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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사장은 이 토론회를 뉴스룸에서 직접 언급하며 홍보했을 만치 나름 흥행에 자신감이 있었던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개보신당(아무리 그래도 요즘 세상에 개로 보신을 한다는 내용을 서브리미널 메시지로 당 이름에 넣다니 너무하다)의 사실상 간판인 유승민, 아직까지 메이져 방송빨을 못 받아본 대선 지지도 3위의 이재명이 나올뿐더러 썰전의 시청률에 혁혁한 공을 세우는 중이자 손석희의 100분 토론 시절 추억의 패널이기도 한 유시민 전원책 콤보가 합세한다니. 티 안나게 세트 이동을 해도 됐을 텐데 굳이 뉴스룸 클로징을 하기 전에 이동을 함으로써 가장 세련된 형태의 '채널 고정' 메시지를 건넸을 정도로, 손석희 사장의 기대는 컸으렸다.


사실 토론회가 시작하고, 손석희가 진행을 하는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어린 시절 뛰놀던 시소의 삐걱 소리를 듣는듯한 향수에 아련함마저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그는, 그의 기대가 얼마나 동화적인 것이었는지, 토론 초반을 진행할 때만 해도 미처 깨닫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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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토론회의 4인 패널을 2인씩 조합하면 총 4*3/2가 되면서 6개 조합이 나온다. 조합별로 정리함으로써 이번 토론 빙자 예능 토크쇼를 요약해보자.



1. 전원책&이재명 : 붙으면 우주를 멸망시킬 상극 성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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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은 기본적으로 종교인이라고 봐야 한다. 그 종교는 법인세율 수호, 복지 반대, 색깔론, 그리고 전근대적 성 관념을 숭상한다. 100분 토론 시절부터 그는 때때로 꽤 리버럴한 토론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위 4개 분야만큼은 누가 건들기라도 하면 진행자고 방송시간이고 나발이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한바탕 아수라장을 만들어낸다. 


한편, 이재명은 다른 3명의 패널에 비해 방송 경험이 부족한, 비교적 신인의 위치였다. 토론방송 신인들이 늘 그러하듯, 나름대로 다양한 경우의 반박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차근차근 발언을 시작했지만, 여기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예상치 못한 수준의 반박이 나오면 차분함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것. 둘째, 지금 하는 말이 상대방의 종교적 터부인지 아닌지까지는 알지 못했다는 점.


결국 이재명은, 당연히 합리적인 정치인이라면 그러하듯, 복지재원 확보 방안의 일부로 법인세율 조정을 거론했고, 본인의 종교 모독을 목격한 전원책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싸대기를 날려 손석희가 총 1분간 18회 정도 그의 이름을 부르게 만든다. 이 타이밍에서 이미 사실상 토론회라는 성격의 정체성은 소멸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기상천외한 반응을 라이브로 목격한 이재명이 준비된 자세를 잃고서, 신인다운 대응인 '황당하다는 듯한 논박'의 태도를 드러내 버린다. 이러한 태도는 전통적으로 전원책의 종교적 방언에 불을 지피게 되고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후 둘이 말을 할 때마다 이러다 오디오 감독이 사표를 쓰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아릴 만큼, 그렇게 손 사장의 동화적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2. 유승민&이재명 : 노장 수비수와 신인 골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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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에 대한 평가는 보통 둘로 나뉜다. 그나마 합리적인 새누리. 아니면 능구렁이. 능구렁이라는 평 자체가, '스스로를 합리적 보수로 포장하는 걸 잘 하는 능구렁이'라는 의미이므로, 결국 이 두 평가의 진위는 '그는 결국 합리적이냐 아니냐'로 가늠할 수 있을게다. 논리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더 크게 보면 그의 합리성은 검증이 불가능하다. 그는 표면적 성향은 한국의 보수(참칭)정당 내에서 절대 관철될 리 없는 성격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매번 '나는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으로 본인을 변호하면 된다. 즉 그의 합리성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검증이 불가능하기에,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합리적이지 않다. 그가 수구정당에 있는 한에는 말이다.


