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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06. 금요일
독투불패 onesix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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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 나에게 아담 스미스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오로지 '보이지 않는 손', 개인의 이기심에 따른 시장의 자유를 말한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마 나처럼 학교에서 배운 얕은 지식만으로 <국부론>을 기억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 씨바. 이래서 책이란 직접 읽어야 되는 건가 보다.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원제 졸라 길다; 여러 국민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경제학 책이 아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졸라 경제학은 <국부론>에서 시작한다고 줄기차게 배워오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부론>은 어디까지나 18세기 중후반의 영국이 처해있었던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보고서다.

실제로 읽어 보면, 오늘날로 치자면 배추값이 얼만지, 담배값이 얼만지, 국가부채가 얼만지, 경상수지적자가 얼만지 식으로, 대략 17세기 말부터 18세기 말(당시로써는 현재)에 이르는 경제 동향에 대해 상세한 분석이 담겨져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나 김광수경제연구소나 뭐 그런 곳에서 하는 일들을 했다고 생각하면 적당할 것 같다. 그런 만큼 임금, 물가, 세금, 관세, 대외관계 등 당시의 각종 현안들에 대한 온갖 복잡한 이야기들이 줄기차게 이어진다.

그런데..

상상했던 내용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아저씨, 평생동안 물가만 걱정해온 사람처럼 보인다. 첫 장에서부터 마지막 장까지 좋고 나쁨의 기준이 너무 한결같다. 물가를 낮출 수 있다면 좋은 정책이라고 한다. 그 반대라면 나쁜 정책이란다. 그럼 왜 물가를 낮추어야 되냐고?

동일임금이라도 물가가 낮아지게 되면 일반적인 국민들의 구매력은 향상되게 된다. 당연한 말이다. 같은 1000원을 받더라도 100원짜리를 90원에 살 수 있으면 더 많은 물건을 살 수 있으니까. 그렇게 구매력이 향상되면 당연히 전반적인 소비도 늘어나고, 소비가 늘어나면 물건도 더 많이 만들어내야 되고, 그럼 더 많은 일손이 필요해지고, 일할 사람이 달리니까 임금도 올라가고, 또 더 많이 파는 만큼 이윤도 늘어나서 생산투자도 늘릴 수 있겠다. 모두가 윈윈하는 가운데 배부르고 등따습다보면, 더 많이 응응하고 그럼 더 많이 아이도 낳고, 당연히 일할 사람도 늘어나고, 점점 더 생산을 많이 하게 되어, 물가는 다시 내려가게 되고, 뭐 이런 선순환이 가능하지 않을까하고 아담 스미스는 생각한 것이다.

그럼 또 물어볼 수 있겠다. 왜 꼭 물가부터 시작해야 되냐고. 순환과정이라면 중간에 아무데서나 시작해도 똑같은 과정은 밟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소비가 늘어날 리가 없고, 더구나 고용주가 어느날 갑자기 그동안의 삶을 반성하고는 그냥 선심으로다가 임금을 높여줄 리도 없다.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데 손해를 보면서까지 생산자들이 생산투자를 할 리도 없고, 또 단순히 아이만 많이 낳는다면(가령 인도라든지) 정확히 반대의 악순환을 가져오게 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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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가 비교적 적은 주인들은 훨씬 쉽게 단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법률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금지하고 있는 데 비해 주인들의 단결은 인정하고 있고, 그렇지 않다 해도 적어도 금지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노동 가격을 내리기 위한 단결을 금지하는 의회법은 없지만, 그것을 올리기 위한 단결을 금지하는 의회법은 많다. ... (중략) ... 따라서 노동자들이 이렇게 소란한 단결의 폭력에서 무언가 이익을 끌어 내는 일은 매우 드물며, 이런 단결은 일부는 행정 관료의 간섭 때문에, 일부는 주인들의 완강함이 더 세기 때문에, 또 일부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눈앞의 생계를 위해 굴복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주모자의 처벌이나 파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얻는 일 없이 끝나고 만다.

