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산하 추천11 비추천0

2013. 11. 11. 월요일

산하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평소 백성들 쥐어짜기로는 세계적으로 유능했고 위엄을 세우는 일로는 우주적으로 손꼽았을 조선의 문관과 무관들은 그야말로 도망치는 데에는 귀신들이었다. 경상좌도를 책임진 병사와 수사가 모두 줄행랑쳤고 각처의 수령방백들도 삼십육계를 이행했다. 일본군은 그야말로 콧노래를 부르며 소풍 오듯 한양 길을 재촉했고 20일만에 소서행장은 동대문으로 가등청정은 남대문으로 한양성에 입성하게 된다.

 

한강을 방어선 삼아 포진한 조선군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일본군이 모습을 드러내자 도원수 김명원은 무기를 다 강물에 밀어 넣고는 평복 차림을 하고 도망친다. 이때 김명원은 부원수 신각에게 자신과 함께 가자고 했지만 신각은 고개를 젓고 양주로 향한다. 여기서 신각은 유도대장, 즉 수도방위사령관을 맡고 있던 이양원과 함께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한다. 여기에 함경도 남병사 이혼의 병력까지 가세하여 오늘날의 해유령에서 일본군 소부대를 전멸시키고 평양에 있던 임금에게 그 머리를 베어 보냈다. 그런데 선조와 신하들은 대경실색을 한다. “이게 무슨 일이냐.”


문제는 김명원이었다. 평복 입고 도망친 주제에 결기는 살아서 자신을 뒤따르지 않은 부원수 신각이 자신의 명령을 거역하고 도망치는 바람에 한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식으로 죄를 뒤집어씌웠고 이에 분기충천한 임금이 피난지에서 선전관을 보내 신각의 목을 치도록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당장 다른 선전관을 보내라! 앞선 선전관을 따라잡도록!” 명을 받은 선전관은 말 엉덩이가 찢어져라 채찍을 때리며 양주로 향했다.


그러나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가 닿은 조선군 진영 앞에서 선전관은 아연실색을 하고 만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 하나가 매달려 있었고 앞서 출발한 선전관은 다시 평양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명이오! 죽이지 말라는 어명이오!” 안타깝게 외쳤지만 떨어진 목이 다시 붙을 수는 없었다. 먼저 온 선전관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호소하던 유도대장 이양원 이하 장수들도 넋을 잃고 있었다. 함경도 남병사 이혼은 분통을 터뜨리며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북으로 가 버렸다.


실록에 기록된 바 ‘나라에 몸 바쳐 일을 처리하면서 청렴하고 부지런하였던’ 신각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되레 그 임무를 최대한 포기한 소인배 상사와 그 동류들에 의해 목이 떨어져 죽는다. 소규모이긴 했으나 전쟁 발생 후 최초의 승전을 기록한 용장의 죽음이었다. 칼날이 목에 떨어지던 순간, 신각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 목이 떨어져나가던 순간 늘어서 있던 병사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모르긴 해도 아마 이런 탄식이었을 것이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1.jpg


머피의 법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는 것이라던가. 역사에서 머피의 법칙은 나쁜 일은 꼭 되풀이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를 지키던 충청 수사 강진흔 같은 사람이다. (역사 평설 병자호란 - 푸른역사에 자세히 나온다.) 북방 민족은 ‘수전에 약하다’는 상식을 믿고 세자빈과 대군들을 강화도에 피난시켰지만 청나라는 이미 항복한 명나라 장수들을 부리며 배들을 준비하고 있었고 마침내 ‘강화 상륙 작전’을 전개한다. 이때 청나라 함대가 몰려나온 것이 갑곶이었고 여기를 맡은 것이 충청 수사 강진흔이었다. 강진흔은 목이 터져라 독전하며 맞싸워 청나라 배 3척을 침몰시키며 분전했다. 이때 주사대장, 즉 강화지역 해군 사령관 장신의 함대가 도착했는데 청나라 함대가 장신의 함대에 달려들자 장신은 뱃머리를 돌려 도망치고 만다.


