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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지내고 계신지요? 나는 이홍위 라고 하오아, 내 이름보다는 단종이란 호칭이 여러분에겐 더 익숙하겠구려. 원래 조선 왕들의 이름은 백성들이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발음 하기 어려운 글자를 선택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오. 또한 외자 이름을 선호하나, 내가 태어났을 때 내 사주가 외자 이름을 짓게 되면 단명 한다고 하여, 이홍위라고 지었다고 하오. 허나, 결국 사주를 피하진 못했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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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이야기보다 우리 가족들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하오. 우리 아버지, 어머니, 누이의 이야기는 나 만큼이나 기구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으나, 잘 알려지지 않았소. 힘든 일이지만, 내 입으로 직접 말해 주고 싶었소.

과인의 이야기야 너무나 잘들 알고 있을 테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12살에 왕이 되었으나 곧 계유정난(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 세력이자 원로대신인 황보 인·김종서 등 수십 인을 살해,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사건)이란 날벼락을 맞았고, 이 때 나의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은 35살이었소. 짧디 짧은 재위기간은 그렇다 쳐도 17살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게 되니 원통하기가 이를 데 없소만, 우리 가족 또한 나 못지 않은 인생풍파를 겪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하오. 그러고 보니 내가 세상을 등진 지도 어언 560년여 전의 일이군요.

먼저 우리 아버지 문종 임금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가지 않을 수 없군요.

문종임금께서는 조선 건국이래 최초의 적장자 왕위 계승자 외다. 당연히 적장자가 왕을 잇는데 최초라는 말을 붙이니 의아하오? 조선은 27명의 왕 중 적장자 출신은 단 7명 밖에 없소. 왕의 장남으로 태어나도 왕이 된다는 것이 여간 녹녹하지 않은 일 임을 알려주는 수치요. 문종임금은 아버지가 -즉 나의 할바마마 께서는- 그 이름도 거룩한 세종대왕이시니, 정통성과 아버지의 후광으로만 치면 역대급이라고 할 수 있겠소.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부모 자랑은 머라 하오? 최대한 객관적 시선에서 말하도록 노력은 해 보겠소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면 안되겠지만, 명 나라 사신들도 우리 아버지의 외모를 극찬 할 정도로 큰 키에 잘 생긴 얼굴까지 타고 나셨다오. 기본 학문에 능한 것은 기본이요, 다방면에 대한 관심 + 재능까지 타고나셨다오.

일례로 천문에 능하셔서, 할바마마께서는 외부 행사를 나가시기 전에 항상 아바마마에게 날씨를 물어보셨고, 기똥차게 날씨를 예보 하셔서, 할바마마가 늘 신통해 하셨다고 하오. 측우기 아이디어 제공자가 우리 아바마마인 건 잘들 몰랐지요? 또한 병기제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셔서, 아버님의 이름을 딴 문종화차라는 병기도 있다오. 여기에 효성도 지극하여, 할바마마가 유달리 좋아하셨던 앵두를 직접 진상해 드리기 위해 동궁전 앞에 앵두나무를 기르게 하셔서, 문안 인사를 할 때 앵두를 가지고 가셨다고 하오. 아바마마는 정식 왕으로서 재위 기간은 짧으시나, 7세에 세자에 책봉 되셔서 무려 29년 동안 세자로서, 세종대왕의 최측근으로서 많은 일을 함께 하셨다오.

이런 세자였기에 백성들의 기대는 너무나 컸고, 세종대왕에 이어 조선초기 르네상스를 열 것이라는 엄청난 기대를 받으셨소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신민의 슬퍼함이 세종의 상사보다 더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오. 한마디로 조선 최고의 엄친아를 잃은 슬픔이 조선 팔도를 뒤덮었던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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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인 문종임금에 대해 논하면서, 세자빈들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소.