 

- 아담 스미스 지음, 유인호 옮김, <국부론>, '제1편 노동 생산력 개선과 노동 생산물이 국민 여러 계층에 자연적으로 분배되는 질서에 대하여, 제8장 노동임금에 대하여', 동서문화사, p. 80-81


 

(그러나) 노동자의 이익은 사회의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그는 그 이익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그것이 자기의 이해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생활 상태는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시간을 그에게 주지 않으며, 그의 교육과 관습은 그가 충분한 정보를 얻더라도 판단할 능력이 없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공공의 심의에 있어서 그의 목소리는, 어떤 특정한 경우에 고용주가,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용주 자신을 위해서 고무하고 선동하고 지지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아무도 들어 주지 않고 존중도 해 주지 않는다.

 

- '제1편 노동 생산력 개선과 노동 생산물이 국민 여러 계층에 자연적으로 분배되는 질서에 대하여, 제11장 땅값에 대하여', p. 264

 

 

큰 재산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큰 불평등이 있다. 한 사람의 부자가 있으면 적어도 500명의 가난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소수자의 풍요는 다수자의 가난을 전제로 한다. ... (중략) ... 오랫동안의, 어쩌면 몇 세대에 걸친 노동을 통해 취득한 고액의 재산가가 단 하루라도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것은 사법관료의 보호가 있기 때문이다.

 

- '제5편 주권자 또는 국가의 수입에 대하여, 제1장 주권자 또는 국가의 비용에 대하여', p. 742



인용이 길어서 미안하다. 쭉 그럴 테니까 양해바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거 못 느꼈는지? 혹시 <자본론>을 <국부론>으로 착각하고 읽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 아담 스미스는 좌빨이었던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당시 완전 불온서적에 종북으로 낙인 찍힌 흄(잉글랜드 북쪽의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아담 스미스도 스코틀랜드 출신)의 절친이기도 했으며, <국부론> 자체가 당시에 영국이 실행했던 정책들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기도 하다.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을 좀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왕이나 대신들이 사치금지법이나 외국산 사치품의 수입금지 등으로 개인의 경제를 감시하고 그 지출을 억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가장 큰 무례요 주제넘은 짓이다. 그들 자신이야말로 언제 어느 때나 예외 없이 그 사회의 가장 큰 낭비자들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출이나 잘 감시하기 바란다. 그러면, 개인의 지출은 안심하고 개인에게 맡겨둘 수 있다. 그들 자신의 낭비가 나라를 파멸시키지 않는데, 그들의 신민이 그것을 파멸시키는 일은 결코 없다.

 

- '제2편 자산의 성질 축적 용도에 대하여, 제3장 자본 축적에 대하여 또는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에 대하여', p. 356-357


 

이 책이 나온 1776년 당시 영국은 왕정국가였다. 졸라 당연하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사실 되겠다. 1688년의 명예혁명 이후로 예산의결권이 의회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 당시 의회라는 게 지금하고는 많이 다르다. 일단 투표권 자체가 귀족이나 지주, 자본가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다. 정부건 의회건, 정말로 부자들의 놀이터였던 셈이다. 지금의 정치인들이야 그나마 국민들의 눈치라도 보지, 이 때만 해도 별로 그럴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모든 정책들이 그들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보자. 가령 스페인 같은 경우엔 16~17세기 내내 남아메리카와 전세계의 식민지로부터 금과 은을 막대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왕가의 낭비와 부패 덕에 나날이 금은의 가치가 떨어져갈 뿐 국민의 생활 따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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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도 별로 사정은 다르지 않다. 북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프랑스와 싸우는 통에 국가부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갔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니들도 세금 내'라며 인지조례를 통과시켰다가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건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 실제로 <국부론>이 나오고 몇 달 지나지 않아서 이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당연히 부채는 계속 쌓여가고, 프랑스 왕가는 영국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막대한 예산을 미국에 쏟아붓다 결국 13년 후 프랑스혁명 크리 맞고... 좀 더 멀리 나가서 이 두 나라 사이의 미친 짓은 1806년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정점을 찍고는, 황제님은 안녕, 영국은 1836년의 선거법 개정이라는 기나긴 히스토리로 이어지게 된다. 이 무렵의 보다 자세한 상황은 에헤이대략난감 님이 연재하시는 프랑스혁명(링크)으로도 읽어볼 수 있겠다.

