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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주


본 기사를 쓴 국경없는기자회 소속 세가와 마키코 씨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후쿠시마를 방문하는 기자입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후쿠시마 원자력 재해 6주년 기념 행사에서 

일본 내 핵산업 이슈 전반에 걸쳐 계속되는 검열에도 

재난의 결과를 보도한 

일본 기자(세가와 마키코씨를 포함한) 

및 

외국 기자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습니다(링크).


그녀가 쓴 대부분의 기사는 

이해관계로 인해 

일본의 메이저 언론에서 외면당하고 있기에

리벌럴한 몇몇 언론 및 

일본 외의 다른 나라에서 주로 읽히고 있는 현실입니다. 


세가와 마키코 씨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취재를 

바탕으로  JFJN(링크)이라는 단체를 설립, 

해외 언론 및 프리랜서 언론인의 

일본 내 취재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1년에 130번 이상 후쿠시마를 방문한 탓에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부터 6년, 난데없이 코피를 흘린다던가 이가 빠진다던가 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어린이 갑상선 암이 약 300배 이상 증가하는 등(링크) 구체적인 지표로까지 드러나는 가운데, 정작 모두가 아는 사실을 다뤄야 할 일본의 정부와 언론은 침묵하고 있다. 오히려 '후쿠시마 부흥 스테이션(링크)'이란 홈페이지까지 개설하며(9개 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일본국내외로 후쿠시마의 '부흥'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세계언론보도 지수가 사상 최저를 기록하는 때, 일본의 거대 미디어와 정부가 보도하기 꺼려하는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갑상선암 발생이 가장 높은 후쿠시마 현의 고리야마 시에 찾아갔다. 이곳엔 약 34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고리야마.jpg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약 70km 서쪽에 위치한 후쿠시마 현의 고리야마 시. 민관의 부흥 캠페인이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일까.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2016년 1월 1일부터 2월 1일까지 인구가 약 6,600명 늘었다. 토호쿠 신칸센으로 도쿄역까지 1시간 반도 채 걸리지 않는 교통편 때문인지, SONY나 아사히 맥주 같은 거대 기업의 공장이나 대기업 지점이 많고, 통근족 또한 많이 산다.


고리야마 시는 소아 갑상선암 다발 지역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현이 사고 당시 18세 이하였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현민건강조사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2014년 4월부터 시작된 2차 조사에서, 1차 조사(2012년)에서 암이나 암으로 의심되는 진단을 받지 않았던 16명이 ‘암’으로 확정되었으며, 35명은 ‘암으로 의심’되었다. (이 51명 중 15명은 아직 고리야마 시에 살고 있다)


위와 같은 결과는 2016년 2월 15일, 후쿠시마 시에서 열린 ‘현민건강조사 제22회 검토위원회’에서 밝혀졌다. 이 위원회는 중간 결과에서 “추정된 환자수보다 수십배는 많은 갑상선암이 발견되고 있다.”고 밝히며, 원인에 대해 “방사선 영향의 가능성이 적다고는 하나 현 단계에서 아직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갑상선 조사를 계속 해야만 한다.”고 결론을 맺었다. 호시 호쿠토 좌장(의사협회 부회장)은 위원회 후 기자회견을 열어 “현시점에서 방사선의 영향은 생각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검토위원회를 방청한 고리야마 시의 사토 사치코 씨(58세)는 “우리 어머니들은 아무도 질문 기회를 받지 못했다. 기자 클럽의 기자들에게만 질문권이 주어져 당사자인 우리는 모두 배제되었다.”며 분노를 토했다. 다섯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사토 씨는 장애인시설 운영을 위해 후쿠시마에 머무르고 있는데, 막내 딸(18)과 차남(24)을 후쿠시마에서 북쪽으로 160km 떨어진 야마가타 현으로 피난 보낸 상태다)


그러나 “이 정도까진 피폭되어도 괜찮겠지”하는 수치는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리 적은 방사선이라도 피폭되면 될수록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현재 주류의 생각이다.



불안감을 털어놓기조차 힘든


2016년 2월 5일 오전 10시, JR고리야마역 동쪽출구에 도착했다. 출구 앞에 있는 공식 모니터링 기계에 적힌 공간 방사선량은 0.22 마이크로시벨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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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16년 3월의 방사선량으로, 0.136 마이크로시벨트라고 쓰여있다.


