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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서울역 L마트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중국인들에게 이곳은 3대 성지 중 하나이다. 공항철도 타고 와 물건을 쓸어 담는 그들을 보면서 동기 한 놈이 심드렁하게 한 마디 던진다.


“저거 보면, 중국 배들이 우리 바다 쓸어가는 거 대충 눈 감아줘도 될 거야.”


“......”


할 말이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민들이나 중국 배를 단속하는 해경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중국인을 상대로 돈을 버는 우리 입장에서는 사드배치도 빨리 철회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요즘 같은 자유무역 시절에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무역은 흔하지 않거든, 어딘가에서 돈을 벌면 어딘가에선 밑지는 거야.”


돈을 버는 게 우리이고, 밑지는 쪽이 어민들이다. 어민들에겐 미안하고, 우리의 어족자원과 영토주권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고 해야 할까? 카트 안에다 ‘허니통통’을 카트 가득 싣고 가는 젊은 중국 여성. 동기는 뻥진 눈으로 이걸 바라본다.


“허니버터인줄 알고 사는 거야.”


“저놈의 미투상품...”


“따지고 보면 허니버터도 베낀건데 뭐.”


동기 놈은 중국 여성에게 허니버터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지 떠듬떠듬 중국어를 조합해 보는데, 내 손은 이미 친구 놈의 어깨로 향해있다.


“내버려둬. 여기 L마트야. 허니버터 없어.”


“아...”


“허니버터도 인기 있지만, 중국애들한테는 말랑카유랑 야쿠르트 젤리 있어. 그거 묶어서 이벤트 하는 것도 좋아.”


“아...”


스마트폰으로 내 이야기를 녹취 뜨며 마트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동기. 동기는 이번에 중국 파트로 발령을 받았다. 중국인들 대상으로 기획을 짜기 전에 내게 자문을 구하러 온 것이다.


“너네 왕홍(網紅)(중국의 파워블로거)은 섭외했냐?”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는데, 너무 비싸.”


“비싼 애들 말고, 천만원 내외로 섭외할 수 있는 애 2~3명 불러. 한 3박 4일 관광 돌리고, 공장 돌리고, 쇼핑 시켜주고...”


“효과 있냐?”


“걔들이 시답잖은 파워블러거 같은 애들인 줄 알아? 매출 앞자리 수가 달라질 거다. 쌈박한 기획 없으면, 왕홍 섭외해서 한국 데려와.”


“괜찮냐?”


“어. 맞다. 홈쇼핑 때릴 준비 했냐?”


“그것도 해야 하냐?”


“너네 기획 보니까 퍼스트 랜딩이잖아? 땡길 수 있는 거 다 땡긴 다음에 터트려야지.”


“그 이야긴 나도 들었는데... 중국애들한테 통하냐?”


“어. 약발이 다 된 거 같은데도 통해.”


동기놈은... 내게는 아픈 손가락 같다. 빚을 한 번 제대로 졌다. 내 커리어가 절딴 날 뻔 했을 때 제일 먼저 달려와 내 손을 잡아 준 놈이다. 이 녀석 아니면 난 지금쯤 다른 쪽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녀석이 내게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중국 기획 짜기 전에 내게 자문을 구한 것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주자는 생각에 L마트를 데려온 것이다.


얼추 해 줘야 할 말은 다 한 거 같다. 소비재를 팔겠다면 왕홍을 잡는 게 기본이다. 나도 2명을 데려와 3박4일 간 칙사대접을 해줬다. 역시나 1천만원 대의 왕홍이었다. 비용대비 효과를 보자면, 같은 가격으로 언론사에 광고 때리는 것보다 몇 십 배나 더 큰 효과를 얻었다. 마케팅을 하다보면, 4차 산업혁명, 디지털 민주주의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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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광고가 퇴조할 때쯤 이 바닥에 들어와 급성장하는 온라인 광고시대를 겪고, 모바일 시대를 접하다가 이제 완벽한 개인미디어 시대에 마케팅을 하고 있다. 이제 대중은 ‘계도’의 대상에서 벗어난 것 같다(표면적인 모습만 보면). 언론의 매체파워는 점점 약해지고 있고, 그 자리를 대신해 개인들이 치고 올라왔다. 물론, 그들을 섭외하고 관리하는 건 우리이고, 결국 사람만 바뀌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자들과 다른 결정적인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이들은 내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사람들의 니즈에 훨씬 더 민감하다.


“아, 너희도 홈쇼핑 준비한다면서?”


“...하나 해야지.”


“홈쇼핑 너 싫어하잖아?”


“위에서 오더 떨어졌어. 그리고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귀찮아하는 거야.”


“하긴, 귀찮긴 하지.”


동기놈의 환기(喚起). 홈쇼핑 광고를 하나 준비해야 한다. 아, 귀찮은데...


어떤 종편에서 남자 게스트가 쇼호스트에게 던진 말이 있다.