우선 첫 번째 부인 휘빈 김씨는 세종대왕께서 심혈을 기울여서 직접 간택하셨소. 이때 문종임금 나이 방년 13. 아직은 철 없는 아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소? 이때 아바마마는 여사친, 즉 여자사람 친구들이 있었는데, 효동과 덕금이라는 여자들이었소. 이들이 누군고 하니, 나의 할머니인 소현왕후(세종대왕 부인)의 시종들이었소. 민가에서도 외갓집 식구들이랑 더 허물 없이 지내니, 아바마마도 자신의 어머니 처소에서 자연스레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이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소. 사건이 터진 건 휘빈 김씨의 상상을 초월하는 질투심에서 시작 되었소아바마마가 부인과 놀기보다는 여사친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하시니, '압승 술'이라는 걸 시연하게 되었소.

간난아! 내 이 여시 같은 두 년들을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이 년들이 어떤 술수로 세자마마를 농락하는지 모르겠으나, 나도 두 눈 뜨고 생떼 같은 서방을 뺏길 수 있겠느냐?”

마마 무슨 좋은 방도라도 있으신지요? 쇤네, 마마의 명이라면 이 한 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 있사옵니다

지난 번 어머니께서 궁에 드셨을 때 알려준 비책이 하나 있긴 한데...”

마마, 지금부터 말씀하신 내용은 오프 더 레코드일 뿐더러, 제가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일이 되옵니다. 마마께서는 어떤 분부도 내리신 적이 없고, 전혀 모르는 일 이옵니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될 시에 이 년은 바로 자결을 하겠사옵니다. 대신...”

두 말 할 거 없다. 내가 세자빈에서 왕비가 되는 날, 니 년 뿐만 아니라, 너희 집안의 위상이 달라질 것임을 내 보증하마

딜 성공적!

간난아! 그믐날 밤 효동이와 덕금이의 신발을 몰래 훔쳐 오느라. 그리고, 고이 간직하였다가 보름날 밤 신발을 불에 태워 곱게 빻아 그 재를 나에게 가져 오도록 하여라

그리고 나서는 어쩌실 겁니까요?”

곱게 빻은 신발 재를 술이나 음식에 타서, 세자께 드리면, 그 년들에게 갔던 마음이 나에게 온다고 하는구나

첫 번째 '압승 술'까지만 시도하고 멈추었다면, 어린 세자빈의 치기 어린 질투로 무마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소.

간난아. 이번에는 플랜 B

네 마마 분부만 내려 주시옵소서

이번에는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게야. 그만큼 효과가 확실하다고 하니 반드시 구해 오도록 하여라. 은밀하게 준비해야 함을 명심. 또 명심하거라. 또한, 일이 발각 될 시에는... 잊지 않았지?”

요물 같은 년. 어떤 걸 시키려고 뜸을 들이 누’, 마마 분부만 내려 주시옵소서

간난아! 달빛이 어두운 그믐날 교접을 하고 있는 뱀의 체액을 받아 오너라

?????”

여기 있다. 받거라.”

이건 마마님 속옷이 아니옵니까?”

그래, 거기다 뱀의 체액을 받아 오너라. 그 속옷을 내가 입고 있으면, 세자마마께서 저절로 내 품으로 달려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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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라이프가 겉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규율과 텃세, 음모가 난무하고 있어요. 물론 밤 말이나 낮 말이나 다 도청하는 귀도 사방에 깔려 있지요. 특히 무서운 것은 시어머니의 감시망 아니겠소? 효동과 덕금의 신발이 없어질 때부터 세자빈에게 밀착 감시를 붙인 할마마는 간난이를 잡아들여 자백을 받아 내셨소.

아이고 두야. 내 그리도 신경을 써서 며느리를 골랐거늘. 이 무슨 회괴한 일인고? 저런 며느리를 집안에 계속 두었다가는, 나라 일까지 주술로 말아 먹겠소. 부인, 내 불찰이요. 고맙소. 선 조치 후 보고지만 빠른 자백을 받아 내셔서 큰 힘이 되었소

상감께서는 오직 나라 일에만 신경을 쓰시지요. 집안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나이다

부창부수라고 손 발이 착착 맞는 할바마마, 할마마마셨어. 이렇게 첫 번째 세자빈은 퇴출.

