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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조사 4국의 후폭풍인가. 이쪽 업계, 그러니까 언론 쪽에 우리 회사가 돈을 제법 벌었다는 이미지가 각인됐다. '신년하례' 이야기가 나온다(물론 정말 신년하례는 아니다. 협찬을 강요하기 위해 언론사에서 한 바퀴 도는 것이다).

 

Y기자는 내일 나갈 기사라며 카톡을 하나 보냈다. 이런 건 대개 악의적인 기사다. 기사를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광고를 달라는 소리다. 


보통 우리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십중팔구 돈으로 해결한다. 좀 심각한 경우에는 법무팀이 출동하지만, 언론사와 싸워 이득 볼 일은 없다. 전가의 보도인 ‘언론자유침해’가 그들에겐 있다.


다만 이번엔 오너 리스크가 존재한다. 언론사의 가장 손쉬운 타겟은 '사장'인데 사장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는 한참 지난 일을 끄집어 내 기사제목만 바꿔 사람 속을 긁는다. 이러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나는 법무팀을 찾았다. 








법무팀 팀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제가 그쪽에는 문외한이라서 그런데요. 보통 이런 경우 법적으로 어떻게 처리합니까?”


법무팀 팀장은 특허 쪽에 ‘특화’된 인물이다. 그 정도 나이를 먹었다면, 어느 정도 사회 돌아가는 이치를 알 터인데... 아니다, 법무팀 팀장은 모든 걸 법적으로 사고하는 존재. 지금 그는 내 입에서 ‘껄끄러운’ 이야기. 즉, 법과 현실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 쉽게 말하자면, 밝혀졌다간 훗날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말을 내게 돌린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속에서 쓴 물이 올라왔다.


아시겠지만, 이런 규모의 회사에서는 보통 이쪽 전문의 로펌을 고용해서 같이 소송 들어가죠.”


“가능하겠습니까?”


능구렁이다. 가능하겠냐는 물음의 이면에는 뭔가 다른 해법이 있는 게 아니냐는 ‘찔러보기’가 섞여 있었다.


“최악의 수죠. 30대 대기업도 언론사와 소송 들어가는 멍청한 짓은 안 하죠.”


“그렇군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확인 해주십시오.”


“조사 4국이요?”


“그거 포함해서 2건의 법적인 문제, 오너 개인이 법적인 문제에 연루된 점이 있는지...”


꽤 위험한 발언을 하신 거 같은데...”


“사찰이나 그런 게 아니라 단순한 사실 확인입니다.”


법무팀장은 난감한 표정을 연기했다. 지금 어디까지 말할까 계산기를 굴리는 중일게다.


계산을 다 끝냈는지 ‘결심’의 표정이 법무팀장의 얼굴에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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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없습니까?”


“예, 조사 4국의 경우는 다음 달 중에 결론이 날 건데, 조용히 넘어갈 겁니다.”


“과징금 같은 건 없습니까?”


“상식적인 선에서 이야기가 진행 될 거 같습니다.”


“큰 문제는 아니다?”


“세무 쪽이나 행정 쪽에서는 우리 회사가 바른생활 어린이 같이 살아왔습니다. (웃음) 애초에 그런 시스템 자체가 없으니까요.”


“노동문제 두 건은요?”


“합의 했습니다. 내일 쯤 해서 합의서 제출하고, 양쪽 다 고소고발 취하하고 악수하고, 사진 찍고 할 거 같습니다.”


“재고용인가요?”


“재고용 원하는 직원들은 새로운 고용계약서 작성해 다시 취업할 거고, 원하지 않는 직원들은 퇴직금 외에 1년치 연봉으로 합의 봤습니다.”


“깔끔한데요?”


“(웃음) 이쪽은 제가 전문가라서요. 대표님 부분은, 제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대표님이 절 법적대리인으로 선임하고, 법적인 자문을 구한 적은 없습니다.”


“원론적인데요?”


“(웃음) 우리 대표님 일하는 거 봤잖습니까? 취미가 회사 키우기고, 노는 게 신제품 개발하는 사람인데 사생활이나 공적인 부분을 분리할 수 있겠습니까?”


“(웃음) 돈 벌만큼 벌었다고, 이제 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웃음) 한 6개월 놀다가 재미없다고 돌아왔잖습니까.”


“(웃음) 딴은 그렇네요.”


작년인가?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 사장은 이제 좀 누리고 살겠다며, 경영에서 한 발 물러났다. 그 결과 매출은 반 토막이 났고, 회사는 표류하게 됐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장은 만기친람(萬機親覽)을 선언하고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보도자료 만들어 뿌릴 건가요?”


“요즘 같은 시국에 이게 보도나 될까요?”


“(웃음) 보도 안 되는 게 좋을 때도 있죠.”


판단이 안 선다. 법무팀장은 은근슬쩍 묻어두는 게 낫지 않을까란 뉘앙스를 보였다. 그리고 판단을 내게 미뤘다. 아니, 내 입에서 묻어두자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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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상황을 지켜보죠. 분위기 무르익으면 후다닥 보도자료 뿌려서 우리끼리는 털어버리고, 아니면 묻어뒀다가 질문 오면 답변하는 식으로 가보죠.”


