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5. 금요일
춘심애비
얼마 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홍콩의 한 쇼핑몰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는 모습의 사진이 나돌면서 이슈가 됐다. 별 거 아닌 거 같은 일이 이슈가 된 이유는, 홍콩은 기본적으로 전자담배를 그냥 담배와 동일하게 취급하기 때문. 그래서 ‘홍콩의 금연법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과 ‘어쨌든 금지됐으니 디카프리오 나쁜넘'이라는 의견이 서로 물고 뜯는 뭐 그런 뻔한 스토리.
일단 국내에 초점을 맞춰보면, 최근 몇 년간 동네에 전자담배 샵들이 생겼다 사라지고, 다시 생겼다가 간판이 바뀌고 그러는 중이다. 탄력 받아 뜨는 거 같더니 다시 주춤하고, 그러다 다시 탄력 받기를 반복하는 중. 또 어떤 기사에는 전자담배가 담배와 유사하게 건강을 해친다고도 하고, 또 어떤 기사에서는 일반담배보다는 낫다고도 한다. 어떤 이들은 도저히 못 피우겠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찬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쪽 팔려서 못 피겠다고도 한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인가. 함 디벼보자.
1. 전자담배의 기본적 원리
위 그림은 아주 기본적인 전자담배 기기의 구성을 보여준다. 맨 위 Cartridge는 전자담배 액상을 담는 용기이다. 그 다음 Atomizer Cone은 일단 넘어가자. 그 아래 Atomizer Core라는 부분은 전자담배 액상을 기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말하자면 전자담배의 핵심 부품이다. 이 Atomizer는 한국말로 하자면 액상을 연기로 만드는 ‘무화기'라고 일컬어진다. 그 아래 부분에는 무화기에 전기를 공급하는 배터리와, 작동을 제어하는 파워버튼이 달려있다.
즉, 카트리지에 담겨있는 액상이 무화기를 통해 연기로 바뀐다. 그리고 그 연기를 흡입하는게 전자담배 끽연의 기본적 원리. 액상이 연기로 바뀌는 과정은 아주 단순하게, ‘가열'을 통해 이뤄진다. 결국 무화기라는 것은, 배터리의 전기를 이용해서 일정한 범위의 열을 가함으로써, 액체상태인 액상이 기체상태로 변화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참으로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지만, 원리는 죄다 똑같다. 어딘가엔 액상이 담겨있고, 그 액상을 기화시키는 무화기가 있고, 그 무화기에 전기를 공급하는 배터리가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이 구성을 머리속에 때려박아 놓길 바란다.
2. 액상의 기본 구성
전자담배가 어느 정도 보급되어 시장이 제대로 형성된 미국에서는, 액상 또한 나름대로 프리미엄 브랜드가 있긴 하다만 아직까지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허접한 플라스틱 병에 담겨 판매된다. 사실 어떤 병에 담겨있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어떤 브랜드이든 간에 성분은 대충 비슷하다.
전세계 대부분의 전자담배 액상은 아래와 같은 구성으로 이뤄진다.
VG(Vegetable Glycerin), PG(Propylene glycol), 액체 향료, 그리고 액체 상태의 니코틴.
VG와 PG라는 낯선 단어가 나오니 왠지 거부감이 들 수 있다. 뭔가 졸라 복잡한 화학약품 같아 보이고, 이게 사람 폐 속에 들어가면 뭔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는 불안감. 충분히 그럴 수는 있다만 얘네는 글케 무서운 물질이 아니다.
VG는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먹어' 봤을 만한 물질이다. 코리투살류의 감기약 시럽은 대부분 VG를 사용한다. VG는 대부분 천연원료에서 추출되며, 특유의 달콤한 맛 때문에 식용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또한 피부 보습효과가 있어 화장품류에도 많이 사용된다. 뭐 다 재끼고, 약 그 자체에 쓰인다는데 인체에 해가 있을 리 없다.
이 VG는 특정 온도에서 연소가 되지 않고 기화가 되는데 연기가 뽀얗게 잘 나오는 편이라 전자담배 액상에 사용된다. 또한 어지간한 물질들이 모두 용해되기 때문에 니코틴을 담기에도 적절한 물질이다. 다만, VG만으로 연기를 만들면 그냥 부드럽게 넘어가기 때문에, 일반 담배 특유의 ‘목을 탁 치는 느낌'(소위 타격감이라 한다)이 적어서, VG 만을 단독으로 사용하진 않는다. 또한, 다소 끈끈한 성질 때문에 카트리지에 담거나 하는 과정이 귀찮다는 단점이 있다. 감기약 시럽의 질감을 떠올려보면 된다.
이 단점을 보완하는 물질이 PG이다. PG는 VG보다는 조금 덜 친숙한 물질인데, 일부 의약품의 용해제로 사용된다. 깊이 들어가면 머리 아프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일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긴 하다. 알레르기 반응을 제외하곤 몇 리터 단위로 꾸준히 퍼마시지 않는 이상 인체 유해성은 없다고 알려져있다. 얘는 기화했을 때 연기량이 적은 대신 타격감이 일반 담배의 그것과 유사한 면이 있고, VG와 마찬가지로 앵간한 물질을 잘 용해하는 편이어서 VG의 대체제, 혹은 혼합제로 사용된다.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전자담배 액상은 이 VG와 PG를 혼합하여 사용한다. 그 비율은 제조사마다 다르지만 좀 묽다 싶으면 PG가 많은거고, 좀 끈적인다 싶으면 VG가 많다고 보면 된다. 즉, 타격감이 중요하면 묽은 놈으로, 연기량이 중요하면 끈적이는 놈으로 사면 되겠다.