역의 한 쪽 벽면에는 ‘프루티어(fruits + tea) 후쿠시마 특별열차’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후쿠시마의 특산품인 배, 복숭아, 포도 등이 듬뿍 들어간 케이크나 타르트를 즐길 수 있는 열차로, ‘지역생산‧지역소비로 부흥’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캠페인 중 하나다.


후쿠시마부흥의 심볼-스윗한후쿠시마,출발해요! 달리는카페'후루티아후쿠시마'.jpg


후쿠시마의 지역신문인 <후쿠시마민보>에는 “후쿠시마에 웃음꽃 만발”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가 실렸다. 소소 지역, 이와키 지역, 아이즈 지역 등 현 전체의 맛집, 지역술집, 부흥 엔터테인먼트 정보 따위가 2페이지에 걸쳐 있었다. ‘고리야마’란에는 “먹을 것 만개한 고리야마 맛있는 페스티벌(4월 23일 ~ 6월 25일)”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JR고리야마 역에서 택시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엔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


“엄마는 옳아요. 아이들 목숨의 책임을 최종적으로 지는 것은 부모니까. 여러분, 스스로의 결단에 자신감을 가지세요.”


나무로 된 장난감과 소형 피아노 등이 놓인 약 6평 가량의 방에 침착한 40대 후반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긴 테이블을 둘러싼 3-40대의 여성들이 표정이 조금은 편해졌다. 


이곳은 어머니들이 방사능에 대한 불안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위해 2011년 6월 설립된 NGO “3A! 안전, 안심, 액션 in 고리야마”의 사무실이다. 마침 요양(일정기간 방사선량이 낮은 지역에 머무르는 것) 자금 원조를 위해 일본 기독교 교단 센다이시민교회의 가와카미 나오야 목사(43)가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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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카미 나오야 목사(가운데)의 이야기를 듣는 어머니들

가와카미 목사는 요양에 대한 경제적 원조를 계속해 오고 있지만,

공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므로 미국 감리교 교회의 유지가 내는 헌금 등으로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가와카미 목사는 지역의 어머니들과의 대화에 힘을 쏟고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에 귀를 기울이며, 어머니들 자신과 아이들의 건강상태 변화‧이변 등을 기록하고 있다. 후쿠시마 현내에서도 특히 고리야마 시의 상황에 대해 “매우 절망적인 상태입니다. 어머니들은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 날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12명의 어머니들이 가와카미 목사를 찾았다. 겨우 본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때문인지 어머니들은 이제껏 억눌러 왔던 눈물을 흘렸다. 카운셀링은 한 사람 당 20분에서 30분 정도 진행되는데, 지금까지 약 200명의 어머니들로부터 약 600명의 아이들 상태를 들었다고 한다.


이대로는 요양 때문에 거지가 되고 말겠다고 한탄하는 어머니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교통비만 3만 엔 이상 드는 비용을 부담하며 홋카이도나 오카야마, 오키나와 등을 찾고 있다. 체르노빌의 경험에서 ‘방사능 오염지역으로부터 2주 정도 벗어나있는 게 면역력 회복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요양을 하고, 현 밖에서 채소와 물을 구입해다 먹고,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지참하게 하는 등 피폭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을 하면 할수록 가장 가까워야 할 남편과의 거리는 멀어져 간다. 친족들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는 일도 적지 않다. “후쿠시마는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라고 남편이 단언하는 거예요.”라며 한탄하는 어머니도 있었다.


가와카미 목사는 “부부 간에 방사능에 대한 생각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이 일로 균열이 생겨 이혼에 이르는 예도 적지만은 않습니다.”라고 말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대량으로 코피를 흘리는 데도 남편이 ‘이건 방사능의 영향이 아니다. 괜찮다’라고만 해서 아내가 이혼을 결심했다는 극단적인 예도 있습니다.”


