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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05. 화요일

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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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바람 잘 날 없는 2013년이다.


2013년 11월 5일, 정부는 사상 초유의 특정 정당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한다. 요약하자면 작년 총선에서의 공천 과정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이른바 ‘통진당=종북정당'이라는 논란의 최종판이다. 예전 기사를 통해 주장한 바 있듯, 민주주의 사회에서 논란을 가중시키는 건 매우 간단한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간단하게 가중된 논란은, 참으로 복잡해진다. 그게 민주주의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다. 이슈를 던지는 쪽은 옛다하고 던지면 그만이고, 이슈를 받는 쪽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비교해봐야 하니까.


이번 건, 역시나 복잡하다. 이미 여론은 존나게 시끄럽다. 수많은 이해관계와 정치적 입장, 그리고 상황적 맥락이 얽혀있으니 복잡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 이럴 때는, 차근차근 분리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눈앞에 있는 된장찌개를 맛만 보고서 메주 쑤는 방식부터 찌개의 재료까지 판단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분명 그 찌개는 누군가 메주를 쒀서 된장을 담그고,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사용해서 조리했을 테니. 된장찌개 한 숟갈씩 먹고 니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기보다는, 주방장의 최근 식재료 구매 내역부터 까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정리를 좀 해 보자.



1. 정치전략적 상황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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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옳고 그름이나, 정치적 견해가 아닌, 순수하게 2013년에 존재하는 정치적 갈등 주체들의 입장만 놓고 판단해 보자. 현재 정부와 여당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궁지에 몰려있다. 지난 대선기간부터 댓글알바 및 국정원 댓글 개입에 대한 의혹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고, 최근 국정감사 과정에서 국정원 뿐만 아니라 국방부의 개입 까지도 밝혀진 바 있다. 굵직한 외신들은 이 내용을 보도하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내용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댓글 개입이라는 것에 대한 그들의 한결 같은 대응은 이거다. “종북좌파 세력이 정권에 다가가는 것을 막는 것이, 국정원과 국방부의 의무가 아니란 말이냐.”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이 말 자체에 대한 가치판단은 일단 제쳐 놓자. 저 대응 방식이, 그들이 꾸준히 여론을 상대하는 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는, 그 사실만 염두에 두자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들 입장에서 가장 안전한 돌파구는 “야당에는 분명 종북좌파가 있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는 상황이다. 현재로써 야권의 중심세력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라고 볼 수 있겠다. 즉, 문재인과 이정희, 그러니까 지난 대선에서 대선후보 토론회에 박근혜 당시 후보와 함께 출연하여 토론했던 그 2명에 대한 여론이 ‘종북'으로 못박히는 순간, 정부와 여당은 국정원/국방부 개입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것이 NLL 논란과 통진당 종북 논란의 핵심이다. 문재인과 이정희가 지니는 그 상징성을 부러뜨리려는 전략.


그리고 아주 노골적이게도, 11월 5일 같은 날 문재인 의원의 검찰 소환과 통진당 해산 청구가 나란히 언론의 화두가 된다.


하물며 초등학생 반장선거를 해도, 정치에는 우연이 없다. 만에 하나 진짜 우연이라 해도 언론에 보도되고 세간의 화제가 된 상황이라면, 그건 우연이 아니다. 특히나 검찰이 소환했으니 출두를 하는 게 당연한데, 출두를 하겠다고 말한 문재인을 톱 기사화 하는 상황과, 그냥 청구를 하면 되지 법무장관이 기자회견을 하는 상황은, 우연일 가능성이 0%다. 그러므로, 통진당 해산청구는, 정치적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자 그렇다면 말이다.


이게 정치적 전략이니까, 통진당은 해산되면 안 되는 건가? 아니면 나랏님이 그러라고 하시니까 해산되어야 되는 걸까?


둘 다 아니다. 정치적 전략이라는 사실은, 그냥 정치적 전략이라는 사실일 뿐이다.



