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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 날 오후였다. 날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생각하는 ‘금강 지킴이’ 김종술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세요?"


 “강이요.”

 

 "뭐 하세요?"


 “뭐하긴… 일하고 멍 때리고 있죠.”

 

 "요즘 금강은 어때요?”"


 “난리가 났죠. 금강은 지금….”

 

그는 어김없이 강가에 있었고, 여지없이 금강 타령을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을 살았다. 그 시간 동안 하루도 ‘이명박’을 잊은 적 없다. 박 전 대통령이 피곤한 모습으로 검찰청을 나온 그날도 김종술은 썩은 강을 바라보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떠올렸을 거다.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내건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4대강 사업을 추진해 강을 망가뜨린 시간. 녹조가 강을 지배하고 물고기가 죽어간 세월. 그동안 김종술의 삶은 녹조 핀 강에 사는 물고기처럼 무너졌다. 

 

김종술은 사업을 접고 4대강 사업으로 망가지는 금강의 모습을 취재하고 보도했다. 그는 날마다 금강에서 살다시피 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 덕에 우리는 큰빗이끼벌레 창궐과 ’녹조라떼’로 변한 금강을 목격했다. 그러는 동안 김종술은 빚더미에 앉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할 만큼 건강도 나빠졌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퇴임 후에는 일명 ‘황제 테니스’를 치며, 날씨 좋은 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강가를 달릴 때, 그에 맞섰던 김종술은 나날이 몰락했다. 무너진 김종술은 두 가지를 꿈꾸고 있다.

 

‘금강을 4대강 사업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

‘4대강 사업을 다시 검증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것.’

 

김종술만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몰락한 날, 많은 사람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찾았다. 이들은 SNS 등 인터넷에 글을 올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박근혜 OUT, 그런데 이명박은?”

 

여러 시민은 국정농단 관련자에 이어, 국토를 농락한 책임자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고 싶어 한다. 그 정점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 김종술의 꿈, 여러 사람의 바람은 이뤄질까?

 

대통령 탄핵으로 대선 정국이 열린 지금.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후보자들이 속속 4대강 사업에 관한 견해를 밝히고 있어서다. 이 중에는 김종술과 비슷한 꿈을 꾸는 후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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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술

 

여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그렇다. 그는 지난 1월 발간한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계획이었다. 그걸 주도했던 관료들 뿐만 아니라 교수 등 전문가집단까지 부화뇌동했다. 정책적인 오류가 단순한 판단오류가 아니라 고의가 개입된 오류라면 정책을 결정한 당국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동조한 전문가와 지식인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22조 원이라는 국고가 투입된 4대강 사업에 대한 진상조사를 지금이라도 실시해야 한다.”


 


이어 문 전 대표는 명확하게 말했다. 



 "4대강 사업은 물론 자원외교까지 법적책임을 물어 진상을 역사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환경운동연합 촛불특별위원회는 지난 2월, 4대강 사업에 대한 대선 예비후보들의 생각이 담긴 자료를 공개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후보는 모두 ‘4대강 보의 단계적 철거를 포함한 훼손된 강, 갯벌, 산림생태계 복원’에 찬성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같은 생각이다. 

 

바른정당 소속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보 철거보다는 모니터링과 수질 관리가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환경운동연합에 생각을 밝히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급부상한 홍준표 경상남도지사의 생각은 어떨까? 홍 지사는 작년 8월 29일 경남 창녕·함안보와 칠서정수장을 찾았을 때 이렇게 말했다. 

 


“일부 환경단체에서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보가 녹조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데, 녹조의 근본원인은 지류 지천에서 유입되는 축산폐수와 생활하수에서 발생하는 질소와 인이 고온의 물과 결합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중략)


4대강으로 인해서 식수공급, 홍수예방, 가뭄해소 등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있다. 녹조 발생 원인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4대강 보를 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무책임한 행동이다.”


 

대권에 뜻이 있는 후보들의 생각은 이렇게 다르다. 국민이 먹는 물과 관련 있기에 4대강 사업은 자주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당연히 이번 대선에서도 뜨거운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식수 등 국민 일상과 깊이 관련된 ‘4대강 사업’이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되는 순간, 국민은닥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하고 토론을 하면 누구든, 언제든, 수사기관에 불려갈 수 있다. 기소돼 법정에 설 수도 있다. 

