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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26. 화요일

아외로워







축구 시즌이 끝나간다. 이제는 플레이오프도 없고 울산이 사실상 우승을 거의 확정지었다. 울산 외에 유일하게 우승이 가능한 포항이 분전하는 가운데, 챔스 티켓의 향방도 다 정해졌고, 이제는 강등 싸움만 남았다.

 

원래 어느 시즌에나 그 시즌을 떠올리게 하는 팀이 있기 마련이다. 굳이 리그 우승팀이 아니어도 해당될 수 있다. 예를 들어 2001년 대전이라거나, 2005년의 인천이라거나, 2006년의 전북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미리 올해의 팀을 정해보자면 어디가 가장 유력할까.

 

후보 1 : 전북

 

트레이드오프란 무엇인가를 보여줬다. 대단한 지조를 보이며 최강희 감독을 되찾고, 세계 최고 수준의 클럽하우스를 얻었다. 대신, 김정우와 임유환을 안 좋게 잃었고, 우리나라에 딱 두 대 밖에 없다는 재활 시설이 쌔삥일 때 써보려는 의도인지 선수들이 앞다퉈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성적을 덩달아 잃었다.

 

후보 2 : 성남

 

부자가 망해도 3년 간다더니, 진짜 딱 3년만 간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팀. 애증의 통일교가 완전히 팀 운영에서 손을 떼면서 팀 자체가 증발할 위기였다. 안익수 감독과, 김동섭을 비롯한 안익수의 아이들은 눈물 나는 투혼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다 성남 시민구단 창단이 확정되면서 성남시와 구단이 윈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과정에서 나온 새누리당 시의원들의 개그쑈는 덤.

 

후보 3 : 포항

 

한국 축구의 한계와 저력, 그러니까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 팀이었다. 상대적으로 얇은 선수층, 외국인 선수도 한 명 사오지 못할 어려운 사정에도 팀의 레전드 황선홍 감독은 멋진 패싱축구로 리그 우승을(아직까지는) 노리고 있다. 한국 축구의 저력이란 이런 것이다. 오직 키워낸 선수들 만으로 티키타카 해버린다. 포항의 2013 ‘스틸타카’는 전설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먼 훗날 축빠들이 2013년을 추억할 때 저 팀들이 먼저 생각날 것 같지 않다. 축빠끼리 알콩달콩하던 우리나라 축구, 나아가 아시아 전역의 축구를 뒤흔들어놓은 엄청난 팀이 등장했다. 심지어 이웃 나라 축빠들도 2013년을 돌아볼 때 그 팀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런 팀이 K리그에서 나왔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웃 나라에서 나왔다. 그 팀의 이름은 ‘광저우 에버그란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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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중국 팀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다니. 중국 팀은 원래 조별리그에서 광탈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광탈은 고사하고 우승해 버렸다. 그냥 우승도 아니고 후덜덜한 우승이다. 기사 제목 뽑히는 패턴만 봐도 이게 어떤 분위긴지 알 수 있다.

 

최용수 서울 감독, 광저우에 일침 "돈으로 우승 살 수 없다" - 이데일리

 

골리앗' 광저우는 '다윗' 서울이 두려운 걸까 - 한국일보

 

'광저우의 벽은 높았다’ 서울, 아시아 챔피언 좌절 - 노컷뉴스


 

누가 보면 레알마드리드랑 결승전 하는 줄 알것다. 각종 기사에서 ‘FC서울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2무를 기록했지만 아쉽게 우승컵을 내줬다’라는 식의 아깝다는 표현을 썼지만 경기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2차전 전반전에는 다섯 골을 내줘도 이상하지 않았을 만큼 일방적인 수세에 몰렸었다.

 

그나마 2무를 기록한 서울은 잘 한 거다. 2013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광저우를 만나서 무승부 이상을 한 번이라도 기록한 팀은 FC서울(2무), 전북FC(2무), 우라와 레즈(1승1패) 뿐이다. 광저우가 우라와한테 질 때만 해도 중국팀의 한계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토너먼트에서 결승전 전까지 6전 6승 기록하면서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광저우의 대진운이 좋았는가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광저우의 16강 상대인 센트럴 코스트 마리너스가 어떤 팀인지는 잘 모르겟지만 호주 팀들은 전통적으로 딱 16강 수준이었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8강의 레크위야는 16강에서 사우디의 알 힐랄을 꺾고 올라온데다 남태희, 바카리 코네 같은 선수들을 보유한 카타르의 석유형 부자구단이었다. 레크위야가 1, 2차전 합게 6-1로 나가떨어지고, 4강 상대는 가시와 레이솔이었다. 가시와 레이솔은 16강에서 전북현대모터스를 합계 5-2로 이긴 뒤, 8강에서 곽태휘가 뛰는 알샤밥을 원정 다득점으로 이기고 올라온 팀이었다. 결과는? 광저우한테 합계 8-1로 처참하게 깨졌다.

