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08. 화요일
짝퉁정보부
1. 이미 알고 있는 사실
미국은 소비에트 연방 체제가 무너진 후에 거의 모든 부문(특히 군사력)에서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강국으로 부상하였다.(물론 미국이 잘났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과학 기술, 전기·전자, 의료, 제약 등 많은 부분의 원천 기술이 미국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첨단의 의학, 의료기기 기술, 제약 특허가 줄줄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미국의 아픈(?) 한 구석을 찌르는 것이 국가 정책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는 '의료보험'이 없다는 것이다.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고, 65세 이상의 거주자에 대해서 Medicare라는 노인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 65세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극빈자 수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각 주 정부에서 Medicaid라는 이름의 보조 제도를 제공하고 있고, 또 극빈자 자녀들의 경우에는 특별하게 아동보호 차원에서 상당수의 주에서 자체적으로 어린이 의료보험 제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럼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의료보험이 없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살던지 아니면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민간 보험에 가입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며 차차 설명하도록 하겠다.
정리하면, 미국에는 일반 서민층을 위한 국가 의료보험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씨바스럽게도.
2. 민간 보험회사의 성격.
Figure 1. 잘 알려진 민간 의료 보험사들(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
미국에는 위에 말한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을 위한(?) 민간 보험사들이 정말 많다. 대한민국에서 정규교육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회사'의 존재 목적이 '이윤 추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민간 보험사도 하나의 회사이기에 이 사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민간 의료 보험사들은 다음의 영업 원칙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한다.
보험료는 최대한 많이 거두어 들이고, 보험금 지급은 가능한 최소로 하며, 고위험군 보험 신청자의 신청서는 거부한다.
각 보험사는 보험 가입자들의 구미에 맞는 다양한 의료보험 상품을 모아놓고 각기 다른 보험료를 책정해서 가입자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는 보험 상품을 판매한다. 필자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4인 가족이 가입하기 위한 보험료는 최소 700불 선부터 최대 수천불까지 다양하다. 물론 이 보험료는 한 달 기준인데 피보험자들의 흡연여부나 성별에 따라서 보험금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기존에 질병을 가지고 있던 사람(뉴스 보면 가끔 나올지 모르겠는데, pre-existing condition이라고 한다.)에 대해서는 보험료가 턱없이 높게 책정되거나 아예 신청 자체가 거부되기도 하였다.
Figure 2. 심심해서 필자의 가족 상황을 기준으로 의료보험 견적을 한번 뽑아 보았다.
이런 걸 보자하면 욕이 절로 나온다.
환자 뿐만이 아니라 의사도 보험사와 계약을 맺기도 한다. 계약을 하게 되면 그 보험을 가지고 있는 환자가 오는 경우에 미리 계약된 치료비를 부과한다. 이 때의 치료비는 무보험 환자에게 부과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많은 보험사들이, 환자들이 자기 회사와 계약되어 있지 않은 의사를 만날 경우엔 환자에게 보험료 지급을 거부하거나 보장을 적게 해주기도 한다. 따라서 의사의 경우에도 대형 의료 보험사와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가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의 능력이 뛰어나 보험사와의 계약 없이 충분히 환자를 끌어들일 수 있으면 상관 없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의료 행위를 하기 위해서 법적으로 국민건강보험 환자를 거부할 수 없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의료보험과 계약이 없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기를 원한다면 의사가 달라는 치료비를 모두 지불해야 한다. 필자의 가족 중에 운이 좋아서인지 없어서인지 이러한 의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손톱이 빠져서 손 전문 외과 의사를 만나서 30분 정도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그날 진료비가 모두 3천불이 넘는 금액이 나왔다. ㅡ,.ㅡ
Figure 3. 빠진 손톱 고치는 수술이 설마 3천불이나 할라구? 못믿겠으면 직접 보시라.
물론 친절하게 카드도 받아주신다.