가와카미 목사에 의하면, 어린이들이 돌아다니는 보도나 집터에서 방사선량이 매시 0.3마이크로시벨트를 넘어 가이거 뮐러 계수기(가장 오래된 방사선 검출기)가 울려 퍼져도, 이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 내 자치조직 회장인 남성이, 한 어린이의 모친에게 ‘그렇게 걱정을 하니 방사능에 당하는 거다’라고 설교하기 시작해, 그 아이와 근처의 다른 아이들에게 잡초 뽑기를 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코피가 났다’고 말해도 주위에선 ‘그래서?’라고, 상대조차 해주지 않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가와카미 목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나 떠날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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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아키 씨와 딸 리카 양


“원전 사고가 일어난 당시, 저는 생후 1개월 된 딸 리카의 유아검진 등이 있어 고리야마 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남편과 남편의 부모님도 피난 가는 것을 반대해서 딸과 계속 집안에 남아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목에 남성의 목젖 같은 덩어리가 있어 의사를 찾아갔더니, ‘낭포’라는 진단을 내리더군요. 날이 갈수록 커져서 목을 가르는 수술 받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딸은 울 때마다 목이 아픈지 괴로운 얼굴로 목을 손으로 누르곤 합니다. 요즘은 딸이 코피를 흘리는 것이 걱정입니다.”


고리야마 시내에 거주하는 주부 사토 아키 씨(45세, 가명)의 이야기다. 딸 리카(가명)는 원전사고 1개월 전인 2011년 2월에 태어났다. 사토 씨는 시집 간 곳의 보수적인 가풍 때문에 피난을 갈 수 없어서, 원전 사고 이후 딸이 만 1세가 될 때까지 외출을 피해왔다.


사토 씨는 ‘보수적인 가풍’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희 시아버님의 친구 분이, 타모가미 토시오 씨예요.”


[ * 타모가미 토시오는 일본 항공막료장(한국의 공군참모총장 정도) 출신의 일본보수 인사다. 방위성 항공막료감부(航空幕僚監部. 항공 참모부 정도)의 톱이었던 2008년, “일본은 침략국가였는가”라는 논문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현재도 정치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13년 3월 블로그에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 방사능으로 인한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도쿄전력은 주변 지역을 방사능에 의한 위험에 빠트리지 않았다.”라는 포스팅을 하기도 했다.]


사토 씨에 의하면, 타모가미는 고리야마 시의 타모가미 지구 출신으로, 고리야마 시내에도 자택이 있고, 월 1회 정도 귀가하여 현내 농작물의 ‘지역생산‧지역소비’를 장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가정이니까 피난이나 요양을 간단히 허락받을 수 없는 거예요. 남편이 ‘벌이도 없는 네가 아이의 피난이나 식사 같은 걸 지시할 자격이 없다’고 단칼에 거절하더라고요. 제 부모님이나 남편의 부모님 모두 방사능을 걱정하고 있지 않아요. 피난가고 싶다고 말하면 ‘유아를 데리고 어딜 가려는 거냐’고만 하세요.”


사토 씨는 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어디에나 있는 '비난'


저선량피폭의 위험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만 어머니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완전히 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비난을 받고 있다.


사카이 미코 씨는 발달장애가 있는 8살 딸의 뒷바라지를 하며 고리야마 시내 음식점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 미코 씨는, 뱃속에서 부터 토해 내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년 여름 딸을 데리고 요양을 위해 오사카에 갔어요. 거기서 마치 고문처럼 여러 말을 들었습니다. ‘목숨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왜 아이들 목숨을 위해 이주하지 않으세요?’ ‘저도 아이들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피난 왔어요. 저도 한 일을 왜 당신은 못하죠?’라고요. 그 말을 한 어머니는 후쿠시마 현내에서 오신 분이었는데, 저에게 이주를 강요하셨어요. 저도 피난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가족이나 대출금, 인간관계 등을 생각해 할 수 없었어요.”


이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카이 씨는 요즘 자신과 딸의 건강상태가 불안하다.


“딸은 갑상선에 낭포와 혹이 있어요. 의사는 처음에 그림자인 것 같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혹인 것 같아요. 이제부터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만 봐야 하는 걸까요….


스트레스 발산을 위해 딸과 밖에서 놀아주는 편이 좋다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딸의 외출시간을 제한해 가능한 한 피폭당하지 않게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체르노빌 하트(Chernobyl heart)'


고리야마 커뮤니티 방송국인 ‘코코라지’의 사장 스즈키 노리오 씨(59세, 남성)는 장남의 건강문제를 피폭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호기가 폭발했을 때 스즈키 씨의 아내는 임신 8주차였다. 스즈키 씨는 폭발사고가 있은지 4개월 후인 11년 7월, 무거운 몸인 아내를 홋카이도 삿포로 시로 피난 보냈다. 그리고 11년 10월 3일에 장남이 태어났는데, 예정일 보다 1개월 빨랐다. 아들에게 이상이 있다는 건 신생아 검사 때 알았다.


