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3. 10. 08. 화요일

비니






 



지금 대한문과 서울 시청 앞에서 7일째 단식 농성을 하는 이들이 있다.


 밀양의 765KV 초고압 송전탑에 반대하는 밀양의 젊은 농부 김정회박은숙 씨 부부와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 상임대표인 천주교 부산교구 조성제 신부



지난 5일 토요일단식 4일째를 맞는 김정회 씨 부부를 12시간 동행 취재했다.



 



  


 

ssBA052141.jpg

오전 8시 23

 

오전 823분 대한문. 여덟 시부터 나올 거라는 말을 듣고 서두른다고 한 것이 조금 늦었다. 김정회 씨는 이미 나와 있었다.

 

ssBA052150.jpg

오전 824

 

"여덟 시 조금 못 돼서 나왔습니다. 오늘은 주말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네요. 신부님은 저쪽 시청 앞에 계시고 집사람은 아직 쉬고 있습니다. 경찰요? 경찰은 24시간 지킨다고 합니다. 화단에 누가 꽃을 꺾어갈까봐 그러나."

 

간밤에 잘 잤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오늘도 행사 계속한답니까?" 하고 묻는다. 김정회 씨 가족이 단식 농성을 위해 서울에 온 102일부터 하이 서울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전날인 4일은 시청 광장에서 드럼 페스티벌이 열려 공연 시작 전부터 리허설을 하느라 무척 소란스러웠다. 공연이 끝나고 밤새도록 무대를 뜯는 소리가 들렸단다.

 

ssBA052194.jpg

오전 8시 36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지키는 이들과 안부를 묻는다. 김정회 씨는 삼성동 한전 본사 앞에서 농성할 생각으로 올라왔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한문으로 왔다. 현재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 옆에서 함께 1인 시위를 하며 쌍용자동차 농성 텐트에서 지낸다.

 

ssBA052232.jpg

오전 8시 48

 

"대통령이 또 어디 간답니까?"


"글쎄요, 요즘 뭐하시는지 관심을 두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요."

 

신문을 읽던 그의 물음에 인터넷 검색을 해본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간다네요."


인터넷을 보다가 페이스북을 열었더니 새벽부터 벌어진 밀양 현장 소식이 전해진다.

 

126 공사현장

철야 3. 6:45경 주민들이 해놓은 장작을 외부 세력이 올라와서 흉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빼앗아 감.

7시 병력 교대중. 주민들은 길목에 경찰 있자 숲길로 돌아왔고, 주민들, 경찰이 약속(집에 갔다가 다음날 현장에 들어가게 해주겠다는)을 지키지 않아 항의함. 경찰은 우리 부대가 아닌 것 같다, 막는 게 기본지침이라며 충돌 중.

730분 주민 20여 명 농성장 도착. 공사장에 녹색 그물펜스 치는 중, 포크레인 가동 시작. 희망버스 인원이 올라온다는 이유로 입구에 병력이 막고 있으며 장작은 돌려주지 않은 상태.

 

"(대통령이) 일주일 있다가 온다지요?"

 

확인하듯 묻는 그의 목소리에 한숨이 섞여 있다.

 

ssBA052305.jpg

오전 919분 시청광장으로

 

천막에서 쉬고 있던 박은숙 씨가 교대를 하러 나왔다. 김정회 씨는 시청 앞에 계신 조성제 신부님과 교대 하러 간다.

 

ssBA052316.jpg

오전 922분 서울 시청 앞

 

조성제 신부님이 가톨릭 농민회 실무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피켓에 쓸 말을 신부님께 청하자,

 

"송전 말고 밭전(), 공사 말고 농사!"

 

오전 937, 시청 앞에 앉아 있는 김정회 씨에게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건다.

 

"송전탑 이게 그렇게 안 좋은 거예요?"


"당연히 안 좋죠. 필요해서 하는 거면 괜찮은데 꼭 필요하지도 않은 걸 세우려 해서 그래요."


"(정부에서) 필요 없는 걸 하겠어요?"


"전기가 모자란다고 그러는데 지금 원자력 발전소 23개 중에 10개가 스톱 돼 있어도 이렇게 아껴쓰니까 올 여름 버텨냈다 아닙니까. 부족하다면 값을 올려야 하는 거, 그게 정상이죠. 대기업에 값싸게 주는 거 보세요. 전기가 부족하고 그래서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대기업과 한전의 이익 때문입니다."


