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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7. 금요일

카인

















지난 1회에서 미국 수퍼히어로 만화 장르의 역사적 변천을 살짝 짚었다. 역사는 재미없을 수 있지만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현재 우리가 즐기는 캐릭터들의 기원과 성격이 그 역사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덕후 중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덕후들과의 교류가 필요하다. 그런데 기존 덕후들은 이미 이 역사를 숙지하고 있고 역사에서 비롯된 용어를 무리없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덕후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원활하게 접수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용어를 알아야만 한다. 물론 관심이 가면 알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난 단지 거들었을 뿐.


지난 회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수퍼히어로는 2차 대전 당시 태동하여 골든에이지-황금기를 열어 양적 팽창을 했고, 이후 종전으로 인한 침체와 사회의 검열 시도로 인해 다각도의 질적 변화를 꾀한 실버에이지로 이어졌다. 실버에이지 당시 개척된 여러 실험을 토대로 이후 과도기인 브론즈에이지와 현재인 모던에이지에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과 작가적 역량이 표현되는 성숙한 장르가 되었다. 하지만 거시적인 시각에서 시장은 조금씩 어려워지고 있고, 양대 산맥인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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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서로 때려죽이는 식은 아니다.


이 활로 찾기의 과정에서 두 회사의 가장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오늘 이 이야기를 해보자.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소설이나 만화가 창조한 세계를, 실사의 형식으로 옮겨보고 싶다는 욕망은 유서가 깊다. DC와 마블의 세계 또한 이런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3, 40대의 기억에 남아있을 원더우먼과 플래시의 드라마 또한 그런 욕망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효과의 기술 수준이 급상승되자 만화의 상상력을 제대로 영상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자본과 작가들이 환호를 올릴 만하다.


마블의 특징은 잘 완성되어 있는 작중의 세미 판타지 세계다. 유일신과,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화신급의 인물들과, 이로 인해 분류되는 힘의 등급 등 완결된 세계관이 깔끔하다. 때문에 마블이 직접 영화 제작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들이 만든 세계를 독립적인 허구 세계로 완성하고 싶은 욕망을 회사 자체가 갖고 있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안 감독의 2003년작 [헐크]는 수퍼히어로 영화라기보다 철학적인 그리스 고전극에 가까웠다. 영화를 맡은 제작자와 감독이 마블의 영화가 아닌 자신들의 영화를 만들어내자 마블은 자기들이 만든 세계를 직접 통제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아이언맨]부터 시작된, 일명 어벤저스 프로젝트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기획되었다. 영화가 잘 되면 돈도 많이 벌 것이고 말이다.


통제광 마블은 이미 다른 곳에 팔린 스파이더맨과 엑스멘의 판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캐릭터의 영화화 판권을 보유해놓고는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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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까지의 이야기를 착실히 정리해둔 어벤져스 연대표다.

[아이언맨]과 [퍼스트 어벤져]부터 [어벤져스]까지는 페이즈 1으로 설정되었고 [아이언맨3]에서 페이즈 2가 시작하여 [어벤져스 2]로 끝날 예정이다.


마블은 자사의 캐릭터를 이용해 만들어진 드라마, 영화, 게임들을 모조리 평행우주 처리했다. 이안 감독의 [헐크] 같은 경우에도 마블의 마음에는 안 들었지만 이 역시 멀티버스 번호를 부여받았다. 당연히 직접 기획한 어벤져스 세계도 정식 멀티버스 번호를 받았으니 지구-1999999다. 메인 세계관인 지구-616의 여러 요소를 가져와 기획했고, 덕분에 만화에서는 어벤져스 원년 멤버인 앤트맨이 페이즈 3가 되어서야 등장하게 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만화의 작가들이 '우리는 협업하여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며 창작열을 올렸던 것처럼 영화의 제작자와 감독들도 유사한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고, 마블의 중앙통제에 의해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되면서 만화의 세계와 연결은 되지만 독립적인 세계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벤져스]는 수퍼히어로 영화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위치를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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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적이다. 갖고 싶다.


