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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04. 월요일

편집부 홀짝







 









삶은 끝없는 자학일 뿐인가

가난해서 성자가 되는 길을 나는 모른다

겨우내 허공 가득히 써놓은 눈밭의 언어를

끝내 잘못 읽은 것이다.

내 꿈은 은행 빚을 탕감 받는 게 아니라

이 비루함을 더 큰 비루함으로 완성하는 것

그게 혼자 끙끙대는 혁명이다.


황규관 「쇳소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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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함을 더 큰 비루함으로 완성하는 것


천하고 속되다는 뜻의 비(鄙)와, 마찬가지로 천하고 (신분 등이)낮다는 뜻을 가진 루(陋)가 만난 ‘비루하다’는 ‘찌질하다(표준어 표현은 지질하다)’와 그 의미가 유사하다. 노동 시인으로 잘 알려진 -누군가를 소개할 때 앞에 수식어를 얹는 것이 썩 옳은 일은 아니지만- 황규관의 「쇳소리」에 나타난 ‘비루함을 더 큰 비루함으로 완성하는 것’이라는 시행은 구질구질하고 찌질한 자신과 삶에 대한 체념이자 동시에 저항이 되기도 한다.


비루한 스스로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체념과 함께, 굳이 애써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는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그러한 비루함을 더 큰 비루함으로 ‘완성’하겠다는 선언. 그것이 화자가 끙끙대며 나아가고자 하는 혁명인 것이다.


자기 비하와 체념과 같은 패배자의 정서를 담아낸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랫말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일 사실이 있다. 황규관의 「쇳소리」가 담긴 시집의 이름이 『패배는 나의 힘』이라는 것.



요정의 판타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불가능한 꿈을 갖자. - 체 게바라



‘요정’은 그 자신이 판타지에 등장하는 가상의 존재다. 그런 달빛요정이 세상을 살아가며 꿈꾸었던 판타지는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나의 리그는 사회인 리그. 좋아서 하는 음악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회인 야구 출신으로 메이저리그 아시아인 최다승 -당시는 박찬호가 이 기록을 깨기 전이었음. 필자 주- 기록을 갖고 있는 노모 히데오가 될 것이다.

 

-에세이 『행운아』에서 2집 발표 당시를 소개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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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은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 - 노모 히데오


달빛요정은 가수다. 때문에 달빛요정의 판타지는 가수로서 그가 꾸었던 꿈이다. 홍대 앞 1인 인디 밴드로 음악을 시작한 그가 수만 명 관객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자신만의 무대에서 노래하는 꿈. 사회인 야구 선수 출신으로 메이저 리그에 까지 진출하여 족적을 남긴 노모 히데오는 그래서 달빛요정의 판타지를 현실로 만들어낸 사람이 된다.


그러나 요정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판타지가 불가능한 꿈에 가깝다는 것을. 하지만 꿈을 이룰 수 없음에 좌절하지는 않았다. 달빛요정은 리얼리스트이기도 했으니까. 꿈 꾸는 리얼리스트. 달빛요정은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벽이 가진 높이와 그 앞에 선 자신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에세이 초반부에 많은 분량을 할애해 가면서 그가 설명해 놓고 있는 것은 가장 적은 돈으로 앨범을 내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내수공업 1집을 냈던 노하우를 소개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음반에 제작비를 투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음반을 싸게 만드는 법을 혼자 터득했다는 달빛요정. 때문에 자신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는 그다. 음반의 사운드적 퀄리티는 어느 정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능하지 않은 일에 서글퍼 하느니 다른 것에 집중하고자 했다.


에세이에 나타난 달빛요정의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음악을 하겠다는 꿈을 쫓아 가수가 되어 '달빛요정'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보여준다. 달빛요정은 제 3자의 시선 보다 더 날카로운 자기 판단과 분석에 스스로의 현실적 한계까지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에게 여심을 사로잡을 빛나는 외모도, 청중을 압도하는 걸출한 가창력도 없다는 사실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대형 기획사의 힘으로 마케팅을 소위 ‘빡세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때문에 대중 가요판에서 ‘노모 히데오’가 되고자 하는 그의 꿈은 판타지일 수 밖에 없다. 꿈을 꾸기는 하지만 이룰 수 없음에 좌절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강점 또한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진정성. 가수 달빛요정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무기였다. 진심을 담으면 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달빛요정은 자신의 진정성을 노랫말에 담아냈다. 요정의 언어로.