“남편들의 적”


홈쇼핑을 보며 생각 없이 주문 전화를 넣고, 그 카드를 메워 주는 건 남편들의 몫. 남자 게스트의 말에 십분 동의한다. 남자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자들이 TV를 보며 뭔가를 사는 행위 자체를 난 이해할 수 없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건가? 부정적인 게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다. 그러다가 이쪽 업계에 발을 붙이고 나서는 무관심이 부정적인 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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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준비


중소기업이나 마땅한 홍보창구가 없는 업체에서 홈쇼핑에 물건을 넣는 것은 좋은 판매 전략이 될 수 있지만, 다른 홍보수단이 있는 업체에게 홈쇼핑은 계륵과도 같은 존재이다.


당장 가격대 맞추기가 힘들다.


“팀장님, Q라인 원가에 대해서 상품 개발 쪽에서 최종 통보 나왔는데요.”


김과장이 들고 온 서류. 0이 몇 개, 앞자리 숫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여기서 40%정도 까야 할 텐데... 더 낮출 순 없겠지?”


“홈쇼핑 쪽에 들어갈 땐 어쩔 수 없죠.”


“...그러게”


보통 홈쇼핑에 들어가는 물건 가격은 일반 소비자가에서 40~50%정도 디스카운트 한 가격이다(홈쇼핑 업체들도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완판이 되든 안 되든 가격 면에서는 그리 남는 장사는 아니다(밑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대신 노리는 게 홍보효과다.


그 광고효과란 것도 방송 한 번으로는 별 효과가 없다. 기본 재방, 삼방...아니, 최소한 육방은 해야 광고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걸 왜 하는 걸까? 다른 쪽 업계는 모르겠지만, 우리쪽이 노리는 건 하나다. 바로 중국이다.


“한국 홈쇼핑에서 완판 된 제품.”


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하다. 이게 은근히 먹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가 섭외한 왕홍이 자기 SNS나 개인방송에서 한마디 더 던질 수 있는 어떤 ‘객관적 지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한류라는 게 무섭긴 하다.


“귀찮겠는데요?”


“귀찮지.”


김과장은 슬슬 눈치를 본다. 하기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몇 년 전의 A社라면 목숨 걸고 덤벼들겠지만, 지금은 굳이 홈쇼핑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홈쇼핑에 한 번 들어가기 위해서 들이는 각종 수수료 계산부터가 골치 아프다. 송출수수료, 방발기금(방송통신 발전기금), 콜센터, 물류비 거기에 카드 수수료... 이 정도가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다. 여기에 황금시간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들어가는 테이블 언더 머니(몇 년 전에 한 번 세게 두들겨 맞은 뒤에 이런 건 많이 개선됐다고 들었지만), 거기에 반품 수수료까지 떠맡는다면...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 전 대행사 쪽에 있을 무렵 선배가 아침부터 부부싸움을 하고 왔다며 얼굴을 붉혔던 기억이 난다.


“마누라가 집에 앉아서 TV만 끼고 있잖아.”


“뭐 그럴수도 있죠.”


“TV 보는 걸 가지고 뭐라 하는 게 아냐. TV 보려면 얌전히 보지 홈쇼핑 돌려가며 옷을 사제끼잖아.”


“...어, 그건 좀 아닌데요?”


당시 우리 상식으로는 홈쇼핑에 들어가는 옷은 그 수수료와 단가인하 요청을 맞추기 위해 일반 시중에 판매하는 옷과 겉은 비슷하지만, 내용물은 다른 옷을 보낸다는 게 상식이었다(싸고 좋은 물건... 이건 양립하기 어려운 형용모순이다). 이러다 보니 반품율은 수직상승하게 되고, 그 수수료는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게 된다.


“중국쪽을 두들기려면 한 번 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예”


“본방 한 번으로는 그렇겠죠?”


“장난 해? 최소한 육방은 가야지.”


기왕 하는 거 손해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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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말해 본방 한 번으로는 손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우리 쪽 업계 기준에서는). 단가를 맞출 순 없다. 완판을 하기 위해서는 탑급의 쇼호스트에게 이걸 밀어 넣어야 하는데, 탑급은 요구조건도 까다롭다. 그들도 완판에 대한 부담이 있다. 그게 곧 자신의 이미지이고 경쟁력이고, 연봉이다. 그녀들(그놈들도 있겠지만)이 원하는 건 사전판매다. 즉, 방송시간 대 이전에 물건을 팔겠단 소리다. 선주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홍보를 해야 하는데, 그 역시도 우리 부담이다.


아무리 봐도 밑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영업이사의 요청이다. 아무래도 그는 Q라인업으로 사장의 관심을 다시 자신에게로 끌어오려는 것 같다.