 

물론 2012년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전북이 광저우를 만나서 1-5로 탈탈 털린 적이 있긴 하다. 그때만 해도 광저우 감독이 이장수였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중국팀에 졌다는 느낌은 크지 않았다. 8강에 진출하고 이장수 감독을 경질한 뒤 곧바로 탈락한 것을 보고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돈지랄에 장사 없다. 광저우는 모기업의 엄청난 자금지원에 힘입어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물주로 거듭났다. 일단 이장수 감독을 경질하고 데려온 감독이 마르첼로 리피였다. 이탈리아 명문 유벤투스 감독을 하다가 2006년에는 그의 조국 이탈리아 대표팀에게 월드컵 우승컵을 안겼다. 2010년 월드컵에도 이탈리아 대표팀을 맡았지만 이탈리아가 조별리그 광탈하면서 짤렸다. 집에서 놀던 양반을 광저우가 데려온 것이다. 앞으로 선수도 왕창 사오고 그래야 하는데 그럴려면 일단 감독빨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었을까. 이장수 감독만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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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의 면면도 알고보면 대단하다. 광저우가 2011년 무렵부터 지갑을 열기 시작하면서 당장 한국 축빠들의 피부에 와닿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 뛰던 중국 선수들 씨가 말랐다는 점이다. 사실 리그와 선수들의 전체적인 수준으로 보면 동아시아에서는 단연 한국과 일본이 가장 좋다. 중국 선수가 한국에서 뛰려면 중국 국가대표급은 돼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활동했던 리웨이펑, 펑샤오팅 모두 중국 국대에서 뛰었다. 그러나 광저우가 중국 국적의 국대급 선수들을 죄다 사 모으면서 한국에서 뛰는 중국 선수중에 제대로 된 선수들은 다 광저우로 가버렸다. 리웨이펑이야 나이가 워낙 많으니 아니지만, 전북 팬들은 광저우에서 뛰는 펑샤오팅과 ‘중국산 에닝요’ 황보원을 보면서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원래 축구 선수의 수출입(?)현황을 보면 그 나라 리그의 경제상황을 가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는 축구 열기는 엄청나지만 나라 자체가 돈이 많은 것이 아닌데다, 리그 규모에 비해서도 선수가 많이 배출되기 때문에 축구 선수를 엄청나게 수출한다. 전 세계 어디에도 브라질 선수 없는 프로리그는 없다고 봐야한다. 한국도 축구 선수 수출국이다. 이웃나라 일본에는 다양한 사연으로 일본에서 뛰게 된 한국 선수들이 무지하게 많다. 2013년 초 기준으로 일본 1부리그에 뛰는 외국인 선수 70명중 30명이 브라질 사람이고, 26명이 대한민국 국적자였다. 북한 국적자까지 합지면 한국인 선수는 브라질 선수들과 수가 같다.

 

중국에는 원래 딱히 욕심나는 선수도 많지 않은데다 그나마 수출하던 선수들까지 광저우 에버그란데가 모두 되사오고 있는 거다. K리그 팀들은 돈이 없어서 있던 선수들도 다 팔고 있는데 반해 중국 리그의 경제상황은 매우 좋아보인다. 중국 국대들만 사 모으는 것이 아니다. 돈과 능력이 허용하는 한 최고의 선수들을 사오려고 노력한다. 광저우가 아르헨티나에서 데려온 다리오 콘카는 남미 최고로 인정받는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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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 용병 다리오 콘카, 상대 선수를 다리로 코 까


이런 선수가 뭐가 아쉬워서 축구계의 향소부곡 취급 받던 중국 리그로 간 걸까? 연봉 160억 원, 세계 축구선수 랭킹 3위의 연봉이라면 누군들 흔들리지 않을까. 선수들이 안 와서 문제지 돈이 없어서 못 사오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 브라질 출신 이우케종(Elkeson, 엘케손)과 한국의 대표 수비수 김영권까지 갖추고 있다. 광저우는 심지어 박지성도 영입하려고 했다. 광저우의 공포를 몰랐던 당시에는 한국 축구팬들이 광저우의 박지성 영입 시도를 비웃었지만 돌이켜보면 상당히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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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도 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중국 리그를 기피하긴 하지만 그들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엄청난 연봉을 주고 최대한 좋은 선수들을 사온다. 천리마를 얻은 지혜라고 해야 할까. 콘카 정도에게 그런 연봉을 준다면 메시 정도라면 얼마를 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러나 아시아 리그에는 어김없이 외국인 선수 쿼터가 있기 때문에 스쿼드의 대부분은 중국 선수들로 꾸며야 하는데 그 중국 선수들은 모두 국가대표팀에서 데려오는 것이다.