3. 예 (1)
어느 정도 중급 품질의 의료보험에 가입했을 때를 가정하고, 한 환자가 의사를 만나 병원에 이틀 정도 입원할 때 의료비 처리가 어떻게 되는지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환자는 일단 자신의 보험에 계약이 되어 있는 한 전문의(이하 의사A)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가정의(이하 의사 B)에게 찾아가서 추천서(Referral이라고 한다.)를 받아서 A에게 간다.(이 Referral이라는 것을 받지 않고 A를 찾아갔을 때의 진료·치료비는 보험사에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다.) A가 이런 저런 부속 검사를 요구하면 환자는 A가 주는 처방전을 들고서 X선도 찍고 MRI도 찍고 CT도 찍는다.(X선같이 싼 진료는 상관이 없지만, CT나 MRI같은 비싼 영상 진단은 보험사의 사전 승인을 또 받아야 한다. 이 사전 승인이 없으면 보험금을 지급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 영상을 촬영하는 의료 기관도 보험사와 계약이 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A가 환자에 대해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종합병원에 입원을 한다. 물론 종합병원도 보험사와 계약이 되어 있어야 하고, 입원하는 경우에도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예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일텐데, 보험이 없다면 치료비가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불어나게 되고, 결국 파산을 하던지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4. 예(2)
한밤중에 갑자기 어디가 아프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응급실에 간다.(친절하게도 보험사들이 응급실에 대해서는 계약 여부를 가리지 않고 보장해준다. 응급이니까 그렇겠지.) 응급실에서의 모든 절차가 끝나면 병원은 환자를 대신해서 보험사에 의료비를 청구해서 보험료를 받고, 차액만큼을 환자에게 청구한다. 보험이 없는 경우라도 일단 치료는 해준다.(대형 의료기관의 경우, 법적으로 아픈 사람을 돈이 없거나 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진료 거부할 수는 없다.) 만약에 보험이 없는 사람이, 응급실 진료 후에 의사들로부터 계속적인 진료를 원한다면 위의 예(1)에 해당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보험이 없는 사람은 넘볼 수가 없을 것이다.
5. Obamacare
오바마가 처음 대통령에 입후보할 때부터 걸고 시작했던 전 국민 의료보험 정책, 이를 비꼬고자 공화당과 반대파쪽에서 만들어낸 단어가 Obamacare였고, 결국 2013년 10월 1일부터 정식 시행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법을 통해서 일반 국민들이 얻는 것은? 의료보험을 하나 갖게 되는 것이다. 뭔가 대단한 것같이 들리지만 그냥 보험일 뿐이다. 그런데 미국민의 15%에 대해서 이 보험은 위에 설명한 이유때문에 뭔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정확한 법명은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다. 오바마의 첫 번째 임기인 2010년에 법이 통과가 되어서, 두 번째 임기인 지난 10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의 큰 목적은 세 가지다.
1) 의료보험 상품이 보장해주어야 하는 최소한의 Gude Line을 법제화
이렇게 법으로 만들어 놓으면 일부 관계자들은 '편법'이라는 알쏭달쏭한 구멍을 통해서 무늬만 '보험'인 상품을 만들어 보험 가입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판매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 법은 이러한 부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이 법에 맞는 의료보험이기 위해서 무늬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의료보험으로 작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사항을 정해놓고 있다.
2) Pre-existing 신청자에 대한 보험사의 보험 가입 거부를 법적으로 금지
일부 만성질환자들에게 보험 가입이 두려웠던 이유 중 하나다. 보험사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질환을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할 수 있었는데, 이 법은 보험사들의 이러한 거부를 법적으로 금지시키고 있다. 보험에 가입하고자 하는 환자 중에 이미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소식임에 틀림 없지만 민간 보험사들로서는 눈 뜨고 손해보는 장사기 때문에 당연히 싫어할 수 밖에 없다.
3) 전 국민에게 강제적으로 의료보험 제도 제공
직장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회사에서 의료보험 서비스를 제공 받고, 비싼 의료 보험료를 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의료보험에 가입한다.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은 오바마케어로 인해 연방정부(또는 주정부)를 통해 수입에 비례하는 보험료를 내고 그만큼 보장받을 수 있는 상품을 살 수 있게 되었다.
