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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천천히 봤더니 생각보다 다들 착하게 생겼다. 내 앞에 서서 날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들은 전부 다 어려보였다. 물론 수염이 난 사람도 있지만 많지는 않았고... 그때 난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다. 언제까지 있을지는 모르지만, 당장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이왕에 있는 거 좋게 있자. 내가 화를 낸다고, 짜증을 낸다고, 내일 당장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맘을 고쳐 먹고 난 운동화를 신고 천천히 수용소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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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사실 그리 나쁘지 않다. 200명 정도가 한번에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6~8명 식탁이 한 가운데 있고, 그 뒤로는 한번도 눈을 감은 적이 없는 강한 전자렌지 2대가 있고 그 옆은 영치금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컴퓨터 마켓(영치금으로 살 수 있는 게 어마어마하다. 성폭행 방지용 속옷도 판다) 수십권의 책, 마지막으로 전화기가 보였다.


난 반가운 마음에 전화기를 들었지만, 전화기는 돈을 넣어야 걸리는 것 같았다. 여기서 어떻게 전화를 걸어서 여기 있다고 알리나... 밖에서 걱정하고 있을 텐데... 멀리서 밀리앙이 날 쳐다보았다.


“전화 써야하면 말해. 내 계정에 돈 있으니 쓰고싶을 때 말해.”


난 밀리앙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손에 있던 수화기를 밀리앙에게 건네며 빨리 계정 누르라고 눈빛을 보냈다. 밀리앙은 흔쾌히 번호를 눌러주었다. 전화가 연결되기 전 남은 잔액은 3불 남짓. 한 통이면 끝인데 너무 고마웠다.


"어~ 어~ 잡혔어? 어떻해~?"


예전에 미국에 잠시 지낼 당시 여자친구였던 친구다.


"아, 미안... 걱정 많이 했지. 나 지금 잡혀서, 이제서야 돈 빌려서 전화해... 여기 시애틀에 있는 수용소야..."


“그래, 어쩐지 연락이 없길래 잡힌 것 같더라. 몸은 괜찮아? 참... 내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샌프란에 있는 니 친구랑 통화했어.“


샌프란에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있었다. 친구 역시 엄청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금액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난 영치금 넣는 방법을 금방 설명해 주고, 돈 들어오면 전화해 주겠다고 말을 남긴 채 끊었다. 친구들도 걱정하는데... 집에선 얼마나 걱정을 할까, 한국에 전 여자친구는 또 얼마나 걱정을 할까...


오후시간이 되니, 교도관이 뭔가 예약을 받는다. 오후 산책 나갈 사람은 예약을 하란다. 산책. 영화에서 보면 교도소 운동장이 많이 나온다. 철조망이 빙 둘러져 있고. 주인공은 벽에 기대어 서서 눈알을 굴리며 생각에 빠져있고, 양아치 무리가 셋 정도 걸어오며 시비를 거는. 꼭 싸움이 일어나는 그런 곳... 이랑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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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처럼 철조망은 맞지만, 인조 잔디가 깔려 있는 풋살 경기장이 있으며, 햇빛을 온 몸으로 느끼게 누워 있을 수 있는 깨끗한 아스팔트 농구코트, 핸드볼 경기를 할 수 있는 큰 벽. 오랜만의 밝은 햇살에 눈살이 찌뿌려지면서도 뭉쳐 있던 조바심을 슬그머니 풀어헤치는 따스한 햇살을 맞을 수 있는 곳이었다.


어느샌가 죄수들은 나에게 같이 할래? 라고 묻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왜 넘어 왔는지 어쩌다 잡혔는지, 영어도 되지 않지만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잡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하지 못했지만 이 단어 저 단어 묶고 엮어서 대충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밀리앙은 영어, 스페인어까지 하는 친구였으니 당연히 주변에 사람이 많았고, 그 주변에 나도 있으니...