이 물질들은 VG의 약간 달작지근함 이외에는 맛이나 향이 없어서, 기화시킨 걸 마시면 거의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제조사들은 다양한 향을 넣는다. 대부분의 향은 식용 향료이고, 아주 소량 첨가되기 때문에, 향료가 지니는 인체 유해성은 슈퍼에서 파는 카라멜이나 사탕, 껌과 유사하다고 보면 되겠다. 무해하단 얘기다.
그리고, 담배를 대체하기 위해 고안된 제품인 만큼 니코틴이 들어있다. 이 니코틴의 양은 어떤 기계로 얼마나 들이 마시느냐에 따라 완전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긴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mg단위로 표현한다. 이는 제조단계에서의 비율을 표기한 것인데, 보통 말보로 레드 정도의 강도를 12mg으로 여기곤 한다. 좀 약하게 피우는 사람들은 6mg 짜리를, 좀 쎈 걸 좋아하면 12~18mg 정도의 액상을 사용한다. 직접 본 용량 중 가장 큰 용량이 24mg 짜리였는데, 이쯤되면 어지간히 담배 좋아하는 사람도 한두 모금 빨면 담배생각이 사라진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100mg 이상의 용량은 잘못하면 사람 잡는다. 호기심에 100% 니코틴 용액을 빨면 바로 뒤질 수 있으니 조심.
암튼. 니코틴은 과다용량을 섭취해서 뒤지지만 않으면, 그 자체로는 유해성이 거의 없다. 담배의 유해성은 대부분 연초의 연소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와 그 밖의 타르, 벤젠 등 화학물질에서 오는 것이고, 니코틴은 중독성이 강하긴 하지만 그 자체로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전자담배 액상 자체에는 유해한 물질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몇 모금 빨았는데 목이 가렵거나 하면 PG에 알레르기가 있는 것이므로, VG만으로 만든 액상을 쓰거나, 그냥 전자담배를 안 쓰면 된다.
3. 전자담배의 유해성, 그 실체
앞서 말했다시피, 전자담배를 피울 때 빨아들이는 연기는 VG, PG, 소량의 향료와 니코틴이 전부다. 이 자체로는 사실 유해성을 갖고 시비를 걸 껀덕지가 없어야 정상. 하지만 전자담배의 유해성 논란은 작게나마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전자담배라는 것이 등장한지 아직 10년도 안 됐으므로,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고 또 필요하지만, 정확한 논란 지점을 알아야 여론에 휩쓸려다니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
문제는 ‘무화기'에서 발생한다. 앞서 말했듯 전자담배의 무화기는 기본적으로 ‘가열'하는 장치이다. 원리상으로는 VG와 PG가 기화되는 온도에서 적절히 유지가 되면 되는데, 실제로는 배터리 전압, 무화기 부품의 불량, 지속사용으로 인한 온도 상승 등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 더욱이 대부분의 전자담배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제조되기 때문에 구조상의 불량률이 꽤 높다. 게다가 애초에 설계 자체가 엉터리로 됐다 하더라도 별다른 검증체계가 마련돼있지 않기 때문에, 기계 구조 자체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일어나게 할 수 있다.
여기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라 함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무화기가 과열되는 경우. 하다못해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노트북이나 태블릿, 스마트폰도 오래쓰면 뜨거워지는데, 애초에 가열하려고 만든 무화기가 허접하게 만들어졌으면, 존나게 뜨거워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VG와 PG가 기화되는 온도로 적절히 가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액상을 태워버리는 수가 생긴다. 앞서 말한 전자담배 액상의 무해성은 그 액상이 그대로 기화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지, 산화연소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느냐에 따라 그 후에는 아예 다른 얘기가 된다.
둘째로, 액상이 아닌 다른 게 가열되기도 한다. 예컨데, 구식 전자담배 같은 경우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카트리지가 무화기에 직접 접촉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그 플라스틱이 타거나 녹으면서 독성이 높은 연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무화기에 합성섬유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합성섬유가 연소하는 경우도 있다.
즉, 전자담배 기계가 이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 타면 안 되는 것들이 타버리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셈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어떤 기계가 어떻게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니 전자담배는 유해하다고 볼 수도 있다. 반대로, 제대로 만든 기계는 안전한데 불량품을 갖고 실험을 했으니 유해하다는 결과가 나온 거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다. 안전위주로 생각한다면 이 모든 경우에 대한 연구와 검증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전자담배를 유해하다고 봐야한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고, 반대로 그런 논리라면 이 세상의 모든 기계들이 설계자의 의도대로만 작동하는 건 아니지 않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이 논란은 말 한 마디로 정리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지만, 나름대로 전자담배 사용자로서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다. 전자담배가 뭔가 잘못되면, 피우는 사람은 바로 알 수 있다는 것.
VG와 PG가 정상적으로 기화되면, 향료 냄새와 맛만 느껴질 뿐이다. 기계가 이상작동해서 플라스틱이 타거나, 용액이 연소하면, 뭔가 야시꾸리한 냄새가 바로 느껴진다. 그럴땐, 무화기를 바꾸면 된다. 그런 야시꾸리한 냄새가 안 나면, 그건 아무 것도 타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4. 다음 이시간에
이번 편에서는 전자담배의 기본 원리와, 기본적인 유해성 논란을 간단히 정리했다.
다음 편에서는 뭔가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기계들이 어떻게 구분될 수 있고, 전자담배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어떤 문화가 꿈틀대고 있는지를 디벼보겠다.
특별히 궁금한 내용은 댓글 달아주시라.
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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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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