그럼 DC는? DC는 마블보다 통제에 대한 욕구가 덜했다. 작가들의 자유도가 좀 더 높았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평행우주가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마블과 달리 DC의 평행우주는 중구난방에 가까웠다. 게다가 평행우주끼리 연결되는 이벤트가 많아서 이야기가 복잡해졌고, 영화/드라마 등의 2차 창작물에 대해서도 정리나 통제를 크게 하지 않았다.


덕분에 실사화의 첨병인 영화의 영역에서, DC의 브랜드는 수퍼맨과 배트맨 정도만 살아남아 21세기로 넘어왔고 나머지는 처참히 실패했거나 시도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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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브랜드 영화 중 최악의 실패작인 [그린 랜턴]

'이 영화 절대 보지 마라' 리스트가 있다면 반드시 랭크되어야 한다.

감독 마틴 캠벨과 주연 라이언 레이놀즈에겐 최악의 필모그래피가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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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리언 팔리키 주연의 새 원더우먼 드라마는 아예 엎어졌다.

이를 전후해 로빈을 다루기로 한 드라마 역시 취소.


DC의 캐릭터를 이용한 확장은 사실상 수퍼맨과 배트맨으로 먹고 살고 있다. 영화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각각 감독과 제작자로서 배트맨과 수퍼맨을 되살려 놓았으며, 게임에서는 배트맨 연작이 훌륭한 완성도와 작품성으로 아성을 쌓았고, 드라마에서는 2000년도 초반의 [스몰빌]이 수퍼맨 브랜드를 유지시켰다. 최근 그린 애로우가 이 대열에 합류하긴 했으나 그린 랜턴 영화의 폭망은 DC 브랜드에 뼈아픈 타격이다. 할리 베리 주연의 [캣우먼]도 상당한 혹평을 받았다. [왓치맨]은 원작의 스타일을 따라가 그 깊이까지 가져온 매우 희귀한 경우다.


결국 다양한 영웅들의 모임이라는 컨셉은 DC의 저스티스 리그가 먼저였으나 다수의 대중에게 먼저 각인 된 것은 어벤져스가 되는, DC로서는 수모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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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 리그의 주축 멤버들. (왼편 위에는 리부트 이전의 아톰도 살짝 보인다.)

그림은 국내에도 발매된 [저스티스]의 그림을 담당한 알렉스 로스의 것.

[어벤져스]의 성공을 본 DC는 어떻게든 저스티스 리그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것이라고 하는데,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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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팬이 저스티스 리그 영화를 갈망하며 만든 팬 아트. 하지만 [어벤져스]는 쉽게 나온 영화가 아니다.

아래 크레딧을 보면 감독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제작에는 잭 슈나이더, 각본에는 명성을 얻은 만화 작가 그랜트 모리슨, 제프 존즈의 이름도 보인다.


반면 DC는 게임 쪽에서 강세를 보였다. 누누이 언급하는 명작 브랜드인 배트맨 연작은 물론이고, 온라인 게임 쪽에서도 MMORPG로 개발된 [DC Online Universe]의 완성도가 평작 이상이었다. 반면 마블이 영화의 개봉에 맞춰 발매한 게임들은 모조리 평균 이하였으며, 거기다 디아블로 방식의 핵앤슬래시 장르로 개발한 온라인 게임 [Marvel Heroes Online] 역시 2% 모자란 완성도와 운영의 미숙으로 인해 반쪽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승자는 당연히 마블이 된다. 게임은 체험성이라는 강력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비해 비교적 덜 대중적이고, 마블은 이미 만화의 힘을 빌지 않고 영화 연작만으로도 독립된 세계를 구성하는 데 거의 성공했다. 반면 DC는 캐릭터와 서사를 이용해 재창작한다는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차이는 앞서 언급한 두 회사의 차이에 기인한다. 작가의 자유도를 조금 더 준 DC의 스타일과 완결된 구조의 세계를 추구한 마블의 스타일에서 온 차이 말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실버에이지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차이는 두 회사 소속 캐릭터들의 성격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 어떤 작가가 맡아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든 간에 각각의 특색을 갖게 했다. 마블은 캐릭터와 이야기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던가 DC는 이야기에 인문학적 함의를 담아내기 편리했다던가 하는 식으로.


다음 회에는 두 회사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 스타일의 차이를 다루고, 나아가 중요한 작품과 참고할 자료가 그득한 라이브러리도 공유하도록 하겠다.


다음 주까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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