신인 이재명은 나름대로 이 점을 노려보려 한다. 하지만 의욕이 앞선 나머지 먹히지 않을 공격을 하고 만다. "당시 담배세 인상 찬성하셨죠"라니. 슈뢰딩거의 유승민을 너무 우습게 본 어림없는 볼. 


유승민은 이 미숙한 공격을 이용해서, 마치 100분 토론 시절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할 법한 말들로 대응한다. 사태를 뒤늦게 깨달은 이재명은 나이스한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뭐 신인으로서 나쁘지 않은 민첩한 전환이었지만 결국 유승민이 다소 점수를 딴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게 과연 의미를 지니게 될까. 이재명은 나름 두 자릿수 지지율이니 혹시 모른다 치지만 유승민이 대선후보로 나오는 상황이 벌어지기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이 왜 굳이 유승민을 직접 공격했는지는 매우 의문스러운 부분이다. 합리적으로 예상 가능한 이유는 그저 앞으로의 숱할 대선주자 토론에 있어 '스파링 상대'라고 치고 한번 해본 것. 만약 그렇다면, 이번 스파링을 통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으면 한다.



3. 유시민&유승민 : 선수와 선수의 실질적 불꽃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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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유승민이 논리적 검증 불가 지위를 이용했다면, 유시민은 이제 좀 있으면 구름을 타고 다닐법한 해탈의 지위에 가까워졌다고 하겠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분들을 제외하면, 유시민만큼 한국 현대 정치사를 중심에서 겪은 인물이 과연 몇이나 있겠나 싶으니 말이다. 그런 사람이, 한창 나이에 사실상 백수라니. 그 다채롭고 드라마틱한 삶의 면면이 시간과 함께 쌓인 결과, 유시민은 과거의 예리함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이 가히 날카롭지는 않은 묘한 경지에 이른 듯하다. 


정치적 정체성을 양자역학의 경지로 올린 유승민과 스스로 해탈의 경지에 이른 유시민의 대화는, 언뜻 심심하고 담담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사실상 이 토론회에서의 유일한 '싸움'이 벌어졌다. 선공은 유시민. 새누리당이 안보 이슈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개보신당이 뭐가 다르냐는 질문. 


이 질문이 신묘한 이유는, 답변자다 설 자리가 매우 좁기 때문이다. 일단, 유승민은 어느 정도 반성의 스탠스를 보여왔으므로 새누리당의 안보 정치화 자체를 부정하긴 부담스럽다. 그러면서 개보신당을 분리하기에는 김무성류가 대놓고 예나 지금이나 색깔론 공격을 유지 중이다. 자칫하면 새누리와 그저 그런 한패로 유지되거나, 개보신당 내에서도 잔 분열이 일어날 수 있는 셈. 


능구렁이 유승민은 결국 그 좁은 설 자리를 정확히 찾아낸다. 전후좌우 모두 자르고 '나는 안 그런다'는 말만 하는 것. 그 어떤 부연 설명도 곁들이지 않으면서 주어를 '나'로 한정 지어 이어지는 재반론을 차단한다. 


하지만 결국 이 짧은 합은 유시민의 승리였다. 이 묘한 수로 인해 유승민은 결국 새누리와 개보신의 차이를 안보이슈에 대한 프레임으로 가져오면서, 그전에 언급했던 다양한 차별점을 희석시킨 채 '아슬아슬 약간 다르긴 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정계 은퇴 후 유시민의 내공. 그 깊이는 더 깊어질까. 그걸 보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컴백했으면 싶기도 하다. 



4. 유시민&전원책 : tranquili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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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설명도 필요 없다. 본인의 종교 모독에 눈이 뒤집힌 전원책을 잠재울 자는 유시민 고수뿐이다. JTBC는 이 둘을 계속 패널로 쓰려면 전원책 몸에 전기충격기를 달아놓고, 무선 스위치를 유시민에게 주는 안을 심각하게 검토해주길 바란다.