세종대왕께서는 두 번째 세자빈을 뽑을 때는 효동과 덕금의 미모와 재기를 훌쩍 뛰어넘는 분을 골라 아바마마의 마음을 잡으려고 하셨어. 그런데 어찌 대왕이라고 불리는 할바마마의 며느리 보는 눈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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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부인은 순빈 봉씨인데,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지만, 재기가 넘치다 못해 자유분방한 신여성이셨어. 순빈 봉씨는 술을 너무나 좋아하여, 낮술 포함 주 10회 정도의 음주를 즐기셨어. 나의 아바마마인 문종께서 유일하게 싫어하시던 학문이 예체능이었는데, 순빈 봉씨는 술만 먹으면 그렇게 노래를 불렀다고 하오. 아바마마는 당연히 기겁을 하셨고.

이에 그치지 않고, 다음과 같은 일을 꾸미시는데...

소쌍아! 세자께서 내 처소에 발길을 끓으신 연유가 무엇이라고 생각 되느냐?"

이 년은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사옵니다. 마마처럼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시고, 노래까지 잘 하시는데 어떤 연유인지 몹시도 궁금하옵니다

나도 처음엔 이해가 되질 않았으나,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무엇이옵니까?"

이유는 바로... 이벤트가 부족해서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매일 보면 질리는 법. 그 동안 난 나의 미모만 믿고, 내가 너무도 안일하였다. 마마께서 처소에 들리는 날 이벤트를 준비하지 못했던 거야!”

그... 그러 하옵니까...

너는 지금 당장 동궁전 내 궁녀들 중 인물과 가무에 출중한 아이돌. 아니, 아이들 7명을 뽑아 오도록 하여라. 노래는 내가 이미 만들어 놓았고, 연습도 직접 시킬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라오. 이 분은 시대를 너무나 앞서 가셨던 분인 것 같소. 여기까지는 어쩌면 귀엽게 봐 줄 수도 있는 일이오. 이런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아바마마의 마음을 얻지 못하니 늘어나는 건 주량이고, 밀려오는 건 공허감이었소.

세자빈의 자리에 있으면서, 남자를 불러다 놓고 술을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니, 소쌍이를 비롯한 아이들과 술을 마시며 불금을 달리곤 했었소. 다 같이 술 한 잔 하다 보니, 어깨동무도 하게 되고, 어깨 동무를 트고 나니, 어느 날부터 질펀한 파티가 끝나고 나면 소쌍이는 자기 침소로 가지 않고 세자빈과 동침을 하게 되었소. 그냥 잠만 잔 게 아니라고 하오. 민가에서도 용납하기 어려운 동성애를 조선의 세자빈이 시현을 하신 게요. 막장 드라마의 기본 구성요소는 삼각관계 아니겠소? 소쌍이에겐 단지라는 동성애인이 이미 있었는데, 단지가 질투에 눈이 멀다 보니, 동궁 전에서 난리를 친 게요.

야 이 씨xxxxx, 세자빈이면 세자빈답게 행동을 할 것이지 어디서, 남의 여자를 가로 채고 지랄이야 지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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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난리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할마마마의 레이더에 잡혔을 터, 이날 이후 순빈봉씨 마저 폐위가 되고, 당시 세자의 후궁으로 있던 나의 생모께서 세자빈으로 승진 하셨오.

두 분의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은 나의 생모와 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겠소. 궁중의 치부를 너무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 한 쪽이 씁쓸하지만, 로얄패밀리라고 해 봐야 일반 여염집 사는 게랑 머 다르겠소한편으로는 10대 소녀들이 군대보다 규율이 심한 궁중 생활을 제정신으로 견디기에는 분명히 쉽지 않았을 거라는 측면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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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야기를 먼저 하고, 누나 이야기를 할까 하오. 사실 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소. 날 낳은 다음 날 어머니는 돌아가셨소. 어머니는 두 명의 세자빈이 폐위될 당시 세자의 후궁자격이었소. 이때 마침 나의 누이인 경혜공주를 출산 하셨소. 우리 누나가 복덩이였소. 할바마마는 왕자도 낳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어머니를 세자빈으로 맞이 하셨던 게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혼인을 하지 않으셨다오. 어마마마에 대한 깊은 사랑의 결과라고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쳤다오.

