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8. 월요일
Ath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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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사서 고등어를 사다.
이 문장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테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문장임은 분명합니다. 시골에서 어르신들이 간혹 사용하는 것을 듣기도 합니다만 도시민들이나 비교적 젊은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거나 모르는 표현일 것입니다.
쌀 사다. 쌀 팔다.
지금의 언어법으로 이야기하면 쌀을 살 때는 ‘쌀 팔다’라고 말했고 쌀을 팔 때는 ‘쌀 사다’라고 말했습니다.
쌀을 ‘사서’ 고등어를 샀다는 말은 쌀을 ‘팔아서’ 고등어를 샀다는 뜻이죠. 쌀 말고도 모든 곡물을 사고 팔 때는 지금의 언어와 반대로 사용했습니다.
“이번 설은 어떻게 나실 생각이세요?” 하고 물으면
“나락 한 가마니 사고 콩 둬 말 사고 깨 한 말 사서 소고기도 사고 생것도 사서 나야지.”
라고 대답하는 형태죠.
팔고 살 때 모두 “사다”란 표현을 사용하지만 뜻은 정 반대입니다.
‘팔다’라는 표현은 이렇게 쓰입니다.
“아톰아!! 쌀집 가서 쌀 한 말만 팔어 오니라!”
엄마가 이렇게 말 했다고 쌀을 들고 나가면 쳐 맞습니다. 네. 쌀을 사오라는 말인거죠.
왜 그랬을까요?
지금은 헛갈린 말이지만 시간을 사오십 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화폐 이전에 쌀을 비롯한 곡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저런 화폐가 통용되긴 했지만 곡물이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가치가 오르내리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쌀로 돈을 사왔던 것입니다.
“아톰아! 쌀집가서 쌀 한 말만 팔어 오니라!”라고 말 할 때 돈을 팔아서 쌀을 받아오라는 뜻이었죠. 돈. 그게 무어라고 목숨을 담보했겠습니까. 생명을 지키는 최고의 가치는 쌀을 비롯한 곡물에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어릴 때도 어렵지 않게 듣던 표현이었습니다.
“논 한 마지기 나락 백 가마니 값 주고 샀어.” “소 한 마리 나락 스무 가마니 값 받고 팔았으면 잘 팔린 속이지.”라는 표현들을 심심치 않게 들었으니까요. 여전히 곡물의 양으로 가치를 환산했던 것이죠.
농업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전환되면서 이런 표현들이 사라졌지만 그와 함께 사라진 개념도 있습니다. 바로 식량이죠.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면서 식량에 대한 개념은 공기나 물을 대하는 것과 같아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니즘을 이야기하지만 그 먹고사니즘을 떠올리는 관념에는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밥과 고기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통장에 찍히는 숫자로 떠오를 것입니다.
차가 먹는 기름 값이 내 입으로 들어가는 라면 값보다 많지만 어쩌겠습니까. 차를 먹여야 라면이라도 먹고사니 차에 기름을 먹일 수밖에요. 이 풍요의 사회에서 빈곤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먹거리 이야기로 풀어보겠습니다.
녹색혁명
1944년 록펠러재단과 포드재단의 주도로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이 시작됩니다. (존 데이비스 록펠러는 스텐더드 오일의 창립자이고, 스텐더드오일은 엑슨모빌의 모기업입니다.) 농업도 공업처럼 개발과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멕시코에 밀 품종개량 연구소, 필리핀에 쌀 개량을 위한 연구소를 비롯해 전 세계 16곳에 연구소를 출범시킵니다. 이 연구소에서 다수확 품종을 개발하고 세계에 보급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립니다. ‘괄목할 만한’이란 표현은 너무 치사하네요. 혁명이라는 말에 어울릴 법한 획기적인 성과를 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시아의 경우 벼 경작 면적의 75%정도가 녹색혁명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통일벼도 녹색혁명의 영향아래서 개발된 품종입니다.