 

원래 돈으로 바르면 성적은 오르게 돼 있다. 수많은 잉글랜드 축빠들이 만수르 구단주 초기 맨체스터 시티의 돈 잔치를 비웃었지만 결국 돈을 뿌리면 좋은 선수가 꼬이고, 좋은 선수가 꼬이면 성적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 누가 맨체스터 시티를 비웃을 수 있을까. 그럼 아시아엔 부자 없나? 과연 아시아에는 광저우마냥 주위를 압도할 만한 돈을 쏟아부었던 팀이 없었을까? 왜 없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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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까이에는 성남 일화 천마가 있다. 통일교주 문선명 총재의 개인적 관심으로 시작된 이 팀은 비록 종교적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러나저러나 최고의 선수들을 압도적으로 사 모아서 우승을 7번이나 하지 않았던가. 해외에도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부뇨드코르는 돈을 쓰는 규모가 지금의 광저우에 비견될 만했다. 브라질 대표팀과 포르투갈 대표팀, 첼시 감독까지 역임한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를 감독으로 영입하고 브라질의 전설 히바우두를 영입하기도 했다.

 

성남과 부뇨드코르는 둘 다 엄청난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두 팀의 한계도 분명했다. 성남은 특유의 마이너한 종교 색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 실패했다. 종교 문제로 다른 기독교 단체들과 마찰이 있었다. 성남시는 교회들 눈치 보느라 구단을 지원하지 못했고 도리어 발목만 잡았다. 홍보도 안 되고 종교 이미지까지 있다 보니 수도권에 상위권 구단인데도 관중이 이상할 만큼 적었다. 결국, 문선명 총재의 후계자들은 더이상 구단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부뇨드코르는 최악의 케이스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서 세계적인 감독에 세계적인 선수를 사오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 의도가 불순했다. 우즈베키스탄의 박정희라고 할 수 있는 철권 독재자 이슬롬 카리모프의 딸 굴라나 카리모바가 인기를 얻어 정권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으로 부뇨드코르에 몰빵한 거다. 어쩌면 그냥 재미로 그랬는지도 모른다. 원래 굴라나 카리모바는 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사람이다. 지 맘대로 가수도 하고 디자이너도 하고 통신 기업과 광산 기업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독재자 카리모프의 가족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도록 법도 개정됐다나. 이런 마당에 뭐 거리낄 게 있겠는가.

 

이런 인간들이 하는 일이 스포츠분야라고 제대로겠는가. 우즈벡 리그는 정권 차원에서 부뇨드코르에 몰빵한 거 말고는 열악한 중앙아시아 리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흥행 카드였던 타슈켄트 더비가 부뇨드코르의 일방적인 우세로 인기를 잃었다. 우즈벡 정권이 그나마 부뇨드코르라도 계속 밀어줬으면 좋았겠지만 메인 스폰서이자 우즈벡 최대의 기업이자 굴라나 카리모바의 개인 지갑인 제로맥스가 파산하면서 구단은 더이상 옛날 같은 돈 잔치를 벌일 수 없게 됐다.

 

원래 리그에 어울리지 않는 터무니없는 돈 잔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길어야 수십 년이고 짧으면 몇 년이다. 왜 그럴까. 구단주 당장의 관심에 힘입어 성적은 냈지만 정작 구단 자체의 자생력은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 만수르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딱히 손해를 봤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잉글랜드 리그의 인기팀들은 엄청 비싼 표를 매진시키고 있는 데다 중계권과 스폰서로 얻는 수익까지 하면 나름대로 괜찮은 비즈니스 모델이다. 말콤 글래이저가 맨유에 5조 원을 투자한 것이 괜한 돈 자랑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애초에 시장이 작은 우즈베키스탄이나 대한민국 급의 리그에서 유지비가 수백 수천 억씩 드는 구단을 빈약한 수익 모델로 지속 운영하긴 어렵다. 심지어 그 돈의 근원이 국부에 무제한 접근이 가능한 독재자의 딸이라거나,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종교집단이라거나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광저우는 어떨까.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스폰서는 광둥성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부동산 재벌 헝다 부동산 그룹이다. 이 회사는 홍콩 증시에 '에버그란데'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상장했다. 그래서 광저우 축구팀 이름은 중국에서는 '광저우 헝다'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고, 영미권에서는 '광저우 에버그란데'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는 아시아 축구 연맹의 표기법에 따라 '에버그란데'라고 했다.


