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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에 가본 적이 있는가? 그곳에 가면 사적 제 16호의 옛 신라의 궁궐터가 있다. 말 그대로 터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복원 정비 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자 우리는 곧 멋지고 웅장한 신라시대의 왕궁을 만날 수 있을 듯 하다. 2025년까지 대략 황룡사, 동궁, 월정교 등을 건축 한다고 발표했다. 막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하지 않은가?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곧 경복궁이 그 자리를 경주에 내어줄 지도 모르겠다. 새마을 운동도 다시 시작할 것 같은 마당에 좋은 일만 가득한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문화재 복원에 대해서 썰을 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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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타워~


자 일단 경주 월성에 신라시대의 건축물을 복원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고 하니 축하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짓는지 한 번 보도록 하자.


황룡사는 워낙 유명한 그 황룡사 9층 목탑이 있는 절이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목탑의 외형을 현대식 건축물 안에 구겨넣은 모양을 한, 엄청 높은 건축물이 이미 경주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무려 경주 타워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저 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시대 건축 기술의 높은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명실공히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이고, 높이는 무려 80미터에 달한다. 신라 선덕여왕 시절, 주변 9개국이 신라를 중심으로 통일될 것을 염원하며 지은 것이고 서기 645년에 완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황룡사 9층 목탑은 1238년 몽고에 의해 불타버리고 만다. 그 이후로 터만 남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지내온 시간이 거의 천 년에 육박한다.


이제 그 복원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전문가들이 황룡사 9층 목탑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관건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지금까지 알려진 자료들을 한 번 찾아보자.


일단 실제로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황룡사 9층 목탑은 현재 심초석과 주춧돌만이 남아있다. 저것으로 대략적인 탑의 넓이를 추측할 수 있다. 그 후 각종 문헌들에 나오는 황룡사 관련 자료가 있다. 이를 통해 어느 정도의 구조와 형태를 '짐작' 할 수 있다. 글을 통해 내려오는 것이니 만큼 아무리 연구에 연구를 더해도 정확한 모형을 알 길은 아직까지 없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경주 남산 부처바위에 새겨진, 9층 목탑으로 추정되는 탑 그림이 있다. 이를 통해 보다 더 자세한 탑의 모형을 추측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건물 하나를 복원한다는 것은 아직 자료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그러던 중 전문가들이 주목한 자료가 고려 때 절터인 불일사(북한 개성 소재) 5층 석탑 안에서 발견된 금동 9층 탑이다. 


대략 37cm 높이의 9층 탑 모형은 당시의 목조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나름 섬세한 디테일까지 잘 살아있어 그 시대 9층 목탑의 모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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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9층 목탑 예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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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바위의 황룡사 9층 석탑 추정본 과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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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 9층 탑


이쯤 되면 자료 빵빵한데 만들어 봐도 되지 않을까? 필자는 감히 당당하게 외칠 수 있다. 안돼! 안돼!~~ naver!


자, 일단 심초석과 주춧돌 만으로는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뿐 탑의 모양을 알 수는 없다. 거기에 글로 아무리 설명되어 있는 자료가 있다고 해도 그 모양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거기에 더해서 탑 그림과 북한에서 발견된 금동 9층 탑은 황룡사 9층 목탑과의 정확한 연관성이 규명되지 않았으며 잘 살펴보면 2개의 모양이 다르므로 무엇이 더 정확한 사료인지 알 수 없다.


즉 아직까지 추정만 할 뿐 9층 목탑의 외형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인류가 언젠가 타임머신을 발명한다면 그때나 가능할까, 이미 소실되어 버린지 1000년 가까이 지난 문화재의 정확한 모형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충분히 있을 것 같은 노파심에 친절히 예를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하겠다.


70년대에 진행된 발굴 조사에서 탑 유적지 주변에서 연꽃 모양이 새겨진 기와 조각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발굴팀은 이 기와들을 장장 5년에 걸쳐 조립했는데, 2미터 높이의 치미였다. 치미란 지붕의 용마루 끝에 올리는 장식용 기와다.