요정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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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 <Goodbye Aluminium>


달빛요정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노랫말이다. 달빛요정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열광하는 부분 또한 노랫말에 있다. 필자가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기에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달빛요정의 노랫말이 다른 가수의 그것과 비교해 뚜렷하게 차별화 되는 지점은 노랫말에 ‘서사’를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노랫말이라고 하는 것이 애초에 그 목적이 리듬과 멜로디를 만나 '노래'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짧은 글에 서사를 담아내는 것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래를 듣는 사람의 호불호를 떠나 이것은 확실히 달빛요정이라는 가수의 무기였다. 요정의 노랫말에는 이야기가 있다.


달빛요정의 노랫말 속 서사의 화자는 대부분 그 자신이다. 그리고 여러 차례 언급했듯, 노랫말에 나타난 그의 정서는 자기비하와 좌절, 그리고 체념과 푸념이다. 그는 「스끼다시 내 인생」에서 스스로의 인생을 '사시미'가 아닌 '스끼다시'라고 표현하고, 자신의 노래를 '스포츠 신문' 같다고 비하한다. 제목 자체가 「어차피 난 이것밖에 안 되」인 노래도 있으며, 또 다른 그의 노래 「스무 살의 나에게」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스무 살 시절의 자신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어차피 세상은 다 정해져 있고, 그런 세상의 주인공은 네가 아니라고.


팍팍한 현실, 세상에 대한 푸념과 자기 비하의 노랫말, 사람들은 그런 달빛요정의 노래를 ‘패배자의 정서’나 ‘루저의 노래’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달빛요정의 노랫말을 이토록 처절하게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왜 그의 노래에 공감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그의 노래를 통해 위로를 받게 되었을까.



연봉 1,200만 원의 의미


앞서 말했듯이 요정은 자신의 판타지(꿈)가 이루어지지 않음에 좌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정에게는 판타지뿐 아니라 현실적 목표가 있었다. 아니, 마지노선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게다.


달빛요정은 인터뷰나 책에서 그의 목표이자 바람이 '위대한 가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직업으로 가수를 계속하는 것'이라 밝힌 바 있다. 그런 그가 2007년 새해에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연봉 1,200만 원, 월수입 100만 원이 되지 않으면 가수를 그만두겠다는 것이었다.


1,200만 원은 전업 뮤지션으로서 그가 정한 마지노선이었을 것이다.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의 마지노선이자 그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가능성에 대한 마지노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1,200만 원이라는 액수가 가진 의미를 두고 혹자는 ‘불쌍한 뮤지션’이라는 (왜곡된) 그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려 들기도 한다. 물론 그가 풍족한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다. 간혹 월세가 밀리기도 하고, 작업실을 처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굶어가며 음악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넉넉하지 않았을 뿐이지 '찢어지게 가난한' 뮤지션은 아니었다는 거다. 그의 노래「치킨런」에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잠시 음악을 놓고 치킨 배달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치킨집을 개업한 선배를 잠시 도왔던 달빛요정의 경험이 녹아있는 곡인데, 2절 가사에서 생활고에 못 이겨 기타를 처분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사실 실제 달빛요정은 기타를 팔아 생활을 해결한 적이 없다. 다른 기타를 사기 위해 쓰던 기타를 처분한 적이 있을 뿐이다. 노랫말을 쓸 때 경험적 사실과 거기에서 출발하는 상상을 더하는 달빛요정의 노랫말이 가진 특성 때문에 일어난 오해다. 사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냈던 그의 능력이 빚어낸 오해. 


이 단편 영화 같은 스토리는 이 노래를 쓰기 위해 내가 상상한 내용이다.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기타를 팔아서 더 비싼 기타를 사는 데 보탰다. 많은 사람들이 섭섭한 기분과 속았다는 기분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달빛요정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조차도 달빛요정의 극적인 파멸을 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내가 무너질수록, 파멸에 더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그 스토리에 열광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에세이 『행운아』에서 「치킨런」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 글


