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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에 화자가 달라지면 이야기의 내용도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화자는 청자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청자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에 흥미를 덧대어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청자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기도 합니다. 수몰된 살림살이가 보인다는 이야기(공주 장자못 설화 - 지난 글 참조) 또한 청자의 탐욕을 자극해 흥미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아마 용못도 그렇게 변형 되었을 것입니다.


연못설화 중에서 가장 대중적 흥미 소재인 용을 더한 용못은 장자못보다 금강 상류 근처에 있습니다. 장자못 설화에 용의 승천을 이야기에 더해져 전해옵니다. 지금의 공주 소학 삼거리에 있었다는 용못에 관한 설화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도로와 농지로 변해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역사문화재와 다르게 설화와 관련된 장소는 이렇게 사라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도 장자못처럼 금강변 근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강의 범람으로 생겼거나 강이 좁아져 따로 분리되면서 저수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장자못보다 공주(웅진)와 무척 가깝습니다.


소학삼거리(용못).jpg



용못설화


백제시대 공주시 계룡면 소화리라는 곳에 공주지방에서 제일가는 부자집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부자집에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너무 교만하고 인색해서 구두쇠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성질이 거칠어서 걸핏하면 화를 잘 내고 난폭하게 굴어서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피하였습니다. 그런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그집 대문가에 늙은 스님이 왔습니다. 스님은 시주를 해 주기 바랬습니다. 그는 주인이 구두쇠인 줄도 모르고 시주를 줄 때까지 목탁을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먼 발치에서 이런 모양을 보고 있던 그 집 주인은 부리나케 달려와, "여보시오, 어디서 온 중인데 이렇게 해가 다졌는데 와서 동냥을 달란 말이오? 내일 오시오." 그는 스님이 목탁을 치고 있는 앞에다 삿대질을 하며 이렇게 버럭소리를 질렀습니다. 늙은 스님은 나무아미타불을 읊조리고는 아무 말도 없이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 점심 무렵이었다. 부자집 주인은 마침 마루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제 왔던 스님이 대문간에 들어섰습니다. 부자집 주인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스님을 보았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목탁을 두들기며 시주를 요청했습니다. 부자집 주인은 오늘도 어제처럼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그래도 스님이 목탁을 두들기며 염불을 계속하자 그는 화가나서 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뜰 아래로 내려오더니 마당가에 있는 두엄을 한 삽 떠가지고 왔습니다.


스님은 등에 메고 있던 바랑을 풀어서 부자집 주인앞에 내밀었습니다. 그러니까 부자집 주인은 서슴치 않고 스님이 벌린 바랑 속에 두엄을 부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도 부족한지 부자집 주인은 스님을 흘겨 보면서 "이제 되었소?"하고 말하자 스님은 얼굴 색깔이 변해가지고 부자집 주인을 바라보다가 "당신네 집안은 이제 곧 망할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부자집 주인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이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스님은 두손 모아 가지런히 합장을 하고 두 눈을 지그시 감은 다음 뭐라고 주문을 외고는 훌훌 그 자리를 떠나 버렸습니다.


그때까지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던 하늘이 갑자기 검은 구름에 감싸이더니, 천둥이 일고 벼락이 산을 무너뜨릴 듯이 요란하게 치더니,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는 조금도 멈출 줄을 모르고, 천둥소리가 더 요란해졌고 번갯불은 더 무섭게 번쩍번쩍 했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앉는 것 같았으나, 잠시 후에 비는 그쳤으나 부잣집은 간 곳이 없고 그 자리는 큰 연못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못에서 커다란 용이 꿈틀거리고 나오더니 꼬리를 치며 하늘로 올라갔다고 해서 이 연못을 "용못"이라고 합니다.


[인터넷 대백제 자료관(http://baekje.chungnam.go.kr)]


용못설화는 용의 승천으로 끝이 납니다. 어떤 연못에는 망부석 설화가 더해지고 어떤 연못에는 용의 승천이 더해지게 되었는지는 설화 자체로는 해석되지 않습니다. 설화 여행을 해 가면서 알아볼 수 밖에 없습니다.


