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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22. 월요일

김현진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나를 스쳐 간 당신의 몸, 

당신의 이마를 한때 어루만졌던 누군가의 손, 

아스팔트 위에서 사정없이 깎여나가던 누군가의 피와 살,

철탑에서 얼거나 타들어 가는 몸들, 

당신이 나를 낚아채 주길 바라면서 

숨죽여 뺨을 대 보았던 당신의 쇄골.


몸은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은밀한 삶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 '몸'에 대한 이야기다.

 





  요즘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어느 커뮤니티에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댓글을 보았다. 페미니즘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열심히 설명하는 어느 여성 네티즌의 글에 달린 것이었는데, “여성주의자가 왜 페미니스트를 하시죠? ” 였다. 비꼬는 게 아니라, 그 남자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다. 이건 뭐 국회의원이 왜 정치를 하시죠? 장사꾼이 왜 사업을 하시죠? 수준으로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를 말이었다. 사실 한국사회의 여성 혐오 문제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여성부에서 죠리퐁이나 테트리스는 음란하다고 규제했다는 이야기는 십 몇 년이 넘은 지금까지 믿을 만한 정보로 떠돌아다닌다. 실제는 어느 기독교 계열 사회단체에서 그런 말이 나온 적은 있으나, 여성부와 관계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15년 가량이나 여성부는 그런 루머에 시달리고, 여성부를 폐지하라는 주장이 나올 때 가장 먼저 놀림거리가 되는 이야깃거리다. 한 십년 전부터인가, 좀 생각 있을 것 같다고 사람들에게 기대 받는 여성 연예인들이 하나같이 인터뷰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휴머니스트예요. ” 그들이 얼마나 고귀한 뜻을 함의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나, 그건 이렇게 들렸다. 나는 절대로 당신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에요, 당신들을 적대시하지 않아요, 나를 오해하거나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착한 여자예요... 그렇기에 이 말은 역설적으로 여성들이 더 연약하게 느껴졌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여성들마저 저렇게 변명같이 말을 해야 되다니, 하물며 보통 여성이 전 페미니스트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사회적인 자살이다. 아직까지 ‘페미니즘’하면 여성 우월주의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 탓이지 싶다. 차마 키보드로 치기도 천박한 말이지만, ‘보슬아치’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성을 권력으로 삼는 여성들을 말하는 표현이지 싶은데, 자본주의가 보다 고도화되면서 이른바 섹스를 무기로 하여 ‘줄 듯 말 듯’ 하면서 남자를 희망고문하고, 물질적인 이득을 보는 여성들을 말하는 이야기인 것으로 파악된다. 매력자본, 즉 에로틱 자본이 굉장한 권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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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현상들 뒤에는 전통적인 성역할이 무너지면서 남성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상당 부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결혼하는 이들이 줄어들면서 남자들은 더 이상 가정의 부양자가 아니게 되었다. <남성의 종말>이라는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 2009년 사상 최초로 여성 노동 인구가 남성 노동 인구를 앞질렀다고 한다. 미국 대학생의 60퍼센트가 여성이고, 성적도 더 우월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 같은 경우도 벌써 몇 년 전부터 학부모들이 남녀공학이 아니라 남중, 남고에 진학시키려고 애쓴 지 오래 되었다. 여학생들의 성적이 더 좋기 때문이다. 40년 전에 비해 남자가 살림과 육아를 하는 비율을 아주 조금 더 늘었지만, 그 40년 동안 여성들은 예전에 생각도 할 수 없던 여러 가지 직업 분야에 진입했다. 30년 전만 해도 아들을 낳기 위해 태아 성감별 낙태가 성행했던 한국에서는 요즘 ‘딸이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대세다. 아들은 낳아 봤자 남의 사위가 되어서 그 집 아들 노릇이나 하지만 결국 부모가 병에 걸리거나 나이가 들었을 때 간병하고 돌보는 것은 딸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로 2010년 조사 결과 23퍼센트만이 첫 아이로 아들을, 42.6퍼센트가 딸을 원했다고 한다. 대중문화에도 청순가련한 타입보다 <헝거 게임>의 캣니스 에버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리스베트 살란데르 같은 강렬한 여성들이 각광받는다.