"에이, 그래도 정부가 하는 일인데."


"도시는 220볼트도 다 땅으로 묻잖아요. 여기도(시청 광장) 전봇대 하나 없어요. 정말 필요하다면 땅 속으로 묻어 주면 되는데 왜 밀양에는 피해를 주면서 꼭 머리 위로 지나가게 합니까? 정부에서 하는 일이 정당하고 명분 있다면 왜 우리를 설득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농사짓는 단순한 사람들인데."


"이번에 터진 거, 4대강, 그것도 시민들이 반대했었나? 그래도 정부에서 한다고 하면 하는 거지, 어떻게 막겠어요? 얼굴이 피곤해 보이네. 어쨌든 열심히 하세요."

 

ssBA052401.jpg

오전 107


경찰이 다녀갔다.


"무슨 과장이라고 하던데, 하여간 저 사람이 여기 대통령이라고, 유명하대요. 오늘은 별 얘기 안 하고 단식하는 거냐 묻고, 애들은 학교 보내라, 그랬어요. 첫날에는 엄청 딱딱하게 굴었죠. 두 명 이상 모이면 집회니까 불법이라고 경찰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한 명씩 떨어져서 하면 괜찮다 해서 떨어져 있었더니 다음날 와서는 따로 떨어져도 한 공간에 있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한 명은 대한문 앞에 있고 다른 한 명은 시청 앞으로 온 거죠."


(단식 농성자 셋이 대한문, 시청 앞, 농성 텐트를 교대로 순환하고 있다.)


 

ssBA052409.jpg

오전 1014

 

오전 1014분 대한문, 시청 광장의 '대통령' 가고 나니 시청 경비과에서 파라솔을 쳐 준다. 어제는 시청 앞에 있으면 사람들이 시청이 뭘 잘못한 줄 안다면서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뜻을 비쳤으나 오늘은 그도 별말이 없다. '해피솔'이라고 쓰여 있다. 박원순 시장이 1인 시위자를 위해 마련한 것이란다.

 

"서울 시청은 좋네요. 밀양 시청보다 낫네요. "

 

페이스북의 밀양 소식

 

09:51 <긴급>

4공구헬기장, 시청직원 140, 경찰차 6, 행정대집행하려함.

기자분들 109번 송전탑 건설부지에도 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02일부터 공사가 시작되었고 40분 이상 산을 타야 하는 고립된 지역이라 주민 분들이 마을로 내려가면 복귀할 수 있을까 걱정되어 눌러 앉으셨습니다. 고립된 상태입니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 구호물품을 전했지만, 워낙 동떨어진 지역이라 카메라가 적어 폐쇄적인 상태에서 공사가 강행될 예정입니다. 기자 분들이 계실 때와 안 계실 때의 상황은 확연히 다릅니다. 밀양시 상동면 109번 송전탑 건설부지로 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부상을 당하고 쓰러지는 주민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ssBA052471.jpg

오전 1050

 

오전 1045분 박은숙 씨가 와서 교대하고 김정회 씨는 시청 안 화장실에 간 사이, 박은숙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오늘은 낮부터 공연을 하는가 보네. 우리가 올라온 목적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 다들 축제 분위기고, 사람은 많이 다니는데 즐기러 왔잖아. 많은 생각이 듭니다. 다들 즐거워하는 사람. 나도 몇 년 전에는 저러고 다녔겠지요. 쌍차 분들이 분향소를 차려놨는데 앞에서 축제 분위기고 그러니까 기분이 좀 그렇다고, 우리도 그렇지 않느냐 물으시더라고요.

 

그냥 한전 앞에서 바닥에 추워서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거기서 하면 낫지 않았을까 싶어예. 한전 앞에는 돗자리도 못 깔게 했죠. 우리가 서울에 딱 오니까 이미 한전 앞에 경찰이 다 깔린 거죠. 텐트는 아예 내리지도 못하고 돗자리도 못 깔게 해서 바닥에 앉았는데 나중에는 춥드라구예. 국회의원이 깔개를 가져오자 처음엔 그것도 안 된다 하다가 나중에는 하게 하더라고. 참 별걸 다 가지고, 국회의원은 되고 우리는 안 되는지.

