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탄핵이 인용되었습니다. 이제는 민간인이 된 그 분께서 구치소로 퇴갤하실 타이밍입니다. 그동안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만, 학생들 수련회 가기 전에도 선생님들이 답사 다녀오는데, 그 분 가시는 길을 외롭게 놔둘 수가 없어가지고 딴지 편집부가 ‘구치소 가는 길’ 가이드를 해드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까짓 거 대충 가면 안 되냐고 하시겠지만, 그 분만 가실 것도 아니고 병우라든가 병우라든가 병우 같은 친구들도 갈 거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여러 가지 안을 드리는 게 낫겠죠. 하여 세 가지 루트로 구치소 가는 길을 구성해보았습니다.

 

도보, 버스, 택시

 

여기서 버스는 대중교통을 의미하나 법무부 버스로 바꿔 보아도 무방하고 택시는 경찰차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헌법을 수호하는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해석은 자유니까요.




택시 편 : 구두 신고도 갈 수 있는, 가진 자의 럭셔리 구치소행

 

탄핵이 인용되었으니 정말로 2017년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렇게 좋은 시대에, 대체 왜 걷습니까? 해경은 해체한다 했어도 일반 경찰은 해체한다고 한 적이 없으니, 경찰분들이 태워다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경찰차와 비슷한 택시로 출발합니다.

 


1. 준비물

 

우선 출발 전 오늘 걸은 거리를 봅니다. 



측정1.jpg



이대로라면 완벽한 하루로 끝났을 텐데. 아쉽지만 좀 더 걷는 하루를 보내겠군요. 다행히 택시 여행은 시간도 짧고 피곤해지지도 않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처음부터 럭셔리하게 준비해봅니다.

 


구두.jpg




짜잔. 택시를 타면 걸을 일이 없지요. 구두를 신고도 당당하게 구치소로 갈 수 있습니다.

 


책과 샤오미.jpg



택시의 생명은 스피드입니다. 이 액션캠으로 한강을 지날 때 로드무비를 찍을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고요한 택시 안에서 읽을 책도 준비했습니다. 여행의 동반자는 역시 책만 한 게 없죠. 책 제목에서 유난히 ‘사기꾼’이 눈에 띄는 것은 기분 탓이라 생각합니다.


 

2. 아저씨, 서울구치소로 가주세요.


경찰이 지키고 있는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콜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그냥 지나가는 빈 차를 잡아탑니다. 이 저녁 시간에 서울구치소에 가자고 하면 왠지 승차거부를 당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저녁 6시 53분, 드디어 빈 차가 나타났습니다. 늘 가던 길로 가주세요- 라고 하고 싶지만, 승차거부를 당할까 두렵습니다.

 

서울구치소로 가주세요.

(1초 당황)...ㄴ..네

 

기사님은 잠시 당황한 후 출발합니다. 가끔씩 룸미러로 나는 지금 니가 무얼 하려는 겐지 몹시 궁금하구나 눈빛을 보내옵니다. 그사이 택시는 빠르게 효자동을 지나 광화문으로 진입합니다.

 

택시가 몹시 빨라 정지된 순간을 제대로 촬영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장소들 바로 옆으로 지나갈 수 있는 건, 택시의 묘미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세월호.jpg



광화문 광장 곳곳에 있는 세월호 리본이나

 


그네흉상.jpg



민중총궐기에 빠지지 않던 대통령 본인의 흉상을 볼 수 있다든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시청광장.gif



가는 길에 시청을 지나며 애국시민들의 위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참, 저 텐트들 불법이니 없어지기 전에 보시려거든 조금이라도 빠르게 구치소로 가시기 바랍니다.


 

신세계.jpg



남산3호터널로 가는 길. 신세계백화점을 포함해 이름만 대면 알법한 기업들이 많습니다. 이 중 누가누가 내 말을 잘 듣고 돈을 냈는지 추억을 되새겨볼 수 있겠습니다. 

 

남산3호터널로 진입합니다. 조금만 더 가면 한강을 건너게 됩니다. 한강에서는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인 한강의 기적을 되새기며 아껴둔 샤오미 액션캠으로 로드무비를 찍을 것입니다.