 

비현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역사적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2010년 지방선거 때의 일이다. 무상급식, 4대강 사업 관련 여야 공약이 당시 뜨거운 쟁점이었다. 시민과 여러 단체 사이에서 활발한 토론과 행사가 이어졌다. 그러자 중앙선관위가 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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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술


선관위는 ‘선거쟁점’과 연결된 여러 행동은 공직선거법의 규제를 받는다고 경고했다. ‘금지행동’은 꼼꼼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무상급식, 4대강 사업 찬반을 나타낸 현수막 설치 금지 (선거법 제90조)

‘인쇄물 배포 금지 (선거법 제93조)

‘무상급식, 4대강 사업 추진 찬반 서명운동 금지 (선거법 제107조)

‘주요 선거 쟁점 지지-반대 집회 개최 금지. (선거법 제103조)

 

시민단체 활동가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가령, 4대강 사업이 올해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됐다고 치자. 누구든 신념에 따라 자기 집 베란다에 ‘4대강 사업 반대, 재자연화 추진’이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걸면, 수사기관에 불려갈 수 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4대강 보 철거, OOO 후보를 지지합니다’라고 후보자나 정당 이름을 적시하면 법정에 설 가능성이 커진다. 

 

가능성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2010년 지방선거 때 4대강 사업 반대, 친환경무상급식 찬성 활동을 한 시민단체 활동가 몇 명이 기소돼 법정에 섰다. 당시 배옥병 친환경무상급식 풀뿌리국민연대 상임위원장에 대해서는 법원이 혐의 중 일부를 유죄로 판결하고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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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환경운동연합


웃기도고 슬픈 일은 제20대 총선에서도 벌어졌다. 당시 서울환경운동연합은 반환경 정책을 편 것으로 판단한 후보 27명에 대한 낙선운동을 했다. 이들은 2016년 3월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이렇게 적힌 현수막을 게시했다. 

 

 ‘반환경·반인권·반청년 ○○○당 ○○갑 예비후보 2NOㄹOUT파티’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다. 사실, 이는 당시 서울 노원갑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이노근(2NOㄹ) 후보를 반대하는 내용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측은 왜 이렇게 모호한 현수막을 걸었을까?

 

선거법이 후보자의 이름과 정당을 적시한 현수막, 도화, 인쇄물 등의 게시-배포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측은 나름 대로 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2NOㄹOUT’이라고 쓰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이 단체 활동가 한 명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왜?

 

선거법의 꼼꼼함(?) 때문이다. 선거법은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것이면 정당이나 후보자의 “명칭·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명시”하는 행위도 금지하고 있다. (제90조)

 

후보자의 이름을 유추할 수 있는 행위도 하지 말라니. 유권자는 풍자도 패러디도 하지 말고, 닥치고 가만히 있다가 선거일에 투표나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거 때마다 정부는 물론이고 정당마저 ‘정책 대결’ ‘정책 선거’를 하자고 강조한다. 유권자가 정당이나 후보자의 정책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밝힐 수 없다면, 정책 선거는 불가능하다. 누구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어야 정책 대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작 한국의 선거법은 시민들의 참여를 봉쇄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은 영토 문제이자, 식수 등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다. 이번 대선에서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는 적폐 청산 대상으로 4대강 사업을 꼽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4대강 사업의 책임자를 검찰 포토라인에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이를 반대하는 의견도 많다. 

 

누구든 4대강 사업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선거법은 누구든 말할 수 없게 한다. 전화를 끊기 전, 김종술 기자가 내게 웃으며 말했다. 

 

 “저 곧 미국에 갑니다.”


 “왜요?”


 “댐 철거하는 거 취재하러요. 한마디로, MB 잡으러 가는 겁니다.”

 

자기 삶을 던져 금강 지키게 나선 김종술. 그가 만약 이번 대선에 ‘4대강 재자연화 반대하는 OOO 후보를 반대합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거리에서 든다면? 그는 곧 법정으로 불려갈 거다. 김종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찬성이든 반대든, 4대강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사람, 모두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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