5. 유승민&전원책 : 한국 보수의 두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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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의 양자역학적 정치성향은 '중도 코스프레'와 같은 맥락이다. 평소에는 다양한 중도적 정책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엔 정치적 권력 유지를 위한 선택을 하는 패턴. 우리 주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한편 또 다른 메이져한 스타일이 있다. 바로, 자신의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가 보수로 귀결됐다고 주장하는 스타일. 사실 한국 사회의 보수가 이런 말을 하는 건 그 자체로 모순이다. 단순하게, 이 나라의 국가보안법, 세법, 성 관념 등등은 합리적이지 않은데, 이들은 그 모두를 지지하기 때문. 그러므로 이들의 자칭 합리적 논증이 겉보기에 논리적으로 보인다면 문제의 원인은 하나다. 그들의 '전제'가 틀린거다. 전원책이 그렇다. 전제가 틀린 논증에 대해 자존심을 걸어버린 나머지, 종교적 성향마저 지닌다. 


전원책이 보기엔 유승민류가 자신들의 적이다. 자신의 논리로는 양립이 안 되는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승민에게는 전원책류가 방해물이다. 궁극적으로 전원책류의 전제 오류를 까발려버리자면 보수 자체를 부정하게 되고, 그냥 수긍을 하자면 중도 코스프레가 안되기 때문. 서로 다른 형태의 모순이 서로를 반박하는 꼴이다.


한국 보수 정치 세력은 크게 이 둘로 대변된다는 점에서, 이 시국에 유독 이 둘이 티격태격한 건, 다가오는 대선 정국에서 보수세력 안에 또 한번의 갈등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6. 유시민&이재명 : 나는 너의 적도 스승도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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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단독연설이 아닌 토론은 처음봤다. 많은 시청자들이 그랬을 것 같다. 그의 스타일은, 준비된 상태에서는 매우 깔끔하고 스마트하다는 느낌이었으나, 즉흥 상황에서는 고집스럽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 고집스러움은 욱함, 뒤끝 등의 키워드와 같은 연상 굴레 안에 있다. 여론이 그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공격성은 한때 유시민의 수식어였다. 맞는 말도 밉게 한다느니, 싸가지가 없다느니 등등. 개인적으로는 이재명이 당시의 유시민보다 쫌 더 심한 거 같긴 하다만, 암튼 중요한 건 그 공격성의 상징이었단 유시민이 이제는 반 도인이 돼 있다는 점.


유시민이 이재명에게 '감정 조절 능력'에 대해 물은 건, 일종의 배려이자 실제 본인의 진지한 궁금함이었을 게다. 같은 질문을 다른 두 명이 했다면 훨씬 거칠었을 테고 그랬다면 이재명의 답도 더 거칠었겠다는 면에서 배려다. 동시에, 유시민도 이재명과 그리 가깝지는 않으니, 욱함의 선배로서 이 친구는 어느 정도인지 실제로 궁금했던 것 같다. 


하지만 쌈박질에 익숙해진 이재명 신인은, 이 좋은 기회에서 어느 정도까지 나이스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감을 너무 얕게 잡는다. 유시민의 그 정도 질문 톤이었다면, 날 선 느낌을 완전히 0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것이,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지니는 우려에 대한 유일한 보답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도 뼈아팠을 가족에 대한 얘기에 대해 본인도 모르게 날카로운 날 끝을 채 감추지 못하고 만다. 아쉽다. 


유시민은 이후로도 토론에 있어 이재명에게 조언을 하기도, 전원책 말을 끊어주기도, 실수를 덮어주기도 하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호의와 적의의 얼추 중간쯤을 유지하는 듯 보였다. 


이번 주 썰전에서 김구라가 이재명에 대한 유시민의 평을 물어봐 준다면 좋겠다. 해탈 고수가 몸소 느낀 신인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결국 남인지, 아니면 한 수 물려주고 싶은지.



7. 번외 :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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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의 가장 무서운 내공은 빵 터트려놓고 자기는 안 웃는 포커페이스에 있다. 토론 내에 그 내공은 빛을 발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토론회는 그의 기획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얼마나 전원책이 미웠으면 '내년 이맘 때 보자'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2017년에 손석희가 직접 진행하는 토론이 이걸로 끝일 리는 없을 것 같다. 전원책은 절대로 없을 다음 토론회가 기대되는 바이다.




춘심애비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