남산터널.gif



터널이 꽤 길어 잠시 눈을 감아봅니다.



3. 한강의 기적


잠시 후, 주변이 어두워져 현재 위치를 찍어봅니다.



위치확인1.jpg


...음?


위치확인2.jpg


...네?


잠시만요, 이게 무슨 일입니까? 눈을 뜨니 34분이 지났습니다.

한강이고 나발이고 이미 사당역 지나 과천시청을 향해 실려 가고 있습니다.



망했을때.gif



읽으려던 책과 한강 로드무비를 찍으려던 샤오미 액션캠은 널브러져 있습니다. 



아아, 어두운 밤.

별 하나에 (걷고 있을) 코코아와, 별 하나에 (포켓몬 잡고 있을) 챙타쿠와,

별 하나에 죽돌 편집장이 스쳐 갑니다.



럭셔리한 여행에 이런 말이 어울릴까 모르겠지만 완벽하게 잣이 되어버렸네요. 아 시발


내일 가면 책상이 치워져 있진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이 택시는 빠르게 구치소를 향해 갑니다. 뒤늦게 로드무비를 찍으려 하나



어둡다 존나.gif



찍을 게 개뿔도 없습니다. (위 사진은 정지화면 아니고 움짤입니다)


챙타구처럼 포켓몬이라도 잡아볼까 생각했지만, 이 미친 스피드에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죠. 생각해보니 잡혀가는 마당에 포켓몬 몇 마리 잡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합니다. 


할 일이 없어 이 시간 코코아 기자의 위치를 확인해봅니다. 아 남는 시간에 왜 책을 읽지 않느냐면, 많이 망해서 우울한 탓입니다.



돈의맛1.jpg



몇 시간 먼저 출발한 코코아 기자를 훨씬 앞질러 가고 있는 상황. 새삼 돈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깨닫고 미소 짓게 됩니다. 물론 이런 것 깨달아봐야 구치소에서는 별 의미가 없겠죠.



저녁 7:58분, 구치소에 도착합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잠시만 기다려달라 부탁드리고 택시에서 내려 구치소 인증 사진을 찍어봅니다. 



구치소 일반.jpg



찰칵찰칵, 소심하게 찍고 있는데 기사님이 창문을 내리고는,


(응원조) 저 앞에 가서 찍어도 돼요!!! 



구치소-closer-b.jpg



기사님의 응원에 힘입어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피어납니다. 



구치소 closer-0.jpg


구치소 closer.jpg



무언가에 홀린 듯 앞으로 다가가 입구 사진을 찍고는 뒤를 돌아다보니, 약 20미터 거리도 걸을세라 기사님이 부웅-하고 제가 있는 곳까지 데리러 오십니다. 여러분 럭셔리란 이렇게 멋진 겁니다.



택시부웅.jpg



부웅-하고 데리러 오십니다.

 


4. 공주에게 추천합니다



측정2.jpg



택시 여행을 마치고 1시간 반쯤 뒤에 측정한 것이라 실제로 택시 여행을 하며 걸은 거리는 많아야 1500걸음 정도라 추정합니다. 귀족의 기운이 오지 않습니까? 게다가 마지막에 부웅-하고 택시로 날아오던 기사님을 생각하면 귀족이 아니라 공주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숙면으로 망한 것 같으나 그래도 숙면의 순기능을 발견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피부가 뽀얘지고 광이 납니다. 이 정도면 주사 없이도 잘 살아가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생 공주로 살아오신 박 대통령의 삶의 궤적과 너무도 일치하는 코스라고 하겠습니다.



박공주.jpg



대통령 놀이는 끝났고, 곧 검찰 만나면 공주로서의 삶도 완전히 끝날 텐데, 마지막에 공주놀이 한 번 어떻겠습니까?

 


 


<청와대에서 서울구치소까지-택시>


순례자: 인지니어스


소요시간: 65분(딥슬립 34분 포함) / 체감 소요시간: (푹 잤더니) 한 25분?


비용: 28,500원


총평: 아, 눈 뜨니까 도착이라 총평같은거 생각할 시간도 없습디다만.








관련 기사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Profile
we are all somewhere in betw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