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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선의'가 화제다. 뭐 아무개의 무슨 정책도 선의로 시작했을 것이라는 안희정의 말 한 마디가 불러온 폭풍이다. 그런데 바람은 센데 방향이 없고 기세는 맹렬한데 내용이 없다. 좀 짚어 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박정희가 집권 욕심만으로 사람 잡는 살인마의 사악함으로 유신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가난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는 굳었고 민족 중흥에 대한 욕망은 컸다. 문제는 그 선의를 가장 사악하고 불법적이며 야만적인 독재로 풀어냈다는 사실일 게다.


적어도 독일 탄광에 가서 새까만 광부들과 함께 애국가 부르던 박정희의 눈물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단지 동백림 사건 같은 국제 망신을 벌이면서까지 지키고자 한 것이 민주주의 아닌 자신의 권력이었을 뿐이고, 그 권력을 지키는 게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라고 야무지게 착각했을 뿐이다. 


상대방의 '선의'를 인정하는 것은 대화의 출발이다. 동시에 효율적인 공격을 위한 점프대다. 네 뜻은 이것이었지? 이해하겠다고 해 주면 상대방의 귀가 열리고 커버링이 틈을 보이게 된다. 그 후에 네 선의가 법을 어떻게 어기고 민주주의를 이렇게 짓밟았다고 적시해 주어야 울림이 있고 파괴력이 크지 않겠는가.


상대방을 나쁜 놈 극악한 놈으로 모는 것이야 무엇이 어려우리오. 괴벨스가 그랬나.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를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괴벨스의 발톱의 때만도 못한 처지이지만 누구를 때려죽일 놈, 처단해야 할 놈, 청산 대상으로 몰아붙이며 이 연사 가냘픈 두 주먹 쥐고 외애애칩니다 포스팅 백 개도할 수 있고 '좋아요' 1천 개쯤은 달성할 자신이 있다. 그런데 그러면 뭐가 달라지는가?





나는 이 동영상을 보고 안 지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박근혜도 이명박도 선의였을 수 있다고 말할 때 사람들 다 웃지 않는가. 현장에서 안희정 지사의 말이 무슨 뉘앙스로 쓰이고 있고 문제의 단어 '선의'가 어떻게 배치되고 있는지 그 킬킬거림으로 능히 접수되지 않는가? 그래도 '선의'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인가? 그 단어는 저 악마 MB와 빠가 박그네에게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인가?


안희정의 말의 핵심은 '선의라 하더라도' 법과 원칙을 어긴다면 말짱 황이라는 얘기다. 그래도 '선의'라는 말을 하는 자체가 불경이요, 모독이요, 적에게 투항하는 것이요, 극악한 배신이라 우긴다면, 미안하지만 그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장담하는 바이지만 박근혜는 애국심에 불타는 사람이다. 애국자다. 태극기만 봐도 가슴이 뭉클거리고 영화 <국제시장>에서 남들이 다 웃는 태극기 하기식 장면에서 감동을 받을 만큼, 기묘하게 투철한 애국심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 애국심을 사악할 만큼의 무능함으로 발휘했을 뿐이다. 불법적으로, 몰상식하게. 그래도 그녀는 나름대로는 애국자다. 자. 이제 내가 돌 맞을 차례인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우스 시저>에서 안토니우스는 말끝마다 이렇게 토를 단다, " 브루투스는 존경할만한 사람입니다." (Brutus is an honourable man.) 안토니우스가 어떤 의미로 그 말을 썼는지 로마 시민들은 다 알아먹는다. 그런데 저 로마 성문 밖 시저의 부하 장수 몇 명이 칼을 들고 이렇게 아우성을 친다면 도대체 어떻게 보이겠는가.



"안토니우스 저 개쉐이. 시저를 죽인 놈더러 존경할만한 위인이라니...... 저놈 배신자야. 아우 저놈을 어떻게 죽이지? 와아 시저여 저놈을 맹세코 내가 죽이겠나이다..... 안토니우스 이놈....... 니놈이 시저의 은혜를 그렇게 입고 !!!!!"


같은 안씨 집안이라고 안토니우스가 안희정에게 이럴지도 모르겠다. "어이 희정, 그래도 나한테는 저런 친구들은 없었는데 말이야...... 고생이 많어."


좀 당황스럽다. '혁명' 한 단어, '연방제' 한마디에 흥분하던 왕년의 공안당국도 아니고...... 이런 걸로 그렇게 독한 말들이 난무하는가. 이 글을 보고 '선의'란 단어를 절대로 쓰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오셔서 이유를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다. 경청, 봉청하겠다. 


안희정이 잘못하면 혼나야 하고, 영 아니다 싶으면 끊어 버리는 건 자유다. 나도 그럴 거지만. 그런데 정말 이렇게 공격을 해야 하는 일인가. 아 물론 그쪽의 '선의'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선의에 상식이 곁들여지지 않으면 그 선의도 망가진다.




산하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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