80m 높이의 규모에, 치미 하나의 높이가 2m인 거대한 탑의 복원을 위해 사용된, 사료로서의 금동 9층 탑은 고작 37cm이다. 그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얼마나 많은 디테일들을 무시하고 지어야 하는지 얼추 짐작해 볼 수 있다. 37cm의 금동 9층 탑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설계도나 모형이 아니고, 그 자체로 또 다른 하나의 문화재란 말이다.


여기까지 읽고 입에서 ㅆㅂ 이라는 말이 나오려 한다면 좀 더 참으라.


동궁과 월정교 이야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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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교


월정교는 약 332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2008년부터 복원하기 시작한 통일신라시대 월성 남쪽 신라 궁성의 통로였다. 760년 경덕왕 때 세워져서 최소 520년간 그 자리를 지켰던 월정교의 복원사업은 2008년부터 추진되고 있으며 1단계 사업인 다리 위에 기와 지붕을 설치하는 누교(樓橋) 복원이 최근 마무리됐다. 2단계 사업인 교량 양쪽 문루 건립은 다음 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2014년 준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의 발굴 조사를 통해서 두 교각의 대체적인 규모가 어떠했는지 파악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때부터 상상의 다리가 세워지기 시작한다.


미술사가 강우방 씨의 진단에 따르면 월정교의 복원은 발굴 조사를 근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발굴이 다 되어도 쉽지 않은 복원을 발굴 조사 생까고 진행하는 용감함을 뽐내셨다.


그 다음, 건축의 시대 양식이 전혀 근본이 없다. 제작 당시 학자들이 주장했던 여러 의견을 조합해보니 외형이 얼추 현대의 일본풍 느낌이 났다고 한다. 그에 따라 조선풍, 중국풍, 신라풍의 건축 양식과 단청 무늬를 섞어서 새로 만들어낸 진정한 '창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바로 월정교 자체는 지금의 형식이 아닌 곡선 형식의 다리였다는 점이다.


고려시대 명종 때 시인 김극기는, ‘무지개 다리 그림자 거꾸로 문천에 비치었네’라고 노래했다. 이를 근거로 다리가 (옛날의 긴 다리들이 주로 그렇듯)곡선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문화재 발굴조사 결과 곡선의 석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다리는 직선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런데 어떤 돌이 나왔는지 자세히 알 순 없지만 직선의 돌로 곡선의 다리 만들 수 있잖아? 응? 응? 그리고 저런 논란이 있으면 아직 뭐가 정답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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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경도 이재근 作 동궁 부분


동궁은 역시 똑같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통일 직후 신라는 호화롭고 화려한 생활의 한 방편으로 안압지를 만들고 679년에 여러 개의 문이 있는 동궁을 건축 하였다. 하지만 현재 동궁은 앞서 말한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파괴된지 오래되어 대략적인 위치만 가늠할 뿐 그 모양새를 알 길이 없다. 즉 앞의 월정교 처럼 동궁 역시 복원가들의 상상속에서 하나하나 다시 만들어 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신라 왕경의 모습을 3D로 복원하고 이것을 현대 과학의 힘을 빌어 신라의 모습을 재현했다고 광고까지 한다. 왜? 아주 토이스토리 보면서 장난감은 살아 있다고 외치지 그래?


동궁의 복원 과정에 있어서 주로 나오는 그림이 하나 있다. 이재건 화백의 '신라왕경도'다. 그림을 언뜻 보면 '어라 조선? 고려? 시대의 그림인가?' 할 수 있다. 걱정 마라 1944년 생이신 동양화 전공 화백이시다. 그럼 저 그림은 '학문적으로 복원에 이용될 가치가 있는가?'하는 문제가 남는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 모양새를 알 길이 현재로서는 없다. 그 어떤 신라의 왕궁이 남아있지 않은데 무엇으로 신라의 왕궁을 복원할 수 있나.