녹색혁명을 계기로 미국의 기업들은 제 3세계 국가 진출이 용이해 졌습니다.(현재도 GMO농산물을 무상원조 한다는 명목으로 3세계 국가 진입을 시도하고 있죠) 한국도 식량원조 등을 통해 거저먹을 수 있었던 거죠.
(멀더요원의 <도움의 기술>기사에서 원조에 관한 내용을 참조해 보세요.)
원조를 하면서 농업 기술도 함께 전수해 줍니다. 그런데 기술만 가지고는 농사짓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바로 비료와 농약이 필요했던 것이죠. 녹색혁명은 물과 비료, 농약을 대거 투입해서 얻은 결과물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녹색혁명은 전 세계에 풍요를 알리는 축포였는데 그 축포가 방사능비가 되어 내리는 꼴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무튼 당시에는 환호성을 지를 법한 일이었겠죠. 벼에 달린 이삭이 50여 알도 되지 않던 기나긴 시간을 살아오다 150알 200알의 이삭이 달려 있는 벼를 보았을 아시아의 사람들의 눈이 뒤집히다 못해 개거품을 물고 자빠질 일이었을 테니까요. 우리 아빠가카도 개거품을 물었을 게 분명한 일이죠. 지금도 통일벼 예찬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흠...
앞에서 말했듯이 품종만 좋다고 농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과 농약과 비료가 필요했던 것이죠. 관계수로를 정비하고 농약과 비료를 사들입니다. 미쿡 엉아들이 종자개량 하는 건 좀 도와 줬어도 농약과 비료는 그냥 안줬던 거죠.
미쿡 엉아들이 이때까지만 해도 꿩은 안 먹고 알만 먹었던 시절입니다. 비료와 농약을 대거 투입한 가을 들판은 황금빛으로 출렁거렸습니다. ‘아팝에 고깃국’ 시절이 도래한 것이지요. 이리도 신묘, 절묘, 교묘하니 이전의 농법들은 모두 버려지게 됩니다. 이전의 종자들도 모두 벼려지게 되지요. 흑미, 녹미 등을 다시 밥상에서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후에야 가능했고 이제는 찾을 수 없는 종자들도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필리핀의 경우 녹색혁명 이전 1000여 종에 달했던 토종 볍씨가 이제는 10여 종만 남아 있다더군요. 종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농약과 비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지력이 떨어지면 더 많은 농약과 비료를 투여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주요 곡물을 제외한 다양한 생물들도 멸종하거나 멸종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굶어 죽을 일은 없게 되었는데도 아빠가카는 계속해서 식량 원조를 받습니다. 무상원조가 아닌 유상원조로 받게 됩니다.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발돋움 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시고 식량은 수입해서 조달하고 공업을 육성하려 하시었던 것이지요. 그로인해 쌀값은 폭락합니다. 생산량도 많은데 수입까지 하니 폭락하지 않을려구요.
미쿡 엉아들은 졸라 땡큐였습니다. 안그래도 밀과 옥수수의 생산량이 너무 많아 바다에 내다 버릴 지경였는데 수입을 하겠다니 졸라 땡큐!! 덤까지 얹어 졸라 퍼줍니다. 원조성이긴 하지만 나중에 돈을 받을 것이니 퍼줘도 상관 없었던 것이죠. 이 당시 혼 분식 장려운동을 벌인 이유입니다. 쌀이 귀하니 밀가루도 함께 먹자는 말은 개뻥이었습니다.
국내 쌀 생산량은 70년대 초반까지 자급률 70%를 밑돌았지만 1976년에는 자급률 100퍼를 뛰어 넘어 곡물을 수입하지 않아도 온 국민이 밥 먹고 살 수 있었는데도 밀가루를 수입해 혼 분식을 장려했었습니다. 저렴한 밀가루와 옥수수가 밀고 들어오니 쌀값은 폭락하고 농민들은 고향을 뒤로하고 도시로 떠나게 됩니다. 이촌향도의 시절은 이렇게 도래했습니다.