2. 통진당, 정말 체제전복세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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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 자체가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전략이라는 사실은 일단 차치하고, 사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통합진보당' 그 자체'만' 한번 생각해 보자. 일단 우리는, 통합진보당원 개개인의 머리속에 들어갈 수 없는 일이고, 그들이 과거 대학생이던 시절에 주체사상 서적을 읽어봤다고 해서 지금까지 주사파일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는 없으므로, 밝혀진 사실만 보는 게 좋겠다.


지난 9월 이석기 의원을 구속 기소되게 만든, RO 회동에서의 녹취록은, 분명 그들이 ‘유사시 대한민국 국군에 대항하려는 의도'를 보인 바 있다. 여기서 BB탄 총이 갖는 위험성이나 인터넷으로 검색한 폭탄 제조 언급이 농담이냐 진담이냐라는 부수적인 문제는 제쳐 놓자. 전쟁발발시 본인들의 안전이 대한민국 국군에 의해 위협당할 가능성이 발생할 경우, 대한민국 국군에게 대항할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를 집단적으로 수행한 경우, 이를 어떻게 봐야 할지, 이 문제가 핵심이다.

 

이들이, 전쟁이 발발하면 자신들의 안전이, 자국군으로부터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전쟁이 발발하면 대한민국 국군에 소속된다는 점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전쟁 발발시, 마포구 어딘가에 배치되어있을 내가 길거리에서 이석기를 만났을 때, 이석기가 나를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나의 예상이, 왜곡된 언론보도를 통한 오해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RO 회동에 대한 법적 심판 및 치밀한 사실관계의 입증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석기를 전쟁 발발시 잠재적 위협요소로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이 문제는 의구심을 갖고는 있되, 결론을 내기에는 아직 이른, 그런 상황이다.


하지만 반대로 또한 확실한 건, 통합진보당은 RO 회동 사태에 대해 전면부인한 바 없다. (혹시 있으면 알려달라. 내가 찾기엔 없다.) 그들의 공식적 대응은, ‘역사적 사례를 비추어 판단할 때, 유사시 제도권으로부터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는 수준이다. 그러므로, 나와 같이 전쟁 발발시 군으로 편입될 사람 입장에서는 의구심 자체를 내려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판단 과정에서, 지금까지 통합진보당이 이뤄온 민주주의 수호나 사회봉사,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안 처리, 노동자의 권리 수호 등의 업적은, 냉정하게 제쳐 둘 필요가 있다. 지금의 포커스는, 통합진보당이 진짜로 위험한 사상이나 사고를, 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공유하고 행위에 옮길 집단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거니까. 내 목숨을 위협한다면, 그게 천사든 예수든 부처든, 개기는 것이 맞다.

 

다시 정리하면, RO 회동 사태로 밝혀진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면, 의심은 품되 판단은 유보해야 할 단계라는 결론을 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에 고려해봐야 할 것은, 실제로 통합진보당의 공식적 당령이나 당규가,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가 하는 점이다.



3. 통진당은,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위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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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디벼보려면 헌법 전문가 몇명 데리고 통진당의 당령, 당규 및 활동 내역을 면밀히 조사해야겠지만, 그건 어차피 헌법재판소가 할 일이니까 괜히 힘 빼지 말고 딴지스럽게 접근해 보자.

 

일단 11월 5일 기자회견에서의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2012년 5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청원이 접수된 이후 통합진보당의 강령 및 그 활동을 심층 분석해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통합진보당은 강령 등 그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고, RO(혁명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돼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배하므로 헌법에 따라 국무회의에 상정하여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청구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기자회견 내용에 따르면, 통진당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했단다. 그리고 RO 회동의 발언도 ‘북한의'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단다. 이는 대충 2가지로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는데, 첫째로, 통진당이 정말로 ‘북한'의 사회주의와 혁명전략을 따랐을 수도 있겠고, 둘째로, 기자회견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정치적 목적으로 ‘북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점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이론에 따를 경우, 북한 체제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봉건제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사회주의라 불리는 체제의 특성과 조건에, 북한의 현실체제가 적용되는 지점은 거의 없다. 북한은, 이론적으로 봉건제를 유지하면서, 정부 부처 및 정부 활동의 명칭에 사회주의적 용어를 사용하면서, 정치적으로 공산권에 친화적인 행보를 보여왔을 뿐이다. 또한 북한이라는 세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구소련군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혁명'이라는 단어도 사용할 수 없다.


