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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 추천30 비추천0






나는 내가 속해 있는 이 거대한 커뮤니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자랑스러웠다.


3일이 멀다 하고 한 번씩 이 사회가 미친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확신이 들곤 했다. 작은 실수야 어떤 집단도 다 하는 짓이고, 크게 봐서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괴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자가 대통령이 되는 사회가 뭐가 자랑스럽냐고 묻는다면, 그런 대통령을 세계사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파면시켜 끌어내릴 줄 아는 사람들이 우리라고 답하겠다. 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괴로워하며 중년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며 불안해한다. 노년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보내온 세월과 경험을 모욕하는 이 사회가 원망스러워 태극기를 들고 항의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향해 분노를 터트리고 넘쳐나는 스트레스를 어쩌지 못해 불특정 다수나 소외된 약자들을 향한 혐오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하는, 현실의 지옥이 대한민국 사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록 먼 길을 돌아가겠지만 결국은 우리들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물려주게 될 것이리라, 스스로 믿어 왔다. 근거 없는 낙관이 역사를 움직이는 법이니까.


오늘 아침, 1073일간의 고통이 물 위로 떠올랐다. 나는 우리 사회와 우리의 역사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한순간에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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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일보>



우리가 한 게 뭐 있냐는 생각이 든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판단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 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슬펐을 뿐이다.


아무 죄 없이 배 안에 갇혀 물속으로 가라앉아 가면서, 그 아이들은, 또 함께 타고 있던 승객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사람들의 슬픔과 공포를 배 밖에서 지켜보며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그저 먹먹하게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천일 전 우리들의 고통이 다시금 물 밖으로 떠오르며 가슴을 후벼 판다. 


그 슬픔이 힘이 되었다. 그 슬픔으로 이를 악물었고, 그 슬픔으로 누군가는 태블릿 피씨를 보도하기 시작했으며, 그 슬픔으로 누군가는 추운 겨울날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던 어떤 분은 자신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잘못한 일이 바로 박근혜에게 투표를 했던 일이라고 고백했다. 그 죄를 갚기 위해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든 촛불 집회에 참가하셨다는 그분의 흰머리는 또 다른 슬픔의 원인이기도 했다.


그렇다. 모든 일의 시작에는 세월호가 있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천일의 슬픔을 잊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박근혜를 파면시킬 수 있었다. 우리 스스로의 민주적 자각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 결정한 일도 아니다. 그저 슬픔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는 상처받은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그런 우리가 무엇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으며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삼백이 넘는 생명을 끌어안고 가라앉은 배를 천일이 넘도록 인양도 못했으면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아 돌며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자랑스럽지도 않고 희망도 없다. 다만 괴롭고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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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좌린



박근혜가 파면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세월호 인양이 결정된다. 결정이 되자마자 인양 작업이 시작된다.


그동안 인양하지 않고 버티던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전문가들이 나와 조류가 어떻고 날씨가 어떻고 기술적인 어려움이 어떻고 얘기하던 것이 모두 거짓말이었는가? 마음만 먹으면, 결정만 내려지면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건질 수 있었던 것을 그동안 왜 그렇게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을 막고 있던 것이 바로 썩어빠진 권력과 그 권력으로 이권을 취하던 권력 핵심과 그 주변의 파리떼 같은 몇몇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새삼스럽게 화가 치민다.


이들을 어찌해야 하나, 이들을 어떻게 처벌하고 단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자들을 처리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는 영원히 가망이 없을 것 같고, 자랑스럽기는커녕 수치스러워 숨기기에 바빠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나마 탄핵이라도 되었으니 이제라도 인양하는 거지, 그것도 아니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등골이 써늘해진다.


정말로 우리에게는 아무런 자랑스러움도 없고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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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좌린



망 속에는 언제나 작은 희망의 싹이 살아 있기 마련이다. 박근혜를 쫓아내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밍기적거리던 사람들이 박근혜가 쫓겨나자마자 바로 인양을 결정하고 순식간에 실행에 옮겨 버린 것이다. 그들은 또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있었을까?


이래야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속을 끓이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썩어 버렸었다면 이렇게 빠르게 일을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속도감이 딱 우리의 힘이며 우리의 가능성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처리해 내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 역시 슬픔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슬퍼하는 가족들과 시민들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슴만 태우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다. 세월호에서 시작된 슬픔이 탄핵을 가져왔다 하더라도, 공짜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조차 못할 것이라며 포기를 종용하던 수많은 패배주의자들이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니까 되어가는 거 봐서 무임승차나 하겠다던 기회주의자들이 있었다. 안 되는 일 하지말고 각자 먹고 살 걱정이나 하라던 비겁한 현실주의자들이 있었다.


비록 우리가 세월호의 슬픔으로 인해 촛불 집회를 지켜냈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었고, 무수히 많은 합리를 가장한 포기의 선택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힘을 모아내 뚜벅뚜벅 걸어가 합법적인 권력을 합법적으로 잘라 냈다는 것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되는 일이다. 그게 바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의 자격이니까 말이다.


슬픔은 슬픔일 뿐, 슬픔이 곧 절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천일의 슬픔은 반드시 절망이 아니라 희망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하며, 그 미래는 절망의 미래가 아니라 희망의 미래여야 한다.


우리는 이제 막 그 희망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이다. 모든 희망을 가로막고 있던 썩은 권력을 도려내 버리지 않았던가?


우리는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우리가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어 냈기 때문에 자랑스러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하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


그 희망이 현실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고, 모든 숨겨진 진실이 밝은 하늘 아래 드러나고, 모든 잘못한 이들에게 제대로 된 책임을 묻고, 모두가 잘못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고, 이제 다시는 그런 불행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


이제 막 내디딘 첫걸음이 좌절되지 않도록 모두가 긴장을 풀지 말고 계속 걸어가야 한다.


세월호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이제는 그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히 쉬시라는 말을 아직까지는 전해드릴 수가 없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런 때가 올 수 있길 바란다. 바로 그때까지 우리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때 비로소 마음 놓고 우리의 자랑스러움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