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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23.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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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기사 이야기 <1>]

[수행기사 이야기 <2>]

[수행기사 이야기 <3>]

[수행기사 이야기 <4> : 의전기사 1]

[수행기사 이야기 <5> : 의전기사 2]

[수행기사 이야기 <6> : 의전기사 3]

[수행기사 이야기 <7> : 의전기사 4]

[수행기사 이야기 <8> : 수행택시기사의 '그릇론']






전주에서의 강연을 마치고 버스터미널로 돌아올 때는 다른 택시기사님에게 몸을 의탁해야 했다. 물론 이 분도 기관에서 계약을 한 택시기사님이었다. 첫 번째 택시 기사님이 ‘그릇론’으로 인생철학을 설파하셨던 덕분에 두 번째 택시기사님을 만났을 때도 기대를 했다. 그런데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첫 번째 기사님이 인생 전반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면, 두 번째 기사님은 미시적인 관점에서 접근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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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전주에 오셨으니, 한옥마을 한 바퀴 돌고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 : (웃으며) 몇 번 돌았습니다. 친구가 전주에 살아서 덕분에 좋은데 많이 다녔습니다.


기사 : 다행이네요.


나 : (웃음) 가끔 여기 와서 살아볼까 생각합니다. 친구 놈도 이쪽에 집 얻으면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기사 : 글쎄요. 와서 보기엔 좋은데 젊은 사람들이 있을만한 직장이 별로 없어서...


나 : 저야 글 쓰는 직업이니 어디 있어도 좋죠.


기사 : 글 써서 돈 좀 법니까?


나 : 그럭저럭 입에 풀칠하면서 삽니다.


기사 : 풀칠하는 게 어딥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는 밥줄 쥐고 있다는 자체가 복 받은 겁니다.


나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사 : 그런데 강사님, 결혼은 했습니까?


나 : 예?


기사 : 글 쓰거나 강연 하시는 분들 중에 결혼 안 한 분들이 많아서요.


나 : 어찌어찌 하긴 했습니다.


기사 : 용케도 하셨네요. 글 써서 사는 게 보통 일은 아닐 텐데.


나 : 그러게요.


기사 : 안사람이 돈벌이가 쏠쏠한가 봐요?


나 : 예?


기사 : 글 써서 생계유지 하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보통 맞벌이해야 할 텐데...


나 : 집에서 애보고 있어요.


기사 : 강사님 돈 많이 버시나 보네요? 월급쟁이도 혼자 벌어선 살기 힘든 세상에.


나 : 아닙니다. 그냥 저냥 겨우겨우 숨만 쉬고 있습니다.


기사 : (너털웃음) 강사님도 사는 게 참 빡세겠습니다.


나 : 예?


기사 : (웃음) 제가 OO기관에서 강사님들 실어 나른 짬밥만 2년 정도인데, 다들 여간내기가 아니더라고요. 이게 월급쟁이처럼 돈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거도 아니고.


나 : (웃음) 잘 아시네요.


기사 : 그래도 용케 버티시네요.


나 : (웃음) 죽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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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을 생계에 관한 이야기와 경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구멍’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기사 : 제가 살아보니, 세상에는 딱 두 가지 사람이 있는 거 같습니다.


나 : 두 가지 사람이요?


기사 : 돈 버는 사람이랑, 돈 쓰는 사람이요.


나 : 아...


생산형 인간과 소비형 인간. 이 나이가 되니, 이 말의 의미를 뼛속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난 쪽과 돈을 쓰기 위해 태어난 쪽으로 나뉘어 있다. 돈을 벌기만 하는 사람. 이 사람들은 오로지 돈을 벌기만 했지 제대로 돈을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아는 선배 한 명이 내게 이런 말을 던진 적이 있다.


“너 태어나서 100만 원 써 본 적 있어? 필요해서 물건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소비하기 위해서 앞뒤 재지 않고, 그냥 돈을 써본 적 있어?”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 질문을 받고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직장인이 몇이나 될까? 대다수의 남성들은 ‘소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남자들이 재래시장보다 마트를 더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게 아닐까? 물건 값도 모르고, 어떻게 깎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재래시장은 ‘흥정하지 않고 제값 주고 사면 손해 보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반면, 여성들은 소비에 있어서 프로다. 여자들이 돈만 쓴다는 게 아니라 소비를 하더라도 ‘똑똑하게’ 한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요모조모 뜯어보고, 가격 비교해 가며 소비를 한다.