“심장에 약 5mm 크기의 구멍이 8군데나 뚫려 있었습니다. 의사는 ‘심실중격결손(Ventricular Septal Defect. 좌심실과 우심실 사이의 중간 벽에 구멍이 있는 질환)’이라고 말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오염지역에서 심장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많이 태어났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현지에서는 장애가 있는 심장을 ‘체르노빌 하트’라고 부르며, 02년에 동명의 다큐멘터리 단편 영화도 제작되었다.


“제 아들도 소위 ‘체르노빌 하트’였습니다. 의사가 1년간 절대 감기에 걸리게 하면 안된다고 하여 최선을 다해 장남을 지켰습니다. 수술 없이 4년 정도 지나 심장의 구멍은 메워졌습니다만, 피부에 색소이상이 있습니다. 태어난 당시에는 얼굴을 비롯해 전신에 엷은 푸른색의 몽고반점이 퍼져있었습니다. 자외선을 맞으면 갈색이 되므로 직사광선을 피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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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등 전반에 반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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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측면에서도 확연히 보이는 반점들


스즈키 씨는 삿포로의 피부과 여러 곳을 방문했으나, “이상몽고반점(異所蒙古斑)으로 개인차 범위 내입니다. 방사능과는 관계 없습니다.”라는 답변 밖에 들을 수 없었다. 어떤 의사로부터는 “몽고반점에 관해서는 축적된 데이터가 없어 뭐라 단언하기 힘들다.”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몽고반점이 옅어졌다는 점이다.


스즈키 씨는 본 기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부디 제 이름을 실명으로 공표해 주십시오. 사진도 다 실어주세요. 제 아들과 같은 푸른 피부 증상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연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들을 위해, 그리고 같은 증상으로 고민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데이터를 모으고 싶습니다.”


스즈키 씨는 현재 삿포로 시에 살고 있지만, 일 때문에 한 주에 몇 번 고리야마 시로 돌아간다.


‘코코라지’는 현재 음악뿐만 아니라 방사능에 대한 어머니들의 불안도 함께 방송하고 있다. 탈원전의 필요성을 방송으로 흘려보낸다는 이유로 “그런 걸 방송한다면 라디오국이 박살날 거다” 따위의 익명의 메일을 받지만, 스즈키 씨는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다.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고리야마 시의 갑상선암 증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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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 적출수술을 막 끝낸 여성. 


고리야마 시와 주변에서 갑상선암 환자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본 기자는 앞서 나온 가와카미 목사와 1일간 동행하며 시내에 사는 어머니 12명을 만났는데, 12명 중 당시 17세였던 딸(현재 23세)가 갑상선암 적출수술을 받았다고 하는 어머니가 한 분, ‘갑상선암에 걸린 어린이를 알고 있다’고 하는 어머니가 두 분 계셨다.


가와카미 목사의 동료이자 피해지역지원 자원봉사에 전념하고 있는 59세의 목사(여성)도 갑상선암에 걸렸다. 그녀는 원전사고 전에는 큐슈에 살고 있었지만, “피해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케어하고 싶다”는 마음 아래 2011년 5월부터 피폭을 각오하고 고리야마 시로 이주했다. 결혼은 했으나 자녀가 없는 가벼운 몸이었기에, 초등학생 아이를 가진 개신교계 목사와 교대하는 형식으로 고리야마에 들어갔다.


2015년 겨울 갑상선 적출수술을 받은 그녀는 2016년엔 자궁암에 걸리기도 했다. ‘스테이지 3’라고 하는 말기 상태로, 지금은 큐슈의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원조해 온 어머님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실명은 알리지 말아달라”는 요청이 있어 이름을 기재하진 못한다.



‘갑상선암’을 취재하던 <아사히TV> 저널리스트의 미심쩍은 자살


친자식을 염려하는 어머니들에게 있어 일본의 ‘기자 클럽(우리나라의 기자단 제도와 비슷한 출입처 취재제도로, 일본의 배타적인 언론 시스템의 상징)’은 아군이 아닌 적이다. 정부와 한 몸이 되어 ‘후쿠시마 부흥’과 ‘지역생산‧지역소비’를 내건 일본 미디어에 대한 현민들의 불신감은 사고 이후 매년 강해지고 있다.