우리 입에 맞는 다양한 밀가루 음식들이 개발되었고 축산업의 발달로 육류와 유제품이 대거 공급되면서 쌀은 더욱 더 외면받게 되었습니다. 민족의 식성이 변하게 된 것이지요.
녹색혁명은 곡물에 국한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파생상품이 출현합니다. 소, 돼지, 닭고기입니다. 소는 다시 우유와 분유를 낳았죠. 생산된 곡물이 남아도니 가축에게 먹였더라. 먹였더니 잘 크더라. 먹었더니 맛있더라.
고기 못 먹어 환장한 귀신(나?)도 아닌데 엄청난 양의 고기를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80년대 51만 톤을 생산하던 것이 2007년 171만 톤으로 증가했습니다. 2007년 실제 공급량은 231만 톤 이므로 수입된 육류는 60만 톤에 이르죠. 이 양이 짐작이 가십니까? 저는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배가 해피자이언트라네요. 이 배의 무게가 56만 톤. 길이가 485미터. 이 배 네 척이 조금 넘는 무게. 질량 부피 그런 거 따지지 말고 그냥 사람들이 이 배를 뜯어 먹는다고 상상해 보면.... 음....이만한 배 네 척을 1년 동안 뜯어먹고 산다는 말이죠... 음... 네....
그래도 짐작은 되지 않습니다. 무튼 많이 먹습니다. 고기를 먹는 것은 좋은데 축산업의 발달과 육류 소비량의 증가는 동물은 먹이고 사람을 굶기는 일이 벌어지도록 만듭니다. 사람이 먹을 곡식을 동물에게 먹이는 것이죠.
현재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전 세계 모든 인구를 먹여 살리고도 남을 양이지만 9억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20억 명이 영양 부족 상태입니다.
71억 명의 인구 중 30억 명이 밥을 못 먹고 사는데 약 10억 마리의 가축이 사육됩니다. 30억 명이 먹을 곡식을 가축이 먹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소고기 1kg을 생산하는데 사료 20kg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생산된 고기는 다시 밥술이나 뜬다는 30억 명의 입으로만 들어갑니다. 41억의 인구는 고기를 먹지 않거나 구경도 못하는 사람들이죠. 과식과 엄청난 양의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는 음식은 차치하더라도 이러합니다. 축산업의 폐해는 고기편에서도 다뤘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수산물 양식도 들여다 볼까요.
바다는 어느 정도 평온할 것 같지만 양식업이 발달하면서 축산업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현재 양식으로 공급되는 수산물은 전체 공급량의 35%정도를 차지한다더군요. 이 양의 수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어분이 필요합니다. 물고기 1kg을 생산하는데 4kg의 어분이 필요합니다. 어분은 건조 분말 상태의 사료이니 실제 갈려 죽은 물고기의 양은 두 배 이상이겠죠.
양식장의 물고기를 먹이는 어분의 주원료는 바다에서 잡아올린 물고기들입니다. 맛있는 정어리를 맛없는 연어를 키우려고 어분으로 만들어 먹인답니다. 저인망 어선으로 잡다한 물고기를 싹쓸이해 한태 넣고 사료로 만들기도 합니다. 멸종 위기종, 희귀종을 가려낼 방법도 없고 생각도 없습니다. 35%가 양식으로 공급된다고 볼 때 양식장의 물고기에게 먹이로 공급되는 물고기의 양은 전 인류가 1년 동안 먹는 물고기양의 두 배가 넘습니다.
우리가 먹는 새우, 광어, 우럭, 농어, 점성어, 도미 할 것 없이 모두 그렇게 만들어진 어분을 먹고 키워지는 것이죠.
항생제, 성장촉진제, 유전자변형수산물 등 축산업에서 행해지는 모든 못된 짓을 양식업도 똑같이 답습하고 있는 중입니다. 예측 가능한 것이지만, 어분의 값이 두 배 이상 폭등했고 생산단가조정이 어렵다 여겨질 때 축산물의 부산물이 어분에 섞여 들어갈 가능성은 농후해 보입니다. <고기>편에서 밝혔던 카길과 같은 거대 농기업은 농, 수, 축산물의 생산, 유통, 가공 등 전면에 관여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일일 것입니다.