또한 처음에 날 너무 무섭게 만들었던 12명의 인도인. 항상 터번 아니면 수건을 머리에 쓰고 다녔다. 그 친구들도 나와 친해지고 싶었나보다.


“240~ 어떻게 하다가 여기 잡혔어? 얘기해줘~~~”


바지에 손을 넣고 나보고 코레아~~ 라며 소리친 친구였다. 자세히 천천히 보니, 큰 눈에 부리부리한 코에... 장동건 삘? (죄송합니다) 그렇게 보였다.


“말해주기 전에, 왜 바지에 손을 넣고 다녀? 나 그거 때문에 무서웠잖아.”


라고 말을 하니, 막 웃는다.


“아~ 그건, 속옷이 살에 닿으면 간지럽거든. 그래서 그냥 긁은 건데.”


사실 속옷도 누가 입었던 건지도 모르는 걸 지급받았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걸 난 겁부터 먹었으니 당연히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캐나다에서 밀입국 시도하다가 잡혔어. 그래서 이렇게 됐어.”


“캐나다에서? 캐나다 비자는 있었어? 거기서 미국을 왜 와? 우린 캐나다 가고싶다.”


나 보고 미친놈 이라고 했다. 자기네는 딴 곳은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하면서.


“너네는 어쩌다가 왔어?”


라고 물으니, 자기네는 다 친척이라고 했다. 자기 부모님들이 다 여기에 있어서 부모님 찾아서 온 거란다. 인도사람들은 비자를 제대로 발급 받는 게 어렵다고 했다. 콜롬비아를 통해서 미국으로 들어오다가 잡혔다고 했다.


손짓 발짓 얘길하다 보니 어느새 들어갈 시간이 됐다. 밀리앙은 내 옆에 서서 철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240처럼 밀입국 하다가 잡혀서 왔어. 난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서 살았는데, 지금 전쟁이 나서 친형제가 옆에서 죽는 걸 보고 그대로 도망왔어."


“그럼 여기서 지낸 지는 얼마나 됐는데?”


“한 6개월 정도 지났는데, 한 두달 정도 있으면 나갈 수 있을 거 같애.”


그때만 해도 나간다는 말이 추방이 된다는 말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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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어지러운 맘을 추스리고 감옥에 돌아왔을 땐, 친구가 넣어준 영치금이 들어와 있었다. 무려 300불. 또 한 번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놀래켰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 중 인도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가난한 나라에서 넘어왔기 때문에 진짜 많으면 50불, 일반적으론 10불, 20불 용돈들을 받곤 했던 것 같다. 내 금액 300불은 같이 있던 인도 친구들도 놀래킬만했다.


손가락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라면, 초코칩, 라면 쵸코칩. 감옥에 있는 마켓이라고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음료수, 빤스, 양말, 내복, 츄리닝, 운동화... 없는 게 없었다. 난 밀리앙에게 맛있는 것 좀 골라달라 부탁을 하고 전화기를 잡았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이상한 번호라서 스팸인줄 알고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어?? 여보세요?”


한국에 있는 전 여자친구였다.


“오~ 길~ 잘 갔어? 역시 미국번호로 전화 했구나~? 근데 왜 이상한 말이 나오고 1번을 누르래?”


1번을 누르란 얘길 첨 알아듣는 사람이었다. 우리 가족들, 아빠, 엄마, 누나, 아무도 누르지 않은 1번을 눌렀으니...


“나... 넘어오다가 잡혀서, 지금 감옥에 있어...”


“에이~ 장난하지마, 내가 지금 컴터로 보니까 번호가 뉴욕인데? 뉴욕으로 바로 간 거야?”


장난하는 줄 안다.


“아, 장난 아니고. 우리 누나한테 문자 좀 보내서 나 잡혔는데 별 일 없다고 나중에 전화하면 1번 좀 누르라고 말 좀 해줘.”


국제 전화라서 그런지 돈이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길게 통화할 수는 없었다. 전화를 끊고 샌프란에 있는 친구에게 전활 걸었다.