 

흄에 의해 빨간 물이 잔뜩 들었던 아담 스미스는 왕과 정책입안자(기실 상류층)들의 이런 병신짓에 정말이지 넌더리가 났던 것 같다. 그들의 욕심 때문에 그야말로 가정이 무너지고, 국가가 무너지고, 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그리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부잣집 출신도 아니었고, 스코틀랜드 자체가 잉글랜드에 비해 가난한 지역이기도 했다. 게다가 모국 스코틀랜드는 그가 태어나기 전 불과 십수년 전에 잉글랜드에 합방되어, 가스통 할배...들이 아니라 구왕당파 귀족들이 열심히도 반란(재커바이트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으니. 좋게 말하자면 일반 민중들의 삶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는 의미가 되겠다.

 

그래서 세상을 한 번 바꿔보고 싶은데, 그래서 나온 해답이 바로 <국부론>이다. 욕심과 탐욕으로 물든 지배계층을 그대로 인정한 채로(아담 스미스는 이들에게 매우 분노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사라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현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일반 국민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이다. 임금이 올라가면 당연히 일반 국민들의 삶은 나아지게 되어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만, 사실상 가장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단어로 현 상황을 인정키로 한다. 이 개념은 은근히 당시의 지배층에 대한 디스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니들 죽어도 손해보긴 싫지? 그래 씨바, 내가 최대한 니들에게 피해 안가도록 해 보께'라는 식의. 그리고 아담 스미스는 이타심을 결코 부정하지도 않았다. 같은 값이라면 기왕이면 선한 쪽으로 이끌리게 마련이라는 것. 아무튼.

 

임금을 올릴 수 없다면? 앞서 언급한 대로 아담 스미스는 그렇다면 혹시 물가를 낮출 수는 없을까로 접근 방향을 바꾼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쨌든 핵심은 일반 국민의 구매력을 올리는 것이었으니까, 지배층이 삽질을 조금만 그만하더라도 그만큼 상황은 호전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 당시 영국의 지배층이 어디서 얼마나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는지가 <국부론>의 실제적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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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삽질 : 한국의 삽질 = 국부론 : ???? 



여기까지만 해도 읽느라 고생했을 것 같다. 정부의 삽질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지적질은 가급적 짧게 정리하려 노력해 보겠다.



첫 번째. 궁전(이라든지 시청이라든지, 한강르네상스라든지) 등의 호화찬란한 건물 등에다 쏟아붓는 낭비와 사치를 그만두어야 한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겠다. 막대한 부채 따윈 왕가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죽은 후라면 나랑은 상관없음이라고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던 루이 15세(참고로 아담 스미스와 동시대를 살았다.)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두 번째. 사법권은 완전히 독립시켜 왕이나 의회의 어떠한 간섭으로부터도 자유롭게 한다.

 

오늘날 너무나도 당연한(?) 삼권분립의 개념이 이 당시만 해도 최신의 트렌드였다. 아담 스미스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법관들에게 국가 예산을 통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보았다. 그래야만 상류층에 의한 부정부패를 막고 충분한 자율성을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왕이 사라진 현재에서도...


세 번째. 도로, 다리, 운하, 항구 등 공공시설이나 기초교육 등의 공공사업을 국가가 직접 운영하도록 한다.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공공사업의 경우엔 지방자치에 위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벌써 250여 년 전에 이미 아담 스미스는 개인이 공공사업을 장악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적 요금의 비합리성을 우려했었다. 씨바, 우리는 맥쿼리 때문에 겨우 알았는데... 솔직히 졸라 어이없었다. 무려 아담 스미스 선생이 민영화에 반대하고 계셨다니. 하나 짚고 넘어갈 건 이 당시 공공사업이라는 개념이 오늘날과는 달리 상당히 희박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냐면, 세금을 걷는 징수원을 하청으로 맡길 정도였다고 한다. 세금을 걷을 때에 횡령이나 갈취가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했다는 이야기. 열 받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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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쿼리 개객끼, 관련 기사 혈세 부은 마창대교, 맥쿼리 ‘먹잇감’



그리고 또 하나, 아직 공중보건이라든지 공교육의 개념이 역시나 확립되지 않았던 때라 의료나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은 공공사업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재미있는 건, 아담 스미스는 대학의 경우 다른 어떠한 지원도 없이 오로지 수업료만으로 운영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하면, 다른 곳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경우 교수의 자율성을 확보하기도 어려워지고 그에 따라 수업의 질도 낮아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교수의 수입은 오로지 그의 수업을 찾는 학생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으나, 기실 아담 스미스 자신이 스타강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쨌든 그렇더라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기는 하다. 솔직히 대학등록금만 문제인 건 아니잖아?