“나쁘지 않네요.”


생각 같아선 요즘 같은 시국에 은근슬쩍 묻어나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보도자료 뿌리고 다 터는 것도 한 방법인데, 지금은 신년이다. 언론들도 우리를 주시하고(그런 뉘앙스지만) 있다. 타이밍 잡는 게 어렵다. 신년하례 이야기만 나오지 않았다면, 김과장 시켜서 보도자료 뿌리고, 기자들 모아놓고 밥이나 한 번 사면되는데... 아, 김영란 법이 있었구나.


어쨌든 크게 걸릴 게 없다는 걸 확인 한 걸로 성과는 있다. 하긴, 걸릴 게 없다고 기사를 안 쓰는 기자들도 아니지. 다만, 최대한 꼬투리 잡힐 일을 피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사태를 지켜볼 수 밖에.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음이 바빠졌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인사를 건네려는데,


“O팀장님, 연초 지나면 술이나 한 잔 하시죠.”


“예?”


“11층에 있다 보니 회사 돌아가는 사정에서 멀어져서요. 그래도 O팀장님 이야기는 오다가다 듣습니다.”


“(웃음) 좋은 이야긴 아닐 거 같은데요.”


“사람들이 질투하는 거죠. 그래도 영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은데요.”


“예?”


“O팀장님 일 잘한다는 소문이요.”


“너무 띄워주시지 마세요. 낙하산이 없어서 떨어질 때 허리 나갑니다.”


“법 파는 사람은 사실만 말해요.”


“(웃음) 고맙네요.”


“고맙긴요. 사실만 말하는 겁니다. 그럼 급한 거 정리되면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묘한 느낌의 사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법무팀장도 헤드 헌터에 의해 이 회사에 들어온 사람이다. 11층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을 가장해 최대한 알아보고 있는데, 법무팀장에 대한 소문은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무색무취하지만, 일 처리 솜씨가 맵시 있다는 이야기들... 큰 사건이라면 큰 사건인데, 무리 없이, 뒷말 없이 처리한다는 것이다. 애초에는 중국 쪽 특허나 계약, 사업 진행을 위해 데려왔는데, 노동 관련 사건이나 세무 관련 사건에서도 외부로펌을 고용하지 않고 자기 선에서 다 처리 했다.


나와는 정 반대 타입이랄까? 그 사내가 손을 뻗은 것이다. 단순한 탐색일까? 아니면, 접촉일까? 어쨌든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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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의


회사 내 카페테리아에서 크로와상과 커피 한잔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고, 막바로 회의실로 향했다. 홍XX가 회의 준비를 막 마친 상황. 자리마다 음료수와 몇 장의 서류가 놓여있다. 아마도 회사와 사장에 대해 검토한 내용일 것이다.


황급히 달려온 듯 한 대행사 직원들 몇몇은 상황파악을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김과장도 거래처에서 달려왔는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 돼 있었다.


팀원들도 서로 눈치 보며 고개를 흔들 뿐이다. 홍XX가 회의록 작성을 위해 노트북을 열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선 다들 바쁠텐데, 급하게 불러 죄송합니다. 제 노파심일수도 있지만, 제가 이런 일에는 민감해서요. 가급적 문제 소지가 있는 일들은 사전에 제거하자는 게 제 신념입니다. 뭐 이건 다들 알고 있을테고...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P에서 신년하례 오겠답니다.”


대행사 쪽 사람들은 인상을 찡그리며 짧은 탄식을 내뱉고, 우리 쪽 팀원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요즘도 신년하례 다닌답니까?”


“요즘이니까 더 해야죠. 경기가 아예 막장인데...”


대행사 쪽 사람들이 낮은 소리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곧 이야기는 잦아들었다.


“다들 알겠지만, 신년하례라는 게 언론사 쪽에서 편집국장이랑 광고국장 앞세워서 삥 뜯으러 다니는 겁니다. 아, 홍XX씨 삥 뜯으러 간다는 말 대신, 광고협조 요청이라고 해주세요. 광고협조라면, 어찌어찌 넘어가겠지만 협찬이 걸렸습니다.”


또 다시 대행사 쪽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고, 팀원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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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미팅은 마케팅 팀 핏덩이들을 망신 주려고 한 의도도 있다. 마케팅 쪽은 시키면 얼추 따라오는 것 같지만, 對 언론 상대는 거의 백지 수준이다. 나중에 기회 되면 말하겠지만, 난 요즘 세대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불만이 많다. 이들에게 어떤 충격을 주고 싶었다)


“올 봄에 P에서 OO특별전이나 컨벤션 같은 거 하나 할 거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P에서 신년하례 올 정도면 우리 회사가 컸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빠른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대행사 쪽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몇 명이 보인다. 팀원들은 묵묵히 내 얼굴을 바라볼 뿐이다. 홍XX의 타자소리만이 고요한 미팅룸 안을 울릴 뿐이다.


