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3.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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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월급이 통장에 스치운다
오후의 통화연결음은 지겨웠다. 전화 독촉 작업을 하는 시간은 대부분 채무자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며 채워졌다. 최근 유행하는 노래를 몇 소절만 반복해서 듣다 보면 그 노래들이 연결되어 한 덩어리가 되었다. 마더 파더 젠틀맨 바운스 바운스 두근두근... 그러던 중에 색다른 통화연결음이 들렸다. 오바이트맥주사에서 새로 출시한 맥주의 광고음악이었다.
채무자는 광고음악이 채 끝나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교섭과정은 순조로웠다. 채무자는 새로 일자리를 구했다며 빚을 갚아 나가겠다고 했다.
"몇 달 동안 굉장히 힘들었어요. 삼재수라 그런가... 그래도 이번 달 들어서 부텀은 좀 풀릴라나 봐요. 제가 여기저기 빚이 많거든요. 다시 취업하자마자 어떻게 알고 그러는지 득달같이 통장에서 빼가더라고요. 그래도 와이캐피탈은 압류를 안 해서 제가 여기부터 갚을라고 맘을 먹었지요. 일단 30만원 넣겠습니다."
채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채권추심원 김철수는 속이 답답해졌다. 다른 금융기관에서 어떻게 알고 급여를 압류했는지, 이 채무자만 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오바이트 맥주사의 광고음악을 통화연결음으로 설정해 놓고 쓰는 사람이 그 회사 직원이 아니라면 누가 있겠는가?
장기연체 채무자의 경우 재직확인이 가능하다면 급여에 압류를 신청하는 것이 추심업무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채무자가 먼저 나서서 이쪽의 빚을 갚겠다고 까지 말한 상황에서 급여를 압류해버리는 것이 과연 적합한 방법일지, 철수는 잠시 고민했다.
철수가 통화를 마치자 옆에서 내용을 듣고 있던 장재완이 웃으며 말했다.
"김주임은 인의예지의 추심원이야."
놀리는 말투이긴 했지만 장재완의 진심이기도 했다. 장재완은 철수 같이 우직하게 일하는 추심원을 본 적이 없었다. 실적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철수가 담당하는 채권은 매 달 분할해서 납부되는 금액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 달성은 거의 맞추는 편이었다.
실제로 채무를 변제하려는 의지가 있는 다중채무자를 상대할 때는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편이 유리한 면도 있었다. 여러 군데에 빚이 깔려 있는 채무자가 형편이 넉넉해지면 인간적으로 잘 대해준 추심원을 먼저 찾기도 했다. 그러나 다중채무자의 형편이 나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심하게 독촉하고 채근하는 쪽의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었다.
연체액은 원금과 이자를 합해도 500만 원 선이었다. 이 채무자가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꾸준히 해나간다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부채를 모두 상환할 수 있을 것이다. 오바이트맥주사 정도 규모의 대기업이 도산하거나 정리해고를 감행할 가능성도 높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추심업체에서 급여압류를 계속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의 여유로움이 계속될 것 같지는 않았다.
"재직확인 해봐야지?"
장재완의 말을 듣고 철수는 마음을 굳혔다. 오바이트맥주사 인사과로 전화를 걸어서 채무자가 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마산공장에서 품질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뒤의 일은 법무과로 넘어갔다.
채권추심 업체에서 급여통장을 압류하려면 먼저 해당 회사에 재직하는지 확인을 해본다. 대출 당시의 계약서에 남아 있는 기록은 믿을 만 하지 못했다. 보통 채무자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거나 해고당했거나 아니면 회사가 도산해버린 상황이었다. 그 뒤로 다른 일자리를 구해 수입이 생겼다는 정황이 포착되면 뒷조사를 시작했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보면 채무자의 재직여부를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공문발송을 요구하기도 했다. 팩스 한 장 더 보내는 일이 어려울 건 없었다. 아주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는 채무자가 미리 인사담당자에게 부탁해서 퇴직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채권추심을 방해할 목적으로 재직확인을 거부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공무원, 교사, 공사나 대기업 재직자의 대출한도가 높은 까닭은 이직률이 낮고 안정적인 급여를 지급받기 때문에 대출금 회수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부실채권의 경우 원금과 이자를 모두 회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 않아 전문 추심업체로 매각된 것인데, 급여를 압류하면 아무 손해 없이 추심해낼 수 있었다. 특히 개인회생제도를 신청했다가 실패한 채무자의 경우는 먼저 압류대상이 되었다.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만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연체된 금액을 일부라도 회수하기 쉬웠다.