 

시장을 확대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것은 언제나 판매업자의 이익이다. 시장을 확대하는 것은 흔히 공공의 이익과 충분히 일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쟁을 제한하는 것은 언제나 그것에 반하지 않을 수 없으며, 판매업자들이 그들의 이윤을, 자연히 그렇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 이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그들 이외의 동포로부터 불합리한 세금을 징수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상업상의 어떤 새로운 법률이나 규제에 대해 이 계층에서 나오는 제안에는 언제나 큰 경계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하며, 가장 용의주도하게, 가장 의심 깊은 주의를 기울여 오랫동안 신중하게 검토한 뒤가 아니면 결코 채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 이해가 결코 공공의 이해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계층의 사람들, 일반적으로 공공을 속이고 억압마저 하는 것을 이익으로 생각하는 계층의 사람들, 따라서 지금까지 대부분의 경우, 공중을 속이고 억압해 온 계층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 '제1편 노동 생산력 개선과 노동 생산물이 국민 여러 계층에 자연적으로 분배되는 질서에 대하여, 제11장 땅값에 대하여', p. 265



상인은 반드시 어느 특정한 나라의 시민이 아니라는 말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어디서 사업을 영위하느냐 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거의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며, 조금이라도 불쾌한 일이 있으면, 그는 자신의 자본과 그것이 유지하는 모든 산업을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 버릴 것이다.

 

- '제3편 여러 국민들에 있어서 부유의 진보 차이에 대하여, 제4장 도시의 상업은 농촌개량에 어떻게 이바지했나', p. 432



네 번째. 수입관세를 낮춘다면 원자재의 경우 생산비용의 절감으로, 완성품의 경우 국내에서의 시장경쟁을 촉발시킴으로써 물건의 가격을 낮출 수 있다. 또한 밀수에 대한 유혹을 감소시킴으로써 세수 확보에도 더욱 유리하다.


다섯 번째. 수출장려금을 폐지하여 국내생산품이 해외시장 대신 국내에서 판매되도록 한다. 이는 수출장려금이 없었더라면 이익을 누릴 수 없었을 국내생산품의 무리한 수출을 억제하며, 따라서 국내시장에서의 경쟁이 활성화될 것이다.

 

아마도 네 번째는 그러려니 해도, 다섯 번째는 졸라 의외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듯 싶다. 하지만 네 번째도 알고 보면 그렇지가 않다. 제임스 와트(역시나 스코틀랜드인)도 아담 스미스의 절친이었다. 즉슨 이때서야 막 증기기관이 발명되었고, 아직 산업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이라는 것이다. 육상에서는 마차로 짐을 나르고, 바다에서는 폭풍우와 해적질을 뚫고 나가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곡물 등의 저렴하고 변질이 쉬운 생산물을 쉽사리 옮길 수 없었던 시대라는 점을 감안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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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친구, 와트와 스미스



다섯 번째는 수출은 좋은 것이라고 각인된 교과서를 완전히 뒤집는 이야기이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수출 상인에 대한 의심을 밝힌다. 왜냐하면 자국민이 굶더라도 이웃나라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이웃나라에다 상품을 파는 게 수출상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자로서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환율조작 따위도 거침없이... 물론 수출상인이 나쁜 사람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저 인간이 이기심의 존재라서 그럴 뿐이다. 아울러 수입량이 수출량보다 많다라는 걸 꼭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수입량이 늘어난다는 건, 국민의 생활이 그만큼 윤택해 졌다거나 혹은 생산이 활기를 띤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여섯 번째. 국가방위를 위한 상비군의 유지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아담 스미스는 군대나 하인을 비생산적 노동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한다. 즉 이들이 많다면 그만큼 생산에 종사하는 이들은 적어진다는 의미이고, 비생산적인 동시에 국가예산에 의한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군대의 경우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대로 식민지 전쟁으로 세계 곳곳으로 군대를 파병해야 했던 영국에게는 예산의 가장 큰 구멍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는 막대한 군대유지비용으로 손실만 가져오는 식민지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아예 합방하여 자국민과 동일한 시민권을 주는 대신 세수를 확보하자는 제안을 한다. 당시의 분위기는 합방은 안 되고 포기는 어쩌면...하던 차에 미국독립전쟁이 발발해버린다. 혹을 뗄까 고민하던 차에 혹이 터져버렸던 것. 역시나 인생은 타이밍.