자, 문젠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 가다. 좀 귀찮긴 하지만, 들어가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다. 일단 여성들이 주요 소비층인 물건이고, 이전에 몇 번 방영을 했기에(완판했다) 쇼호스트들이 선호할 만하다. 문제는 ‘단가’다. 과연 얼마에 맞춰야 하는 걸까?


고민이 깊어졌다. 내 고민 사이로 김과장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예전에 저희가 했던 대로 기획 초안 잡을까요?"


홈쇼핑 기획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이다. 특출나게 튈 필요도, 기획을 짤 필요도 없다. 문제는 단가일 뿐. 나머지는 홈쇼핑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괜히 싸 짊어지고 끙끙대봤자 이쪽만 손해다. 김과장은 내 앞에 파일 하나를 슥 내밀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짜 놓은 J 홈쇼핑과의 기획이다. 단가는 상당히 후려쳐져 있지만, 무난하다. 쇼호스트도 제법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다.


“오방까지 갔네?”


“육방까지 노려봤는데, 거기까진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전부 완판했습니다.”


“그렇군... 나쁘지 않은데?”


“그대로 진행할까요? 괜히 엄한데 힘 쓸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상품기획팀이랑 영업팀, 재무팀 불러다가 단가 맞추고, 세일즈 포인트만 대충 정리한 뒤에 밀어넣을까? Q의 발매일자와 중국 론칭을 생각한다면, 아니 그 이전에 Q에 이런 투자를 해도 될까? 엄밀히 말하면 투자라고 할 것도 아니다. Q는 우리 쪽의 저가 브랜드다. 플래그쉽인 A는 PPL과 CF를 때려 붓고, 왕홍까지 섭외해 대대적인 폭격을 하는 상황에서 Q는 팔리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아닌대로 2차 시장을 노리는 물건이다. 회사 라인업 중에서 구색을 맞추기 위한 물건이다.


사장에게 직보를 하고, 결제를 받아야 할 사안이다. Q가 홈쇼핑에 들어가 밑질 것 같지는 않다. 브랜드 이미지가 깎여나갈 이유도 없다. 대신 중국에 론칭 할 때 세일즈 포인트 하나 더 챙기는 것이다. 물론, 귀찮긴 할 것이다.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딱히 손해 볼 건 없다. 영업이사는 여기에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 걸까? 객관적인 전망과 주관적인 희망 속에서 Q는 한 없이 주관적인 희망 속에 있는 물건이다. 영업이사가 이걸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고 믿고 있다면, 그의 한계다.


어쨌든 결론은 났다. 손해 볼 게 없다면, 영업이사에게 빚 한 번 쥐어주는 것이고, 회사 차원에서 사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것 보다 뭐라도 하겠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나을 것이다.


“오케이 홈쇼핑 가자. 예전 기획안 토대로 수정해서 기획안 짜. 김과장에게 일임할게.”


“예!”


“언제까지 가능하지?”


“내일 점심 때까지는 가능할 거 같습니다.”


“부탁해. 내일 오후에 바로 사장님께 들고 갈테니까.”


“그렇게 빨리요?”


“힘 쓸 필요 없다며? 어차피 홈쇼핑이야. 큰 이문 볼 생각으로 하는 거 아니잖아? 론칭 할 때 좀 수월하게 가겠다는 거잖아?”


“알겠습니다.”

 

머뭇거리는 김과장의 등을 떠밀었다. 마음 한구석의 찝찝함을 털어내기 위해 나는 홈쇼핑 기획안을 서둘렀다. 빨리 처리하고 털어버리려는 생각이 마음을 재촉했다.


“영업쪽하고 상품기획쪽하고는 어떻게...”


“내가 처리할게. 김과장은 기획에 집중해.”


“예”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는 김과장을 보며 나도 모르게 속내가 흘러나왔다.


“영업팀 애들 좋아하겠네.”


...........................................


홈쇼핑 기획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영업이사는 Q 론칭에 꽃비를 뿌려줬다며 좋아라 했다(과연 그럴까?) 사장은 손해는 보지 않았다는 말과 최소한 삼방 이상은 갈 거란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첫방에서 완판을 했으니(사전 판매로 물량의 반을 소화했다. 나름 브랜드 이미지로 밀고 간 보람이라고 해야할까?) 홈쇼핑이나 호스트도 불만은 없다. 모두가 좋아라 했던 기획이다. 딱 한명 나만 제외하고 말이다. 목구멍에 이쑤시개가 걸려 있는 듯 한 불편감이 계속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 불편감의 정체는 본부장의 날 선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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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이 시리즈를 투고하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 

내부자의 안전과 비밀보장을 최우선시 한다는 딴지일보를 믿으나 
이 연재가 중단되면 나에게 클레임이 들어왔거나 딴지 편집부가 쫄았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하시라.

(실제 지난 8편에서 관계자가 이 글을 읽고 클레임이 들어오긴 했다)

 
그래도 이 이야기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날리 없는 소설이라고 믿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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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홍보팀, 그리고 국제청 조사 4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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