군인·군무원 중에서도 급여가 압류된 채무자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국방부에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급여를 압류당한 군인과 군무원은 361명, 전체 급여 압류액은 310억 2600만원으로 밝혀졌습니다. 군인·군무원의 급여압류액은 MB정권이 집권 초기인 2009년 350억 2500만원에 달한 뒤 감소하는 추세였으나 지난해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불경기라 하더라도 군인이나 군무원은 일정한 급여를 지급받는 안정적인 직업입니다. 이런 직종에서도 급여압류 채무자가 늘어나고 압류액이 증가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 구성원 다수가 과중한 채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관련기사 : 군인·군무원 급여압류 310억··'육군·부사관' 가장 많아
이혜영 기자, 아시아경제 (링크)
재직확인이 되면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했다. 대출계약서와 연체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문서를 첨부해 접수하고 1~2주 정도 지나면 지급판결이 나왔다. 이 때 채무자가 소액이라도 입금을 해왔던 기록이 있으면 지급명령이 기각되기도 했는데, 이런 결과를 받아내기 위해 정말 적은 금액을 꾸준히 입금하는 지능적인 연체자도 있었다. 부채는 수백만 원인데 매달 부정기적으로 삼만 원 정도를 입금하는 식이었다. 이런 소액입금이 법원의 지급명령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라고 입증해내는 일을 법무과에서 맡았다. 그리고 와이캐피탈의 콘돌리자 법무과장은 유능했다.
일단 법원에서 지급명령 판결이 떨어지면 추심회사에서는 채무자가 재직하는 회사에서 합법적으로 급여를 압류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월급의 일정액을 채무변제금으로 설정해 채권자에게 주었다. 이 때 최저생계비가 고려된다. 근로소득세(주민세) 및 4대보험 근로자 부담분을 공제한 실수령액이 150만 원 이하일 경우에는 압류가 금지된다. 150만 원을 초과해 300만 원 미만의 급여를 받을 경우 15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가 압류되었다. 300만 원에서 600만 원 사이의 월급에 대해서는 1/2, 그 이상의 고액급여자는 1/2 이상을 정산해서, 채무변제금의 상한선이 설정되어 있었다.
급여압류는 채권자 입장에서 가장 쉽게 돈을 받아낼 수 있는 제도였다. 그러나 직장인이 대출금 상환을 연체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급여압류를 신청하지는 않았다. 철수가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채무자는 어느 공사에서 근무하는 직원이었는데 68만 원의 미납금을 몇 년 째 연체하고 있었다. 여러 정황과 채무자의 급여 수준을 고려해 보면 변제하지 못할 금액이 아니었다. 철수는 채무자에게 집요하게 독촉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채무자는 상환금액에서 일부를 깎아 달라고 요구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깎아 주기 싫으면 급여압류 넣어서 받아내시든가."
결국 철수는 이 건을 들고 법무과장에게 갔다. 서류를 받아든 법무과장은 콘돌리자 라이스를 꼭 닮은 표정으로 짜증을 냈다.
"철수 씨, 이런 건 교섭해서 받아. 찌질하게 백만 원도 안 되는 걸 왜 들고 와?"
한 푼이라도 받아낼 수 있다면 당연히 급여압류를 진행해야 하는 건이었다. 그러나 법무과에는 언제나 일이 밀려 있었기 때문에 법무과장은 소액의 채무에 대해서는 급여압류 신청을 보류했다. 사장이 알게 된다면 노발대발할 일이었기에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법무과장은 이런 식으로 은근히 추심원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법무처리비용을 십여만원 선으로 고려해 보면 교섭을 통해 조금이라도 상환액을 낮춰서 그냥 받아내는 편이 낫기도 했다. 그런 정황을 알지 못했던 초보 추심원 철수는 찌질하단 이야기에 울컥 화가 났고 이후로 콘돌리자 법무과장을 피해 다녔다.
때로는 채무자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급여압류를 신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급여를 압류하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로 협박을 일삼은 업체도 있습니다. 과중한 채무로 고생하는 와중에 부당한 압력이 들어온다면 금융감독원에 신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불법추심행위에 관한 처벌 수위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문제의 IBK신용정보에 대해서는 과태료 1000만원 부과, 임직원에게는 주의적 경고 조치와 주의, 채권추심인에게는 과태로 70만원을 부과한 것이 전부입니다.