Figure 4. Obamacare 의료보험에 가입하기 위한 사이트.
사이트가 폭주해서 가입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다.
이 보험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재원은, 1) 보험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와 2) 직원을 고용하는 자영업자들 중 직원들에게 의료보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고용주들을 대상으로 거두어들이는 벌금이다.
미국 정부는 오바마케어 시행의 일환으로 위와 같은 홈페이지 (http://www.healthcare.gov)를 개설하고 이 사이트를 통해서 의료보험 가입을 받기 시작하였다. 법에 의하면 법 시행 이후 180일 이내에 전 국민이 최소한 1개 이상의 의료보험에 가입되어야 하고, 2014년 1월 1일부터 이 보험을 구매하는 주민들에게 보험급여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되어있다.
6. 이해득실
이 오바마케어의 이행에 따른 이해득실을 각각 따져보겠다.
1) 기존에 보험을 가지고 있던 일반 주민(필자의 경우와 같다.)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
2) 기존에 보험을 가지고 있지 않던 일반주민
보험을 가지고 싶었는데 비용 문제때문에 고민하던 사람이라면 큰 혜택일 수 있다. 하지만, 자의에 의해서 보험을 보유하고 있지 않던 사람에게는 벌금이라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3) 중대형 기업체
대부분의 경우에 이미 직원들을 상대로 의료보험 가입 권한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4) 중소형 기업체
미국에서 고용주가 의료보험을 제공하는것은 의무가 아닌 직원 혜택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기존에 보험을 제공하던 고용주들에게 있어서 오바마케어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서 의료보험을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직원의 수에 비례해서 벌금을 내게 된다. 어느 누구도 벌금을 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5) 불법체류자
이 법에서 불법체류자의 보험 가입이나 보험 급여에 대해서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불법체류자들에 있어서는 변화가 없다.
6) 국회의원 및 그 직원들
원래 연방정부에서 제공하는 보험 프로그램에서,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보험을 구매하여야하는 시스템으로 바뀌게 되었다. 아마도 이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지 않을까 싶다.
7) 공화당 정치인들
아마도 공화당 정치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부분이 이 대목이 아닐까 싶다. 공화당은 주로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액의 정치 자금을 의료보험 회사들로부터 받아오고 있었다. 첨부의 그림은 'Blue Shield'라는 미국 최대의 의료보험 네트웍에서 정치인들에게 얼마 만큼의 정치 자금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2012년 기준이며 대통령 선거와 하원 의원 선거가 맞물려 공화당 쪽에 흘러 들어간 정치 자금이 어마어마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회사의 정치 자금 납부는 미국의 회사들 중에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Figure 5. Blue Shield에서 작년에 납부한 정치 자금. 첫 두 줄이 모두 공화당이다. 인상적이지 않은가.
7. 민간의료보험제도와 함께 살아오면서
필자는 미국에 이민을 온 이후 끊임없이 민간 의료보험의 보장을 받으면서 살아오고 있다. 한미FTA가 체결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이제 외국계 의료보험 서비스가 들어갈 확률이 높아보이는 가운데 FTA의 상대국인 미국이 전 국민 의료보험 서비스를 이제 시작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설명해 놓은 부분은 의료에만 한정된 것이고, 처방약과 안경, 그리고 치과 보험까지 포함한다면 웬만큼 미국에 오래 살지 않은 사람은 글을 쓰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국가 보험이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우리나라에서 이해하려 해도 쉽지 않을것이다. 필자가 써 놓은 부분도 역시 새발의 피도 안되는 부분이지만, 위에 써 놓은 글로만 봐도 어떤 사람들이 법에 반대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듯하다. 혹시 다음에 시간이 되고 정력이 된다면 각 세력들이 밝히는 오바마케어 반대 이유와, 어떻게 연방정부 폐쇄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어떠한 영향으로 다가올지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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