그가 도움 받기를 원하지 않았을 뿐, 그에게는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가족이 있었다. 사족을 붙이자면, 단순히 달빛요정을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불쌍한 뮤지션'으로만 바라 보는 시선들이 그의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된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따라서 달빛요정이 연봉 1,200만 원이 되지 않으면 가수를 그만두겠다고 다짐한 것은 음악을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 음악을 ‘안’하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별 차이가 아닐 수 있겠지만 이것이 올바르게 달빛요정을 이해하는 길일 것이다. 달빛요정은 단 한 번도 스스로가 ‘불쌍하게’ 그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가 정한 마지노선인 월수입 100만 원을 지켜내기에도 버거웠다. 기획사의 도움 없이 자신의 음악을 팔기에는 국내 가요판이 너무나 척박했다. 작곡, 작사, 노래까지 모두 혼자서 해냈음에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음원 수입은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 음원 유통 구조가 기형적인 탓이다. 뮤지션으로서 스스로가 추구하는 음악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 또한 있었을 것이다. 진정성을 추구하는 그의 음악적 세계관에서, 이러한 달빛요정의 좌절과 체념은 그대로 요정의 언어가 되었다. 노랫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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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오필리아가 겪었던, 판타지 보다 더 거짓말 같은 지독한 현실. <판의 미로>



자기비하와 체념의 미학


달빛요정의 노랫말은 좌절한 이들에게 동질감을 넘어선 위로가 되었다. 응원 마저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체념과 세상에 대한 푸념이 그저 ‘찌질한 자의 한풀이’에 머물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현실은 요정을 계속해서 넘어뜨리고 주저앉혔다. 그러나 요정은 땅바닥에 널브러져 일어서지 못한 채로 세상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절룩거리기는 했으나 다시 일어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노래 「행운아」에서 ‘죽는 날까지 살겠어’라고 한 것은, 죽는 날까지 가수로 살겠다는 말이었을 게다. 자신을 주저앉히는 현실의 냉혹함에도 스스로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절룩거리며 걸어나가는 그의 모습은 실상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도, 면접에서 낙방한 사람도, 0승 30패에 괴로워하는 필자의 후배도 그렇게 꾸역꾸역 다음을 준비한다. 세상을 욕하고 자신을 탓해도 걸음을 멈추지는 않는다. 그게 자신의 의지가 되었든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든 말이다. 하루의 끝을 소주 한 잔으로 달래고, 직장 상사 욕을 퍼부으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가슴 속 사직서를 어루만지는 직장인들 또한 마찬가지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패배는 이미 일상이 되었지만, 그것과는 상관 없이 걸음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그런 사람들이 가끔씩 세상을 향해 푸념을 좀 늘어놓는다고, 자신을 비하하고 체념한다고 누가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그 누가 찌질하다고 비웃을 수 있겠는가.


한 때 자신의 꿈이었던 ‘하고 싶은 음악’을 직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달빛요정에게 음악은 곧 '현실'이다.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에게도 견뎌내야 하는 오늘은 '현실'이다. 서로 출발한 지점이 달랐던 요정과 우리가 교차하는 지점은 바로 각자가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 아니 멈출 수 없는 발걸음. 사람들이 달빛요정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또 한 가지. 비록 노랫말에는 그러한 정서가 담아져 있을지언정 곡 자체는 비교적 밝고 경쾌한 것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몇 곡만 제외하고 그의 노래는 대부분 단조가 아닌 장조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밝고 경쾌한 멜로디, 어둡지만 위트 있는 노랫말. 달빛요정의 노래는 그렇게 패배한 사람들의 위로이자 응원이 되었다.



떠나간 요정, 요정의 승리


구질구질하게 사는 게 지겨울 만도 한데 아직도 포기를 못 했다.

 

내 음악이 내 삶 어느 순간의 기록인 것처럼 누군가의 순간에 내 노래가 기억되면 영광일 뿐인 거니까.

 

하지만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보다는 어두운 면이 더 안쓰러운 걸. 그걸 노래하는 게 내 운명이고 임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달빛요정 행세는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하지만 난 현실을 노래할 뿐이다. 현실의 절망을 노래해서 돈을 번다. 절망을 팔아서 먹고 사는 게 부끄럽기에 많이 벌 생각은 없다. 평생 음악만 하게 해줘요.

 

영혼을 판다면 평생이 행복할 텐데. 나의 변절은 언제일까.

 

나는 비극을 노래할 테니까. 즐거운 비극을 노래하는 게 나의 운명이고 의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순교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에세이 『행운아』에서 각 문장을 발췌



‘어쩌면 순교자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그의 말은 예감이었던 걸까. 2010년 11월 6일,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진 가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서른 여덟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죽는 날까지 살겠다는 그의 다짐, 평생 음악하며 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이렇게나 허망하게 이루어졌다. 날마다 패배하며 패배자의 정서를 노래했던 그는 이렇게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끝내 승리했다. 요정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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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이 떠난 뒤