 

참고로 추가적인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해 중계무역에 있어서도 아담 스미스는 '꼭 그런 게 있어야만 할까?'라는 태도를 보인다.

 

상업과 개인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여러 국가 사이에서도 자연스러운 연합과 우정의 유대여야 하는데, 그것이 불화와 적의가 가장 풍부한 원천이 되었다. 금세기와 전세기 사이에 국왕과 대신들의 독선적인 야심도, 상인과 제조업자들의 주제 넘은 질투 만큼 유럽의 평화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인류의 지배자들의 폭력과 부정은 예로부터의 악덕이며, 유감스럽지만 그것은 인간사의 본질로 보아 거의 교정의 여지가 없다... (중략) ...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의 대다수의 이익은 언제나 무엇이든 그들이 필요한 것을 가장 싸게 파는 사람들로부터 사는 것이고, 또 그렇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명제는 너무나 명백해서 그것을 증명하려고 어떤 노력을 한다는 것이 어리석게 보일 정도다. 상인과 제조업자들의 사리에 찬 궤변이 인류의 상식을 혼란시키지만 않았더라도 이것은 문제가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해는 이 점에서 국민 대다수의 이해와 정면으로 대립된다.

 

- '제4편 정치경제학 여러 체계에 대하여, 제3장 무역차액이 불리한 나라에서 수입되는 재화의 특별 제한에 대하여', p. 506-507



우리의 상인들은 브리튼의 노동임금이 비싼 것을, 그들의 제품이 외국 시장에서 싸게 팔리는 원인이라 하며 때때로 불평하지만, 그들은 자산의 이윤이 높은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다.(Our merchants frequently complain of the high wages of British labour, as the cause of their manufactures being undersold in foreign markets; but they are silent about the high profits of stock. 앞뒤 문맥이 좀 이상해서 원문도 첨부. 아무래도 '싸게 팔리는 원인'보다는 '손해를 보면서 팔아야 하는 원인'으로 번역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들은 타인의 터무니없는 돈벌이에 대해서는 불평하지만, 자신들의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브리튼 자산의 높은 이윤이 브리튼 제품의 값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브리튼의 높은 노동임금과 마찬가지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 '제4편 정치 경제학 여러 체계에 대하여, 제7장 식민지에 대하여', p. 623-624



일곱 번째. 대 프랑스 무역에 있어서의 무역제한이나 적대적 관세를 철폐하여, 그렇지 않았을 경우 누릴 수 있었을 양국의 이익을 촉진하도록 한다.

 

이미 앞서 여러 차례에 걸쳐 언급했으니 따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대대손손으로 이어져내려오는 오랜 앙숙이기도 했을 뿐더러, 당시에는 식민지쟁탈전으로 매일같이 싸움박질(제임스 페니모어의 소설 <모히칸 족의 최후>를 원작으로 한 영화 <라스트 모히칸>에 이러한 광경이 잘 그려져있다. 1757년의 북아메리카가 배경)까지 벌이고 있었다. 문제는 '너에게만은! 너에게만은!'이라는 태도가 결국 양쪽 모두에게 손해 뿐이었다는 것.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영국은 경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만, 20세기가 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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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십일조 대신 수입에 따른 차별적인 과세(오늘날로 말하자면 누진세)를 시행하도록 한다.

 

수입이 적은 사람에겐 세금을 적게 걷고 수입이 많은 사람에겐 세금을 많이 걷자는, 오늘날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개념이 <국부론>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사실은 그리 익히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십일조도 역시나 1836년의 선거법 개정과 함께 폐지된다. 하지만 누진세의 본격적인 시행은 1848년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펴내고도 반세기 넘게 훌쩍 지나서야 겨우... 1910년 이전의 영국에서는 단일세율을 고수했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아홉 번째. 상품에 부과되는 세금(오늘날로 말하자면 부가가치세)을 차별화해야 한다.