이때 강진흔의 외침은 통렬하게 절박하고 미치도록 슬프다. “장신! 네가 나라의 은혜를 두터이 입고서도 어찌 차마 이럴 수가 있느냐. 내 너를 베어 죽이겠다.” 이 외침을 들은 다른 장수들이 구원하러 달려가는 것도 장신은 막았다. 이 장신의 행동을 보다 못한 군관 하나는 피를 토하듯 장신을 꾸짖으면서 바다에 몸을 던졌다. 전쟁이 끝난 뒤 인조 임금은 그렇게 비겁했던 주사대장 장신과 그보다 더 무책임했던 강화도 방어 책임자 김경징에게는 “병력이 없고 배도 부족했다.”며 감싸다가 거센 비난에 직면해서 마지못해 사형을 내린다. 그런데 그때 볼 것도 없이 목을 쳐 버리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 피눈물 흘리며 싸웠던 충청 수사 강진흔이었다.


충청 수영의 병사들과 군관들이 대궐 앞에 가서 엎드려 울부짖었다. “우리 장군은 죄가 없습니다.” “왜 자기 할 일을 한 장수를 죽이려 하십니까.” “그때 강화 앞바다에서 싸운 사람은 우리 장군 밖에 없습니다.” 눈 앞에서 도망간 사령관도 겨우 사약을 받는데 목숨 걸고 싸운 충청 수사는 망나니의 칼에 목숨을 잃게 되다니. 아무리 공자도 맹자도 모르고 논어와 중용 따위 읽지 않았다 하지만 도무지 눈을 까뒤집고 허파를 뒤집어도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의연했다고 기록에 남은 충청 수사 강진흔은 그 목이 잘렸다. 그 목을 친 망나니도 이렇게 부르짖었을 것이다. “이런 개망나니같은 짓이 있는가.” 참수형 집행 소식을 들은 충청 수영 병사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이런 망할 놈의 나라 콱 망해 버려라.”가 아니었을까.


“나는 개인에 충성하지 않는다.”며 사상 초유의 정보 기관의 선거 개입 범죄에 대항해 싸운 윤석렬 지청장에 대해 중징계가 내려지고 “야당 도울 일 있느냐”면서 그 수사를 방해하던 상관에게는 면책이 내려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또 한 번 심술궂은 역사가 들이미는 머피의 법칙을 절감한다. 나쁜 일은 왜 이렇게 똑같이 재연되는가.


3.jpg


2.JPG


자신의 책임을 다하여 할 일을 한 것이 범죄가 되고 그 임무를 방기하고 도망가거나 심지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사실을 왜곡한 이들이 높은 마루에 앉아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고 일갈하는 이 기막힌 상황을 어떻게 이렇게 거짓말처럼 바라봐야 한다는 말인가. 이래놓고 우리 아이들에게 ‘정의는 이긴다거나 불의한 사람이 되지 마라거나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라고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그 귀엽다는 박 씨 집안 장조카에게 그렇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이렇게 해 놓고도 손자에게 정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더 이상 말하기도 싫은 차에 하나 떠오르는 것은 그때 신각과 강진흔 주위에서 울던 부하들이다. 왜 그 중의 하나라도 칼을 들고 신각을 죽이려는 선전관에게 대들거나 대궐 앞에서 통곡할 용기로 의금부 담장을 때려부수고 강진흔을 구해 내려는 시도를 못했을까. 사정은 할지언정 반항은 하지 못했던 그들은 신각과 강진흔의 처형 뒤 무엇을 했을까. 오늘을 통해 유추해 보면 그 답이 상상이 된다. 아마도 그들은 몰려나와 막걸리 추렴을 하며 어떤 이는 울먹였을 것이고 분통을 토하기도 하다가 결국은 이렇게 수렴됐을 것이다, “에이 더러운 놈의 세상. 별 수 있나? 돌아간 분은 돌아간 분이고 열통 터뜨린다고 세상이 바뀌나. 우리 앞가림이나 하세. 당장 이번에 군포 빈 건 어떻게 메우지?” 그들도 우리처럼.






산하

트위터 : @sanha88


편집 : 보리삼촌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