상상도는 상상도고, 복원은 복원이라는 개념을 탑재하셔야 한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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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경도 이재근 作

 

 

이재근 화백께서 그린 <신라 왕경도>도 신께서 어떤 영감을 주어 완성되어 이미 세상에 반월성을 포함한 옛 신라수도 모습이라고 널리 알려진 그림이다.

 

사진도 그림도 전해지지 않는 시점에서 복원 건축은 의미 없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폐허 상태로 방치 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주축 돌들을 근간으로 백제 왕궁 같은 복원은 안압지 동궁을 포함해 년차적 장기계획으로 빨리 복원 시켜 경주가 신라 천년수도로서 세계적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신라후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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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19 경자연 회장 최 림호


이 정도는 되어야 용감을 넘는 무식이라 뽐낼 수 있다.


그럼 복원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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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쯤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 복원가 세실리아 하메네스 할머니를 소개한다. 이 할머니 우리나라에서도 유명세 좀 탄 스페인의 야메 복원가다. 스페인 사라고사의 한 성당에서 습기에 인해 훼손된 그림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스스로 복원을 시도하였다고 한다.


마 전부터 위의 그림이 인터넷에 소개된 이후 저 성당에 관광객이 엄청 늘었다고 한다. 저 그림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림이 망가졌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요소가 있기에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잠시 저 곳에 발걸음을 멈추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할머니의 선의든 악의든 문화재를 망쳐버린 그 행동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그리고 할머니는 급기야 자신이 복원(이라 쓰고 깽판이라 읽는다.)을 한 그림 덕에 관광객이 늘었으니 자신이 복원료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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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네라 차마 뭐라고 욕을 할 수가 엄따~


그런데 이 할머니도 최소한 지킨 것이 있다. 복원의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원본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경주의 이야기에서 빠져있는 '원본'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인문학에서 나오는 개념 중 하나를 잠깐 짚고 넘어가자. 프라이머리 소스와 세컨더리 소스라는 개념이다.(난 스테이크 소스가 좋다.)

 

프라이머리 소스란 우리가 연구든 관찰이든 감상이든 할 수 있는,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혹은 존재했던 직접적인 사실이다.(글이 딸려 한번에 이해가 안될 듯 하다. 미안하다.) 쉽게 예를 들자면 위의 경우 할머니가 복원을 시도한 저 그림이 프라이머리 소스가 된다. 프라이머리 소스는 실제로 굉장히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저 프라이머리 소스가 없다면 저 그림이 가지고 있는 많은 정보를 (색, 재질, 형태, 구도 등)다른 수단으로 아무리 설명을 하려 해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반면에 프라이머리 소스를 기반으로 여러 사람들의 연구, 논문, 글 등 학문적 기반이 되는 모든 자료들을 통틀어 세컨더리 소스라고 한다.


그럼 경주의 예로 돌아가 보자. 위에 예로 든 세 개의 문화재 모두 프라이머리 소스가 없다. 오로지 정말 지극히 적은 세컨더리 소스에 기반하여 모든 문화재를 복원하겠다고 한다. 바로 이점이 가장 큰 문제다. 저 두 요소는 하나라도 빠질 수 있는 개념이 아닌 둘 모두가 꼭 필요한 요소다. 그리고 둘 중 하나가 빠지게 된다면 그것은 복원이 아닌 새로운 창작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즉, 복원이라는 개념은 뭔가가 남아 있을 때 부분적으로 보충하여 하는 것이지 이미 소실 된 지 1000년이 다 되어가고 어떻게 생긴지 조차 확인이 안되는 건물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은 복원이 아닌 창작의 영역이다.


21세기가 되고 관광 산업이 중요한 경제발전의 한 부분으로 인식이 되는 이 시대에 세계의 여러 나라는 당연히 관광 자원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문화재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의 복원의 개념은 수리, 보수의 개념이지 재건의 개념이 아니다.