용은 등장만으로 이야기의 대표성을 차지할 수 있을 만큼 존재감이 큽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 사람들에게는 더 커다란 존재감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용은 어떤 의미였을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용(龍)의 관념화


거대한 몸과 날개, 하늘을 날아다니며 불을 뿜어내고 구름 속에서 비와 번개를 일으키는 용은 어떤 존재보다 강력한 존재로서 오랫동안 전해지고 있습니다. 용은 실존의 존재에 상상을 더해 창조해낸 존재로 생각합니다. 용은 그래서 상상의 영역만큼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해 왔습니다. 상상이 결합되는 만큼 권위는 커졌고 권위를 뒷받침할 모습으로 변해왔습니다.


용의 실체에 대한 다양한 기원설이 있습니다. 실제했던 동물이었다는 실존설, 공룡의 화석을 보고 상징화했다는 화석설, 용오름과 비와 번개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자연현상설불교의 유입을 통해 인도인들이 숭배하던 나가(naga)가 함께 들어왔다는 문화유입설 등이 있습니다.



실존설


서수파무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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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 문명의 새벽>


“중화제일룡”이라 불리는 중국 하남성 복양현 서수파 유적에서 가장 오래된 용의 형상을 확인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기원 전 6세기경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사람의 유골 옆 동서 방향으로 조개 껍질로 만들어진 호랑이와 지금의 용과 비슷한 모습이 확인되기는 합니다. 좌청룡·우백호의 방위에 놓여져 있는 점을 들어 용과 호랑이라고 추정하지만 보는 이에 따라 달리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중국인들은 용으로 보고 있으니 그들의 판단을 존중할 수 밖에 없지만 악어와 무척 흡사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용과 악어를 구분하지 못했을까? 시경의 大雅三(대아삼) 3권 대아에서는 용기양양(龍旂揚揚)의 문장과 제8장 영대(靈臺)에는 타고(鼉鼓 : 악어가죽으로 만든 북)라는 각각의 문자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용과 악어를 구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옛 중국인들이 악어를 대룡(大龍), 뱀과 거북을 소룡(小龍)이라 칭하는 점을 들어 다양한 파충류를 통틀어 용이라 했을 수도 있습니다.



화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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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형문자가 존재하는 자연물의 모양을 본따 왔다는 점에서 용()이라는 글자는 실제 본 것을 토대로 만들어졌을 겁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큰 동물은 대형 공룡의 화석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옛 사람들은 살아남은 공룡을 실제로 본 것이 아니라 대형 공룡화석을 보고 용()이라는 글자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화석이라는 개념을 잘 몰랐던 당시에는 뼈 밖에 남지 않은 모습 때문에 불에 타 죽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용을 불과 관련해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까지도 중국인들은 공룡의 화석을 돌이 아니라 실제 뼈로 생각해 약제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자연현상설


용오름.png 용오름2.png

<2012년 10월 울릉도 앞바다에서의 용오름, 기상청>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토대로 용이 만들어 지거나 이미지가 강화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용오름이라는 자연현상을 통해서 용 이라는 관념이 만들어지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설화에서는 용의 형상보다는 주로 승천이라는 현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승천과 비슷하며 사람들에게 경외감과 공포를 주었던 자연현상은 지면이나 수면에서 하늘로 향하는 용오름입니다.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용(龍)은 우리 옛말의 미르이며. “미르”의 어원은 고어 수(水)의 물과 어원이 같다 합니다. 즉 용은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중국의 관자(管子) 형세해(形勢解)를 보면 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용(龍)은 물에서 생활하며 항상 오색을 겸비하여 놀기 때문에 신(神)이라고 하며 작아지고자 하면 누에처럼 작아지고 커지고자 하면 천하를 감출 만큼 커지고 높아지려면 구름을 뚫을 만큼 높아지고 낮아지려면 깊은 샘물에 숨을 수 있어 변화무쌍한 것이며 거북이(龜)와 용(龍)을 일컬어 신(神)이라고 한다."