“돈 받았어? 아, 다행이다. 걱정 많이 했어. 어디 아픈 데는 없지?”


“어... 고마워 친구야. 내가 나가면 꼭 정리해줄게...”


“아냐, 아냐. 너 예전에 만나던 여자애 있지? 걔한테 전화 와서 돈 좀 넣어달라고... 그래서 넣은 거야. 나중에 자기가 주겠다고 그러더라고. 걱정하지 말고 일단 잘 지내고 있어봐. 알아볼게. 어떻게 되는지. 나 아는 형이 변호사거든.”


“응~ 그래 그래... 고맙다.”


일단은 내가 살아 있다는 건 알렸으니, 한시름 맘이 놓였다.


그동안 밀리앙은 쇼핑을 끝냈다. 무려 50불이란 거금을 사용했다. 생필품부터 라면을 일주일 치는 산 것 같다. 쇼핑카트는 매주 목요일에 우리에게 왔다. 그 시간만큼은 피곤한 사람도, 기분이 나쁜 사람도, 아픈 사람도 없게 만드는 신기한 마차였다.


“240~”


내 과자봉지와 라면봉지는 50불치에 걸맞게, 크기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조그마한 싱글침대에 가득 차 있었으니... 우와~ 우와~ 하는 소리도 슬쩍 들리기 시작했다. 라면 또는 초코칩이 화폐로 사용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 후 감옥에서의 생활은 처음과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라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밀리앙 덕분에 네임밸류가 살짝 올라간 상태에서 최고의 정점을 찍는 사건이 다시 한 번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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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는 의외로 불법 이민자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매일 아침이면 음식물을 흘린 식탁을 닦는 친구가 보였다. 그 옆으로는 식탁에서 쓸어내린 음식물을 조용히 주워 담는 친구가 있었으며, 그 뒤쪽으로는 화장실 칸 칸마다 물을 뿌리고 변기를 닦는 친구도 보였다. 농구장 코트에 물을 뿌리고 빗자루 질을 하는 친구, 그 모든 쓰레기를 큰 쓰레기 봉투에 담고 버리기 위해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친구. 모두 다 일을 한 대가로 수용소에서 주는 일급을 받는 친구들이었다.


산책을 나가서 시원한 바람이라도 느낄 수 있게끔 해주었고, 며칠에 한 번 운동 시합을 통해서 서로 친해질 수 있게끔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원래 사교성도 좀 있는 편이었고.


수용소에서 과자 또는 라면이 거의 현금처럼 이용이 됐다. 며칠에 한 번 운동 시함이 열리면 경기는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상금으로 코카콜라와 햄버거 또는 초코칩을 상품으로 걸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햄버거는 백지수표 수준, 콜라는 10만 원, 과자는 만 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난 친구들과 친해져 있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니 당연히 서로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들의 마음은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을 했으니까.


"240~ 탁구 칠 줄 알아? 오늘 농구랑 탁구대회 열리는데 갈래?"


밀리앙이 앉아 있는 날 툭 치며 말했다.


"그래? 나 쫌 치는데?"


한국에서 병점에 있는 휴대폰 매장에서 일을 할 적에 사장님 따라서 위층 탁구교실을 다녀본 적 있는 나에겐 자신 있는 종목 중에 하나였다. 1차전, 2차전을 가뿐히 이겨주고 3차전을 준비할 무렵, "뭐야뭐야~" 라며 누군가가 뒤를 보며 말을 했다. 한 친구가 다리를 절면서 들어왔다. 밀리앙 반대편 침대에서 지내는 친구였다. 그 친구 또한 아프리카 출신이었고, 나랑 나이가 비슷해서 좀 친한 사이였다.


밀리앙은 그 친구에게 다가갔다. 나도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난 무슨 맘이었는지 (아직까지도 모르겠지만) 그 친구의 발목만을 쳐다본 채, 그 아프리카 친구에게 걸어가고 있었다. 난 양말을 천천히 벗기고 그 친구의 발을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땀 범벅에, 씻지도 않은 발을 만지며.


