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전에 일했던 카페 선배와 커피 한 잔을 했다. 10년 가까이 되는 경력의 베테랑. 촌구석 동네지만 제법 얼굴이 알려져, 단골들도 꽤 있는, 능력 있는 바리스타다. 지난달, 사정으로 몇 년간 일했던 카페를 퇴사하고 재취업을 준비 중이던 그녀가 말했다.
"...일할 자리가 없어"
"그럴 리가 있나. 누나 짬밥이 몇 년인데"
"아니, 그게 아니고. 다 나이제한이 걸려있어. 이력서조차 낼 수가 없어."
뜻밖이었다.
전에도 간간히 먹고 살 궁리를 도모하는 토의, 실상은 푸념에 가까운 대화가 이어지긴 했지만, 아뿔싸였다. 매니저급의 직원을 구하는데 30살, 31살의 나이제한을 두고 있다는 얘기는 좀 놀라웠다. 아르바이트를 채용하는 데 있어 20대 초중반을 선호하는 풍토는 늘 있었지만, 30대 초반의 훌륭한 바리스타인 그녀에게 이런 일이 닥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또래들 사이에서 취직 근황을 묻는 건 금기에 가까울 정도로 직업 갖기가 어렵다는 건 알지만, 여전히 '연령제한'에 대한 얘기가 쉬이 믿어지질 않았다. 직접 구직 사이트를 뒤져보기로 했다.
검색을 좀 해 본 결과, 매니저나 정직원을 구하는 공고들에 대체로 연령 제한이 있었다. 제한 연령은 평균적으로 33세~35세였고, 아주 가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의 주부 사원을 모집하는 공고도 있었다. 심지어 경력직 직원을 채용한다면서 20대 중반으로 나이를 제한해 놓은 공고도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공고도 있었지만, 커피 업계의 분위기상 실제로는 한 살이라도 어린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래서 삼촌은 내게 "나이가 깡패다."라고 하신 걸까.
카페의 위치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번화가나 카페촌같이 구인 구직이 쉬운 동네, 그리고 대형 브랜드 카페들은 나이제한 연령이 상대적으로 낮았고, 지방이나 개인 카페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한 점포는 사람 구하기가 힘들었던지 이전 공고에 걸어뒀던 연령 제한을 최근 공고엔 없애기도 했다. 과연 현실에서 연령 제한은 어느 저도로 존재할까.
"매니저 구할 때, 연령 제한이 있는 게 사실이야?"
현직으로 근무하는 사람, 퇴직한 사람, 점장 경력이 있는 사람, 내친김에 창업까지 했던 사람. 커피 업계에서는 나름 다양한 이력을 가진 지인들의 대답을 종합하면, 전혀 없다고 할 수가 없다. 공고에 쓰지 않지만, 기왕이면 어린 사람을 뽑는 식으로 연령 제한은 분명 어느 정도 있었다. 점주 출신의 지인에게서 이유도 들을 수 있었다.
"사람 관리하는 거, 피곤하잖아. 매니저같이 중요한 인력이 계속 교체되면... 그러니 되도록 오래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30대 초중반 여성들은 결혼이 걸려있으니까 아무래도 좀 꺼리게 되지."
결혼, 그렇다. 출산이나 육아 휴직 따위의 개념은 지구 내핵에 근접할 정도로 먼 커피 업계의 상황을 고려하면, 결혼은 곧 퇴사다. 본사의 정규직이라면 다르겠지만.
"인건비 문제도 있어. 5년 이상 경력을 가진 30대 구직자면 희망연봉이 있을 텐데, 너도 알다시피 고급 카페가 아니고서야, 커피 만드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잖아? 석 달이면 웬만큼 하는데. 그래서 경력이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사람들을 선호하는데 그 연령대가 대개 20대 중 후반이지."
커피 업계에서 월급 200이 넘어가면 상당히 많이 받는 급여다. 경력이 없는 직원들은 최저임금이나 최저임금보다 약간 더 많은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최소한으로 두고 직원들로만 점포를 꾸리는 경우도 있다.
여성의 결혼문제, 그리고 인건비 문제. 이것이 20대를 커피 업계에서 종사한 여성들의 재취업과 이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인 것 같았다. 한국노동연구소에서 펴낸 <서비스 소업종의 저임금과 근로조건 조사와 분석>이란 보고서에는, 커피 업계 종사자들이 느끼는 고용 불안에 대한 이야기들이 잘 나와 있다.
“저임금 그게 제일 문제인 거 같아요. (중략) 연봉 천오백 정도… 저축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하루살이처럼. 저축해봤자 50만 원도 못해요. 월세를 살면 40~50 나가니까. 세금을 너무 많이 떼어가요.”
지금은 아무래도 경력이 있으니까 경력을 쳐줘서 1,800만 원 정도 받습니다…. 사실 하고 싶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지금 나이(28세)도 있고 해야 하니까. 무조건 관둘 수 없는 거죠. 여기서 관두면 또 저를 받아줄 수 있는 곳이 없으니까요.”