이로써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번 기자회견은 이론적인 차원에서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북한은 사회주의도 아니고 혁명을 한 적도 없으니까. 즉, 이 기자회견 내용은, 그냥 ‘검토해봤는데 통진당 맘에 안들어' 말고는 아무 의미도 없다. 법 이론적으로나 사회학 이론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다.


암튼, 기자회견은 저렇게 했더라도 뭔가 근거라는 게 있을 거고, 그걸 바탕으로 헌법재판소는 나름대로 판단을 할 거다. 이 과정 자체에는 우리가 개입할 껀덕지가 없다.


하지만, 개입은 못하더라도, 나름대로 판단은 해볼 수 있다.



4. 사상의 자유,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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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예를 들어, 인육을 먹어야만 한다는 교리를 지닌 종교가 있다고 치자. 이 종교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할까? 만약 보장해선 안된다면, 인육을 먹긴 하되 자기 살만 먹어야 한다는 종교가 있다고 치면, 이 종교는 남에게 피해를 안 주니까 보장해도 되나?


이 문제는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간단하다. 내가, 내 살을 먹는 건 자유다. 그리고 합의 하에 쌍방이 서로 허벅지살 툭 잘라서 먹는다면, 그것도 자유다. 하지만 그 종교의 교주가 교인들의 살을 맘대로 잘라서 먹으면 그건 범죄다. 이렇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이 구분점은, ‘구조화된 권력'이나 ‘강제'가 존재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즉, 내가 인육을 먹어야만 하는 교리를 믿는 것은 자유지만, 그 믿음을 행위로써 구현할 때 그 사회의 법 체계를 위반하면 불법인 것이고, 위반하지 않으면 법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통진당에 대한 이슈가 제기되는건, 그들이 ‘정당'이라는 권력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정당에 속해있는 한 어떤 형태로든 합의된 결과를 당원들에게 따르길 요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권력을 이용한 강제라던가, 조직구조를 통한 당령 전파 등의 행위는 분명 ‘행위'에 해당한다. 통진당의 사상, 그 자체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위협이 되는 사상을 구조적인 행위를 통해 실제로 위협을 강화하는지 아닌지가 핵심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고, 만약 국민의 절대다수가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더라도 자신들의 안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결정하면 된다. 헌법은, 누가 그냥 뚝 떨어트려서 우리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신의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정한 거니까. 그러니까, 국민들의 절대다수가 사상의 자유를 조건부로 제한할 수 있다고 요구한다면, 그 요구는 받아들여질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조또 병신 같은 법이 얼마나 많은가. 그건, 대다수의 국민이 동의했거나, 혹은 외면한 결과 아니겠나.

 

자 그렇다면, 이제 결정하자.

 

남의 인육을 먹으려 하는 자들을 벌하는 건 법적인 차원의 문제지만, 그래야 한다는 믿음을 갖는 건, 사상의 자유다. 그가 그 믿음을 행위로 옮기려 하지 않는 이상, 그마저도 보장해 주는 것이 사상의 자유다.

 

만일, 안전이 더 중요하다면, 그것도 자유다. 그러므로 안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으면, 아주 위험한 사상은 제한할 수 있다. 단, 만약 그러하다면 이것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절대다수가, 나의 ‘하나도 안 위험한' 사상을 위험하다고 간주하고 이를 제한하려 한다면, 나도 제한당해야 한다는 것.



여러분의 결론은 어떠신가. 모든 것은 자유고, 단, 결정은 쪽수로 이뤄진다.


그게 민주주의다.

 


 

 

춘심애비

트위터 : @miiruu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