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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공개]그녀와 변

2013-10-1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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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15. 화요일

무천







편집부 주


본 기사는 [더딴지] 10호에 실린 기사의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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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하면, 응당 좋은 생각이 떠 올라야 할텐데... 죄송합니다. 저는 먼저 똥이 생각납니다. 좋지 않은 생각에 최적화된 30평생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나마 몇 번 접해 보지 못한 좋은 생각과의 대면이 대개 화장실이었기 때문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화장실 하면, 역시 똥.


하면, 전 제 마지막 맞선녀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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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대배치 후 첫 면회에서, 치킨이 놓인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던 어느 정장녀에게 건네야 했던 첫 마디는, 오가던 선임들의 깊은 탄식을 자아내게 했더랬습니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자식의 의무를 저버리고 국방의 의무로 도피해 버린 장남에 대한 어머님의 사랑은 그저 가혹했습니다. 탕슉과 치킨만으로 충분히 감동스러웠을 첫 면회에 난데없이 생면부지의 맞선녀까지 동반하신 거입니다. 화장실 불빛 아래 당일 새벽까지 외워야했던 암구호 덕에 눈동자는 무화과 속살마냥 핏발이 서 있지요, 시대를 앞서 가던 내무복은 한때 인기를 끌던 보라돌이 그 자체였습니다. 게다가, 삘 받은 중대장 덕에 자대 배치 받자마자 밀어야 했던 제 머리는, 갓 사미계를 받은 스님마저 한숨을 내 쉴 정도로 파르라니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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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제 머리가 좀 짧죠?


마주 앉은 처자의 해탈한 표정을 계속 마주 하자니, 나도 밉고, 군대도 밉고, 오가며 히죽거리는 선임 손에 잡힌 밀대도 미운, 증오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추후 3년에 걸친 제 집중 스파르타 맞선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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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만났더라?... 아.

제대 후, 강남 교보문고 옆의 한 맥주집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는, 이미 서울역 근처서 오픈 맞선을 한탕 뛰고 난 후 였습니다. 부모님의 성화로 일주일에 3일은 맞선이 잡혀있던 때라, 일정에 따라 하루에 두 탕씩 뛰는 일
이 드물지 않았었습니다. 맞선을 나간다기보다는, 숙제를 해 치우는 느낌으로 하나하나 맞선을 클리어 해 나가던 시절이었죠. 해서 일정이 겹치는 날은 부득이하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습니다.

사실 맞선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아무리 단 둘이 만난다 하더라도, 중간에 줄을 놓아 주신 중매자 분과 양가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니, 형식만 1:1의 만남이지 체감은 늘 3:3의 단체팅 느낌인 거죠. 마치 테이
블에는 단 둘이 앉아 있지만, 서로의 어깨 위에 양가 부모님들이 목마를 타고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랄까요.

게다가 더 중요한 문제는, 저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식사를 하는 것에 포비아가 있다는 겁니다. 메뉴 주문 후 식사가 오기까지의 정적과 식사 도중 잊지 않고 찾아오는 어색한 타이밍은 절 사바세계로 이끕니다. 뭐. 과학적으로는 식사를 하면 경계심이 누그러지고, 호감이 생긴다는 조사도 있습니다만, 제게 첫 식사 자리는 늘 제 자아와의 끊임없는 투쟁입니다.

그래서 어차피 억지로 끌려나간 자리, 처음부터 식사 따위로 격식이나 차리거나 밀당을 하자는 싹수없는 분들은 바로 조기 강퇴였던거죠. 우리끼리 알아서 하겠다고 전화번호만 넘겨받은 후 약속장소를 잡으면서, 2차
식사가 예정된 커피숍이나, 혹은 음식점 따위를 들먹이는 처자들은 바로‘아웃’ 시켰습니다. 남산 근처의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으로 오픈 게임을 끝내고, 잘 타일러 집으로 돌려보내는 수순이었죠.