녹색혁명 이후 모든 사람이 배곯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식량 문제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거대 농기업과 제약회사는 더 많은 이윤추구에 골몰하고 있고 각국 정부는 이들의 놀음에 삽질로 보답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국내 식량 자급률은 25%를 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IMF와 충분한 협상을 벌이지 못하고 불리한 융자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밀가루 값 상승에 온 나라 실물 경제가 흔들리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실물 경제가 흔들려도 위와 같은 이유로 식문화가 다변화 되었고 농촌은 산소호흡기 뗄 날만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 당장 개선할 방법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식량이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값을 치르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의식이 가장 큰 문제라 생각됩니다.
생산이 어렵고 값이 비싼 유기농 농산물이 모두를 먹여 살릴 대안이 아닐 터인데 값을 치르면 ‘나는 안전한 식재료를 취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식량을 소비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생산된 농산물에 대한 값을 치르고 내 입에 넣는 일은 나중 일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해서 내 입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또한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식량이 무엇일지도 고민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무려 75%를 수입에 의존합니다. <알레르기와 식재료>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어디서 생산되고 어떻게 생산됐는지 모를 식재료들이 가공되어 손에 들려지고 입으로 들어갑니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은 태산처럼 크지만 개선할 의지는 좁쌀만 합니다. 나와 내 가정이 깨끗한 음식을 먹는다고 그 불신과 불안이 해소되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불신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식량자급률을 높이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농산물이 수입되는 길을 막는 방법은 갈수록 줄어듭니다. 정부는 WTO, FTA를 거들먹거리며 뒷짐 지고 훈수나 두고 있고, 식품가공 업체들은 저렴한 농산물을 이용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 싶어 할 테지요. 유통업체는 생산자를 쥐어짜 수익을 창출하려 할 테구요.
뭐 이래?!
로컬푸드
녹색혁명과 자유무역은 대농과 대상인에겐 기회였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식량을 소비하는 대다수의 개인에겐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정부는 거대한 ‘카이주’(수입농산물)에 맞서기 위해서는 거대한 로봇 ‘예이거’(대농과 대형유통업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다수 소농의 토지를 소수의 손에 집중시켜 대농을 육성하고 근대적 기계화 농업을 확립해 단일작목 중심의 규모화농을 육성시키는 농업구조개선에 몰두했습니다. 그리하여 ‘카이주’에 맞서 국민을 보호할 임무를 띤 ‘예이거’가 만들어지기는 했는데 국민은 죽고 ‘예이거’만 살아남았습니다.
소농, 고령농은 논바닥의 잡초가 되었고 예이거의 발에 밟혀 죽어나고 있습니다. 카이주를 잡으랬더니 논바닥에서 무술연습중이라나... 카이주는 이미 도시를 집어삼켰습니다. 도시민들은 예이거가 구하러 온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예이거가 구하기는 커녕 카이주와 경쟁하며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는 형국입니다. 알고 봤더니 예이거는 카이주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괴물이었더군요.
이런 판국인데 정부는 아직도 예이거에게 힘을 실어주려 하고 소농들의 요구는 묵살합니다. 일례로 식생활이 변화되어 밀가루 소비량이 늘어났으니 밀농사를 지어보자는 움직임이 한동안 보였습니다. 4~5년 전의 일이죠. 남부지방에서 밀농사를 지어 정부에 수매를 요구했지만 묵살되었습니다. 당근, 수입되는 저렴한 밀가루가 이렇게 많은데 수매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죠. 국제법과 관련된 복잡한 이유들이 있지만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생산단가라도 줄이도록 생산비 지원을 요구했지만 육성종목이 아니어서 그럴 수 없다고도 했지요.