기사 : 돈 버는 사람은 평생 돈 벌기만 하고 제대로 쓰지 못하죠. 그런데 돈 쓰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돈만 써요. 왜, 집안 보면 나오잖아요? 꼭 한 명씩 있잖아요. 사고만 치는 구멍들. 돈 벌어 본 적은 거의 없고, 집안 돈 다 끌어가서 말아먹는 애들. 사고치는 애들...


나 : 있죠.


정말 신기하다. 어떤 집안을 보든 꼭 ‘구멍’이 한 명씩은 있다. 어딘 가에선 파락호로 불리고 다른 데서는 ‘내놓은 자식’이라 불리기도 하는 사고치는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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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물 속에 가라앉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기사 :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봐요.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나 : 뭐가요?


기사 : 평생 핸들만 잡다가 인생 끝나는 게 아닌가?


나 : 기사님도 다른 꿈이 있으세요?


기사 : 제 팔자에요? 꿈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 이렇게 살다간 평생 일만하다 끝나지 않을까 하는 잡생각이죠. 얼마 전에  중학교 졸업한 이후로 지금까지 쉬어 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계속 일만 했죠. 내 인생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 :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좁은 택시 안에서 반평생을 보냈다면, 충분히 회의감이 들 법도 했다.


기사 : 전주에는 가맥집이란 게 있어요.


나 : 가맥집이요?


전주에 사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가맥집은 전주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한다. 가맥은 ‘가게맥주’의 줄임말로, 슈퍼 같은 가게에서 맥주를 판다는 것이다. 편의점이나 슈퍼 앞에 테이블을 놓고 거기서 술을 마시는데, 가격도 저렴해서 맥주 한 병에 2천 원 정도 한다고 한다.


기사 : 전주에서 정말 유명한 가맥집이 있어요. ‘OO슈퍼’라고.


나 : 예...


기사 : 거기 황태가 정말 유명하거든요?


나 : 황태요?


기사 : 예, 거기 주인이 연탄불에 황태를 구워서 내놓는데, 그게 맛이 기가 막혀요. 전주 오는 손님들도 한 번쯤은 들러보는 유명한 집이에요. 양념장도 맛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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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이 말씀하신 ‘OO슈퍼’를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니 인터넷 여기저기에 정보가 넘쳤다. 전주 사람들에게도 유명했지만, 전주로 여행 온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가봐야 할 명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가게는 허름해 보였지만, 황태를 찢어놓은 모양새나 양념장이 군침 돌게 생겼다.


나 : 이런 데가 있는지 전 몰랐는데, 꽤 유명한 곳이네요?


기사 : 유명하죠. 평일 저녁에 가면 줄 서서 기다려야 해요.


인터넷을 보니, 줄 서있는 손님들의 모습과 ‘대기표’와 대기자들이 쉬는 장소까지 있었다. 정말 유명한 곳인가 보다.


기사 : 가게 주인이 떼돈을 벌었죠.


나 : 그러게요. 저도 한 번 가봐야겠네요.


기사 : 그런데 그 아저씨, 그 돈 써보지도 못했어요.


나 : 예?


기사 : 새벽부터 일어나 황태 손질하고, 가게 문 열면 하루 종일 연탄불에 앉아서 황태만 구웠죠.


나 : 자영업 하시는 분들 다 그렇지 않아요?


기사 : 다 그렇죠. 그런데 이 아저씨는 끝이 좋지 않았어요.


나 : 예?


기사 : 아저씨가 한 일이라고, 눈 뜨면 황태 다듬고, 연탄 쌓고, 맥주 차갑게 하고, 가게 문 열면 연탄불 앞에서 황태만 구웠어요.


나 : 그런데요?


기사 : 그리고 죽었어요.


나 : 예?


기사 :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었어요. 일산화탄소 중독인가? 그걸로.


나 : 아...


기사 : 사람 팔자라고 보기엔 너무 박복하잖아요?


나 : 그렇네요.


기사 : 그 아저씨 평생 고생만하고, 그 돈 써보지도 못하고 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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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사람은 너무 바빠서 돈 쓸 시간이 없다.’ 내 아내가 내게 했던 말이다. 의사는 불행하지만, 의사부인은 행복하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OO슈퍼’의 아저씨는 평생을 연탄불 앞에서 황태만 굽다가 죽은 것이다.