 

한전 앞에서 텐트 못 치면 트럭에 자고 거기서 하면 그래도 한전에 압박이 좀 되지 않을까 싶고. 사람들한테 밀양이 절박하다는 것을 알리려고 왔는데, 잘 안되는 것 같아서."

 

ssBA052480.jpg

오전 1052

 

"내는 단식 끝나면 던킨 도넛이랑 커피 꼭 먹을끼다. 여긴 단식 조건이 너무 안 좋아. 각종 냄새가."

 

대한문 앞을 지키다 온 박은숙 씨가 말했다. 대한문 앞에서는 던킨 도넛 화장실을 이용한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마주치는 화려하고 달콤해 뵈는 도넛, 커피향의 유혹은 얼마나 강렬할까?

 

"나는 어제 사우나 가는데 가는 길에 전통 음식 골목이 있는 거라."

 

김정회 씨도 거들었다. 단식 4일째, 이들이 느끼는 어려움이 어떠한지, 단 하루도 굶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가늠이 안된다. "배고프시죠?" 했더니 금세 정색하며 말한다.

 

"실은 배는 안 고파예. 냄새가 코를 자극해서 잠깐 생각했을 뿐이라예."

 

그러면서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우리에겐 이게 밥입니더."

 

ssBA052508.jpg

오전 111분 천막

 

박은숙 씨가 시청 앞을 지키고 김정회 씨가 텐트에서 휴식을 취할 시간인데, 김정회 씨가 대신 시청 앞에 있고 박은숙 씨는 천막에서 아이들 짐을 꾸리고 있다.

 

"원래는 아이들도 사흘 동안 단식을 할 계획이었거든요. 그런데 집회 신고 안 했다고 가족이 모여 있지 못하게 하고 신부님들도 아이들은 단식하면 안 된다고 반대하시고.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들 데려다 뭘 먹이고 과자 사주고 그러니까 통제가 안 되네. 진서(막내), 니 봐라, 과자 많이 먹으니까 얼굴에 뭐 생기고 그랬잖아."

 

아이들을 일찍 내려보내기로 했단다.

 

ssBA052537.jpg

오전 1121

 

"어머니, 나도 같이 있을래."

 

형들, 누나 따라 밀양에 내려가야 한다니까 여섯 살 막내 진서가 울음을 터뜨렸다.

 

"대화하면 이렇게 단식을 안 해도 되는데..."

 

ssBA052594.jpg

오전 1127

 

ssBA052656.jpg

오후 1210

 

12시쯤 신부님이 시청 앞에 오셔서 교대, 김정회 씨는 천막에서 국민TV 기자와 인터뷰, 진서가 울면서 아버지에게 매달린다.

 

"아버지하고 있을래요."


"서울에 온 지, 오늘이 삼일째. 단식 다섯 끼 정도 했어요. 피켓 들고 1인 시위도 하고. 송전탑 공사를 공권력까지 투입해서 마을 사람들 힘들게 이렇게 해야 하는지, 대화를 통해서 하면 안 되는지. 대화하면 이렇게 단식을 안 해도 되는데 정부에서 마을 사람들 말은 안 듣고 무조건 공권력을 투입하고 그러니까 납득이 안 되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첫째, 김동겸 군이 한 말이다.

 

ssBA052663.jpg

오후 1214분 대한문

 

ssBA052670.jpg

오후 1216

 

진서가 어머니 박은숙씨 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와서 계속 울고 있다. 아이와 볼을 부비며 작별 인사. 여섯 살, 열 살, 열네 살, 열일곱 살. 어쩌다 아이를 넷이나 두었냐고 물었더니 '생명을 거스르지 못해서'라며 웃는다.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었어예. 우리 신랑은 농사에, 중장비에 정말 쉬지 않고 일을 하거든요. 나도 그에 맞추느라 바쁘고 거기다 애들 챙겨야 하고, 애들도 어려서부터 산에서 나무하고 지들이 밥도 다 해먹고 그렇게 컸어요. 열 살짜리도 지 혼자 밥 다 해먹고 그럽니다."

 

ssBA052678.jpg

오후 1218

 

박은숙씨 옆에 또 한 사람의 단식자가 있다. 밀양 송전탑 반대 동조 일일 단식에 나선 그래픽 디자이너. 예술인 소셜 유니온() 활동을 하고 있단다.

 

ssBA052698.jpg

오후 13분 대한문

 

천막에서 인터뷰를 마친 김정회 씨가 박은숙 씨와 교대를 하러 왔다. 박은숙 씨의 기분이 나아졌다. 누군가 옆에 있어서,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단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라치면 뒤에서 경찰이 저지한다.