 

1965년 바르샤바에서 창설된 ICOMOS는 세계의 문화재 보전 및 복원 정책에 관련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문화재의 원형 보전을 강조하며, 과학적 근거없는 복원은 문화재의 역사적 가치를 훼손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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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의 유적지와 제우스 신전

 

위의 두 작품 모두 충분히 새로운 것으로 덧씌우고 칠하고 해서 마치 어제 그려진 혹은 만들어진 문화재처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저 안에는 그 동안의 역사와 풍파가 모두 스며들어 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본래의 남아 있는 문화재에 대한 훼손과 당시의 모습에 대한 왜곡이 들어갈지에 대한 걱정이다.

 

예를 들어 제우스 신전은 이미 그 내부에 대한 상상도와 당시 제우스 신상의 크기와 모양이 어느 정도 추정 가능하지만 저 신전을 그 자리에 다시 지으려는 시도 따위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 맞서는 서양의 입장에 반대하는 또 다른 동양만의 시각도 엄연히 존재한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서양의 많은 유적들이 돌로 만들어진 것에 반해 동양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목조 건축물 혹은 문화재가 굉장히 많다. 

 

1) 서양 원형보존 원칙에 대한 반대

서양의 원형보존 원칙은 세월에 따른 훼손이 적은 석조 문화재를 위주로 한 것이다. 동양의 목조건축은 잦은 보수가 필요하고 심지어 일본의 경우는 주기적으로 기존 건축을 허물고 새로 짓기도 한다. 하지만 그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훼손된다고 볼수 없고, 이런 주기적 보수를 통해 전통 공예가 계승되는 효과도 있다. 이러한 동양 목조 문화재의 특징은 <나라 헌장>에서 천명하였다.

 

2) 일본의 사례 옹호

건축 유적을 방치하면 점차 자연 풍화로 훼손된다. 건축 유적을 방치하면 건축 유적이 갖는 역사적, 사회적 가치가 사람들의 의식속에서 점차 사라진다. 일본은 건축 발굴 유적 위에 수미터의 두꺼운 보호 토층을 쌓고 그 위에 그 건물을 복원한다. 그러면 유적도 보호되고 유적의 역사적, 사회적 가치도 강화된다.

 

충분히 일리있고 납득이 가는 논거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재의 성질과 특징은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그 보존이나 복원에 있어서도 서로의 철학을 가지고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당연한 얘기다.

 

그리고 목재의 경우 그 특성상 석재에 비해 더 세심한 보존 정책이 수립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한국만의 방식으로 문화재를 보호하고 보전하는 정책을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위 논지 정도로 문화재를 우리의 사정과 상태에 맞게 보호하려는 노력은 당연히 수반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경주에서 일어나고 복원 사업은 위의 논지가 아닌 '우리 맘대로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꺼임~' 수준이라, 논쟁을 할 만한 가치도 못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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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리너 슈탓트슐로스 

 

최근에 재건 되고 있는 건물을 보자. 2차대전 이후 동독 시절에 철거된 성이지만 이미 가지고 있던 수많은 설계 도면과 사진으로 재건을 하고있다. 즉 복원을 위한 자료가 엄청나게 풍부하다는 말이 되겠다.

 

이러한 복원에도 불구하고 저 건물은 박물관으로 개조해서 문화재 자체로써의 기능보다는 박물관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게 만든다. 그리고 저러한 공사의 경우 재건축이라고 부르지 절대 문화재 복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즉 대략 50년 만에 다시 지어진 건물이지만 원본이 아닌 세컨더리 소스만으로 재건된 문화재이기에 그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물론 복원과 재건축이라는 단어의 어감에서 오는 차이를 강조하는 게 아니다. 저것을 복원이라 부를 때 우리는 그 건물에 원본의 이미지를 덧씌움으로써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이것이 '우리 신라의 건물이다'라고 당당하게 소개할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염려다.

 

어린이들의 수학여행지로 가장 선호되고 있는 경주에서, 우리는 그 어린이들에게 대놓고 창작품을 문화재라고 교육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우리의 사례를 살펴보자.