나중에 전주의 친구에게 확인해 보니, ‘OO슈퍼’가 전주에서 꽤 유명하다고 한다. 이곳이 소문난 맛집이어서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한다. 주인아저씨가 평생 황태만 굽다 마지막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었다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 가족들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나오기도 했지만,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기사 : 돈 버는 사람 따로, 돈 쓰는 사람 따로죠. 그 아저씨눈 마지막까지 황태를 구웠다고 합디다.


나 : 억울하겠네요.


기사 : 팔자라고 해도 박복하죠. 목숨 걸고 일하고, 돈 벌었지만 결국 그 돈은 다른 사람들이 쓰는 거죠.


나 : 그래도 가족이니까 덜 억울하지 않을까요?


기사 : 내가 죽는데 가족이 소용이 있습니까?


나 : 그렇긴 하죠.


기사 : 그 아저씨 소식 듣고 딱 하고 느낌이 오더라고요. 태어날 때부터 넌 돈 버는 놈, 넌 돈 쓰는 놈이라고 정해져서 태어나는 거구나.


나 : 그게 정해진다고 정해지나요?


기사 : (강조) 정해지죠. 어른들 말 잘 듣거나, 나라에서 하는 말 꼬박꼬박 잘 듣는 사람들, 학교에서 개미와 베짱이 공부시킬 때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개미처럼 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 그런데 그게 다 거짓말이죠.


나 : 예?


기사 : 개미와 베짱이를 보면, 결국은 개미가 잘사는 것처럼 말하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베짱이 인생이 더 좋아요.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도 세상은 생산형 인간과 소비형 인간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신봉하는 인물이었는데, 자기 언니를 보면서 자기와 같은 생산형 인간이 소비형 인간보다 불행하다고 한탄을 했더랬다.


“돈을 벌지 못하는 소비형 인간들은 ‘소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의의를 설명해. 재미난 게 이 사람들 논리가 이걸 사게 됨으로써 얼마를 더 벌게 됐다는 논리야. 똑똑한 소비라고, 이걸 이때 사게 됨으로 우리가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말하는데, 개소리지. 어차피 소비잖아? 억울한 게 돈 버는 사람들 보다. 돈을 쓰며 사는 게 훨씬 더 행복하다는 거야. 나도 소비형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생산형 인간이 느끼는 만족과 소비형 인간이 느끼는 만족, 어느 게 더 클까? 적어도 내 입장에선 소비형 인간이 더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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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돈 버는 사람은 결국 그렇게 돈만 벌다가 죽는 거예요.


나 : 돈 버는 사람도 즐기면서 살 수 있지 않나요?


기사 : 즐긴다고 해 봤자 얼마나 즐기겠어요? 돈만 벌던 사람은 돈 쓸 줄을 몰라요. 돈도 써 버릇해야 쓰는 법을 아는 거 아닙니까? 돈을 쓸 줄만 아는 사람들의 씀씀이를 이길 수가 없어요. 이건 태어날 때부터, 살아오면서 몸으로 익힌 거예요. 이걸 극복할 수는 없어요. 결국 돈 버는 사람은 돈 쓰는 사람들에게 평생 뜯기며 사는 겁니다.


나 : 그럴까요?


기사 : 전 그렇게 봐요. 웃기는 건 돈 버는 사람들도, 돈 쓰는 사람들도 그걸 몰라요. 돈 버는 사람들은 이게 당연하다고 느끼고,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보다’ 그렇게만 알아요. 돈 쓰는 사람은 이게 당연한 거고, 평생 돈 쓸 줄만 알죠. 만약에 돈 버는 사람에게 돈 써보라고 하면 어쩔 줄 몰라 할 걸요? 아니, 이 경우엔 괜찮아요. 돈 쓰는 거니까. 반대로 돈 쓸 줄만 아는 사람에게 돈 벌라고 하죠? 그럼 사단이 터지는 겁니다.


나 : 그럼 어떻게 하죠?


기사 : (웃음) 뭘 어떻게 해요? 팔자라고 생각하고 계속 그렇게 살아야죠. 그냥 내가 사는 세상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해요. 괜히 기웃거리다 보면 힘 빠져서 못 살아요. 하긴 태어나 배우길 그렇게만 배웠는데 다른 길을 봤겠어요?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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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은 그렇게 돈 버는 사람과 돈 쓰는 사람의 관계 정립을 마쳤다. 아무리 애써도 돈 버는 사람은 돈 쓰는 사람이 될 수 없고, 돈 쓰는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돈 버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주장. 그리고 돈 쓰는 사람이 돈 버는 사람보다 인생을 훨씬 행복하게 살거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