앞의 두 세자빈 이야기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아바마마(문종임금)는 결혼 생활에 회의감도 들었을 테고 여기에 조정에 연이은 초상으로 인하여 왕비를 맞이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오. 이런 연유로, 문종임금은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재위기간 동안 왕후가 없는 왕으로 기록 되셨소. 아버님 본인이 그리 빨리 가실 줄 몰랐으니, 두 분 중 한 분만 살아계셨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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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살 터울 누나와 백 어리니 라는 유모의 보살핌 속에 자라게 되었소. 여자의 모성본능이 얼마나 강한지 다들 아시지요? 누나는 내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소. 인복 없던 나에게 백 유모 또한 하늘이 주신 선물이었는데, 백 유모는 우리 어머니의 몸종으로 궁궐에 들어왔지만, 탁월한 총명함으로 우리 남매의 전담 유모로 발탁 되었다오.

할바마마의 병환이 깊어지면서, 우리 집안에 한 가지 걱정이 늘었다오. 할바마마의 3년상 기간 동안은 로얄패밀리는 누구도 혼례를 치룰 수 없소. 혹여나 할바마나가 돌아가시면 우리 꽃 같은 누나는 이 시대 기준으로 노처녀가 되어 버린다오. 그래서, 아바마마는 누이의 남편을 서둘러 고르셨소. 이 때 부인이 안 계셨으니, 홀애비가 혼자 딸의 남편을 찾아나섰던 게요. 신중에 신중을 기해 고른 나의 매형은 정종이라는 분 이외다. 왕 이름 같지만 왕은 아니라오. 매형 아버님이 지금으로 치면 전직 서울시장 출신이오. 원래 과부의 자식은 왕족과 결혼할 수 없지만, 아버지는 이를 무시할 정도로 매형을 마음에 들어 하셨소. 난 우리 누나를 빼앗아가는 것 같아 누구라도 싫었지만, 매형의 당당한 인간 됨에 차츰 마음을 열게 되었소.

그러나, 이 후 우리 집안에는 그야 말로 죽음의 폭풍우가 내리쳤소. 할아버지 삼년상을 마치자마자 아버지까지 승하 하셨소. 여기서 잠깐 우리 아버지에 대한 독살설이 있는데, 판단은 여러분들이 해 주시구려. 이 당시 아바마마의 주치의는 전순의라는 자였소. 왕의 일상 이란 것이 과도한 업무의 연속이긴 하오. 여기에 세종대왕의 삼년상까지 치르고 나니 면역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소. 면역력이 떨어지면 종기가 생기기 쉽다고 하오. 조선의 왕들은 종기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아버님도 마찬가지였소. 종기에는 꿩고기가 상극이라고 하였으나, 전순의는 어쩐지 이를 진상 하였소. 물론 꿩고기가 치명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냄새가 좀 나오. 전순의의 진두지휘 아래 모든 치료과정이 진행 되었고, 아버님은 끝내 돌아가셨소. 전순의는 이에 책임추궁을 당하여, 투옥 되었소. 그런데, 내가 왕이 되자 슬며시 특사로 풀려 나더니, 세조가 왕이 된 후에는 공신으로 추대까지 되었소. 여기까지만 하겠소. 물론 물증은 없소.

너무나 급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졸지간에 아버지까지 잃은 고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소이런 나는 궁궐에 머물기 보다는 궁 근처에 매형과 누나가 사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소.

누이, 궁중생활이 너무나 싫고 무섭소. 수양삼촌도 무섭고, 안평삼촌도 마찬가지요. 내 왕위는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주고, 이 집에서 누이와 매형과 살면 안 되겠소?”