 

ssBA052734.jpg

오후 128

 

아이들 떠나 보내고, 인터뷰 마치고 난 그가 몹시 지쳐 보인다.

 

ssBA052752.jpg

오후 135분 대한문 앞

 

단식하는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배가 고파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러 길을 나섰다.


 

 ssBA052782.jpg

오후 1시 58분 대한문


오후 1시 58분 대한문 앞에는 수문장 교대식이 한창이다무척 혼잡하다오전부터 자리를 지킨 김정회 씨는 혼란한 틈 속에 있는 것이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덕수궁 매표소를 가려면 수문장 교대식 때문에 임시로 쳐놓은 울타리와 김정회 씨 사이의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한다김정회 씨와 쌍용차 분향소 앞을 가까스로 지나는 관광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불편함 먼저 떠올릴까그러면 이 불편함이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할까쓸모없는 화단을 경찰들이 에워싸고 24시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사방이 가로막혀 꼼짝할 수 없다수문장 교대식은 약 30분 정도 진행된다.

 

 ssBA052824.jpg

오후 2시 13

 

ssBA052838.jpg

오후 3시 2분 시청앞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르신 서너 분이 모여들어 잠시 이야기판이 벌어졌다어르신 한 분이 송전탑을 왜 반대하는지보상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따지듯 물었다일행 중 다른 분이 분위기가 격렬해지는 걸 걱정해서 그냥 가자고 막아서는데김정회 씨가 "제가 지금 할 일이 없으니까답변을 드릴게요선생님과 제가 생각이 다르니 선생님도 제 말에 반박하세요이렇게 토론하면 좋은 거 아닙니까?"라며 붙잡았다.

 

"저희가 왜 반대하냐면 밀양 주민의 생명과 재산에 엄청난 피해가 납니다건강은 십 년이십 년 후에 나타나는 피해고당장에 재산권 행사가 안됩니다땅을 천 평 가지고 있으면 평당 십만 원만 해도 1억 아닙니까그런데 1억이라는 재산이라도 살 사람이 없으면 재산이 아니지 않습니까송전탑 때문에 시세보다 낮게 내놔도 땅을 사겠다는 사람 없고 재산가치 없다고 농협에서 담보 대출도 안해줍니다.

 

국민들은 몇 사람의 이권 관계 이런 걸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요언론에서는 우리가 정당한 주장을 해도 실어주지 않습니다정부와 한전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어서 한전 측 입장만 이야기합니다우리는 알리고 싶어도 알릴 방법이 없고 그러니 단식을 하는 겁니다이렇게라도 저희 말 좀 들어달라고요."

 

잠자코 듣고 있던 다른 어르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가 철탑 측량사에요. OO건설에서 27년 근무했거든다른 데는 다 세워졌다는데다른 데는 문제없는데왜 그래요밀양은?"


"다른 지역은(송전탑이높은 산으로 가서 주민 피해가 없게 됐는데 밀양은 권력자의 땅이 있어서뭐가 어때서꼬불꼬불,(노선이 정해져동네 앞산뒷산심지어 면사무소 앞에까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합리적으로 노선을 정하면대통령이 걸리든 누가 걸리든 원칙대로 하면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철탑이 마을로 가면 안 되지근데 얼마나 가까워요?"


"우리 집에서 보면(서울시청 신청사 입구에서 광장 맞은편 길 건너의 프라자 호텔을 가리키며저기 저 호텔 정도 느낌입니다."

 

처음 문제제기를 한 어르신과의 토론은 서로의 입장을 좁히지 못하고 끝났다.

 

"나도 고향이 경상도에요경상도 사람 멋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재산 피해가 심하다... 그래도 몇 사람의 이권 가지고 매스컴에서도 들어주지 않는 걸로 이러는 건..."

 

이 분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대승적으로 이해해달라'던 전 산업자원부 장관국무총리의 모습이 떠오른다보수 언론이 사람들을 학습시키는 것이 참 무섭게 느껴졌다.

 

"그니까 현장을 가 봐야 해이건 한전만 알어한전만."