28세인데 관두면 더 받아줄 곳이 없다는 말에서, 커피 업계 종사자들의 현실이 그대로 느껴진다. 빠르면 20대 초반, 일반적으로는 20대 중반에 직영점이든 가맹점이든 직원으로 입사해, 1500~1800의 연봉을 받으며 20대 후반까지 근무한 후, 20대 후반부터는 이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소폭의 연봉 상승만을 기대하며 근무해야 한다.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개다. 일찌감치 관두고 새로운 일을 찾거나, 아니면 창업하기. 일찍이 한 사장님은 내게 말했다. "꼬우면 니가 사장해!" 맞다. 꼬우면, 사장하는 게 답이다.
그렇지만, 1500~1800의 연봉을 받으며 10년을 일한다고 해서 창업이 쉬운 일일까. 실제로 많은 20대 후반~30대 중반의 여성들이 개인 카페를 차리곤 하지만, 폐업률이 상당한 것도 사실이다. 커피 시장이 포화라는 얘기를 들은 지가 벌써 몇 년인데, 창업이 가지는 리스크가 너무 높다. 점주였던 지인의 경우, 그간 모은 돈을 다 쏟아붓고, 부모님의 도움을 얻고도 대출을 받아 간신히 카페를 차렸다. 그 카페, 3년 못 넘기고 접었다.
이 업계를 떠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저임금을 타개하는 방법이 창업이라면, 결혼을 통해 경력이 단절되어버리는 여성 노동자를 위해 여성가족부와 업체들이 내놓은 대안도 있다. '리턴맘 제도'다.
스타벅스 코리아
지난 3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고용창출 우수기업 대통령 표창 수여식에 김정미 스타벅스 김포이마트점 부점장이 시간선택제 워킹맘 대표로 초청받았다. 스타벅스는 올해까지 4년 연속으로 고용창출 우수기업 표창을 수상했다.
김 부점장은 2000년 11월 스타벅스에 바리스타로 입사해 점장까지 지냈다. 그러다 2007년 10월 육아를 위해 퇴사했다. 6년 만인 2013년 10월에 리턴맘 1기 바리스타로 복귀하고 부점장으로 근무한 지 30개월이 지났다.
시사저널 <링크>
내가 근무했던 곳에도 아기 엄마가 있었다. 서른 살이었던 그분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 놓고 4시간, 길면 6시간 정도를 근무하는 파트타이머였다. '리턴맘 바리스타'의 경우 상여금 등의 혜택이 있지만, 내가 일했던 가맹점에서는 일반 아르바이트와 같은 대우로 채용을 한 것이어서, 결국 낮은 임금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
그분의 사례에 비하면, '리턴맘 바리스타'는 사정이 좀 나아 보인다. 현실은 어떨까?
스타벅스 코리아
5일 커피전문점 리턴맘 제도 이행실태를 파악한 결과, 스타벅스와 엔젤리너스, 탐앤탐스 등 대부분의 대기업 계열 커피전문점들이 자체적으로 리턴맘 채용정책을 마련했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략)
그러나 대기업 계열 커피전문점에서 리턴맘 제도를 통해 채용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인턴직원·파트타임제 등 일반직원들에 비해 인건비가 높다는 이유로 실제 채용 사례는 전무한 상태다. 대부분 가맹점 업주들은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파트타임 직원을 고용하거나 직접 카운터를 보는 등 리턴맘들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리턴맘들의 커피전문점 구직 시도는 계속되고 있지만, 헛물만 켤 뿐이다.
충청투데이 <링크>
아래의 기사가 현실에 좀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보다 인건비가 높은 '리턴맘 바리스타'를 가맹점주들이 굳이 채용하는 것은, 내가 겪었던 업계의 상식으로는 아주 희귀한 경우다. 인맥이나,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면 또 모를까. 대부분의 워킹맘은 이른바 '주부 사원'처럼, 다른 아르바이트와 같은 처우로 하루 4시간 정도의 시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렇게 한 달을 꼬박 나가봐야, '기저귓값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다.
경력이 없는 워킹맘이라면 당연한 처우겠지만, 많은 사람이 퇴사 전 점장이나 부점장 정도를 지낸, 숙련된 근로자다. 결혼과 출산, 육아의 과정이 없었다면, 혹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 보장된 상태로 근속연수를 채울 수 있었다면, 받는 연봉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결혼한다고 해서 꼭 출산한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회 분위기가 변했는데도 꿈쩍않는 업계의 고용 형태는, 결혼이나 출산 만큼이나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떠나거나, '커피 만들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창업하는' 괴랄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무리 '저임금 서비스직'이라고 표현되는, '하찮은' 일자리일지라도 30대 중반이 일 할 수 있는 마지막 연령대라니. 20대를 바치며 일해온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겠나.
한국일보 <링크>
결과적으로 출산 = 퇴직의 고리를 풀어야 한다. 결혼해도 고용에 아무 문제가 없는 환경이 선행되어야만, 업계의 연령제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서비스직 전체에 대한 전반적이고 대대적인 구조 개혁이 있지 않은 이상, 특정한 법이나 제도로 밀어붙인다고 개선 될 리가 없다. 대선후보들이 공약으로 말하는,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겠다는 얘기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비단 여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다만 여성 종사자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여성을 예로 든 것이다.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자 했지만, 지인들의 사례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통계를 구하기 위해 통계청에 문의해 보았지만, 커피 업계 종사자들의 연령이나 임금에 대한 기본적인 통계가 없거나 거의 쓸모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는 것이, 커피 업계, 나아가 서비스 업계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것이 아닐까.
빵꾼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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