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신혼일기_1.jpg


클래스는 변한다


‘유개념 예능’. 국내에서 가장 많은 코어 덕후를 보유한 최장수 예능 <무한도전>의 아이덴티티란 그런 것이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무한도전>은 어떤 심정적 유대의 고리가 되었다. 누군가 <무한도전>의 팬이라고 하면 최소한 ‘그쪽’은 아닐 거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진보진영의 정부 비판적 스탠스를 해학으로 버무려내는 배짱을 가진 김태호 PD의 공이었다. <무한도전>은 <무모한 도전>을 계승한 유사-삼류적 예능감과 <느낌표!> 시절 MBC 예능국의 흔적을 간직한 공익성을 저글링하며 11년을 버텼다. 학생들은 직장인이 되고 대학생들은 아기 엄마, 아기 아빠가 될 세월이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성들은 연예계 A급 자리를 꿰차고, <무한도전>이 국내 쇼프로그램 브랜드파워 1위를 매번 그러쥐는 데 성공했지만, <무한도전> 출연자들과 제작진들은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쥐박이’와 ‘닭그네’만 적당히 씹어줘도 얻을 수 있었던 ‘유개념’ 타이틀이 언젠가부터 복잡미묘한 인권 감수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중년 남성들이 주도하는 커뮤니티 특유의 둔감함, ‘못친소’ 시리즈로 도를 넘은 ‘얼평(얼굴 평가)’, 비만인 비하, 유색인종 희화화, 여성 게스트를 대우하는 방식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무한도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법 잘 나가던 칼럼니스트 김태훈의 커리어는 <그라치아>에 기고한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를 계기로 삐끗했고, 평론의 불모지 한국에서 드물게 이름을 날린 ‘네임드’ 영화평론가 이동진마저 퀴어 영화를 해석하는 시각의 한계를 지적 받고 있다. 그렇다. 세상이 변했다.


<1박 2일>로 가도를 달리던 나영석 PD가 케이블로 이적한다는 풍문이 막 돌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이 배신감을 표현했지만,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의 무패행진은 tvN을 예능 명가로 등극시키기에 손색이 없었다. 아직은 ‘힐링’이라는 키워드가 유효한 시대였다. 곳곳에서 약장수처럼 힐링을 파는 강연들이 열리고 이에 질세라 한두 마디씩 거드는 책들이 쏟아지던 이 시기에, 나영석 예능은 ‘무해함’을 시그니처로 승부했다. 흘러가는 조각구름처럼 느릿느릿한 연출, 방청객 웃음소리를 브릿팝이 대신하고, 연기자들은 낯설고 아름다운 장소를 모험한다. 한두 장면 놓쳐도 조바심 나지 않는 소소한 풍경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시청자들은 그런 편안함 속에서 치유의 단서를 발견했고, 무념무상의 미덕이야말로 나영석을 전성기에 올려놓은 비결이라 할 만했다.’


1년 차 부부 구혜선과 안재현의 생활을 담은 6부작 예능 <신혼일기>에는 나영석 예능의 셀링 포인트들이 정석처럼 집대성되어 있다. 예산을 제한하거나(<꽃보다> 시리즈) 지리적 접근성 및 생활 편의성을 떨어뜨려(<삼시세끼>) 출연자의 미션 수행을 통제하는 특유의 전략은 <신혼일기>에서도 반복된다. 무대는 새벽같이 일어나 장작을 패서 불을 때고, 은행에 가려면 차를 100km씩 운전해야 하는 강원도 인제 산골 한옥이다. 커피숍 BGM처럼 속닥거리는 음악이 쉼 없이 흘러나오고, 눈 쌓인 산봉우리나 물고기 모양 풍경 종을 잡은 전경 숏이 장식적으로 연출된다. 반려동물들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대사를 붙이는 ‘모에화’는 필수적인 감초다. 여전히 견고한 친목 카르텔이 과시된다. <꽃보다 할배>의 이서진이 <삼시세끼>의 ‘서지니’로 분하고, <일박이일>의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이 <신서유기>에서 다시 만난 것처럼, 이번에는 <신서유기>의 안재현이 <신혼일기>로 이주해 왔다.