용은 물과 관련해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에서 생활하며 구름을 뚫을 만큼 높아지고 샘물에 숨을 수 있다는 것으로 보아 수면에서 발생하며 뇌우((雷雨)나 풍우(風雨)를 동반하는 용오름이 용의 승천이라는 현상과 가깝다 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22년의 기록에 보면, 세종이 제주 안무사(조선 시대 전쟁, 반란, 재난이 있을 때 왕명으로 특별히 파견되어 민심을 수습하던 관리)에게 용의 승천과 관련해 조사를 하도록 명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제주 안무사(濟州安撫使)에게 전지하기를,


"병진년에 최해산(崔海山)이 도안무사(都安撫使)가 되었을 때, 치보(馳報)하기를, ‘정의현(旌義縣)에서 다섯 마리의 용(龍)이 한꺼번에 승천(昇天)하였는데, 한 마리의 용이 도로 수풀 사이에 떨어져 오랫동안 빙빙 돌다가 뒤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하였는데, 용의 크고 작음과 모양과 빛깔과 다섯 마리 용의 형체를 분명히 살펴보았는가. 또 그 용의 전체를 보았는가, 그 머리나 꼬리를 보았는가, 다만 그 허리만을 보았는가. 용이 승천할 때에 운기(雲氣)와 천둥과 번개가 있었는가. 용이 처음에 뛰쳐나온 곳이 물속인가, 수풀 사이인가, 들판인가. 하늘로 올라간 곳이 인가(人家)에서 거리가 얼마나 떨어졌는가. 구경하던 사람이 있던 곳과는 거리가 또 몇 리나 되는가. 용 한 마리가 빙빙 돈 것이 오래 되는가, 잠시간인가. 같은 시간에 바라다본 사람의 성명과, 용이 이처럼 하늘로 올라간 적이 그 전후에 또 있었는가와, 그 시간과 장소를 그 때에 본 사람에게 방문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뒤에 제주 안무사가 아뢰기를,


"고로(古老)에게 방문하니, 지나간 병진년 8월에 다섯 용이 바닷 속에서 솟아 올라와 네 용은 하늘로 올라갔는데, 운무(雲霧)가 자우룩하여 그 머리는 보지 못하였고, 한 용은 해변에 떨어져 금물두(今勿頭)에서 농목악(弄木岳)까지 뭍으로 갔는데, 풍우(風雨)가 거세게 일더니 역시 하늘로 올라갔다 하옵고, 이것 외에는 전후에 용의 형체를 본 것이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하였다.


빙빙 돌다가 하늘로 올라가 천둥과 번개가 치며,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용오름을 용이라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용이라 생각되는 형상으로서의 동물에 이렇게 용오름이라는 자연현상이 더해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용못설화에서도 용의 형상이 아니라 용오름과 같은 기상현상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유입설


나가2.gif 


불교의 유입을 통해서 용의 개념이 완성되었다 해석하기도 합니다. 삼국시대에 유입된 불교에는 인도 남부지역의 나가(naga) 신앙이 함께 유입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도가의 영향으로 선의 상징이었던 용이 불교의 유입으로 악의 상징으로 수용되었다 보기도 합니다.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뱀인 나가는 인간에게 풍요로운 수확을 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반면 뱀과 같이 헤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무기로 분류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용과 이무기를 구분하지 않고 용을 해석한 것입니다.


뱀을 흔하게 접하는 인도 남부 농경문화에서 나가는 물의 순환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윤회설과 어울려 이 땅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또한 물을 뜻하는 미르와 불교에서의 수문장을 뜻하는 나가의 유사성으로 인해서 이 땅의 사람들이 불교를 보다 더 친근하게 수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가(NAGA) : 상체는 사람이며 하체는 뱀으로 된 인도 힌두교의 반인반신. 산스크리트어로 코브라를 뜻한다.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수행 중이던 석가모니를 지키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싯타르타 사후 불교가 인도에서 영향력을 잃어가면서 불교가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도의 대중적인 힌두 신을 수용한 것이다.


지금까지 용의 실존설, 화석설, 자연현상설, 문화유입설을 통해 용이 어떻게 관념화 될 수 있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사실 어느 학설이 맞다 할 수가 없는 것이 각 학설 모두 포함해야 지금의 용의 개념이 완성됩니다. 악어와 같은 실체적 모습에 공룡의 화석이 더해져 더 큰 악어와 같은 존재가 있음을 상상하며, 또 그렇게 커다란 존재의 힘을 자연현상에 더하게 되고 또 선과 악의 성격을 갖는 존재로 된 과정 모두가 용과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관념화가 완성된 후에 용은 더 자세하게 모습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다음에는 용의 형상이 어떻게 정해져 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기사


연못에는 용이 산다 1





꼭그래야하나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