 

자리를 떠나면서 철탑 기술자로 수십 년 일했다는 그 분이 남긴 말씀이 실제로는 어떤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내겐 의미심장하게 들렸다송전 시설 경과지 선정에서부터 사업 추진공사를 진행하는 데 관련한 모든 권력과 정보를 한전이 쥐고 있다피해 주민의 이해를 구하거나 합리적인 토론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조건 밀어붙이면 된다는 한전의 고압적인 자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ssBA052845.jpg

3시 11분 시청앞

 

휴대폰 메시지를 보여준다청년포럼 문화재단에서 농활을 와서 그의 당근 밭에서 당근을 거두고 있다며 즐거워한다지난여름 부부가 당근 밭에 잡초를 제거하느라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ssBA052868.jpg

오후 3시 17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는 태양파라솔 밑에 겨우 몸을 숨기고 있다나는 김정회 씨 등 뒤의 그늘에서 햇볕을 피한다.

 

한 곳에 꼼짝 않고 있으려니 외부 자극에 예민해지는 건가가을 햇빛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그늘에서 벗어나 조금만 있어도 머리가 아프다세 끼 꼬박 챙겨 먹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며칠째 굶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견뎌야 할지 모르는 이들괜찮을까?

 

오후 4시 20시청 앞은 그늘이 별로 없고 한 곳에 계속 앉아 있는 게 지루해 잠시 대한문에 계신 조성제 신부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대한문 앞으로 가는 길에 확인한 밀양 소식


(긴급) 126 김옥숙 할머니여수동혈압상승(200)으로119 후송(오후 3시 41)

 

"밀양 싸움에 실질적으로 결합하게 된 거는 만 2이치우 할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본격적으로 함께하게 되었죠지난 5공사가 다시 시작되었을 때 이것은 한전과의 싸움이 아니라 정부와의 싸움이라고 느끼게 되었어요경찰이 말로는 중립이라고 하면서 주민들을 겁박하고 그러는 걸 보니 진짜 중립이 아니구나하는 걸 알았죠.

 

원래 단식이라는 게 목숨을 담보로 뉘우치고 회개하는 거에요지금 하는 공사한전이나 정부는 결국 탐욕 때문인데정당하지도 않고정부의 에너지 정책으로 볼 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합법적이지도 않아요이런 구조에 대해서 우리 종교인들이 알게 모르게 방관해왔던 것에 대한 뉘우침탐욕으로부터 시작된 그 뒤에는 죽음의 문화죽음의 뿌리가 있기 때문에선의를 이렇게 모으면 그런 것도 한풀 꺾이지 않을까 하는 바람입니다."

 

ssBA052893.jpg

오후 4시 49분 대한문으로

 

저녁 8시까지 1인 시위를 이어가는데 오늘은 대한문에서 다섯 시부터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을 규탄하는 문화제를 한다고 해서 대한문으로 향한다.

 

 ssBA052901.jpg

오후 4시 21분 대한문

 

 ssBA052947.jpg

오후 5시 2분 대한문

 

ssBA052934.jpg

오후 5시 대한문


ssBA052969.jpg

오후 5시 4분 대한문

 

 ssBA052964.jpg

오후 5시 4


문화제는 밝고 즐거운 분위기였다문화제에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조성제 신부님이 말씀하신 '선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우리는 외부세력이 아니다밀양의 친구들이다!

 

 ssBA053024.jpg

오후 5시 17분 대한문


백기완 선생님도 오셨다오후 5시 40분에 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이 발언했다.

 

"송전선 문제는 아주 간단합니다우리나라는 바닷가 화력원자력 발전소를 많이 짓고 그걸 대도시로 보내기 때문에 송전탑이 많이 필요합니다서울에서 전기를 많이 쓰니까서울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아껴쓴다면 밀양의 초고압 송전탑이 왜 필요하겠습니까서울의 전기 자급률이 3%입니다지금 서울시가 그걸 20%까지 늘린다고원전 하나 줄이기를 하고 있습니다.

 

원래 밀양의 송전선은 수도권으로 끌어오려고 계획을 세웠다가 그게 취소가 되었습니다그러면 그 단계에서 접었어야 하는데 막무가내로 추진을 하려니 이제는 대구경북 지역 때문이다하는데 대구는 전기소비 많이 안 늘어나는 지역입니다.