아니! 쌀과 밀을 가장 많이 먹고사는데 육성종목이 아니라니?!! 전체 곡물 재배면적 중 2%를 유지하던 밀농사는 1%대로 내려앉았습니다. 보리도 그러했고 콩도 그러했습니다. 정부는 식량자급률을 높이려는 의지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언제나 그러했지만 이렇게 꽉 막힌 상황에서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민초들이 담벼락에 뿌리를 내리고 담을 허물어뜨립니다. 이 견고하고 거대한 벽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는 움직임이 있어 소개해 보려 합니다. 완주군 로컬푸드 입니다.
완주군은 전주시를 둘러싸고 있고 대부분의 토지가 농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완주군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주로 전주시에서 소비됩니다. 지금까지 완주군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들은 전주 시내의 시장과 유통업체로 들여와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형태였습니다. 생산된 농산물이 소비자를 찾아가는 형태였던 것이죠.
1년 전 이러한 구조를 깨고 소비자가 생산된 농산물을 찾아오도록 만든 완주 로컬푸드 1호점이 용진면에 문을 열었습니다.
전주시를 경계로 북완주에서 소농들이 생산한 농산물들을 판매하는 직거래 매장을 오픈한 것입니다. 기존의 유통 방식처럼 유통업자들의 손을 거쳐 한 자리에 모여지는 것이 아니라 농산물을 생산한 농부들이 판매장으로 농산물을 들고 와 자신의 이름과 사진이 붙어있는 판매대에 진열하면 용진농협에서 판매만 대행하는 형태입니다.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가 직접적인 판매자가 되는 것입니다.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아 신선함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생산자의 얼굴과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신뢰를 높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매장에 나가보면 물건이 다 팔린 자리에 농산물을 채우고 진열하는 생산자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물건이 떨어져 가면 관리자는 농부에게 연락하고 농부는 논과 밭에서 바로바로 농산물을 채취해 판매대에 채워 넣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자동차로 30분 안에 도착 할 수 있는 거리기 때문에 유통과정은 생략된 것으로 보아도 무관합니다.
농부가 이렇게 농산물을 진열해 두면 소비자가 찾아와 구매합니다. 완주 로컬푸드1호점은 배송을 하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직접 찾아와야만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배송을 하지 않는 것이 ‘로컬푸드’라는 이름에 걸맞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먹는다는 취지이므로 인터넷 판매나 전국 배송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온라인 판매는 취합 후 확산의 형태이기 때문에 중앙의 통제에 놓이게 되고 생산자의 권리가 축소될 우려가 큽니다. 로컬푸드에는 생산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도 담겨있습니다.
소비자가 왕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생산자가 왕이란 말도 아니죠. 신뢰할 수 있는 상품이 있다면 소비자가 찾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로컬푸드 매장에 진열되는 농산물은 계절별로 변화됩니다. 지난주에 갔을 때는 오이가 없더군요. 지금은 오이가 나는 계절이 아닙니다. 제철 농산물만 판매되는 것이죠. 문론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가지와 상추도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은 그 계절에 생산된 농산물이 판매됩니다. 지난주엔 호박, 생강, 고구마, 감과 여러 가지 곡물들이 눈의 띄었습니다. 가을철에 주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농산물들입니다.
소비자가 왜 오이는 없냐고 물을 수 없습니다. 오이를 생산한 농부가 없으니까요. 오이도 판매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것이죠. 다른 지역에서 들여올 수도 없는 것이고.... 소비자는 이곳이 제철 농산물만 판매한다는 사실과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만 판매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찾아옵니다. 자연스럽게 제철을 맞은 지역 농산물이 식탁에 오르게 되겠죠.
생산자를 선정하는 기준은 소농에 맞춰져 있습니다. 1ha 이하의 농지를 소유한 농민들에게만 판매를 허용합니다. 1ha는 3000평입니다. 완주군 내의 소농이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로컬푸드 매장에 판매를 요구하면 완주 관내에서 3회의 교육을 시키고 수료증을 부여합니다. 교육을 수료하면 매장 진열대에 생산자의 이름과 사진이 붙게 되고 그 자리에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진열해 판매합니다.