그래서 고른 장소가 강남역 교보문고 옆의 그 맥주집이었습니다. 집적 자가 양조를 해서 맥주를 판다던 그 곳은, 지금 생각해보면 고만고만 하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생맥주 맛이 괜찮았던 곳이었습니다. 더 좋았던 것은 패밀리 레스토랑틱한 인테리어와 함께 쏘세지 같은 걸로 간단한 요기도 해결할 수 있어 본게임 무대로 아주 적절했던 곳이었죠. 1차 전화 상담에서 첫 맞선에 생맥 한 잔 정도는 받아들일 톨레랑스가 있는 친구들을 위한 본격적인 스테이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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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 눈이 발바닥에 붙어있다는 ‘호평’을 받을 정도로 독특한 선미감과 함께 이쁜 다리에 사족을 못 쓰는 고약한 지병이 있습니다. 가슴, 힙 이딴 거 다 필요 없고, 일단 1차 얼굴 스캔과 2차 다리 스캔에 합격하면, 미션 컴뿔리뚜였죠. 개인적으로 여성 동지들의 패션의 Must Have 아이템이라 생각하는 하늘색 업스커트를 입고 나온 그녀는 스펙면으로 아주 흡족했습니다. 168cm 가량 되어 뵈는 날씬한 체구에, 김지수와 조여정을 적절히 믹싱한 얼굴은 약간의 싼티를 수반한 이쁨이었지만(죄송합니다. 그냥. 제 개같은 ‘개취’일 뿐입니다), 어디 가서 꿀릴 정도는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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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업스커트의 좋은 예

지방 유지네 딸로, 잠실 근처서 아파트를 얻어 혼자 살던 그녀는, 저와 같은 논문 학기였습니다. 간혹 배어 나오는 내숭틱한 보수적인 말들이 은근 거슬렸지만, 딱히 싫지 않은 첫 만남이었습니다. 처해있는 상황도 비슷하
고, 학교도 근처고, 틈틈이 한 반년은 연락하고 지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자주는 아니고, 어쩌다 한번 연락이 오면, 만나서 술 한잔 하고 바래다주고 오는 정도?(그렇습니다. 은근히 사회 곳곳에 기생하는 개념 무탑재
형의 맞선녀에 질리던 저는, 무너진 남성들의 자존심을 위해 절대 맞선녀에게 먼저 연락해 그녀들의 자뻑 지수에 기여하지 않겠다는 내부 훈령을세워두고 있었죠.)

첫 만남 후 다리를 놓아주신 어머니 친구분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는 꽤 호감이 섞여 있었지만, 그녀는 딱히 내색이 없었고, 저는 뭐랄까. 1.3% 정도 모자르다는 느낌? 다 좋은데, ‘통하였노라!’하는 그런 느낌이 없어 재
는 중이었습니다. 

썸씽은, 나름 그만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에 일어났습니다.

연구실에 남아 자료 정리를 하는데, 문자가 왔더군요. 한 달 만에 오는 연락이었는데, ‘오빠, 잘 지내죠?’ 정도의 안부 문자. 

몇 번, 문자를 주고 받다가, 자기도 논문 정리하러 학교 가는 길이라길래, 우리 연구실로 오라고 찔러봤습니다. 그 날 따라 선생님들도 일찍 퇴근하시고, 남는 게 랜선이니까요. 벌써 학교에 도착했다고 망설이길래, '그래 그럼 열심히 해'라며 끊기는 했지만, 왠지 다시 연락이 올 것 같더군요. 아홉 시 정도에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오빠, 잘 되어가요?’

한 두 번 더 문자를 주고 받고, 그녀가 자료를 챙겨 학교 쪽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약간 짧다 싶은 검은색 원피스에 한 무더기의 자료를 들고 정문 옆에 서 있는 그녀가 그 날 따라 쬐끔 더 섹시해 뵈긴 하더군요.

뭐. 연구실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죄송합니다.)

데스크탑에 랜선을 꽂느라 쪼그려 앉았다가 본의 아니게 본 그녀의 다리에 가슴이 두!쿵! 하거나, 각주 오타를 잡아주는 새에 내려다 보이는 그녀의 목덜미에 쿵!떡! 하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죠.

대충 그 날 작업 분이 끝나니 새벽 2, 3시 정도 됐던 거 같습니다. 그녀의 차까지 바래다 주는데, 내일 일정이 어떠냐며 영화 볼 생각이 있냐고 묻더군요. 전 영화는 주로 혼자 보는 편이라 그 때까지 영화 한 편 같이 본
적이 없었죠. 들어가 다시 자기도 어중간하고 해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강남 어디의 심야 영화관으로 갔죠. 근데 심야 영화관이 24시간 하는 게 아니더군요. 저희가 가니까 마지막 편이 끝나고 사람들이 나오는
시점이었습니다.

어쩔까... 서로 쳐다보다 그냥 근처의 와인바나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근처에 예전에 봐둔 곳이 있어 데리고 갔죠. 그 날 따라 쪽 쪽 빨리더군요. 술을 잘하는 친구가 아니었는데, 같이 2, 3병은 마신 거 같습니다.

사단은 반 병쯤 남겨둔 후 슬슬 일어나야 할 시간에 시작됐습니다.

