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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05. 화요일

아까이 소라

 

 




 


박근혜의 서유럽 순방 일정이 한창이다. 순방 직전 프랑스의 우파 종합일간지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로 한국의 모든 언론과 트위터가 들썩대고 있으며, 프랑스 방문 일정에 맞추어 교민들의 '댓통령 환영 기념 촛불집회'가 절찬리에 트윗 이곳 저곳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프랑스 방문 시 오를리 공항에서 있었던 열렬하고 격식 돋는 환영 행사가 없었단다. GH 파리 도착 사진을 보니 마치 야반도주라도 한 양 시커멓고 우중충하고 텅 비어 있다. 두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사진을 비교한 것을 보며 많은 트위터리안들은 이것이 '국격의 차이'라며, 국격을 떨어트린 박근혜를 씹는다.

 

GH 씹기? 좋다! 정치인과 오징어는 원래 씹는 게 맛이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우파 신문 <르 피가로>의 창간 정신도 "비판할 자유 없다면 아첨꾼의 찬사만이 남는다"일까. 그런데 무조건 씹는다는 게 비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판에는 합리적인 근거와 오랜 고뇌가 묻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라 비틀어진 오징어 다리마냥 씹어봐야 아구만 아플 뿐.

 

그래서 찾아보니, 이번 박근혜의 서유럽 순방 중 유일한 국빈 방문은 영국뿐이란다.

 

근데, 일반 사람들, 헷갈릴 만하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뭔가 명확하지가 않다. 정책방송(링크)에서는 "프랑스와 영국, 벨기에 등 EU 주요국들을 방문"한다며 '영국이 국빈방문 횟수를 매년 2차례로 엄격히 제한'하는데 박근혜를 국빈 초청했으니 이는 ‘한국에 대한 각별한 우호감’이라 설명하는 한편, 지난 10월 31일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링크)에서는 또 비교적 명확히 "프랑스 공식방문, 영국 국빈방문에 이어, 벨기에 및 유럽연합 EU를 차례로 방문"이라 밝힌다.

 

이러다 보니, 한국의 언론사에서마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듯 하다.

 

이 글을 작성하는 2013년 11월 4일로부터 일주일 전을 시작으로 하여 이번 박근혜 서유럽 순방에 대한 일간지 기사들을 검색해 봤다. 다음은 박근혜의 이번 프랑스 공식방문을 국빈방문으로 표시한 기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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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다..

 

조중동에서부터 경향까지 아주 다양한 신문들이 자랑스럽게 “프랑스를 국빈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라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물론 이번 프랑스 방문을 공식방문으로 표기한 기사가 훨씬 많다. 하지만 이쪽 기사를 저쪽에서 옮겨 쓰고 하며 베껴 쓰기 스킬이 난무하는 동안 공식방문은 국빈방문이 되었고, 기사니까 맞겠거니 하며 믿고 보는 대한민국 국민만 점점 바보 취급을 당하고 있다.


확실히 하자. 박근혜의 프랑스 방문, 국빈방문 아니다.


그럼 국빈방문과 공식방문의 차이는 무어냐? 본 필자, 이번 GH의 프랑스 방문 덕에 공부 엄청 한다. 팔자에도 없던 신문 번역에서 분석하며.. 하지만 우리, 알아야 할 것은 알고 가자. 수많은 정보의 홍수 사이에서 휩쓸려 다니지 말자.


일단 순방부터 시작해 보자. 순방(巡訪)은 한자어다. 순(巡)은 ‘돌다, 돌아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순찰’할 때 바로 그 순자다. 방(訪)은 뭐, ‘방문’할 때 그 방이지. 그러니까 ‘순방’이란 여러 장소를 차례로 돌아보는 것을 뜻한다. 이번 박근혜 서유럽 순방이란 서유럽의 여러 국가를 차례로 방문한다는 뜻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국가원수 및 고위급 인사의 방문과 영접에 따른 외빈영접의전의 경우, 방문목적에 따라 국빈방문, 공식방문, 실무방문, 비공식 또는 사적방문 등 4가지로 구분(링크)된단다. 그 중 최고는 국빈방문. 여기에서 국빈이란 말 그대로 ‘나라의 손님’이라는 뜻. 정부의 초청을 받아 공식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 중 최고 예우로 대할 귀빈이라는 것. 국빈에 대한 접대는 국비로 해결한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에 누군가 국빈방문한다면, 내 세금으로 잘 먹고 잘 자고 가겠거니... 하면 된다. 국빈방문 때는 초청국가의 원수가 직접 나가 영접하거나,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때는 최소한 부원수 정도 되는 사람이 행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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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의 김대중 전 대통령 프랑스 국빈방문

국빈방문에 맞게 당시 프랑스 대통령인 자크 시락과 프랑스 의장대의 환영을 받았다.

출처: e영상역사관 홈페이지(링크)

참조: <레제코> 2000년 3월 6일자 기사(링크)

 

그럼 공식방문은 무어냐? 공식방문이라고 방문국의 초청을 받지 않았는데 그냥 가는 건 아니다. 그건 손님의 도리가 아니다. 다만 국빈방문에 비해서 의전의 격식이 덜 하고, 방문국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다. 또한 초청국의 원수가 방문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 수반이 주된 역할을 담당한다는 면에서 다르다. 그러니까 이번 박근혜의 프랑스 방문에 의장대 행렬이 없었다고 너무 섭섭해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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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토요일,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는 박근혜

그렇다. 위의 사진과 심히 비교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국빈방문이 아닌 것을...

출처: 매일경제 2013년 11월 5일자 기사(링크)

 

실무방문은 공식방문보다도 격식을 덜 차리는 것으로 때로는 노타이 차림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2008년 4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미국방문이 바로 이 실무방문이었다. 그 때 언론에서는 이를 ‘공식실무방문’이라며 뭔가 있어 보이게 하려고 참 노력들 하더라만은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들 기억하지만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므로 나도 그냥 생략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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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겠다. 부시 만나서 운전도 하고.

출처: 코리아타임즈 2008년 4월 20일자 기사(링크)

 

비공식방문이야 뭐,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을 거고.

 

아 정말 힘들다. 여행하다 죽지 않는 돌고래에게 호출되어 번역하고, 기사 분석하고 이제 국가의전까지 공부한다. 이 글은 정말로 한국 언론들만 좀 명확하게 제시를 해 줬어도 이 황금 저녁 시간에 골방에 골골대며 머리카락 쥐어 뜯지 않아도 됐을 거 아닌가. 내가 탈모된다고 누구 하나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너무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속상하다.

 

여튼간에.

 

이번 박근혜 서유럽 순방 중 국빈방문은 영국 왕실 방문 뿐이다. 그런 줄 알아라.






아까이 소라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