합을 맞추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상대의 머리나 손목을 향해 수백 번의 검을 날리고, 날아온 검을 되받아 쳤을 것이다. 보통의 싸움과 정 반대의 상황이었다. 탐색, 확인, 격돌이 아니라 격돌 뒤에 확인, 탐색이었다. 아니, 이건 탐색이 아니다. 윤사범의 앞발은 슬금슬금 앞뒤를 오갔지만, 왼발은 몇 번이나 움찔거렸다. 타이밍을 재는 것이다. 윤사범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은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방식대로 결착을 짓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점점 리듬을 타는 게 느껴졌다. 관중들이 두 사내의 검에 온 시선을 집중 하는 사이 난 윤사범의 왼발에 같이 리듬을 맞추고 있었다. 보일 듯, 말 듯 바지 사이에서 숨바꼭질 하는 왼발.

 

'발꿈치가 사라지는 순간 시합은 끝난다.'

 

...순간이었다. 3번째 격돌 때보다 더 힘차게 왼발이 튕겼다. 동시에 쭉 뻗은 팔! 좌상단의 머리치기보다 더 길게 뻗어나가는 듯 보였다. 윤사범은 이번에도 머리를 노렸다.

 

상대의 기세를 죽인다? 상대의 검을 죽인다? 이들의 싸움에서는 불필요한 과정이었다. 이들은 힘대 힘, 기세와 기세의 싸움을 원했지, 잔기술로 싸우길 거부한 것이다. 상대도 정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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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장 바닥을 울리는 두 번의 발구름

...'머리'인지 '손목'인지 제대로 분간치 모를 두 사람의 괴성

...허공을 가르는 두 개의 죽도

...펄럭이는 심판들의 깃발

...환호와 낙담이 오가는 관중석

...멈춰버린 시계

 

2회 화성시 생활체육 검도대회 성인부 단체전 결승전. 고명관 A팀 최종전적 41. 대장전 2:1 고명관 윤민수 사범(4) 패배.

 

그렇게 남자들의 승부는 모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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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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