헝다그룹의 지역 기반이 광저우이긴 한데 중국 전체를 기준으로 놓고 봐도 탑3 안에는 든다고 한다. 2011년 매출액만 15조 원에 달한다. 부동산 회사가 뭐 이렇게 돈이 많은가 싶지만, 이 회사는 복덕방보다는 종합 건설사에 가까운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은 현대건설이었다. 원래 건설업종 자체가 큰돈이 오가는 사업이기 때문에 사장들이 통이 크다. 헝다그룹에는 여자 배구팀도 있는데 역시나 돈으로 발라서 우승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그래, 광저우 구단주 돈 많은 것은 알겠다. 그렇다면 과연 팀 운영은 지속 가능할까? 중국리그가 K리그보다 관중 많은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광저우는 엄청나게 관중이 많다. 올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제외한 리그 경기에서 평균 관중 4만 명을 찍었다. 2011년에는 4만 5천 명을 찍었다. 티켓 가격은 우리 돈으로 1만 7천 원에서 5만 2천 원이다. 홈구장인 텐허 스테디움의 수용 인원이 5만 8천 명인 것을 고려하면 평일이나 악천후를 제외하곤 경기장이 거의 꽉 찼다는 말이다. 그거 다 구라 무료 관중 아니냐고? 원래 우리나라도 리그 티켓이 막 길거리에 굴러다니고 했던 시절이 있었으니 정당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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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현지 사정이 어떤지는 알기 어렵지만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위해 돈 쓰는 사람들이 일정 수 이상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일단 광저우 헝다의 10만 원짜리 유니폼이 무쟈게 팔리고 있다. 광저우 홈경기에서 광저우 관중은 거의 전원이 이 유니폼을 입고 있다. 또한, 지난 11월 2일 서울 상암구장에서 열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는 1만 명 이상의 광저우 서포터가 유니폼을 입고 입장했다. 그날 밤 홍대와 신촌 등지에서는 광저우 유니폼을 입은 중국인들이 대거 출몰했다. 서울 뿐만 아니라 광저우는 해외 원정에서 늘 만 명 정도를 데리고 다닌다. 유니폼을 사고 해외 원정마다 따라갈 정도의 경제력과 성의를 가진 팬들이 최소 만 명은 넘는 거다.


이 정도면 대박이다. 물론 유럽 구단들처럼 나이지리아 반군들이 저지를 입고 다닐 정도가 되지는 않겠지만, 스폰서가 투입하는 돈 이외에 오로지 구단이 벌어들이는 돈으로만 쳐도 아시아 권에서는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구단에 속할 것이다. 전북이 평균 관중 1만 명 남짓 모으면서 인기 구단을 자처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최고로 많은 관중을 끌어모으는 FC서울도 평균 관중이 1만 5천 명에서 1만 명 사이로 나온다. 사이즈가 다른 거다.

 

우리나라는 그렇다 치자. 일본과 비교하면 어떨까? 전 세계를 엄습한 불황의 여파는 일본도 비껴가지 못했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 사람들이 축구 나부랭이에 돈을 쓰겠는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단이라던 우라와 레즈의 평균 관중이 3만 명대 초반으로 줄었고(그동안 성적도 엉망이긴 했다), 다른 팀들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없어졌던 전후기 리그와 챔피언십을 부활시켰다. 그러니까 막판 플레이오프를 해서 관중 좀 더 모아보겠다는 생각인 거다. 이런 사정은 숫자로 나온다. 2013년 일본 1부리그 팀들이 선수 영입에 쓰는 돈의 총합을 광저우 에버그란데 한 팀이 넘어버렸다.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챔스 우승은 아시아 축구에 대한 의미 있는 실험이다. 예전에 딴지에 백골프님이 쓴 ‘해태 타이거즈의 몰락 그리고’ 라는 기사를 보면 돈 없는 해태가 잘한 것이 한국 야구 발전을 저해했다는 말이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쓴 만큼 성적이 나오는 것이 진리이거늘, 해태는 돈 안 쓰고(사실 못 쓰고) 매번 우승하니 다른 팀에서 투자할 맛이 날 수가 없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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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후 부상으로 과자세트를 받았단 말이;