2014년 8월 30일, <아사히TV> ‘보도 스테이션’의 이와지 마사키 씨(향년 49세)가 자택에서 사망했다. 이와지 씨는 폭발사고 이후 처음으로 갑상선암에 걸린 어린이에 대해 보도한 저널리스트다. 사망 이유는 연탄 자살이었다. 고리야마 시 근처에는 이와지 씨가 죽기 직전까지 총력을 다해 좇고 있었던 남자아이(피해 당시 6살, 현이 발표한 최연소 갑상선암 환자)가 살고 있다. 


저널리스트였던 이와지 씨는 시내의 어머니들로부터 신뢰받고 있었다. “이와지 씨는 정말로 멋진 분이셨어요. 자주 한 잔하러 데리고 가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다정한 분이셨습니다.” 돌아가신 이와지 씨를 알고 있는 한 어머니의 회상이다. 


“이와지 씨는 시의 교육위원회와 학교까지 취재하며 남자아이의 존재를 밝혀내려고 했어요. 교육위원회가 ‘편도선 수술을 받은 아이가 있을 뿐’이라며 말문을 닫아버렸지만요. 그렇지만 그 남자아이를 직접 알고 있는 지인이 있으니까, 결론적으로 교육위원회와 학교가 숨기는 게 되는 거죠.”



본 기자는 정보제공자이며, 해당 남자아이를 알고 있다는 남성 A씨를 만났다. 모 거대 보험회사의 고리야마 지점에서 보험 판매원으로 근무하는 A씨는, 역시 고리야마 출신으로 아내와 딸 둘을 서일본(후쿠시마는 동일본에 있다)으로 피난 보냈다. A씨는 사고 후 암보험에 가입하는 어린이의 수가 고리야마 시에서만 100명 이상 증가 했다고 밝혔다. 전과 비교해서 어린이 암보험 가입자 수가 몇 배나 올랐다고 한다.


A씨는 (이와지 씨가 좇던) 남자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이와 그 양친을 알고 있었다. 갑상선암이 발견되기 직전까지 부모에게 암보험에 가입하도록 권유했지만 들지 않았다. 사고로부터 2개월 후 갑상선암이 발견되었을 때에는 이미 늦어 부모는 보험에 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저도 보험가입 권유를 다각도로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신체기능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결코 플러스가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긴 인생동안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그 아이를 생각한다면….


아이들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원전, 도쿄전력도 그렇지만 의사나 현민, 저널리스트 등 어른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합니다. 후쿠시마 사고는 아무것도 수습된 게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가동 한다는데, 원전사고가 다시 일어나면 이 아이와 같은 희생자가 또 나오는 거잖아요. 어른이란 작자들은 생각이 있는지….”


돌아가신 이와지 씨는 남자아이와 양친에게 접촉을 시도했으나 취재에까지 이르진 못했다. A씨는 그 이유에 대해 “남자아이의 부모님이 ‘이젠 아무도 못 믿겠다’고 한탄하며, 아들이 그렇게 된 상황에 대해 스스로를 탓하던 상황이라 취재할 상태가 아니었어요. 표면에 나서고 싶지 않았던 거죠.”라고 추측했다.


A씨는 이와지 씨가 사망하기 몇 주 전에 그를 만났다고 했다.


“이와지 씨와는 2번 정도 만났습니다. (이와지 씨의) 부하 분과 연락을 주고받은 적도 있어요. 그는 ‘후쿠시마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고민하며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열심히 하신다고 생각했어요. 죽기 전에도 특집을 준비 중이었을 겁니다. (이와지 씨를) 마지막으로 만난 2014년 8월, 이와지 씨가 저에게 녹음을 할 수 있겠냐며 부탁하셨어요. 그 남자아이를 취재하지 못했기에, 후쿠시마에 거주하는 어머니의 ‘후쿠시마의 대응을 용서할 수 없다’는 음성이 보도되었지요.”


A씨는 이와지 씨의 자살을 믿을 수 없는 듯 했다. “생전에 특집을 준비하고 있었고, 거동에 수상한 점도 없었고, 몸이 불편하다는 인상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A씨는 “이와지 씨는 그 남자아이를 만나고 싶어 했다.”라고 말한 뒤 입을 다물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곤두박질 치는 일본의 세계자유보도 순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후인 2011년 3월 14일, 약 50명의 스태프가 고리야마 시 등 현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2015년, (2011년에) 후쿠시마 현장을 찾았던 감독 네 명이 암에 걸렸죠. 한 명은 갑상선암, 다른 한 명은 30대 전반의 젊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골수암에 걸렸습니다.”


