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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정사상 명목상으로는 두 번째이긴 하지만 (임시정부에서의 이승만 탄핵이 그 최초였다.) 사실상 최초로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탄핵되어 임기를 못 마치고 파면되었다.
 
무엇이 제일 중요할까? 무엇이 핵심일까? 바로 현직 대통령 박근혜를 누가 파면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그 대통령을 직접 선출했던 유권자들, 그러니까 바로 우리들이다. 임명권자가 파면한 것이다. 임명권자가 직접 파면한 것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합법적이고 정당한 일이다.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의해, 헌법에 명시된 기관에서 한 치의 건너뜀도 없이 차근차근 제대로 순서를 밟아 현직 대통령을 잘라 버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정말로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 한마디를 민간인 박근혜 씨에게 해주고 넘어가도록 하자.
 
"넌 해고야."
 
이렇게 통쾌한 일은 내 생애에 다시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딴지일보 독자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아니 우리 모두 서로서로 축하의 말을 나누며 축제를 즐기도록 하자.
 
이 글만 읽고 나서.
 
 
 
촛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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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먼 길을 돌아온 느낌이다.
 
하긴 박근혜는 취임 초기부터 과연 저 인간이 대통령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가 있을까 싶은 우려를 자아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긴 했었다. 그걸 나만 느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국무회의를 무력화시키고 청와대 비서관들이 장관을 건너뛰어 그 밑의 국장들에게 직접 일을 지시하는 기상천외한 짓을 벌이고 그로 인해 진영 복지부 장관이 장관직을 던져 버리고 나오던 순간, 이미 청와대는 소위 '비선 실세'의 농단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점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자신 있게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 있다.
 
박근혜 정권이 말기로 접어들면서 레임덕이 가속화되는 순간, 이 비선 조직은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해 이 정권은 역사에 길이 남을 수준의 '정권 스스로 정부의 공조직을 무력화시키고 국가 시스템을 붕괴시킨 최악의 무능 정권'으로 규정되고 온갖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모두의 비극이다.”
http://www.ddanzi.com/ddanziNews/2586814
 
​그 이후 박근혜 정권하에서 벌어졌던 그 수많은 이해하기 힘든 괴상한 일들, 이제는 그런 일들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를 어지간한 사람들도 다 알게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하기 힘들어 서로 얼굴만 바라보던 순간들이 부지기수였기도 하다.
 
대통령이 정작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터무니없는 곳에 가서 터무니없는 일을 하고 있다거나, 의미도 없는 해외순방은 왜 그리 많이 하는지, 기자들을 불러 놓고서는 왜 질문도 한 번 안 받는지, 설명이 안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더니 결국 정권 말기로 접어들면서, 다른 정권들은 레임덕 현상이 슬슬 나타날 시기에 즈음해서 박근혜 정권은 그간 쌓아 두었던 온갖 비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미르 재단, K스포츠재단에서 대기업들을 상대로 거액을 모금하는 과정에 청와대 안종범 수석이 개입했다는 소식이 터져 나오고, 또 한편에서는 진경준에서 시작된 검찰 비리가 우병우에게 연루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청와대와 조선일보 사이에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호 할퀴기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 와중에 학내 비리 문제로 투쟁을 이어가던 이대에서는 정유라라는 학생에게 특혜 입학을 시켜줬다는 의혹이 제기되는데 그 여학생의 엄마가 박근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터져 나오면서 급기야 “최순실” 이름 석자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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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타협과 포기 없이 끝까지 싸워 승리를 이끌어낸 이화여대의 학생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당신들이 이룬 업적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거기에 결정타로 JTBC의 손석희 사장이 이끄는 뉴스룸 팀에서는 바로 그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사용한 걸로 보이는 태블릿 PC에 관련된 내용을 보도한다. 박근혜 청와대의 내부 업무자료들이 최순실이라는 일개 개인에게 사전에 유출되고 있었고, 아무런 공적 직책이 없는 그녀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사전에 수정하는 등 국정에 개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 국민 앞에 까발려 보여준 것이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합하여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박근혜라는 이름의 성곽을 무너트렸다. 매 주말 기록을 경신하여 가면서 엄청난 수의 유권자들이 모여 촛불을 들어 올렸고,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유권자들은 박근혜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백만이 넘는 인파가 모여 들어올린 촛불의 장엄함 앞에서 전율했다.
 
그리고 사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국회, 그리고 헌법재판소
 
언제나 그렇지만 촛불을 든 유권자들의 단호함과는 달리 정치인들은 눈치 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당별 의석 구조상 도저히 가결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탄핵 소추 안을 성급하게 내밀 배짱을 현직 정치인들에게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다.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렇게 미적거리던 정치인들을 화끈하게 밀어 부친 것 역시나 촛불이었다. 백 만을 훌쩍 넘는 숫자의 인파가 모여 탄핵을 요구했고, 이에 놀란 새누리당은 단 며칠 만에 분열되어 와해되기에 이른다. 유승민 등 상대적으로 박근혜와 먼 의원들은 집단으로 탈당하여 “바른정당”이라는 기묘한 이름의 당을 만들고 야권과 연합하여 탄핵 소추 안을 가결시키기에 이른다.
 