주상전하! 전하께서는 이제 어릴적 저랑 놀던 이홍위가 더이상 아니옵니다. 조선백성의 아버지시옵니다. 김종서 장군을 필두로 할바마마 때부터 충신들이 전하 곁에 계신데 무슨 걱정이시옵니까?"

이리 날 어르고 달랬지만, 누나도 겨우 18살의 나이인데, 본인도 얼마나 두려웠겠소. 이제와 그런 생각을 하니 우리 누이가 더 고맙고 미안하오. 이제 세상 하늘아래 친가족 이라고는 누나와 나 뿐이었소.

수양대군은 내가 궁을 떠나 누나 집에 머무르는 날 계유정난을 일으켰소. 이 인간은 잔인하다기 보다는 치사한 인간의 전형이오. 왕이 궁을 비운 사이 일을 해치우고 결국 누나의 집까지 들이닥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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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이후 나와 누나가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가 없소. 10대 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압박감으로 원형 탈모가 일어날 지경 이었소.

수양은 모든 권력을 틀어쥐자, 우리 둘에게 악마 같은 마수를 뻗쳐 왔소. 그 누구보다 기백 있었던 매형을 잡고 늘어졌소. 역모죄를 씌워 귀양을 보낸 거요남편과 동생을 지키기 위해 누나는 우리 집안의 가장이 되어서 수양과 맞섰소.

수양삼촌! 공주의 남편을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귀향을 내버리는 법도는 어느 집구석에서 배우신 게요? 제가 어미 없이 자라 좀 경우가 없습니다. 아바마마까지 돌아가신 판에 남편까지 멀리 보내고 과부처럼 사느니 미련 없이 깨끗이 자결하겠소

하하하. 니 년이 무얼 믿고 이리 눈을 까 뒤집는지 모르겠구나? 니가 죽는다고 내가 눈 하나 깜빡 할 거 같으냐?”

누나가 집으로 돌아온 후,

대군마마. 경혜공주 눈의 살기가 여간하지 않습니다. 지금 민심은 완전히 저희에게 등을 돌린 상태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요? 부모 잃고, 하나 있는 누이까지 자결을 한다면, 민심은 더 이상 돌이 킬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를 것으로 사료 되옵니다

에이! 지금은 내가 한 발 물러난다만, 왕이 되어도 민심이란 걸 신경을 써야 하는 게냐?”

하지만, 우리 집안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오.

세종대왕 때 집현전 학자출신들의 주도 하에 세조를 끌어 내리려 한 사육신 사건이 터지고 말았소. 모반은 실패하였고, 호시탐탐 우리 집안의 해체를 노리던 세조에게는 최고의 떡밥이 되고 말았소이 일로 누나 내외는 전라도 광주로 귀향을 가게 되고, 이듬 해 나는 그 유명한 강원도 영월로 유배 되는 처지가 되었소. 세조는 누나의 집 담장을 높게 세우고 외부에서 출입문 잠금 장치를 하여 가택연금을 시켜 버렸소. 이런 난리통에도 광주에서 누나로부터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 왔소.

전하... 감축 드리옵니다. 첫 번째 조카를 보게 되었사옵니다. 코는 아비를 닮고 입은 저를 닮은 듯 하오나, 전체적인 용모에서 전하의 용안도 보이니 기쁘기 그지 없사옵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 남매의 신세가 이러 하오나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사옵니다. 이 아이가 무탈하게 자라 전하와 함께 아바마마와 어마마마에게 헌화하는 날을 손 꼽아 기다리옵니다. 부디 그 날까지 옥체 보존 하시옵소서. 저도 마음 굳건히 먹고 있사오니 부디 저희 가족 걱정은 하지 마옵소서

누님은 어머니가 되면서 더욱 강해지셨소. 귀향 살이 와중에도 대를 이으시면서 집안을 다시 일으킬 기회를 엿보신 게요. 부창부수라고 매형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소. 매형은 광주로 내려오신 후로 불교에 심취하셨는데, 성탄이란 스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셨소. 스님 이름이 성탄이라니 재미있지요? ^^