얼마 전에 재건된 남대문이 있다. 남대문 재건에 관해서는 필자도 티비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이상의 상식은 알지 못한다. 남대문은 고려 이전의 건축물들에 비해 그나마 상대적으로 최근(조선시대가 최근인지는 모르겠다만...)에 지어진 건축물이고, 그간 꽤 많은 자료가 쌓여 있었기에 복원을 위한 노하우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복원의 과정도 전통적인 방식을 최대한 살리는 동시에 각종 최단 기술을 이용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렇게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각 계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다시 세운 남대문조차 최근에 삐걱대며 잡음이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최근 보도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진 단청에 물감이 갈라지고 어쩌구 저쩌구 잡음이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비겁하게 잠시 판단을 유보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대문의 재건에 있어서는 그동안의 축적된 자료와 여러 가지 등을 고려해도 졸라 빨리 지은 건 맞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문화재를 그냥 놔두고 그 상태 그대로 보존만 하자고 외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복원을 할 때에는 엄격하고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대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원본이라는 것은 문화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고유하고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경주의 경우처럼 터를 발견하고 발굴 조사를 진행한 후 그 위에 (무려 그 유적지 위에)근본도 알 수 없는 건물을 세우는 것은 문화재를 파괴하는 행위지, '문화재의 보존·발전' 뭐 이런 것과는 일말의 상관도 없는 이야기다.

 

현재의 불완전한 상상력으로 관광객을 위한 무언가를 만들고 보여주고 싶다면 실무자들은 경주 근처 남는 땅에 자신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테마파크를 만들어야지 실제 유적지 위에 용인 민속촌 식의 테마파크를 만드는 무식함을 뽐내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럼 저런 테마파크는 왜 짓는 것인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화재청에서는 얼마전 경주 시장과 관계자들이 모여 '경주 월성 파괴보존과 활용' 정책 연구사업 진행 결과보고회를 가졌다고 한다. 경주시장은 그곳에서 이런 말을 한다.


"경주는 우리 역사의 뿌리다. 신라가 없으면 고려, 조선은 없었다. 그러나 외국 사람들이 왕궁 유적인 월성에 오면 왕궁이 어딨냐고 묻는데 대답을 못했다. 왕궁 복원 필요성이 있다. 박물관에 갇힌 역사를 해방해야 한다. … 중략 … 경주를 세계사 속으로 끌어냈으면 한다."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구분이 안 간다. 앞으로 외국 사람들이 월성에 오면 시장님이 대답을 잘 하시게, "여기에 지어진 건물은 왕이 이런곳에 살았을 꺼라고 상상하고 살던 자리 위에 저희가 맘대로 상상해서 역사적 고증 별로 없이 만들었습니다." 라고 친절하게 설명된 팻말하나 놔 드려야 할 것 같다.


거기에 더해 경주시 경자연 회장이라는 앞에 잠깐 언급된 높으신 분은 역시 색다른 시각도 제시한다.

 

부여에 123년 있었다는 백제 왕궁은 충청, 전라 도민들의 염원으로 국비 3천억 원, 도시비 3천억 원 등 총 6천억여 원 예산을 들여 12년간 건축, 지난해 복원되었다. '백제 700년의 꿈 부활'이란 주제로 제55회 백제 문화제 행사가 한 달 동안 화려하게 거행 되었다.

 

2008년에 조선일보 기사에서 백제 왕궁 복원 공사가 완공 단계란 기사를 읽고서, 신라 후손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며 경주 반월성 신라 왕궁도 복원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2008년부터 열린 시정 대화에서 전 경주시장에게 건의하고, 한나라당 경북도당이 실시한 당원 정치 AMP 과정에 강의하러 온 김 도지사에게도 “부여에 123년 있었다는 백제 왕궁은 완공 단계라는데 경주 신라 왕궁은 언제 복원 하실 것입니까? 도지사님은 안동에만 관심이 많으시지 경주에는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 드렸다.