 

우리는 밀양 어르신들이 막아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신고리 원전 3호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신고리 3호기는 제어 케이블이라고 하는 핵심부품이 문제가 되었습니다제어 케이블이라는 것은 원전에 사고가 위험이 있을 때 신호를 보내주는 핵심부품인데 요구하는 품질을 못 맞춰서 시험 성적서를 위조했습니다그 부품을 교체하려면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그러면 내년 8월에 가동을 못하죠그런데 8월에 가동을 시작한다는 것은 불량 부품을 사용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내년 8월에 그 원전 가동하면 우리는 원전 사고 위험으로 빠져드는 겁니다.

 

신고리 3호기는 처음 가동하는 새로운 모델입니다아랍에미리트에 수출했는데(우리 자체 기술을못 믿겠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먼저 가동하기로 계약을 한 겁니다그래서 빨리 가동시켜야 한다는 게 정부 논리입니다그럼우리 국민은 사고 나도 됩니까위조 부품 교체하려면 2년이 걸립니다토론할 시간 많습니다공사 중단하고 TV 토론하자는 게 주민들의 요구입니다정말 정부가 우리를 설득할 수 있다면 받아들이겠다 합니다.

 

밀양 주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밀양 주민이 쓰는 전기 때문도 아닙니다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대기업과 대도시에서 쓸 전기를 어떻게 생산하느냐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밀양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겁니다."

 

 ssBA053077.jpg

오후 6시 17

 

마지막 발언 순서는 김정회 씨 부부다송전탑 반대 운동하면서 '울보'가 되었다는 김정회 씨. 10월 2일 단식 첫날 기자 회견할 때 호소문을 읽을 때마다 '우리 어린 진서가...'에만 가면 감정이 북받치던 그발언하면서 밀양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그를 보며 괜히 내가 조마조마했다.

 

"밀양의 할머니들을 도와주십시오!" 그의 외침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ssBA053098.jpg

오후 7시 35분 서울역 광장

 

오후 7시 35분 국정원 규탄 촛불 집회가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다고 하여 문화제가 끝나자마자 광장으로 왔다.

 

발언을 마치고 다시 택시를 타려고 길을 건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우리나라에는 떼법이라고 있습니다지금 밀양을 보십시오떼만 쓰면 되는 줄 알고... " 마침 밀양에 대한 이야기가 서울역 주변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제야 우리가 택시를 탔을 때 서울역 집회 장소에 간다니까택시 기사가 서울역 광장인지맞은 편인지 물은 이유를 알겠다서울역 근처의 다른 곳에서는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앰프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국정원을 규탄하는 집회에서 하는 발언은 들리지도 않고 북적거리는 도시의 소리를 다 삼키며 서울 하늘을 가득 채우는 듯했다조금 충격을 받은 듯얼이 빠진 사람처럼 박은숙 씨가 말했다.

 

"이래서 서울 사람들은 우리가 막무가내로 떼쓴다고 하는가 봅니다."

 

 ssBA053153.jpg

오후 8시 17분 서울 광장

 

낮부터 시작된 하이 서울 페스티벌의 공연은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부부가 천막으로 들어가고 나는 주변을 어슬렁거렸다천막 한쪽 끝에서는 전교조 해체 위기에 맞서 길거리로 나온 선생님들이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텐트 뒤로 달리는 차들을 보며 지난밤 자동차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박은숙 씨의 이야기를 떠올린다차 소리가 얼마나 크게가깝게 들리는지 마치 천막으로 돌진하는 것처럼 느껴졌단다길고 고단한 하루를 보낸 그들이 몸을 누인 광장 한켠의 초라한 비닐 천막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아렸다.

 

유기 농사를 짓는 그들의 농장은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웠던가구불구불 산길을 올라 찾아간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있는 그들의 황토집을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나는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여기 살면 애들 아토피는 걱정 없겠어요."

 

우리 둘째랑 동갑인 진서를 보며 이런 말을 했었고그녀는 내게 아토피에 좋은 친환경적인 처방을 말해주었다.




2013년 8월 1일 김정회 박은숙 가족농장 @밀양

 

밀양의 젊은 농부 김정회·박은숙 씨와 네 명의 아이들이 여섯 식구가 지금처럼 화목하고 아름답게 잘 살아가기를지난여름 이들의 가족 사진을 찍으며 나는 속으로 이런 바람을 가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이들이 곧 자신의 집에서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기를... 어머니아버지랑 함께 있고 싶다던 여섯 살 꼬마에게 더 큰 상처 남기지 않기를...







비니


편집 : 보리삼촌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