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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19. 금요일

국제불패 벙찐









편집부 주


아래 글은 국제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독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3번 마빡에 올라가면 필진으로 자동 등록됩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얼마 전 미국 과학고 유학생이 벌인 희대의 사기극이 막을 내렸다. 짧게나마 우리를 웃기고, 울려주고, 흥분시켜주었던 사건이었다.


학생의 거짓말을 파악한 학생의 아버지가 사과성명을 내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 성명서에선 우리 가족, 우리 딸을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가 이건 다 내 잘못이니까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눈물겹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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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냥 넘어가기엔 곳곳에 꼴릿한 내용이 많아서, 입을 막고 있다가는 새벽에 몽정할 것 같은 불안감에 일단 썰을 풀어본다.


우선 밝혀야 할 것이 있다. 필자도 문제의 학생이 다닌 학교(Thomas Jefferson High School for Science and Technology; 이하 TJ)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이다. 자랑하려는 건 아니고 다른 사람들보다 이번 사건을 좀 더 근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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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른 기사들에서 학생의 실명과 사진이 공개되었지만, 아직 어린 학생이니 이 글에서는 굳이 그러지 않겠다. 그 정도 배려는 해주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러니 댓글에서도 이에 따라주시면 고맙겠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그 아이 아버지가 나같이 힘들게 사는 교민이었으면 이런 글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근데, 내로라하는 한국의 게임업체 전무라니. 한마디로 잘난 사람이잖아. 신문사에만 사과 성명을 보냈던데, 그렇게 끝날 문제인지 묻고 싶다. 사과는 이 일로 마음고생 하게 된 주변 사람들에게 해야지. 왜 지난번엔 TJ 한인 학부모들에게 우리 딸에 대해 헛소리하지 말라고 협박성 이메일을 전체메일로 날렸으면서 사과는 그렇게 안 하시는지.


자, 이제 몇 가지 짚어보자.


밝혀진 사실로 짜집기를 해보면 대충 그림이 나온다. 아이는 아버지한테 그동안 거짓말로 성적이나 수상 경력 등을 부풀려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급기야 작년 12월에 하버드 early admission(조기입학)을 받았다는 거짓말까지 하게 된다. 아버지는 신이 나서 주변에 자랑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뉴스거리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하버드에 조기입학 하는 한인 학생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런데 학생이 스케일을 부풀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하버드에 이어 스탠포드도 합격했을 뿐만 아니라, 워낙 특출나고 특별한 케이스라 양쪽 학교 교수들이 애걸복걸하며 자신의 학교로 와달라고 하고 있으며, 장학금도 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시 합격을 넘어서 ‘동시 입학’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고 했다(TJ엔 하버드와 스탠포드에 동시에 합격하는 학생들이 꽤 있기 때문에 하나를 더 얹었다).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주크버그가 전화를 해서 꼭 좀 만나자고 했다는 대목이다. 화룡점정.


이런 여고생의 발칙한 상상의 세계에 감동한 나머지, <워싱턴 중앙일보>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거의 받아쓰기 수준으로 기사를 써 재껴 버렸다. 그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병림픽 3위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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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워싱턴 중앙일보>


그러자 한국에 ‘기자’라는 작자들이 전등 밑 모기떼 마냥 몰려들어서는, 받아쓰기한 기사를 한국으로 퍼 나르기 시작한다. 이건 뭐, 처녀 선생님 팬티 색깔이 궁금해 죽겠는 굶주린 중고딩들 사이에서 누가 "오늘은 빨간색이야" 외치니 순식간에 전교에 소문이 퍼지는, 뭐 그런 수준이다. 당신들 그러고도 스스로 언론인이라고 부를 수 있냐? 병림픽 2위 등극.


병림픽 1위의 영예는 짐작하시겠지만, 바로 그 아버지. 애초에 이 사건이 아이가 신문사에 전화해서 ‘나 이렇게 잘난 학생이니까 기사 좀 내보내 주세요~’ 한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녀서 사단이 나게 된 거다. 그때 하고 다닌 말과 행동이 이젠 비수가 되어 여기저기서 날아와서 마음을 후비고, 파고,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한국 언론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사실들이다. 지금부터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 알아보겠다.