“P정도 급이 찾아올 정도면, 다른 언론사들도 우리를 주목한다는 말입니다. 작년까지 우리가 2부리그에서 뛰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메이저에 올랐다고 보면 됩니다. 아마 더 힘들 겁니다. 제 노파심일 수도 있지만, P랑 만약 거래를 트게 되면 이후에 각종 시상식이나 포럼 같은 걸로 협찬을 요구할 것이고, 상당한 비용 지출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미팅 룸은 고요 그 자체였다.


“축하합니다. 이제 진짜 본 게임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정적.


“그럼 대책으로 들어가죠. 지금 당장 주목해야 할 게 3가지입니다. 오너 리스크에 대해서는 저도 확인해 봤는데, 법적으로 문제될 건 없습니다.”


박과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너리스크 쪽은 우리 쪽도 주시 할 테니 대행사 분들도 신경 써 주시구요. 저도 11층에 다시 한 번 올라가겠습니다. 회사의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법무팀과 확인했는데, 늦어도 다음달 중에 모두 처리됩니다. 김과장!”


“예!”


“법무팀과 협의해서 보도자료 준비해 놓고 있어요.”


“릴리스는 언제...”


“릴리스는 안합니다.”


“예?”


“타이밍 잡아보죠. 지금은 아닙니다. 다만, 언제든 릴리스 할 준비 해두세요.”


“예!”


“각 대행사 분들은 담당 팀원들과 업무 분장 다시 하고, 아... 특히나 스포츠 신문 쪽.”


K대행사 차장이 살짝 긴장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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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는 다를 겁니다.”


“예.”


“계약상황을 다시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 리포트나 검증 비슷한 것들로 우리 상품을 가지고 시비 걸 겁니다. 앞으로 스포츠 신문 쪽에 인력 확충해 줄 수 있습니까?”


“보고 하겠습니다.”


“그쪽 관련해서는 계약상황을 다시 고려할 수 있으니까 이건 추후에 따로 미팅을 잡죠?”


“예, 알겠습니다.”


“경제, 산업 쪽은 부장, 차장급으로 리스트 업해서 미팅 잡아주세요.”


“범위는 어떻게 조정할까요?”


“일단 5대 일간지랑 경제지... 아, 주간지도 넣어주세요. 인터넷 쪽은 따로 리스트 업해서... 박과장!”


“예!”


“인터넷 쪽 전담해주세요.”


“예!”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머릿속이 명쾌해졌다. 당장 걸리는 게 오너리스크, 스포츠지, 비용 갹출에 관한 건 시상식과 포럼 정도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스포츠지는 ‘소비자 비평’이란 명목으로 상품에 대한 평가를 올리는 기사를 내놓곤 한다. 만약 작정하고 까기 시작한다면, 우리 제품은 쓰레기가 될 것이다. 그들은 이걸 무기로 우리에게 접근할 것이다. 시상식과 각종 포럼도 마찬가지다.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OO대상’ 같은 것들은 까놓고 말해 기업들 쥐어짜기다. 거기서 누가 상을 받든, 누가 어떤 대단한 성취를 보였든 그건 중요치 않다. 언론사는 시상식을 핑계로 돈을 번다. 꽤 귀찮은 일이다. 이 바쁜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분야를 대상으로 한 시상식에 누가 가겠는가? 더 큰 문제는 그 시상식 비용이다. 결국 필요한 건 협찬이다. 시상식 몇 달 전부터 경제부나 산업 쪽 차장들은 협찬금을 확보하고, 시상식에 앉힐 사람들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들을 찾는다. 기업들은 돈도 내야하고, 사람도 보내 박수도 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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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이 되지 않은 미래는 불안하다. 그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서 미리 대비를 한다. 대비를 못한다면, 최소한 마음의 각오만이라도 세워둔다.


어쩌면 이게 노파심일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내 긴장감을 팀원들과 공유해야 한다. 사람을 부린다는 건 어쩌면 심플하다. 결재권자가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쏟는지를 보여주면 된다. 제 정신 가진 직원이라면 따라온다. 그렇지 않다면? 날려버려야지.


바빠질 거 같다. 그리고 꽤 힘들 거 같다. 아, 그 전에 사장을 만나야 한다. 아니아니, 본부장을 먼저 만나야 할까? 머리가 다시 복잡해진다.




추신 

이 시리즈를 투고하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 

내부자의 안전과 비밀보장을 최우선시 한다는 딴지일보를 믿으나 
이 연재가 중단되면 나에게 클레임이 들어왔거나 딴지 편집부가 쫄았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하시라.


(지난 기사를 읽고 관계자로부터 클레임이 들어오긴 했다. 그러고보니 지난 번에 딴지 편집부에 놀러가니 제법 큰 회사 임원이 기사를 내려달라고 딴지 기자랑 옥신각신하고 있더라. 딴지에서 그런 광경을 보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 이야기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날리 없는 소설이라고 믿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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