관련기사: "형사고발"·"급여압류" 거짓말로 채무자 위협한 IBK신용정보 제재
정일환 기자, 뉴시스 (링크)
채무자 입장에서는 채권추심원에게 가능한 한 자신의 정보를 노출하지 않는 편이 유리했다. 어느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지 추심원이 알게 되면 급여통장에는 최저생계비만 남게 될 것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보를 쉽게 흘렸다. 재직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으로 대출을 받으면서 우편물을 받을 주소지로 회사 주소를 기입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당장 빚을 갚을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급여압류만이 아니라 통장압류도 주의해야 한다. 대부분의 추심업체에서는 규모가 크고 이용자 수가 많은 금융사를 골라 우선적으로 압류신청을 했다.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농협, 외환은행, 기업은행 등에 통장이 있다면 압류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규모가 작은 지방은행이나 외국계 은행은 그나마 안전했고 농협은 중앙회가 아니라 단위농협에 통장을 개설하는 편이 낫다. 어쨌든 어느 통장을 사용하는지 추심원에게 알리지 않아야 한다.
실제로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장재완에게 오전에 입금하겠다고 약속했던 채무자가 오후 3시가 지나도록 입금을 하지 않았다. 채무자에게 전화를 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입금을 하려고 했는데 서버가 다운됐대요."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정말로 농협 서버가 다운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오고 있었다. 금융사 서버가 불통이라니 천재지변에 준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닌가, 채무자는 자신이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장재완은 곧바로 법무과에 연락해 채무자의 농협 통장에 압류를 진행했다.
철수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채무자는 충주에 있는 작은 건설회사 사장이었다. 하청에 재하청을 거쳐 공사를 따내는 업자였는데 건설경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연체된 채무가 상환될 가능성이 낮아 보이자 철수가 담당하기 전에 이미 다른 추심원이 통장압류를 신청해 두었다. 철수가 이 채권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는 아직 압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철수는 사장과 통화를 하며 교섭을 시도했다.
“고객님. 지금 통장압류 진행하고 있습니다. 법원에서 확정나면 한 푼도 감면이 안 됩니다. 지금은 제 선에서 이자 전액감면 해드릴 수 있고 원금도 30% 정도 빼드릴 수 있으니까 빨리 처리하시는 게 좋습니다. 더 시간 끌다 보면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도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선배들로부터 배운 전형적인 대사였다. 하루에도 수차례 반복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작은 건설사를 운영하며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쓰는 데 이골이 난 사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돈이 있어야 갚지 돈이 없는데 어떡하나? 우리가 지금 공사 맡은 게 하나 있는디, 시청에 스텐레스 공사 들어간 거 인제 거즘 끝나 가요. 돈 들어오면 연락 할 테니 좀 기다려 봐요.”
보통은 법무과에서 통장압류를 신청하면 한 달 이내로 처리가 되었다. 그래서 철수는 이 채권은 더 이상 교섭할 여지없이 압류진행으로 끝나는가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는 신규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하느라 법무과 일이 너무 바빠서 한 달이 지나도록 통장압류 신청 절차도 들어가지 못했다. 다음 달이 되어서 철수가 교섭자 명단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철수는 채무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법원에서 등기 아직 안 갔습니까? 곧 통장압류 들어갈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니. 기업은행하고 제일은행 통장 둘 다 멀쩡한데...”
철수는 법무과에 연락해 5대 은행에 분할해서 압류신청을 하는 대신 기업은행과 제일은행에 대해서만 진행해달라고 부탁했다. 추심원에게 자기가 거래하는 은행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통장압류의 가장 중요한 단서를 스스로 알려주는 일이었다.
급여압류나 통장압류는 채권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러나 돈을 벌어서 제 손에 한 번 쥐어보지도 못하고 빚을 갚아 나가는 채무자의 입장은 한스러울 뿐이다. 이래서야 일할 맛이 날 리가 없다. 속상한 마음에 술 한 잔 걸치고 로또나 한 장 사들고 돌아서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과다한 채무가 또 다른 범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수많은 통장에 월급이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동안 돈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돈을 벌어들인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급여마저 압류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채무자의 통장에 돈이 있다면 그 돈이 기초생활수급급여이든, 기초노령연금이든, 장애인이나 한부모가족 지원금이든 채권자가 통장압류를 신청할 수 있어 기초생활자의 생계가 위협되고 있습니다.
사회보장기본법 제12조에는 ‘사회보장수급권은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으며, 이를 압류할 수 없다.’고 하지만 공허한 규정만 있을 뿐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상황입니다.
사회복지급여의 압류를 방지하기 위한 전용통장을 개설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19대 국회에 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최동익 의원이 지난 8월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사회복지급여 수급 전용통장을 개설하여 저소득층 채무자의 생존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입니다.
전용 통장은 개인 간의 금융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직 사회복지급여의 입금과 수급자의 출금만이 가능합니다. 통장은 압류되지 않고 담보로 사용하거나 양도될 수 없습니다. 사회복지급여 수급권자의 생계를 보호하기 위해 기초노령연금법,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연금법, 긴급복지지원법, 한부모가족지원법
국회에 상정된 관련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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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