이와지 마사키 씨의 동료이자 프로듀서 B씨(45세, 남성)는 분개했다.


“회사 내부에서 보도규제가 엄청납니다. 원전 문제만이 아니라 아베 신조 총리 비판에 대한 규제도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어요. 이런 일본의 보도 자세는 꼴불견이죠!”


B씨 뿐 아니라 본 기자도 일본의 거대 텔레비전 방송국 등과 일을 하는 과정에서 보도규제를 당한 바 있다. 규제는 편집 단계에서 취재 내용을 삭제 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015년 12월 21일에 있었던 후쿠시마 이와키 시(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짐)에 있는 가설주택 취재 건이었다. 히라노쵸(제1원전에서 20~25km 반경에 있음) 출신의 가설주택 피난민과 현의 공무원 사이에 큰 싸움이 붙었다. 2017년 정부가 일방적으로 가설주택을 폐쇄하고 주민들을 히라노쵸로 돌려보내기로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피난민들은 격분했다. “마실 물이 안전하지 않다!” “내쫒을 셈이냐!” “엉터리 방사능 데이터를 읊지 말라!” “거짓말 마라!” 등. 정부와 주민 간의 충돌은 대단한 그림이 된다. 충격적인 영상이 찍혔다. 전국으로 방송되는 ‘보도 스테이션’만이 아니라, 계열사인 <후쿠시마TV>에도 방송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전혀’ 보도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후쿠시마 스캔들’ 같은 취재거리를 톱클래스 잡지에 들고 가도 기사화는 되지 못한다. 발행부수 1위의 <주간문춘> 기자는 이렇게 조언했다.


“후쿠시마 기사는 어렵죠. 도쿄전력에 대한 비판 같은 게 엮이면 기사화는 무립니다.”


<산케이 신문>의 모 편집위원은 기사는 물론 사진까지 지참한 본 기자에게,


“탈원전이나 후쿠시마에 관해서는 사진도 게재하지 않을 거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후쿠시마의 진실을 계속 보도하는 미디어도 있다. 의외로 여성 누드로 유명한 ‘주간 플레이보이’나 기업 스폰서를 전혀 받지 않는 ‘주간 프라이데이’가 후쿠시마와 원전에 대한 기사를 계속 게재하고 있다. ‘주간 플레이보이’에는 2011년 12월부터 9개월간 원전 작업부로 잠입했던 복면의 저널리스트가 연재를 하고 있다. 이외에는, 딴지일보와 같은 리버럴한 외국 미디어에 실리는 게 전부다.


일본의 언론 자유도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기점으로 극적으로 하락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 저널리스트 NGO 단체 <국경 없는 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보도자유도 랭킹’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은 2010년 세계의 보도자유도 순위는 11위였지만, 2015년에는 사상 최저인 61위까지 떨어졌다. (2012년 22위, 2013년에는 53위, 2014년은 59위) 확실하게 일본의 미디어 지위는 하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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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6년엔 72위까지 떨어졌다

<국경 없는 기자회>


세계 보도자유도 랭킹 레포트는 일본의 순위가 하락한 이유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 대한 보도문제’로 보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 관해 전력회사와 ‘원자력마을’에 의해 형성된 미디어 체제의 폐쇄성, 기자클럽에 의한 프리랜서 기자와 외국 미디어의 배제구성 등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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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나미에쵸(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10km 정도 떨어짐)에서 후쿠시마 시로 피난 온 뒤,

현재는 이와키 시내(원전으로부터 50km 정도 떨어짐)에 거주하고 있는 여아 코코나 양(6세).

아프고도 가려운 적자색 반점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앞서 나온 '후쿠시마 부흥 스테이션'의 한국어 홈페이지엔 후쿠시마 현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기재되어 있다. 이 사이트에서 보여주는 후쿠시마는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 공간방사선량은 다른 도시 혹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지 않으며, 환경회복을 위해 제염 작업(방사선 양을 줄이기 위해 방사성 물질을 없애거나 흙으로 덮거나 하는 것)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생산되는 모든 식품들은 까다로운 검사를 거치고 있다. 현민을 위해서 주기적으로 건강조사도 시행하고 있는데, 대부분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 그러니까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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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부흥 스테이션' 사이트 내의 현민건강조사 결과(링크)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그 어느 것도 이대로 덮을 수는 없다는 걸. 일본 정부와 언론은 한시라도 빨리 모든 진실을 드러내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 후쿠시마 고리야마 시에 사는 어머니들의 증언