갑자기 아랫배가 묘하게 아프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게 똥끼는 아닌데, 왠지 조만간 똥이 나올 거 같은 그런... 살살은, 아니고 ‘싸~아’하게 아픈 그런 느낌 있잖습니까. 똥도 고형화된 정형체가 아닌, 리큐르 형태의 액체 내 가까운 혼합물일 거 같은 쌍스러운 예감.

전 원래 술 마실 때 안주를 잘 안 먹습니다만, 그 날 따라 딸려 나온 치즈가 입맛에 맞아 좀 주워 먹었더니 탈이 났었나 봅니다.

적당히 진통이 가라앉기를 기다려도 영 차도가 없어서, 술병이 비어갈 때쯤 계산을 핑계로 잠시 나와 변기에 앉았습니다. 근데 제 못된 습성 중 하나가, 자가 변기가 아니면 일을 잘 못 본다는 겁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
데, 전 남의 화장실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일을 잘 못 봅니다. 게다가 옆 칸에 누구라도 있는 냥이면, 그 분의 고민이 풀어지는 소리나 청음하다 다시 벨트를 매기 일쑤였죠. 그날도 역시나 였습니다.

예전 딴지 기사에 화장실 변기대 위 신발 자국의 신비에 대한 기사가 있었는데, 저는 그 정도는 아니고 이럴 경우 급하게 써 먹는 응급 처방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엄지와 검지로 아랫배를 꾹꾹 눌러 지압을 해 주는 거죠.

이게 잘 안 먹히면 손을 합장 한 채로 기마 자세를 잡습니다.(이건 양변기용이고 좌변기 시에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래도 안되면 기마 자세를 잡은 채 아랫배와 등을 동시에 지압하는 거죠.

이게 꽤 효과가 있습니다. 근데 그 날 따라 이것도 안 먹히더군요. 시간은 가죠. 그녀는 기다릴 거 같죠. 옷에는 화장실 냄새가 배는 기분이죠. 결국 포기하고 나왔습니다.

택시 안에서 기마 자세의 효과가 서서히 오기 시작했지만 참을만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번에 오는 신호는 대수로운 똥통이 아닙니다. 심각한 똥통일수록 서서히 오죠. 마치 산모가 겪는 산통처럼, ‘강약중강약’으로 조였다 풀어줬다 하는 새에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다리는 한없이 베베 꼬여가는 그거이! 바로 참똥통입니다.

문제는 그녀의 아파트 앞에서 시작됐습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인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빠이빠이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그럴 수가 없어 5층까지 같이 걸어 올라갔습니다. 오른 발. 왼발. 오른 대장. 왼쪽 소장. 계단의 고저에 따른 페달 운동의 효과로 대장의 융모털 하나하나가 각성하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그녀가 문 앞에서 핸드백 속의 열쇠를 찾던 때는, 바야흐로 투하된 와인 부대와 치즈 부대의 연합군이 주둔하던 부대찌개 부대에
선전포고를 하려던 일촉측발의 상황이었습니다.

“오빠, 나는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모르겠어요.

이게 무슨 가카 방언하시는 소린가요. 예기치 않았던 과음 탓인지, 늘 쿨하던 그녀의 돌발적인 말에 저도 좀 당황했습니다. 똥끼가 확 내려가더군요.

으, 응?

오빠한테 연락하는 게 좋기는 한데, 연락할 때마다 늘 망설여져요. 선후배 같기도 하고, 오빠, 동생 같기도 하고. 내가 왜 연락하는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남자인 제가 먼저 교통정리를 한번 하는게 맞겠다 싶어 말 나온 김에 솔직히 말했습니다.

음... 사실 나도 모르겠어. 실은 나 오늘만 만나고 너 그만 만나려고 했어. 이렇게 만나는 게 너한테 혼란스러울 거 같기도 하고. 내가 뭔가 입장을 정해야 할 거 같아서 말이야.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흐르고... 그녀가 절 다시 빤히 쳐다보더군요... 근데, 분위기가 그거이 아닌 거입니다. ㅠ.ㅠ

그 담은 뭐 예상하시다시피. ‘쪽-쪽-뽁-뽁’ 키쑤 타임.

그냥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됐습니다. 그날까지 저 그녀랑 스치듯 손 한 번 만져본 게 다였거든요. 나름 조신남입니다요. ㅎ.

제 베스트 3 안에 들 정도로 키스는 정말 달콤했습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꽤 오래 키스를 하다, 자연스레 손이 그녀의 가슴 쪽으로 옮겨갔습니다.(떼찌. 떼찌.) 저도 술이 좀 취했던 상태라 잘 기억은 안 납니다만, 가슴도 몇 번 만진 거 같기도 합니다.