내 후배 중 전형적인 ‘소비형 인간’이 있는데, 이 녀석의 별명이 ‘데굴데굴’이었다. 위로 누나 2명과 어머니가 계셨는데, 무슨 일이 있으면 찾아가서 데굴데굴 구르는 것이다. 그럼 뭐가 나온다. 제대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가 제수씨를 만나 덜컥 임신을 했다. 그러자 이 녀석은 어머니를 찾아가 데굴데굴 굴렀고, 곧 신혼집이 생겼다. 제수씨의 배가 불러오자 다시 어머니와 누나들 앞에 가서 데굴데굴 굴렀다. 제수씨가 병원 갈 때 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차가 생겼다. 조카가 태어나고 나서는 공무원 시험 준비 못하겠다고 데굴데굴 구르니 PC방이 생겼고, PC방이 망하자 데굴데굴 굴러 커피숍을 차렸다.


처음엔 이 녀석을 손가락질 했는데, 이 나이가 되고 나서 이 녀석이 현명하단 걸 깨달았다. 녀석의 인생 자체로만 보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주위의 손가락질을 제외하면 무척이나 행복한 삶이다. 뭔가를 얻어내고 소비하기 위해 이 정도 대가, 그러니까 주변의 비아냥과 질시, 생각없다는 질책 정도는 받을만 하지 않은가? 오히려 싸게 먹히는 게 아닐까?


언제인가 TV에서 ‘똑똑한 소비’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이렇게 사서 오늘 얼마를 아꼈는지 알아?”


물건을 샀기 때문에 돈을 아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 그게 필요한 생필품이라면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래 보이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게 바로 소비형 인간의 ‘논리’였다. 돈을 씀으로써 돈을 절약했다는 논리.


“남자는 꼭 필요한 물건을 두 배 가격으로 사고, 여자는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반값으로 산다.”


아마 난 부정할 수 없는 생산형 인간일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뭔가를 생산하기만 했으니 말이다. 두렵다. 나도 ‘OO슈퍼’의 아저씨처럼 평생을 연탄불 아래서 황태만 굽다가 돌연사할까 봐.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기사님의 말씀처럼 곁눈질 하지말고 이 길만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노력을 해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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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내 생각의 방향을 정리했다. 3시간 가까이 이 문제를 뜯어보았는데, 결론은 기사님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돈 버는 놈은 계속 돈만 버는 게 맞다.”


돈 버는 놈이 돈 쓰는 놈을 쫓아갈 수는 없다. 기사님의 말처럼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고, 배우길 그렇게 배웠다. 아는 형님 중에 명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와 증권사에 취직한 분이 있다. 문제는 이분이 생산형이 아니라 소비형이란 게 문제였다. 몇 번의 부침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뒤이은 투자실패로 노숙을 시작했다. 5년의 떠돌이 생활 끝에 저축은행에 있는 몇몇 지인들과 합심해 PF자금 수백억을 끌어와 사업을 시작했다. 딱 1번의 성공과 몇 번의 실패가 교차했음에도 이 형님은 아직까지 잘 살아가고 있다.


이미 예전에 신용불량자가 됐지만 딱히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하지 않는다. 씀씀이도 커서 한 달에 1~2천만 원은 쓰는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돈이 본인 돈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땡겨 온 돈이라고 하더라. 내 상식으로는 이 돈을 모아서 사업자금으로 융통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그 형은 달랐다.


“사장의 덕목 중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바로 가오야 가오! 돈 1~2천에 쪽팔리면 어떻게 수십억을 굴리냐? 그리고, 내가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 쓸 수 있을 때 쓰는 거지. 어차피 인생 한 번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형님 말이 맞았다. 어차피 인생 한 번 뿐이고,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나다. 남 눈치 볼 필요가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맞다. 돈을 버는 것보다 남의 돈으로 내가 즐겁게 살겠다는 데 그걸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은 져야겠지만 그건 허술한 우리 법체계를 탓해야 할 것이고, 그 형님은 지금도 잘 먹고 잘 산다.


결국 바보 같은 생산형 인간들만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이다. 나에게 이렇게 살라 하면 살지 못할 것이다. 사실 한 번 시도해 본 적은 있다. 작년에 미친 척 하고 일을 끊었지만, 결국 쌓여가는 빚과 내 마음 속의 불안감이 날 일터로 내 몰았다. 아니, 그 이전에 좀이 쑤셨다. 역시 난 생산형 인간이었다.


강연을 하러 갔다 강연을 듣고 온 며칠이었다. 








펜더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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