- 두 아들(12세, 14세)을 둔 4인 가족


“경제적으로 좋지 않았던 때 원전사고가 나서 피난을 가지 못했습니다. 원래부터 아이들에게 코에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2011년 3월 15일 즈음에 코피를 엄청 쏟았습니다. 소강상태에 접어들어서도(3월 11일로부터 시간이 조금 지났다는 말) 자주 코피를 흘렸어요. 12년 겨울까지 계속 그랬습니다. ‘현민건강조사’의 갑상선 검사에서 아이 둘 다 A2(5mm 이하의 결절이나 20mm 이하의 낭포)를 판정 받았습니다. 둘째는 피부질환도 있었어요.”


- 세 아들(4세, 6세, 8세)을 둔 5인 가족


이 가정의 어머니는 재난 당시 7주차에 접어든 임산부였다.


“2012년 무렵부터 둘째는 자고 있는 동안 매일 코피를 흘려요. 셋째는 고환에 병이 생겨 2월 말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둘째도 셋째와 같은 병으로 여름에 수술을 받습니다. 갑상선 조사에서 장남은 A2였는데 낭포가 줄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갑상선 비대 판정을 받아 혈액검사를 했어요. 하시모토 병(만성갑상샘 염증)이라고 들었습니다.” 


- 외동 딸(6세)을 둔 3인 가족


“피난 갈 새도 없었습니다. 최근엔 딸의 코피가 신경 쓰입니다. 아직 정중경낭포(생후 1-2개월 이면 소실하는 갑상설관이 남아 낭포를 형성하는 질환)가 목에 있습니다. 울 때마다 목이 막히므로 숨을 쉴 수 없게 되죠.”


-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3인 가족


“아들이 취주악부(吹奏樂部) 활동 중 대량의 코피를 쏟았습니다. 화장지 한 통을 다 쓸 정도였다고 해요. 통학 중에도 코피가 나지만 화분증(꽃가루가 점막에 접촉해서 생기는 알러지성 질환) 때문이라고만 합니다. 코피를 쏟은 뒤 취주악부는 그만두게 했어요.”


- 외동 딸(9세)을 둔 3인 가족


“남편의 반대로 친정이 있는 이와테(제1원전에서 약 280km 떨어짐)로 피난 가지 못했고, 딸에겐 낭포가 생겼습니다. 저는 낭포와 종양이 있어요. 경과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 두 아이(13세 딸, 6세 아들)을 둔 4인 가족


“원전사고 후, 3일 내내 코피를 흘렸습니다. 보통 코피가 나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듯 쏴하고 나오는 게 1시간 정도 지속되었어요. 11년 8월부터 15년 3월까지 야마가타(제1원전에서 140km 정도 떨어짐)로 피난 가있었습니다만, 딸의 중학교 입학을 계기로 고리야마에 돌아왔습니다. 막내는 야마가타에서는 건강했었는데 돌아온 뒤로는 몸이 안 좋습니다. 소아과 선생님이 또 왔냐고 할 만큼 병원에 가고, 자주 쓰러지기도 합니다. 잠들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없어지는 때가 많습니다. 수액을 맞으러 간 적도 있어요. 의사는 저혈당이라고 합니다만, 단 것을 먹여도 낫지 않습니다.”


- 외동아들(6세)을 둔 3인 가족


“아이가 아침저녁으로 코피를 흘립니다. 기침도 하구요. 갑상선 조사 결과는 A2입니다. 요양 중에는 코피가 나지 않았어요.”


- 두 아이(7세 딸, 3세 아들)을 둔 4인 가족


“2011년 5월, 남편을 설득해 야마가타에 있는 빌린 주택으로 피난을 갔다가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계기로 2014년 10월에 고리야마 시에 돌아왔습니다. 그 후, 보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2015년 여름 고베 진료소에서 갑상선저하증이 의심된다고 진단받았습니다만, 고리야마 시의 의사는 코웃음을 쳤어요.”


 

*. 기사내 모든 거리는 구글지도 기준입니다




추신: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준 한국의 시민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국외 문제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딴지일보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6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매번 후쿠시마를 방문할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방사능 피해를 입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원전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빨리 대선을 맞이할 한국의 시민 여러분들께서도 다음에 선택할 한국의 지도자를 고려할 때, 이 점을 생각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JFJN대표&국경없는기자회

세가와 마키코


번역: 죽지않는돌고래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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