<워싱턴 중앙일보>


첫째, <워싱턴 중앙일보>라 하면 ‘중앙일보 워싱턴 지역판’쯤 될 것 같은데 그런 게 아니다. 중앙일보가 좋은 신문이라는 건 아니고, 최소한 조중동이건 한겨레, 경향, 오마이건 딴지일보건 최소한 신문의 틀은 갖추고 있다. 근데 <워싱턴 중앙일보>, <워싱턴 조선일보> 같은 신문들은 신문이라 말하기도 민망하다. 예컨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 육하원칙이나 주어-서술어, 논리 전개, 문단 구성 같은 것들, 그런 거 없다.


이 신문들은 2-3명의 ‘기자’가 8면을 꽉꽉 채워 쓰고 있는데, 대부분 미국 언론의 뉴스를 번역하여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에게 얘기를 전달해주는 수준이다(그것도 제대로 못 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realtor라는 학자가 "최근 2-3년 동안 집값이 많이 떨어졌으니 지금 집을 사서 한 10년 동안 갖고 있으면 될 거다"라고, 근거도 없고, 논리고 없고, 말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틀린 말이라고 할 순 없는(그 말이 맞을 수도 있으니까) 말을 했다고 치자. 그럼 요 신문들은 이 얘기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근거가 부실하더라도 그래도 기사로 적는다.


조중동이 욕을 많이 먹는다 해도, 이런 언론들은 기게 막히게도 욕을 할 수도 없다. 내용이 있고 주장이 있어야 비판을 하든지 욕을 하든지 하지. 구글 번역기 문장 같은 거에 욕을 할 수 있냐?


그러니까 <워싱턴 중앙일보>의 기사도 어차피 그런 수준에 딱 맞는 내용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이구 어이구 우리 손녀, 아니면 누구네 손자 잘한다, 천재다.’라고 떠드는 말들. 딱 그런 수준의 독자층에 맞는 기사들이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는 처음 기사를 쓴 기자는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기사가 <워싱턴 중앙일보>라는 감투와 함께 등장하니, 한국의 기레기들은 조금 미심쩍기는 하지만 그래도 설마 하면서 그냥 갖다 베낀 거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하버드, 스탠포드라는 학벌에 열광하니까. 간판, 감투만 걸려 있으면 내용은 따지지도 않는다. 그나마 문제를 제기한 <경향신문>엔 박수를 쳐주고 싶다(박재홍이란 CBS 라디오 진행자에게는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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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기자협회>



학생의 아버지 


두 번째, 그 학생의 아버지가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 출신이다. 특파원? 그 정도면 영어 잘하는 사람일 것 같다. 영어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를 빠삭하게 들여다볼 사람 정도려나? 나도 그 정도 기대를 안 한 건 아니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근데 완전히 속았다.


아버지가 전혀 의심을 안 한 건 아닌 듯싶다. 워낙 특별한 케이스로 사건이 흘러가니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었겠지. 그래서 아이한테 몇 가지 물어본 것 같고, 그 바람에 아이는 letter를 위조하거나 아버지 앞에서 스탠포드 교수와 통화를 하는 척을 한다든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수개월 동안 그 거짓말이 통했다는 것은, 아버지가 스스로 확인해 보려는 시도를 전혀 안 했다는 의미다.


스탠포드, 하버드 교수와 통화하는 모습을 봤다면, 굳이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하다못해 교수와 인사라도 하면서 ‘thank you for taking care of my daughter’ 정도의 멘트는 날릴 수 있었다.