이 지적은 아시아 축구판에 그대로 적용된다. 00~10년대 아시아 축구판은 어떻게든 판을 키우려는 중동 중심의 아시아 축구 연맹과, 그들의 노력에 찬물 같은 것을 끼얹는 한국 프로축구 팀 대립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오일머니를 등에 업은 아랍 팀, 독재자 딸이 키운 중앙아시아 팀, 조별리그 만원 관중의 일본 팀 등이 평균 관중 5,000명 내외의 제대로 된 숙소도 없어서 시 체육회관에 얹혀 사는(성남이 그랬다.) 한국 팀에 연달아 깨지니까 도무지 판이 커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시점에 돈으로 우승을 사버린 광저우의 등장은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 언급한 백골프 님의 프로야구 기사에서는 LG 트윈스의 등장이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등장과 비슷하다. 과감한 투자와 마케팅을 통해 성적과 인기를 사는 팀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 축구의 압제에 시달리던 자본주의 세력의 발흥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중국 리그에 돈이 몰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2년에는 디디에 드록바가 상하이 선화로 이적했다가 터키로 도망친 사건도 있었고, 전북에서 부동의 에이스로 은퇴할 줄 알았던 에닝요가 창춘 야타이로 이적하기도 했다. 중국 리그에 돈이 몰리고 돈이 몰리는 만큼 선수들도 몰리고 있다. 우리는 인정하기 싫어도 중국 리그의 실력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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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록신 드록바도 한 때는 대륙에 있었다.


그런데 중국리그에서도 ‘이왕 돈지랄 제대로 돈지랄’의 원칙에 충실한 광저우의 대두는 ‘끕’이 다르다. 중국에서 가장 돈이 많다는 광둥 지역을 연고로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다른 구단의 돈지랄을 가볍게 압도한다. 2010년, 2부리그에서 우승한 것까지 포함하면 4년 연속 우승하고 있다. 지금 광저우 에버그란데는 남미 대륙을 대표하는 에이스가, 그것도 한창때의 에이스가 뛰면서 챔스 우승을 하고, 그 팀의 선수들이 받는 연봉이 뉴스가 되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그런 팀이다.

 

그런데 너무 치고 나가서 문제이기도 하다. 너무 돈을 쓰니까 그만큼 돈을 쓸 수 없는 구단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돈을 때려 박는 팀이 나올 때마다 생기는 일이고, 중국 다른 팀들도 K리그와 J리그 팀들에 비해서 엄청난 돈을 쓴다. 그리고 광저우 때문에 다른 팀들도 투자 액수를 늘리고 있으며 관중도 전체적으로 느는 추세로 보인다. 리그 전체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러니까 광저우를 비롯한 중국의 거대한 팀들이 지속적으로 평관 4만을 모으면서 티셔츠를 팔아대고, 그만큼 비싼 선수들을 계속 사 모은다면 중국은 아시아의 메이저리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 국가의 리그가 단기간 내에 EPL처럼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동아시아 최고의 중심 리그가 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우즈베키스탄의 박지성 제파로프가 FC 서울에 왔을 때 우즈베키스탄의 축빠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광저우는 어느새 선망의 대상이 됐다. 엄청난 연봉과 더불어 한국 팀을 꺾고 아시아 정상에 설 수 있는 능력 있는 동료들이 있는 팀이다. 게다가 관중도 많다. 내가 만약에 아시아 진출을 모색하는 브라질의 유망주라면 같은 조건에서 FC서울보다는 광저우를 선택하고 싶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돈 없어서(그리고 드래프트 제도 때문에) 유망주를 해외리그에 빼앗기는 K리그에는 언제라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라는 단서를 잊으면 안 된다.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스폰서인 헝다그룹은 작년 6월에 분식회계 및 유동성 위기 루머가 있었다. 유동성 위기의 원인으로 스포츠 구단 과다 지출이 꼽히기도 했다. 이 루머에 대해 헝다그룹이 법적 대응에 나설 정도로 기민하게 반응해서 일단은 덮인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문제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사건은 광저우 축구가 근시일 내에 몰락한다면 그게 어떤 모양새일지 보여준다.

 

중국 축구의 급부상은 불황에 신음하는 한-일과 신흥 슈퍼파워로 부상하는 중국 간의 힘의 균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과 일본 팀들이 긴축 운영을 시도하는 것 때문에 중국 리그의 약진이 더욱 돋보인다. 임계점 이상의 투자가 이루어지자 해외 원정팬 1만 명을 끌고 다니게 되고, 이것이 리그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선순환 구조는 지금 같은 대불황의 일본과 한국에게는 그저 아련한 추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중국 프로 팀이 촌스럽고 천박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촌스러움이 전통으로, 천박함이 과감함으로 바뀌는 데는 10년이 걸리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자금 흐름의 지속성이다. 아시아에서의 빅리그는 과연 가능할까? 어디 한번 지켜보자.







아외로워

트위터: vforveri@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