 

 ‘여성 혐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내가 떠올린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몇 년 전 일종의 취재를 위해 사무실에 녹즙 배달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22개월이나 했으니 병장 만기 제대를 한 셈인데, IT계열과 건설회사가 배당되어 수많은 아저씨들을 만났다. 그들은 거의 다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친절하고 매너 좋은 어느 과장님이 손수레를 도둑맞고 등산용 가방 두 개에 녹즙과 얼음팩을 잔뜩 짊어지고 끙끙대며 다니는 나를 딱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이런 충고를 한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해요? 요즘 바 같은 데 옛날같이 터치하고 그런 거 없어요. 훨씬 편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데 왜 이렇게 고생을 하고 그래. ” 제일 화나는 건 그에게 악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말에는 동전의 양면 같은 이중성이 있다. 그래서 실제로 내가 그렇게 ‘터치’도 심하지 않고 적당히 말상대나 해 주면서 돈을 벌었다면, 아마 그들은 뒤에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요즘 여자애들 고생도 안하고 편하게 돈 벌려고 술집에서 일이나 하고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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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떠오른 것은 2006년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한창 ‘된장녀’라는 말이 각광을 받으면서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이라도 마셔본 여자들은 나 된장녀 아니라고 변명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김항문’이라는 아이디를 쓰던 어떤 남성 네티즌도 된장녀들을 심각하게 증오했던 것 같다. 그 증거로 그는 야심한 시각 ‘선영아 사랑해’는 카피로 유명했던 어느 여성 커뮤니티에 ‘여성들은 자신의 항문을 팔아 스타벅스 커피를 사마시기를 원한다’며 단순한 포르노 수준이 아닌 끔찍한 수위의 사진들을 올렸다. 여성의 항문에 각종 잔혹한 성폭력이 가해져 있는 것을 고감도로 촬영한 사진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게시물을 클릭했던 여성들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왜 그런 것을 올리냐는 항의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 사이트의 ‘선영이’들이 아무리 분노해도 김항문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항의하는 여성들을 조롱하며 ‘창녀들은 항문을 팔아서 국가수익에 일조하라’고 계속 글을 올린다. 당시 운영자가 근무하지 않는 시각이라 그가 작성한 이러한 게시물은 80여개에 이르게 된다. 다음날 해당 사이트는 단순히 관련 글을 포함해 회원들의 글까지 모조리 삭제한다. 삭제된 그의 글 중 ‘너희가 모여 이렇게 된장녀스러운 입담을 주고 받을 곳은 우리가 하나하나 색출하여 부술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김항문은 여성부 폐지를 외치며 남성 사이트를 표방해 만들어진 어느 웹사이트에 자신의 업적을 알렸다. 회원들은 마치 우국지사를 격려하듯 그를 치하했다. 집단적인 여성혐오의 원조 격인 사건이었다. 여자들이 모여서 남자친구가 어쨌다 저쨌다, 남편이 어쨌다 저쨌다에서 결혼과 직장과 진로까지, 지극히 사소한 욕망과 슬픔을 서로 나누고 있는 모습은 그들에게는 그저 된장녀들이 머리를 맞대고 남자들 등쳐먹고 ‘보슬아치’ 짓할 지혜나 서로 공유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말 그대로 격렬한 혐오였다. 그 사이트의 몇몇 회원들은 아주 엄숙한 어조로 이것을 ‘테러’아닌 ‘심판’이라고 부르며 동참을 촉구했다. 된장녀들의 대표 사이트가 그 사이트다, 페미들이 우글우글하는 소굴이니 된장녀들에게 맛을 보여 줘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된장녀들을 심판하는 용감한 김항문님을 도와주자며 몇몇 회원들은 다시 여성 사이트에 난입해 김항문을 옹호하고, 항의하는 회원들을 비하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한다. 남성 전용 사이트에서는 작전회의가 계속되었다. 보다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테러가 필요하다는 의견부터 시작해서 김항문님 혼자 당하게 둘 수 없다, 여럿이 가서 밀어붙이자는 등 정의와 의리가 꽃피었다. 이 사건을 사이버 성폭력으로 인식한 여성 네티즌들은 고소를 준비한다. 사이버 성폭력 사상 최대 규모의 집단 고소였다. 하지만 김항문은 전혀 기죽지 않고 자신이 가입한 아이디로는 주민번호를 추적할 수 없는데다 자신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절대 잡히지 않는다며 글을 올린다. 그리고 3년 2개월 후, 김항문은 체포된다. 하지만 성폭력은 아니었다. 그에게 적용된 것은 그저 음란물 유포죄에 불과했다. 담당 수사관은 “성폭력특별법 14조 적용은 어렵다”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비슷한 경험에 의하면, 이것은 구체적으로 특정인에게 전송한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보인다. 현재의 사이버 성폭력 관련 법으로는 메일 등의 수단으로 직접 특정인에게 전송한 것이 아닐 경우 사이버 성폭력이 성립되지 않는다. 메일로 보냈을 경우 성폭력이지만 여럿이 보는 게시판에 올린 것은 성폭력이 아니다. 즉, 하필 그 시간에 컴퓨터는 왜 켜서 거기 접속해서 눈을 버렸냐, 클릭한 네 손모가지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그 항문 사진은 보지 못했지만 증오에 찬 김항문의 다른 글은 아직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아직도 수많은 김항문들이 있다. ‘보슬아치’ ‘김치녀’라며 그들은 한국 여성을 자기 엄마 외에는 다 미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옛날에 누가 ‘줄 듯 말 듯’ 약만 올리고 안 줬나, 하는 허탈한 상상까지 들 정도로 나는 그 증오를 이해하기 어렵다. 왜 그렇게도 우리를 미워합니까. 우리는 남자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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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나 역시 사이버 성폭력 사건 상담을 위해 경찰서를 방문한 일이 있다. 나는 얼굴도 모르지만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 학생이라 나를 본 적이 있다는 그는 내 앞에서는 웃었지만 자신의 집 저녁식탁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따뜻한 전구를 내 ‘버자이너’ 안에 끝까지 밀어 넣고 군홧발로 밟아 부수고 싶다고 자기 블로그에 적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성폭력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나에게 직접 전송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블로그에 게재한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합의해 달라며 보내 온 그의 이메일은 더욱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한 마디로 자신은 거친 언어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랩 스타 에미넴 같은 태도로 한 사회적 액션이었고 당신을 에미넴이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조롱하듯 표현했을 뿐이라는 거였다. 내가 웬 브리트니 스피어스? 내 ‘버자이너’에 따뜻한 알전구를 집어넣고 군홧발로 짓밟고 싶다는 잔혹한 표현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자기가 에미넴이라니. 물론 나는 답장하지 않았고, 합의하지 않았다. 그와 말조차 섞고 싶지 않았다. 경찰에서 그의 어머니가 내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 전화번호는 약간 대중에게 노출되어 있는 신분상 알아내기 꽤 쉬운 편이라 나는 그 전화가 걸려 올까봐 두려웠다. 나는 합의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만약 나에게 전화를 걸어올 경우 민사 소송까지 추가로 진행하겠다고 경찰에게 답했다. 그의 어머니는 메일을 보내 왔다. 아들의 끔찍한 표현에는 자신도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어머니로서 아들 앞길을 막을 수 없다는 거였다. 아니, 나는 막을 수 있는 한 막아야겠어. 민사까지는 차마 가지 않는 것, 그게 내 관대함의 한계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젊은 남자 앞길을 막았다는 비난을 아주 가까운 친구와 가족들에게도 숱하게 받았다. 아무도 내 ‘버자이너’의 두려움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는 것이다.