2011년 1월 27일. 달빛요정이 활동했던 홍대 앞. 그를 추모하기 위한 공연이 열렸다. 그날 하루, 스물 여섯 곳의 클럽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103개 팀의 인디가수들이 오로지 달빛요정을 위한, 달빛요정의 불렀다. 그들 중에는 생전의 달빛요정과 교류가 있었던 가수도, 전혀 그렇지 않았던 가수도 있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가 떠난 뒤에도 현실은 그에게 따뜻하지 않았다. 달빛요정이 세상에 있을 때에도 음악 방송 보다는 다큐멘터리와 뉴스에 그를 출연시키고자 했던 방송과 언론은, 여전히 그들의 필요에 따라 세상을 떠난 요정을 소환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는 가수를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뒤늦게 그의 음악을 접하고 팬이 되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이 바뀌지 않았으니,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생겨났기 때문일 게다. 필자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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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공연 <나는 행운아>



요정은 간다


요정은 '간'다. 요정은 떠났다. 그러니 요정은 '갔'다. 그러나 또 다른 요정들이 '남았'다.


달빛요정이 위대한 가수가 되기 위해 음악을 한 것이 아닌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 또한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슨 거창한 야망이 있다고 그렇게 아둥바둥 사는 것이겠는가. 그런 대단한 꿈을 꾸며 그것을 이루고자 살아가는 것도 아닌데, 현실은 너무나 팍팍하고, 냉혹하다. 고통의 크기가 꾸었던 꿈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판타지 속 요정이 삭막하고 차가운 현실에서 살아남기란 어려운 일이다. 본디 요정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존재니까. 달빛요정은 떠났다. 그러나 한 편으로, 현실에 주저앉으면서도 절룩거리며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우리 모두 또한 요정이다. 


필자가 제멋대로 써 내려가는 <찌질한 위인전>의 번외편으로 달빛요정을 소개했던 이유는, 11월 6일 그의 기일에 맞춰 그를 추모하고자 함도 있었지만 나름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달빛요정이 위인일 수 있다면, 우리 모두 또한 위인이기 때문이다. 익히 잘 알려진 위인전 속 인물들 또한 처음부터 위인이 되기 위해 삶을 살아갔던 것은 아니잖은가. 먼저 떠난 달빛요정이 남긴 언어와 멜로디는 그래서 남은 우리들에게 위로와 응원이 된다.


달빛요정은 갔다. 세상에 남은 요정들은 그래도 묵묵히 걸음을 걷는다. 요정은 간다. 가고 있다. 각자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 어디론가를 향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사는 건 아냐

다 때려치고 어딘가로 숨어버리고만 싶어

아무리 버둥거려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

그 알량했던 자존심을 버릴 때가 온 건가봐


내가 세상을 비웃었던 것만큼

나는 더 초라해질 거야. 아무래도 좋아

나는 내 청춘을 단 하나에 바쳤을 뿐

그저 실패했을 뿐 그저 무모했을 뿐

난 잊혀질 거야 지워질 거야

모두에게서 영원히

난 노래할 거야 어디에서든

혼자서 가끔 이렇게 아무도 몰래


내가 세상을 사랑했던 것만큼

난 너무 아쉽고 섭섭해 아무래도 좋아

나는 내 젊음을 아낌없이 바쳤을 뿐

그저 실패했을 뿐 그저 무모했을 뿐

난 잊혀질 거야 지워질 거야

모두에게서 영원히

난 노래할 거야 어디에서든

혼자서 가끔 이렇게


요정은 간다 이제 요정은 없다

그저 그런 인간이 되어

노래하겠지 또 어디에서든

혼자서 가끔 이렇게

초라한 수컷이 되어

아무도 몰래 아무도 몰래

 

「요정은 간다」




뱀발.

 

1. 번외편으로 소개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편은, 사실 <찌질한 위인전> 연재를 시작하기 전부터 꼭 쓰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제 글에서 고인을 ‘이진원’이라는 본명이 아닌, 가수로서의 예명인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으로 소개한 이유는 故 이진원님 또한 사람들이 자신을 달빛요정으로 기억해주길 바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2. 본 연재의 업데이트 이틀 후인 11월 6일은 故 이진원님의 기일입니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음악이 하나 같이 모두 음울한 정서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 노래도 있고, 파이팅 넘치는 곡도 있고, 다소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도 있지요. 아직 달빛요정의 음악에 대해 잘 모르신다면 이번 기회에 쭈욱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개인적으로 강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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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유 없습니다. 그냥 이름이 예쁘잖아요.

요정이 예쁘다는 편견도 버려야 해요,

요정이 왜 남자는 없을 것 같아요?








편집부 홀짝

트위터 : @holjjak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