광주에서의 4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매형은 알고 보니 불교에 심취한 것이 아니라, 성탄스님과 함께 세조를 치기 위한 일을 준비 하셨던 게요. 허나 그만 일이 중도에 탄로가 나 매형은 능지처참을 당하였고, 누나는!!! 우리 누나가... 조선의 공주가 관비로 전락하게 되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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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관비로 떠나기 전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와 딜을 하게 되었소. 이때 둘 사이의 중재자로 나선 이가 우리 남매의 어린 시절 유모인 백 어리니였소. 그 풍파 속에서도 궁궐에서 자리를 지키며, 정희왕후의 신뢰까지 얻어낸 게요.

이 당시 세조도 마음 편한 상황은 아니었다오. 장자가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었고, 세조자신 역시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이 찾아와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하오. 정희왕후는 세조의 업보를 자신이 나서서라도 씻고 싶었나 보오. 아니 두려웠던 게지요. 장남이 죽어나가고 집안에 우환이 끓이질 않으니 남은 자식을 지키고 싶었을 게요.

경혜공주! 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소. 내 그 사람에게 잘 말하여 장남 미수랑 여식은 잘 키우도록 할게요. 그리고 분위기를 봐서 내 공주가 관비로 가는 것도 막아 볼 테니 고생스럽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세요. 아이들은 백 유모에게 잠시 맡겨 둔다고 생각해 주세요

"내 원수의 소굴에 금쪽 같은 자식들을 맡겨 두고 가지만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 볼 것 이외다. 난 당신을 믿는 게 아니라 나의 유모를 믿는 것이니 혹시라도 내가 노여움을 풀었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어차피 당신도 업보를 풀기 위함이지 나와 자식들을 불쌍히 여기는 게 아니잖소. 서로의 필요에 의함이니 오랜 시간 대면하고 싶지 않소이다.”

알아요알아... 그리고 한 가지 미리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둘 째는 딸 아이라 상관이 없는데...

들었소이다. 내가 우리 미수를 출산하였을 때, 삼촌께서 아들이면 죽이라고 하셨다지요? 허나 당신께서 딸이라고 고하여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 하고 있다고. 혹여나 생색을 내시려는 건 아니지요?”

이리하여 나의 조카 정미수는 사내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여장을 하여 궁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오.

시간이 얼마간 지난 후 세조부인의 설득으로 누이도 궁궐로 들어와서 살라는 허락을 받았으나, 누나는 단호히 거절하고 비구니가 되셨소. 궁중에서는 권력을 잡지 못하면 목숨이 위태롭거나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그야말로 서바이벌이오. 기구한 신세가 된 여인들이 워낙 많다 보니, 궁중여인들만 받아주는 정업원 이라는 곳이 있었소. 여기서 누이는 내 부인과 조우하게 되오.

형님... 그간 마음 고생이 심하셨지요? 여기서는 제가 선배입니다. ^^ 저기 바위 위로 올라가면 서방님, 아니 전하 돌아가신 곳이 잘 보입니다. 불심이 부족하여 전하가 너무 그리울 때 한 번씩 찾아가면 마음이 가라앉곤 합니다.”

내 운명도 기가 막히지만, 자네도 세자빈으로 궁에 들어와 어린 나이에 왕비까지 되었다가 이게 무슨 꼴인고... 내가 미안하네...

형님 그런 말씀 마세요. 듣자 하니 수양네 집안도 아들이 또 죽었다고 하옵니다. 수양은 하루도 맘 편히 잠을 못 이루고 있고, 원혼들이 꿈에 나타나 침을 뱉은 자리에 피부병이 생겨 몰골이 말이 아니라고 하옵디다

왜 안 그러겠소. 천하의 나쁜 인간불쌍한 우리 주상, 아니 내 동생 홍위 생각만 하면...

이들을 하늘에서 보고 있자니 떠난 사람이 더 마음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쌍한 누이는 폭풍 같은 삶을 39살이라는 나이에 마감하게 되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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