가격 결정도 생산자의 몫입니다. 일반적인 가격은 형성되어 있지만 생산자 본인의 의지에 따라 가격을 올리고 내릴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품질관리는 품질관리 위원회가 조직되어 잔류농약검사, 위생검사, 품질검사 등을 진행합니다. 대형유통업체에 비해 소량의 농산물을 검수하기 때문에 검수의 신뢰도가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는 로컬푸드의 가장 큰 장점은 소비자가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호박 생산자에게 직접 호박 값을 지불하면 그 비용은 내년에 생산될 호박의 생산 비용이 되는 것이어서 소비자가 매우 직접적으로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존 유통 방식에서도 어떤 방법으로든 농산물은 소비자가 구매하게 되고 생산자는 판매해 소득을 올리게 되지만 생산자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쪽은 유통업자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생산에 직접적으로 참여한다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컬푸드의 유통 방식은 올 해 호박 값으로 지불한 비용이 내년에도 같은 호박을 생산하게 만드는 지속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생협이 지속성을 잃고 주춤거리는 이유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연결하지 않고 계약 재배, 계약 배송의 형태로 운영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협은 생산자보다 소비자의 권리가 더욱 강한 회원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생산자가 소비자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전국 단위 유통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계약 재배를 하는 이유는 전국 단위 유통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함인데 그로 인해 시설과 생산설비가 미비한 소농은 배제될 수밖에 없는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상생이라는 모토로 출발한 생협이 자격을 갖추지 못한 소농은 배제하는 모순을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생이 아니라 ‘우리끼리’ 혹은 ‘나만’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로컬 푸드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우려스러운 부분도 상당합니다.
첫 번째 우려스러운 부분은 조직이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최근 전주시 효자동에 점포를 낸 완주 로컬푸드 2호점은 1호점과 운영 방식은 같지만 운영 주체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1호점은 용진면 농협이 주관하고 2호점과 로컬푸드 해피스테이션은 농업회사법인 완주로컬푸드주식회사가 주관합니다.
완주군이 총체적인 사업을 주관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사업주체가 다변화된 인상을 주게 되고 자칫 신뢰도가 떨어질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사업주체가 둘로 나뉘면서 눈에 띄는 차이점도 보입니다.
완주 로컬푸드 1호점은 인터넷 판매나 배송 판매를 하지 않고 소비자가 직접 방문하는 판매 형태를 고수하지만 2호점은 인터넷 판매와 식품꾸러미 판매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농업회사법인 완주로컬푸드주식회사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완주 로컬푸드를 홍보하는 단계에서 시행되고 있는 사업이라지만 로컬푸드의 근본 취지를 벗어난 것으로 해석됩니다. 전국 단위 판매는 지금 당장 매출의 신장을 올릴 수는 있겠으나 장기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타 지역의 로컬푸드를 보호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로컬푸드의 근본 취지는 지역의 소농을 보호하고 소비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려스러운 부분은 판매되는 농산물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제철 농산물을 주로 판매하니 다양하지 못한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면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농업은 소품종대량생산 체제를 목표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농가에서 재배되는 품목이 다채롭지 못했습니다. 텃밭이 해체된 결과입니다.
품목의 다양성 문제는 농가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적어도 군다위에서 다양한 토종품종을 찾아내고 농가에 씨앗을 보급해 상품으로 생산해 내는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삽질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삽질한 땅에 뿌릴 씨앗을 보급하는데도 힘쓰시길...
세 번째로 우려스러운 부분은 로컬푸드라는 이름을 내건 수익사업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런 움직임은 곳곳에서 포착됩니다. 완주 로컬푸드가 성공하면서 사조직이 움직여 이곳저곳에 완주 로컬푸드라는 이름을 내걸고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업에나 따르는 일일 테지만 생겨 난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사이비 로컬푸드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근본 취지를 흐리고 있습니다.
기관은 이럴 때 나서라고 있는 것입니다. 로컬푸드의 연대를 강화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로컬푸드의 근본취지를 알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산처럼 움직이지 않고 든든히 버텨주면 될성부른 떡잎이 튼실한 나무로 자라날 것입니다.