난 페이스북 성애자다. 페이스북을 보면 어깨 결릴 때 하는운동, 소화 안 될 때 손가락 누르는 방법, 눈이 침침 할 때 누르는 곳 등의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또 태국마사지를 워낙에 좋아해서 자주 다녔던 게 도움이 됐었나 보다. 그때 난 이미 허준의 감투를 머리에 쓰고 있었고 등짝에는 저 멀리서 빨간 도포가 어깨로 둘러지기 위해 날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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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많이 부었네... 이렇게 부었으면 뜨거운 물 보다는 차가운 물에 담근 수건이 좋으니까 가져오도록 해"


밀리앙은 아주 차가운 물에 수건을 적셔셔 가져왔다. 난 그 차가운 수건을 다리에 대고 다시 문지르기 시작했다. 주먹을 쥐고 가운데 손가락만 살짝 올려서 침 모양을 만들어서 그 주변을 콩콩 찍으면서.


"지금은 좀 아플거지만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친구는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기 침대로 돌아갔다.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난 탁구대회에서 1등을 했다. 어릴 때 배구를 좀 했던 나의 어깨파워 스매싱은 정확히 상대편의 복부, 얼굴...에 적중 했고... 운이 좀 따랐다. 원래는 테이블에 맞아야 하지만 상대편을 맞췄다. 어쨌든 이기면 된다. 햄버거는 이미 식었지만 어쨌든 내꺼. 코카콜라도 내꺼. 난 밀리앙이랑 반 쪼개서 먹었다. 햄버거가 그렇게 맛있던 적은 없었다.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서 다리를 다쳤던 친구가 나에게 찾아왔다. 다리를 보여주면서,


"240, 진짜 고마워. 정말 아프지 않아."


"그치? 내가 말했잖아.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내가 마사지를 잘해서 그래~"


주변에 놀고있던 친구들은 아프리카 친구가 아파 죽겠다더니, 절지도 않고 걷는 것을 보고 놀라기 시작했다. 참 웃겼다. 난 아무것도 안 했다. 그냥 친구니까 발을 만져준 것 뿐이고 군대를 해안경계부대를 나와서 근무 이동간 종종 다리를 삐는 애들이 많아서 그때 했던 걸 따라한 것 뿐이었다. 뜨거운 물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 수통에 있는 차가운 물을 적셔서 덮어줬던 게 생각이 나서 한 것 뿐이었다.


그 친구는 발목이 아프지 않다며 연신 고맙단 말을 나에게 했고 고맙다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로 비싼, 아직 뜯지도 않은 핫 소스를 내게 주었다. 수용소의 음식은 대부분 콩이나 감자이기 때문에 핫 소스는 최고의 화폐 중 하나였다. 핫 소스는 핫한 매력을 뿜으며 내 손으로 건너왔다. 다들 부러운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나 어깨 다친 지 조금 됐는데, 좀 봐줄래?"


하며 75센트 짜리 땅콩 과자를 수줍게 꺼냈다.


"음... 너 잘 때 오른쪽으로 돌려서 자?"


나의 손은 어느새 그 친구의 손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진단을 내리면서... 만지다 보면 살짝 뭉친 곳이 있다. 그게 부드러워질 때까지 돌리고 누르고, 팔꿈치로 찍고. 어떻게 보면 안 시원할 수가 없는 거였다. 당연히 고객의 맘을 제대로 흔들었다. 안 그래도 넘치는 과자들 속에 초코렛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길가이버에 이어 동길보감을 펴낼 정도의 화려한 언술, 누구도 보지 못한 화려한 안마기술...


이 뿐만이 아니었다. 교도관들에게도 환심을 사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지난 기사


1편 밀입국

2편 국경을 넘어라

3편 미국 감옥에 들어가다

4편 감방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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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