근데. 그 때 터진 겁니다.

거어대에한 해일에.

가까스로 지탱하던 둑이 한번에 밀려나간 거죠.

뭐랄까요.

가스만 픽픽 싸며, 움찔거리던 휴화산이 웅장한 폭발음과 함께 마그마를 분출하려고 하는 용틀임을 바로 그 순간의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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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똥그마의 분출

그냥 오른쪽. 왼쪽. 위. 아래. 전방. 후방에서 밀려오는 정신 없는 똥통에 혀와 손이 순간 정지됐습니다. 마지막 남은 가느다란 끈은 이성이었죠. 무천아. 무천아. 이러면 안 된다.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 안 된다.

너 취한 거 같다. 괜찮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애써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물었습니다.

말없이 바라보는 그녀는 또 그날따라 왜 그리 이쁘던거입니까아? ㅠ.ㅠ.

내일 강의가 언제냐?

오후 수업이라 괜찮아요.

그래. 다행이네. 그럼 푹 자고 내일 내가 연락할게. 일어나면 문자 하나 줄래?

말없이 빤히 바라보며 서 있는 그녀를 돌려세워,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동시에 최대한 다리를 밀착시켜 똥꼬를 압박하는 민간 요법도 잊지 않았죠.

들어갈 듯 하던 그녀가, 다시 살짝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더군요.

아-놔아-. 지금이 바로, 우담바라가 필 때나 한 번 온다던 바로 그 ‘오빠 들어 올래여’ 타임이건만 전혀 덥썩 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어느새 송글송글 맺힌 똥방울이 제 똥코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래. 잘 자고.

아예. 문을 밀어 닫아 버렸습니다.

보안창을 통해 현관불이 꺼지는 것을 확인하고, 냅다 엘리베이터로 뛰었죠.

다리의 교차운동과 함께 제 뇌는 2.507페타플롭의 전산 속도로 아파트 단지의 구조와 인근에 공중 화장실이 있을 확률, 문을 열었음직한 인근의 가게와 가까운 편의점 위치 등을 검색하고 있었습니다.

아.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었죠?!

순간적으로 이성의 끈이 툭! 끊겼습니다.

그냥 4층이나 6층에 올라가 계단 칸에다 싸 버릴까?

극심한 양극화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이 탐욕의 상징인 잠실 아파트에 똥을 싸 두는 거다!

라고 생각했지만... 제 간이 그리 크지 못 합니다. 만에 하나 누군가와의 새벽 만남이 일어난다면 제 자아는 붕괴되어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것이 확실했습니다.

어찌어찌 1층으로 내려와 ‘또 어떤 놈팽이가 수작부리다 가네’ 하는 수위 아저씨의 썩소 속에 아파트를 나섰습니다.

아... 제가 설명했던가요.

그녀가 사는 동은 아파트 단지의 한 가운데입니다. 어디로 가던 외부로 나가기까지 상당 거리를 걸어가야 하는 입지였죠. 곧 동이 터 올 시간이라 들어오는 택시도 없었고, 더 이상 다리의 교차 운동을 견디기에는 제 똥꼬
에 가해지는 부하가 너무 컸습니다.

그 때 그곳이 눈에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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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장소

왜 어떤 아파트는 아파트 1층과 땅 사이가 좀 떨어져 있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1층이 1.5층 정도의 높이에 있어서, 지층과 공간이 생기는 형태의 구조물이죠. 그리고 대개 그런 곳에는 지면과 1층 베란다 사이에 1미터 남짓의 공간이 생겨 그 안에 사람 하나가 쪼그릴 정도의 틈이나지요. 그녀의 아파트가 그런 구조였습니다.

쪼그리고 앉기에 딱 맞는 높이, 은폐·엄폐가 가능한 그늘과 적당히 자란 잡초, 베란다 바닥과 벽 그리고 지면의 3면의 막힘으로 인한 방음효과(이 점은 착각이었습니다. 공명으로 인해 소리가 더 울리더군요.) 등은 작금의 우환을 풀어놓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좌우를 흘끗 둘러본 후 잽싸게 베란다 밑으로 기어들어가 혁대를 풀었습 니다.

그리고 폭풍이 있었죠.

....

대학 때 기벽 중 하나가 항상 제 술잔과 젓가락을 들고 다녔다는 겁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뭐. 그랬습니다. 글고 보면 담배도 안 피면서, 선・후배들 담뱃불 붙여 줄려고 지포 라이터를 들고 다니던 기억도 나는
군요. 검은 색 도커스 가방 앞 주머니에 술잔과 젓가락을 넣고, 둘째 주머니에 지포 라이터를 넣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대개 둘째 주머니엔 늘 편의점에서 파는 500원 짜리 향기나 티슈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내 화장
실의 그 뻑뻑한 휴지의 까슬거림이 싫었거든요.