온갖 우려 속에서 출범한 박영수 특검은 윤석열 검사 등을 영입하면서 연일 수사에 매진했고, 유권자들은 환호를 올린다. 국정감사도 진행되면서 박근혜 스캔들에 연관된 사람들을 불러다가 때로는 짜증 날 정도로 답답한 모습을, 때로는 실소를 금치 못하는 비루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과연 이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핵심부에서 자기들 멋대로 국정을 농단하던 그 사람들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구차하고 왜소한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국회에서 의결한 탄핵 소추 안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여 탄핵을 확정지어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띤 헌법기관은 순조롭게 가동되어 박근혜 측 변호인단의 터무니없는 재판 방해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일정 내에 모두가 기대하던 판결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 역사적인 판결의 순간, 대한민국은 전국에서 튀어나오는 안도의 함성으로 크게 뒤흔들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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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나?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퇴보했을 뿐이다. 80년대 그 고통스러웠던 민주화의 과정 속에서 대한민국이 쌓아 올렸던 민주적 시스템들이 무너져 내렸다. IMF의 고통 속에서 출범한 민주정부 10년 동안 만들어 놓은 국가 기능들은 모두 마비되기에 이르렀다.
 
국가를 수익모델로 생각하던 이명박 정권은 국가의 기틀에 재정적인 타격을 입혔다면, 박근혜 정권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민주주의의 기반을 유신시절로 되돌려 놓는 기괴한 공헌을 했다.
 
국제적으로는 벌써 인공지능이다, 로봇기반의 무인 생산이다 하며 자율주행 차량이 양산단계에 접어들고 드론이 택배를 담당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와중에 우리는 “잃어버린 10년” 수준이 아니라 “퇴행하는 10년”을 겪고 말았다.
 
청년세대는 사라져 버린 일자리로 인해 고통받으며 절규하고 있고, 세대 간 반목은 갈수록 기승을 부려 이제는 서로를 증오하는 단계로 갈라지고 있으며, 소수자 약자에 대한 보호는커녕 내가 먼저 살고 보자는 차별과 폭력이 넘실거리는 사회로 전락하고 있는 중이다.
 
생때같은 자식들을 그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잃어버린 부모들을 상대로 돈만 아는 사람들이라며 욕을 하는 짐승만도 못한 반인륜적인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질 지경이다.
 
헬조센이라는 자기비하적 유행어는 모든 이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모두들 한 번씩 “탈조센”을 꿈꾸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코스타리카가 정치적인 망명을 그리 쉽게 받아준다는 정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걸까? 우리 사회는 이미 끝나 버린 걸까?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우리가 들었던 촛불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실 박근혜 같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을 막지 못한 부분에서 이미 우리는 크나큰 실수를 한 셈이다. 그리고 그런 무지한 대통령이 이 사회를 수십 년 전으로 퇴보시키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던 것 역시 크나큰 역사적 죄악이다.
 
그러나 우리는 굴하지 않고 일어섰고 촛불들 들었다. 미적거리는 의원 나으리들의 등을 떠밀어 탄핵소추 안을 가결시켰고, 헌법재판관들을 움직여 탄핵 판결을 받아 내기에 이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던 일이 이루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일이 가능한 나라가 몇이나 될까? 미국이 트럼프를 탄핵할 수 있을까? 일본이 아베를 끌어내릴 수가 있을까?
 
우리는 해냈다.
 
그 힘으로, 그 열정으로 이 헬조센을 다시 한번 뜯어고쳐 바로 잡아볼 수는 없는 걸까?
 
탈조센을 꿈꾸는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부탁하고 싶다. 우리 함께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될까?
 
우리가 잘못했고, 실수했고, 제대로 하지 못했다. 덕분에 이 사회가 망가져 버렸고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 세대에게 진짜 몹쓸 짓을 한 것이다. 정말로 안타깝고 정말로 죄스럽다.
 
하지만 우리가 힘을 합쳐 촛불을 들어 저 말도 안 되는 박근혜라는 자를 청와대에서 끌어내는 것에 성공한 것처럼 그와 똑같이 앞선 세대들이 망쳐 버린 이 사회를 힘을 합쳐 다시 한번 바로잡아 보면 안 되겠냐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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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로 돌리고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한다. 그것 만이 우리가 속해 있는 이 거대한 사회 공동체,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다시 정상적으로 항해하게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들어 올렸던 장엄한 촛불들이 우리에게 그 길을 다시 가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의 힘은 이렇게 우리를 다시 출발선에 돌려세워 놓았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아니 우리 모두는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다.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