 

또, 2009년 11월 이명박 대통령님께도 탄원서 첨부물로 제가 AMP 과정에서 발표 했던 '경북 발전 방안' 유인물에 경북도가 중점 추진 해야 할 다섯 번째 사항으로 '경주 반월성 신라 왕궁 복원 사업계획 수립 추진' 이라고 명시된 것을 청와대로 보냈다. 또한, 지난해 6.2 지방선거 도의원선거 당시 저의 공약사항 이기도 하다.

 

이처럼 저는 3년 전부터 신라 왕궁 복원을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하다가 마지막 수단으로 지난해 10월 경주시청 홈페이지 시정건의 사항으로 현 최 시장에게 이명박 대통령님이 경주에 오시면 꼭 경주 숙원사업으로 건의 드리라고 글을 올렸다.

 

어쨌건 이명박 정부가 형평성 차원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복원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은 경주시를 봐서도 다행한 일이라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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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19 경자연 회장 최 림호


이야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젠 이 쬐끄만 땅떵이에서 백제 문화재 행사를 했으니 경주에도 뽀대나는 거 하나 지어주셈 뭐 거의 이런 심보 아닌가. 지역감정이야 찌질한 줄로만 알았는데, 백제와 신라의 지역 감정은 나름 참신하게 다가오는 시도임에 틀림없다.


역사적 사실에 있어서 필자가 앞에 언급한 프라이머리 소스는 남아 있을 수가 없다. 그나마 역사적 공부에 가장 중요한 대리 체험의 기능으로서의 문화재나 유적지의 역할은 책에서 눈으로 보고 읽고 외우는 것과는 또 다른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우리의 문화재는 우리에게 그 가치가 가장 높은 것이지 외국인들에게 뽐내기 위해 구경 좀 해보시라고 전시해 놓는 그런 물건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누구나 우리의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원본을 가꾸고 지켜야지 그 위에 근본도 없는 상상력을 발휘한 건물을 지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사안은 4대강 사업 당시 문화재 보존 대책도 제대로 수립하지 않고, 전문가의 입회도 생략한 채 공사를 강행하여, 파괴 손실된 문화재가 얼마나 되는지도 제대로 파악이 안되고 있는 게 현재 상황과 잘 들어맞는다.

 

문화재청은 뭐하는 곳인지 4대강 사업때도 대강대강 가카 원하시는 대로 넘어가더니, 이제는 검증도 없는 유적지 테마파크를 또 대강 만들라고 허가를 내주는 그런 곳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의 원인과 결과는 문화재를 문화재로 보지 않고, 관광, 홍보 등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지극히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시작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자본주의가 좋긴 하지만, 돈 안되는 강가에 남아있는 문화재는 신경도 안 쓰고 돈이 되는 유적지의 테마파크는 세금 펑펑 쏟아가며 토목공사를 해대는 그들이 감히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서 한마디라도 내뱉을 수 있다면 너덜 정말 뻔뻔한 넘들이다.


글을 쓰다 보니 점점 손가락으로 화내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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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재청 홈체이지







뱀 다리 하나


기사를 읽고 관련 자료를 뒤적 거리다 문득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창.조.경.제.


그래 얼핏 창조경제는 문화 예술과 과학, IT분야가 서로 융합해서 어쩌고 저쩌고 였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껏 딴지 독자 제위들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그 말의 뜻을 필자는 오늘에야 드디어 이해할 수 있었다. 문화 플러스 과학(이게 토건으로 바꼈지만 뭐 중요하랴~)으로 창조하는 우리의 새로운 역사 되겠다.

 

아~ 이~ ㅂㄱㅎ 누나의 깊은 뜻을 느끼고 나니 지금까지 쓴 글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지만 쓴 게 아까워 그냥 올리는 바다.

 

 

뱀 다리 둘


많은 자료로 도움을 주신 전문가 營造法式님께 감사드린다.



 

 

 

 

 

 

 

타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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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