더 웃기는 건 한참 의혹이 일던 때의 대응이다. 아버지는 ‘그동안 대학 측과 주고받았던 이메일을 공개할 의향이 있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했다. 딸의 말을 지나치게 신뢰했기 때문이었을까? 나였으면 그냥 대학에 전화해 직접 교수한테 물어봤겠다. 그럴 능력도 안 되니까, 자꾸 딴 것만 공개한다고 하는 건 아닌지. 만약 아버지가 좁디좁은 한인사회에서만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해를 하겠다. 근데 아버지는 주요 일간지에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던 사람이니까. 이게 특파원의 수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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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컷뉴스>


아버지가 조금만 잘 대처했어도 학생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이 사건을 둘러싼 몇 가지 사안들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 보자.


1. 몇몇 기사나 블로그에서 ‘한국과 미국 현지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했던’이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여기선 별로 신경 안 쓴다. don't care 그 자체다. 이렇게 누가 잘되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대개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일단 부러움. 선망의 대상에 올려놓고 시작한다. 그리고 곧 그 마음은 질투로 변한다. 이때 상대를 검증하려고 시도하게 되는데 진짜로 드러나면,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그 사람을 나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올려놓고 어느 정도는 존중해준다. 일부는 질투심에서 영원히 극복하지 못하고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하지만.


미국사람들에게는 이게 왜 don't care이냐 하면, 기본적으로 이게 대단한 부러움이나 선망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들은 목표가 천편일률적으로 명문대 진학이지만, 미국 학생들은 학생 수 만큼이나 많은 목표가 존재하고, 특정 학교 진학이 목표가 되지 않는다. 굳이 popular goals을 찾아본다면, 운동경기에서 스타가 되는 것 정도? 아니면 좋아하는 여학생과 사귀는 것? 이런 정도에서 부러움,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 하버드, 스탠포드로의 진학을 간절히 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학교를 목표로 하는 미국 학생도 있을 수는 있겠으나, 한국처럼 집단적인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 아들놈에게 이 사건에 대해서 들어봤느냐, 다른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 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학년이 다르긴 하지만), 대답은 no.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간략하게 알려줬더니 황당한 웃음을 짓고는 별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reddit(소셜뉴스)에도 나왔지만 그 아이가 워낙에 실력은 없으면서 있는 척은 하고 다녔다는 거로 봐서 같은 학년들끼리는 알았을 텐데, 같은 학교 내에서도 다른 학년까지 알려질 정도의 이슈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2. 같은 맥락에서, 일부 사람들이 하는 ‘자꾸 이러면 한인 학생들에게 선의의 피해가 갈 텐데’라는 걱정 역시 기우다. 미국 내에서도 명문대 합격 사칭은 종종 벌어지는 일이고, 앞서 말했듯 그다지 이슈가 될 사건도 아니며, 혹시 들어봤다 해도 오래동안 기억할 껀덕지도 없다. 더군다나 입학사정관들이 이걸 연관 지어서 ‘한국 학생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물론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지만 너무 자학할 필요도 없다. 몇 년 전에 버지니아에서 벌어진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도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그가 한국인임을 알지 못했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3. 우리 사회에서 ‘천재’ 타령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천재라는 말은 그 대상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화자의 수준이나 의식 상태를 보여주는 단어가 아닐까 한다. 서울대, 하버드 학생들은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들을 천재라고 부른다면, 내 눈에는 그 사람이 ‘서울대나 하버드 학생들을 천재라 부르는 수준의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MIT에서 주최하는 무슨 대회에서 상을 하나 탔다고 천재라 할 수도 없다. 하버드에서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천재라고 부르는 것도 곤란하다. 그 학생은 단지 적당한 학업 능력을 바탕으로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남보다 조금 나은 성적을 냈을 뿐이다. 설사 우수한 논문을 썼다면 그 노력과 결과에 맞는 존중을 하면 될 것이지, 무조건 ‘천재’라는 말을 붙이면서 영웅시하면 곤란하다.


물론 천재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생전에 천재로 평가받는 것은 극히 드물다. 어쩌면 천재라 평가하는 것은 당시대의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 천재라 불리는 사람 대부분이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처럼. 천재라는 타이틀이 결코 좋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식을 ‘천재’로 만들려는 것, 자식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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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불패 벙찐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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