신혼일기_2.jpg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


2015년 종영한 <블러드>는 구혜선과 안재현의 관계에 다리를 놓은 작품이었다. 드라마 방영 내내 미진한 연기력으로 논란을 샀지만, ‘발연기’를 욕하던 시청자들도 두 사람의 열애 소식에는 꽤나 반색을 했더랬다. 문희준이 소율과 결혼하고 에릭이 나혜미와 사귀고 최자가 설리와 헤어지는 곳이 연예계 아니던가. 불혹에 가까운 남성 연예인이 배우자 조건으로 띠동갑 연하 여성을 지목하는 마당에, 외모, 커리어, 나이, 어디 하나 기울어지는 데 없는 청춘남녀는 어찌나 산뜻한 조합이었는지. 구혜선-안재현 커플이 그런 소박한 이유로 환영을 받는 가운데 나영석 PD는 신속하게 월척을 낚아 올렸다. 보도자료가 돌면서 <신혼일기>는 제법 이목을 끌었다. 구혜선과 안재현은 따끈따끈 결혼생활을 공개하고 나영석은 흥행 공식을 답습한다. 쉬운 과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혼 권장 프로그램’이 될 것 같았던 <신혼일기>는 나영석 특유의 힐링적 세계관을 극단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예기치 못한 전개를 맞는다. <신혼일기> 속 안재현과 구혜선의 결혼생활은 소꿉장난처럼 그려진다. 장 보는 데 단돈 삼만 원을 들고 나가고, 소고기 등심으로 육전을 부치는 경제관념은 뭇 사람들의 그것과 억만 광년 떨어져 있다. 빨랫줄 걸 곳을 찾지 못해 양말 몇 켤레 너는 데에 한 시간을 허비한다. 안재현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구혜선은 종이 공작을 하고, 식사 설거지 당번을 정하겠다고 탁구 매치를 한다. 피아노를 친다. 산책한다. 눈사람을 만든다. 나영석 예능 특유의 귀농 판타지는 <신혼일기>의 비현실성을 부추긴다. 세 달간 숙성시킨 무를 꺼내 먹고, 무청을 겨울바람에 건조해 시래기로 만들고, 팥을 키로 솎아내고, 도리깨로 콩깍지를 털고, 콩을 콩나물로 키워 먹는 반(反) 효율성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언뜻 아름답게 보이는 이 자급 자족적 공동생활은 부부가 온종일 텃밭과 집안일에만 매달릴 때나 가능한 이상향이다. 그 위화감은 결혼에 대한 의심을 자극한다. 시청자는 안재현과 구혜선의 신혼생활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신혼생활을 ‘코스프레’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흥미를 잃는다.


‘쌩얼’에 익숙해지거나 생리현상을 트는 에피소드를 결혼생활의 현실적 단면으로 제시하려 했다면 시청자를 얕잡아본 것이다. 결혼의 어려움은 그것이 ‘생활’이고 ‘결합’이라는 데 있다. 평생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생활 반경, 족보, 재정 상태 등 삶의 주요한 부분을 하루아침에 공유하려 하니 충돌이 불가피하다. 물컵을 사용하는 방식, 양말을 뒤집어 벗어 놓는 버릇 때문에 상대방이 싫어진다. 가사분배로 스트레스를 받고, 돈 씀씀이가 달라서 싸움이 나고, 시댁/처가에 대한 분노가 파트너에게 전가된다. <신혼일기>에는 죽을 때까지 한 사람과 살 자신이 없는데 달리 갈 곳도 없다고 느끼는 막막함 같은 감정들이 깔끔하게 제거되어 있다. 그나마 위기라고 부를 만한 2화의 ‘가사 대첩’도 수박 겉핥기에 그친다. 장을 본 뒤 짐 정리를 하려는 안재현을 구혜선이 억지로 끌어다 앉히고, 느닷없이 ‘가사 고발장’을 들이밀면서 점화되는 갈등은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싸우는 모습도 한 번쯤 보여주자’ 식의 의무적 연출마저 없었다면 <신혼일기>는 구혜선과 안재현의 행복한 순간을 담은 영상화보에 지나지 않았을 일이다.


신혼일기_3.jpg



머도 통찰력도 없는 판타지


<고부 스캔들>이나 <호박씨>, <동치미> 같은 뒷담화쇼를 보자는 것은 아니지만, <신혼일기>는 결혼생활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으로서 최소한의 현실적인 결을 확보했어야 한다. 우리는 ‘비혼’을 이야기하는 청년이 많아지고 장년층이 ‘황혼 이혼’에 이어 ‘졸혼’이라는 선택지를 갖게 된 세상에 살고 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응당 성취해야 할 목표였던 결혼의 비효율성이 대두되면서 발생한 삶의 대체적 양식들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은 마음이 다 뭐란 말인가? ‘삼포세대’는 결혼과 함께 부과되는 수많은 의무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자식을 출가시킨 어머니들은 부조리한 결혼생활을 꾸역꾸역 연장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신혼일기> 4화의 인터뷰 숏에서 안재현은 “내가 별로여도 구님(구혜선)이 따뜻한 사람으로 나왔으면 좋겠고, 멋진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토록 양보와 배려가 넘치는 ‘사랑꾼’들이 과시하는 결혼생활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결혼의 현주소를 꺼내보고, 비교하고, 회의하게 된다.


그래서 <신혼일기>는 아무런 메시지도 던져주지 못한 채 나영석 PD의 매너리즘이 고이는 장소가 된다. 나영석 PD 자체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퍽 밝다. 때마다 이슈가 되는 키워드를 취함으로써 트렌디함을 잃지 않는다. 문제는 피상성이다. 청년의 ‘도전정신’과 ‘패기’를 강조한 나머지 배낭여행마저 스펙으로 소모되던 취업 지옥문에서 <꽃보다> 시리즈를 내놓았고, 도시의 살림살이가 급격하게 각박해지기 시작할 즈음 <삼시세끼>로 본격적인 귀농 판타지를 재현했던 나영석 PD다. 결혼과 출산 이슈로 시끌벅적한 때 등장한 <신혼일기>도 시기적으로는 아주 적절했지만, 그 안에는 가치 판단이 유보되어 있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낸 세계는 꽉 닫힌 동화 같다. 뒷짐 진 자세로 자연을 예찬하는 사대부 양반의 노래 같다. 폭풍우가 치는 바깥세상이 거짓말인 듯이 조용하고 평화롭고 순진한 기획, 이 완고한 ‘분리’ 전략의 효력은 얼마나 남았을까. 아무래도 머지않아 보인다.





탱알

트위터: @taeng_al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