전라북도에는 유명한 제과점이 두 곳 있습니다. 대형 프렌차이즈 제과 업체들과 맞서기 위해 50여 개의 점포를 오픈하며 몸집을 불린 풍년제과와 한 자리에서 하나의 점포로 70 여년을 지켜온 이성당입니다.
풍년제과는 대형 프렌차이즈 제빵 업체들과 같은 방법으로 제빵 공장을 설립하고 중앙에서 생산해 지점들에 배포하는 형태로 사업을 확장하다 스스로 불타 죽은 거신병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해 전주 시내에 몇 개의 점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 제과점을 운영 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풍년제과라는 간판을 사용하긴 하지만 점과 선으로 연결된 느슨한 조직으로 운영됩니다.
기본적인 레시피를 공유하고 대표적인 제품들을 공통적으로 생산해 판매하지만 다양한 빵을 생산해 내는 것은 각 장의 몫이 되었습니다.수장의 지위 하에서 움직이는 프렌차이즈가 아닌 독자적인 형태로 운영됩니다. 쓰러져가던 풍년제과는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100% 우리밀 빵을 고수하고 신 메뉴 개발에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 결과입니다. 전주 시내에 있는 풍년제과마다 메뉴가 다르고 운영 방법도 다르고 맛도 다르지만 ‘빵이 맛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컬푸드도 풍년제과와 같이 발전하길 바랍니다. 큰 시련을 딛고 일어선 소농들의 모임입니다. 같은 로컬푸드라는 이름을 내걸고 기본적인 룰을 지켜가며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들마다 서로 다른 좋은 맛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운 농법을 전수하고 새롭게 찾아낸 토종 씨앗을 나눠주며 텃밭을 일궈가길 바랍니다. 노력과 인내는 사람들을 모이게 합니다. 이성당은 그 노력과 인내의 결과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랫동안 그 맛을 잃지 않고 새로운 빵을 만들어내는 이성당의 지금은 저와 같은 소비자들의 성원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저야 뭐... 맛있으니까 평생을 먹고 있다고 말하겠지만요.
엄마는 40여 년간 텃밭에서 나는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며 살아 왔습니다. 말하자면 로컬푸드의 산 증인이죠. 3000평 정도의 밭에 100여 가지가 넘는 농작물을 키워냅니다. 저 알아서 나고 자라는 냉이, 달래, 미나리, 쑥 등을 제외하고도 100여 가지가 넘습니다.
계절 마다 다종다양한 농작물들을 이고지고 사장에 나가 판매합니다. 저 어릴 때는 등에 저를 업고 팔러 다니셨다더군요. 시장 모퉁이 길바닥에 앉아 손수 따고 다음은 푸성귀를 팝니다. 예쁘지도 않고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지만 찾는 사람이 심야식당을 찾는 사람 만큼은 있는 듯 합니다.
엄마가 조금 버럭쟁이긴 합니다만 레알 버럭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 삼천평 땅덩어리에서 무수히 많은 것들이 자라 올라오는데 그 자라 올라오는 것들을 발로 밟을 때 쩌렁! 소리를 지릅니다. 발 조심하라고. 옥수수 하나 심어 놓은 자리를 알고 그 곳을 피해 다니고 팥 한 알 떨어진 것이 아까워 다른 일 마다하고 주머니에 주워 담습니다. 과연 그 팥 한 알이 아까워 주워 담는 것일까요? 내 손으로 키워낸 것이니 주워 담는 것이겠죠. 식량을 사고 팔 땐 이런 마음을 주고 받는다 여겨야 하지않겠나... 마... 그래 생각합니다.
참고도서
먹거리 위기와 로컬푸드 - 김종덕(이후)
누가 세계를 약탈하는가 - 반다나 시바(울력)
참고자료
완주 농정과 로컬푸드 - 완주로컬푸드팀장 - 강성욱
연구보고서 55- 우리나라 식량안보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 한국과학기술원 한림원 - 이철호
Athom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