 

이 역시 여덟 번째와 맞닿아있다. 즉, 생활필수품의 경우 그 세금을 낮추거나 혹은 폐지하고, 사치품의 경우 세금(사실상 오늘날의 사치세)을 무겁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텐프로에 분노하시는 X대인연구소 소장님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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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1일 수요일 19시 30분, 지하벙커



다만 아담 스미스에게 있어 사치품의 범주가 상당히 넓은 편이라서, 말 그대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물품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사치품에 속한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 가령 곡물, 비누, 소금, 가죽, 양초 등은 생필품으로 분류하지만, 담배를 비롯한 각종 육류, 생선까지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식기처럼 사치품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이 당시 하층민들에게는 이러한 물품들도 충분히 사치품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열 번째. 모든 종류의 독점을 금지한다. 왜냐하면 이는 경쟁이 있었더라면 필히 이루어졌을 물가의 하락을 막기 때문이다.

 

독과점의 폐해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테니 역시나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하는 독점의 의미는 오늘날보다도 훨씬 넓게 이해해야할 것 같다. 본문에서는 대 식민지 무역에 있어서의 독점이 주요 비판대상이기는 하지만, 그가 사회적 분업을 중시했다는 점 역시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는 생산자가 상인의 역할을 겸하는 것조차도 부정적이다. 구두를 만드는 제화공과 빵을 굽는 제빵사의 일이 다른 것처럼, 곡물생산자에는 곡물생산자로서의 일이, 곡물도매상은 곡물도매상으로서의 일이, 곡물소매상에게는 곡물소매상으로서의 일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동업조합이나 도제수업 등으로 인한 담합 내지는 시장장벽은 물론이고, 동인도회사 등을 예로 들어 주식회사가 야기할 수 있는 도덕적 무책임에 대해서도 경고를 잊지 않는다. 개인의 오랜 노력을 통한 자연스러운 자본 축적이 아닌 다른 어떠한 종류의 자본 집적에 대해서도 그는 상당한 우려를 했던 듯 보인다. 전자회사가 백화점도 하고, 편의점도 하고, 놀이동산도 하고(특정회사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님), 이런 일은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한 자유경쟁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똑같은 내용을 딴지에 맞게 다시 쓰느라 정말로 졸라게 힘들었다. 난 전공자도 아닐 뿐더러 아무런 지식도 없고, X도 모르는 주제에 <국부론>에 대해 쓴다는 게 민망스럽기도 하다. 어쩌면 이해력이 딸려서, 기억력이 나빠서, 기타 다양한 이유로 놓치고 지나간 부분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읽는 내내 아담 스미스를 입에 달고 다니는 기업가들이야말로 정말이지 꼭 읽어봐야만 하는 책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 고생을 사서하고 있다.


그가 거의 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무식할 정도로 두꺼운 책을 쓴 이유 또한 당시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했던 왕과 지주, 공장주, 상인 등 부유한 계층의 방종을 더 이상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가 말하는 시장의 자유란 이미 시장을 장악한 채로 온갖 특권을 누리고 있었던 자산가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작은 소자본들이 보다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작은 소자본들이 활발하게 활성화되면 결국에는 모든 국민들에게도 이득이 돌아가리라는 믿음으로 시장의 자유를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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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횽의 시장의 자유는 FKI(전국경제인연합회) 애들이 말하는

 '자유시장경제의 창달'하고는 다른 의미여뜨아.



앞서 이야기한 대로 아담 스미스는 세상에서 불평등을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기대따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그런 불평등 때문에 분노하거나 질투하지는 않아도 좋을 정도로 일반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또 때때로 가난한 야심가에게도 충분한 기회가 제공되는 사회까지는 꿈꾸었던 것 같다. 그가 내놓은 해법들은 오늘날 이루어진 것도 또 여전히 요원한 것도 있다. 이미 출간된 지 거의 250여 년에 이른만큼 <국부론>은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해답일지도 모른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본격적인 기술발전의 시대가 아니었다는 사실 자체가 곧 그의 이론의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비록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아담 스미스가 지녔던 문제의식 만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듯 보인다.


만일 주인들이 언제나 이성과 인간성이 명하는 바에 귀를 기울인다면, 노동자들의 과도한 열의를 부추기기보다는 적당하게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건강을 가장 오래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년을 통해 가장 많은 양의 일을 수행한다는 것은 모든 종류의 직업에서 알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 '제1편 노동 생산력 개선과 노동 생산물이 국민 여러 계층에 자연적으로 분배되는 질서에 대하여, 제8장 노동임금에 대하여', p. 96



막판에 너무 진지 먹었던 것 같다. 아무튼 결론은




아저씨, 그런 사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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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독투불패 onesixth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