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구촌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안에서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이 뒷받침 되어야 뭐라도 할 수 있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도 대통령 선거 때마다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분야가 경제다. 어떤 후보가 경제성장에 대한 확실한 ‘아젠다’(Agenda)를 제시했느냐에 중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세계 경제 10대 국가에 서 있는 우리 나라에게 여전히 경제성장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할 조건일까?
경제?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는 그것보다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들이 더 많다. OECD에서도 우리나라에 끊임없이 인권, 노동, 양성평등, 복지 등의 분야에 대한 미흡함을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자는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교’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한국 여권으로 몇 개국이나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한가?” 혹은, “한국 운전 면허증으로 어느 나라에서 조건 없이 교환 가능한가?”등의 여부로 외교부가 긍정적으로 평가 받아서는 안 된다. 북한과의 관계를 비롯하여 과거 청산과 관련된 일본과의 관계, 미/중/러와 같은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발전적 외교전략의 핵심이다. 이는 미래의 대한민국 생존이 달려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국민들이 여러 종류의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은 반면 ‘외교부’ 혹은 ‘외교관’이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경우가 없지 않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국민들은 외교부가 어떤 일을 한다고 생각할까?
기사 원문 (링크)
얼마 전 주대만대사관에서 벌어진 외교부 직원의 황당 대응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해외에서 어려운 일을 겪은 우리 국민에게 제대로된 영사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 논란이 되었다. 이처럼, 재외공관(대사관)에서 하는 업무 중, 국민들의 피부에 가장 가깝게 와 닿는 것은 대민업무다. 영사관, 혹은 대사관 내 영사과에서 하는 여권/비자 발급, 공증 및 신고(출생, 혼인 등)업무, 그리고 사건사고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는 외교부가 다뤄야 하는 업무 중 단편적인 부분이다. 물론,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업무를 충실하게 감당해 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외교부가 당면하고 있는 ‘굵직굵직’한 일들은 매우 다양하고 많다.
2월 25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시청한 분들이라면 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굵직굵직’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했을 것이다. (혹시, 방송을 보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한 번 즈음 찾아보시기를 권한다.)
그것이 알고싶다 '모욕과 망각' 다시보기 (링크)
2015년 12월 28일에 치러진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된 방송이다. 그런데, 해당 방송과 관련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이 나라의 외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어느 나라의 외교부인가? 일본을 위한 외교부인가?”라는 반응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담당PD의 편파적인 가치관에서 나온 방송이라 비꼬는 분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합의 과정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점이다.
방송을 보면,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찾아간 ‘화해, 치유 재단’ 대표는 줄곧 위로금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피해자분들은 보상이 아닌,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원했다. 그런데 재단 대표는 피해자들의 입장 보다는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돈 줄 테니 위로 받은 것으로 해달라’ 요청하는 것처럼 들린 것은 필자 뿐인가.
자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외교부의 미온적 태도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을 무렵, 위안부 합의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누구나 석연치 않다고 느꼈던 것이 실제로 확인이 된 것이다.
기사 원문 (링크)
위에 링크된 기사에 따르면, 외교부는 일본과의 합의 내용을 거짓으로 발표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 직후 발표된 ‘공동기자회견문’과 '실제 합의문'의 내용이 달랐다는 것. 아래 ‘공동기자회견문’과 ‘실제 합의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무엇을 감추고자 했는지 그 뜻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공동기자회견문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합니다.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본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에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위안부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전(前) 위안부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일한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전(前)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합니다.
일본 정부는 이상을 표명함과 함께, 이상 말씀드린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동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합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합니다.
실제 합의문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본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에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위안부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함.구체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전(前) 위안부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전(前)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함.
일본 정부는 상기를 표명함과 함께, 상기 2의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동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또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함.
국민들에게 공개한 공동기자회견문과 실제 합의문의 내용은 ‘딱 한 곳’만 빼놓고 일치한다. ‘딱 한 곳은’ 위의 적색으로 표시한 부분이다.
공동기자회견문에 적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합의문의 1항과 2항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실제 합의문에 적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2항만 포함된다. 따라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공동기자회견의 내용: 사과(1항)와 보상(2항)을 함께 병행하여 실시
실제합의문: 보상(2항)만 실시.
그렇다. 한일간에 실제로 합의된 내용은 보상만 이뤄지면 끝난 다는 것. 이쯤 되면, 왜 그토록 ‘화해, 치유 재단’대표가 위로금을 받도록 유도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것이 알고 싶다’에 등장했던 ‘화해 치유 재단’의 대표가 피해자 분들을 찾아가 줄곧, “돈 받으셔야죠”라고 얘기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해자분들이 돈을 안 받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돈만 받으면,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누가 보상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보상에만 급급했던 걸까.
기사 원문 (링크)
위 기사에서도 보여지듯, 위안부 할머니 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 외교부는 피해자와는 단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일본과 합의를 해 버렸다. 일본에게, “보상만 해주면 비난과 비판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공수표를 던지면서까지 말이다. 국민들은 어느 나라 외교부이며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이냐고 따져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점이 있다. 왜, 외교부는 마지막 한 줄만, 그것도 아주 예민한 부분만 바꿔서 발표를 한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숨기기 위해 그렇게 했을까?
공교롭게도 외교부의 이러한 처사는 이번 뿐만이 아니었다.
기사 원문 (링크)
위 기사에 따르면, 외교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과 연관된 아프리카 원조 사업에 대해서, 관련 사실을 숨기고 국회에 거짓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 문제가 될 만한 부분, 특히 ‘미르재단’이나 ‘인터피지’(차은택 광고대행사)에 대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삭제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벌어진 치욕의 역사를 돈 몇 푼에 합의를 한 것도, -특히 당사자와는 아무런 합의 없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실제합의문의 내용을 일부 수정해 거짓으로 국민들에게 공동기자회견문을 발표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국회에는 보고서 내용을 일부 삭제하여 거짓 보고를 일삼기까지. 외교부의 행태를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위안부 협상 문제의 핵심을 감추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업에 대해 허위 보고를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짙은 폐쇄성으로 투명성이 사라지고, 도덕적인 양심마저 져버리게 되면, 조직의 부패는 자신도 모르게 검게 물들게 된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테다. 이들에게 과연 한국의 외교를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전에 필자가 한 외교관의 행태를 본지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전 영국대사관의 총무과장이자 현재는 파라과이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교관이 업무네트워크 추진비를 자신의 데이트 비용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이었다.(관련기사 - 박근혜 대통령 영국방문, 그날의 진실 (링크)) 당시 비용처리를 담당했던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해당 외교관은 마켓에서 장을 보고 살림살이를 장만한 영수증까지 업무추진비나 야근 수당 및 식대 등의 명목으로 비용 청구를 했었다고 한다.
순간 궁금해졌다. 위안부 합의와 아프리카 원조관련 문서 위조처럼, 필자가 제기했던 문제의 자료들이 그대로일까? 어쩌면 증거는 사라졌을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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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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