 

 ‘여성 혐오’의 기저에는 여성들이 굉장히 큰 특권을 누리며 남성들의 등을 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에로틱 자본을 누릴 수 있는 여성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그 시절도 화무십일홍으로 짧다. 당신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김치녀’들 중 어떤 여자들은 알전구를 ‘버자이너’에 넣어서 군홧발로 부수겠다는 글에 노출되고, 정도가 심할 경우 살인된 후 토막토막이 나고, 헤어지자고 했다가 최악이면 시멘트에 묻히는 신세가 된다. 미국에서도 살해당하는 여성의 경우 전, 혹은 현 파트너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에로틱 자본, 그러니까 ‘보슬아치’일 수 있는 여성이 사실 많지 않다는 걸 그들은 알까. 오빠 오빠 거리면서 복학생을 등쳐먹고 남자를 벗겨먹을 수 있는 그런 시절은 여성의 인생에서 지극히 짧을 뿐 아니라, 그 정도 매력 자본을 가진 여성도 드물건만 욕은 만만한 여자들이 먹는다. 여성 경찰서장이 나오고 여성 고위직이 나오고 여성 사시 합격률이 높아진들 아직, 여성들은 너무나 약하다. 에로틱 자본을 써먹을 수 있는 여성이 한 명 있을 때, ‘딸 같아서’ ‘여동생 같아서’ 성희롱 당하는 여성은 100명쯤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걸 말하지 못한다. 네가 받은 성적 모욕감을 증명하라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함부로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했다가는 걸레 취급은 기본에 심하면 야산에 시멘트로 공구리를 당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여성 혐오로 괴로워하는 여자들은 사실 완전 잘난 여자들 말고, 당신 주위의 지극히 평범한 그런 여자들이다. 예쁘지도 않고 가방끈도 짧고 돈도 없고 길거리에 발에 채이는 그런 여자들은 요즘 종종 여성혐오에 부딪힐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내가 뭘 잘못했나 먼저 생각하곤 한다. 농담 삼아 말하자면, 남자들은 ‘보슬아치’ 소리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에게 농락당하고는 우리 같이 별 거 아닌 여자들에게 화를 푸신다고 생각이 되어 억울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니까, 제발 당한 데 가서 푸세요. 혹시라도 시멘트로 절대 공구리는 치지 마시고요. 부디 부탁합니다. 우리 잘 좀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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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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