근데 그 날 따라 가방을 안 들고 나온 겁니다. 원래 계획은 그녀를 바래다주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는 거였거든요.

폭풍이 지나간 후, 폭풍의 잔해를 꼼지락 꼼지락 힘들게 피하면서, 당면한 문제는 뒷처리였습니다. 풀이 제법 나 있었지만, 저 풀로 뒷처리를 한 후, 어떤 재앙이 뒷쿠로 들어올지 감히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들고 갔던 홍기빈 씨의 책을 어떻게 하려니 그 짓은 차마 못하겠더군요. 해서 생각한 게 제 보디가드 뺜쮸를 재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빤쮸는 휴지의 대체품으로 쓰기에는 아주 적절치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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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쮸 활용의 적절치 못한 예

고도의 신축성으로 인해 잘 찢기지도 않을뿐더러, 좁은 표면적으로 인해, 닦을 수 있는 횟수도 제한되어 있죠. 뭣보다 흡수력이 좋아 제거할 대상이 쉽게 손에 묻을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더구나, 며칠 전 ‘남자는 삼각’이라는 친구의 꾐에 넘어가 평소엔 거들떠도 안 보던 스포티한 삼각이 제게 장착되어 있었다는 것은 아주 불운한 일이었습니다.

통통한 제 히프는, 방금 자장면을 해치우고 난 아가의 입가마냥 다양한 데칼코마니가 있었고, 제게 주어진 기회는 단 1회였습니다.

고도의 계획성과 효율성이 요구되는 전문적인 작업이었죠.

...

부시럭. 부시럭.

주섬. 주섬.

유유히 바지를 올리고, 누워있는 빤쮸에 이별을 고한 뒤, 베란다 밑을 빠져 나왔습니다. 아직 새벽은 내려오지 않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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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의 만남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통화도 길어지고, 백주(?)에 종로에서 입술도 빨아대는 만행도 저질러 봤지만, 왜 그런지 더 진행되지는 않더군요. 점점 연락하는 간격이 드문드문해 지더니, 가끔 가다 생각나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후에, 이전에 한번 데려간 가족 모임에서 친척 형이 그녀에게 가슴 아픈 말을 한 것이 한 원인임을 알았지만, 어쩌겠습니까. 시간은 잘도 잘도 흘러가는걸요.

호적을 판돈으로 건 투쟁 끝에 전 연애 결혼에 성공했고, 그녀도 저와 같은 업종의 사람을 만나 잘 살고 있다는 낭보를 얼마 전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다 그러시겠지만, 저도 가끔 가다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 때 치즈를 쫌만 덜 처먹었더라면,

그 때 그 화장실에서 똥꼬에 손꾸락을 밀어 넣어서라도 게워내고 나왔었
더라면,

아니면, 똥을 싸는 한이 있었더라도, 그 때 계속 진도를 나갔더라면,

...달라진 게 있었을까?

아마. 그랬을 겁니다. 지금과 다른 또 다른 어떤 삶 속에서, 또 다른 상상을 하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겠죠.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녀가 제 마지막 맞선녀는 아닙니다. 그녀와의 맞선 이후에도 제법 많은 맞선을 하여야 했었고, 한 두 번은 그녀와의 만남 중에 이뤄진 것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를 제 마지막 맞선녀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녀와의 만남을 핑계로 추후 맞선에의 강요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녀와의 만남으로 더 이상 맞선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무반 교양서 중 하나이던 좋은 생각을 군대에서는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 좋은 생각은 화장실에서 숨어 읽던, 여자친구가 보내오던 장문의 편지 글이었죠. 그 글들을 보며 꽤 울었던 거 같습니다. 히힛. 간혹
오가다 지하철 벼랑박에 붙은 좋은 생각틱한 말들을 스쳐 읽습니다. 다 좋은 말씀이고, 옳은 생각들입니다만. 제겐. 글쎄요. 가까이하기엔 조금 먼 남의 이야기로만 들립니다.

좋은 생각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쓰여진 좋은 미사여구나 미담들로써가 아니라, 그 미담들로 인해 읽는 이들의 영감을 자극할 수 있는 생각들. 그런 게 좋은 생각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 생애 최고의 ‘베스트 좋은 생각’은,

그 때 그 뺜쮸를 장갑처럼 손에 끼어 360도를 회전해가며 표면적을 최대
로 활용한, 바로 그 순간의 생각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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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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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천

트위터 : @Dummer_Mucheon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