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경상남도 합천에서 달포 간 숙식을 해결한 적이 있습니다. 해인사가 합천에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는 제게 합천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선 것은 그곳이 전두환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안 뒤였습니다. 구태여 알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알고 싶은 것도 아니었지만 전두환의 이름은 끈질기게 합천 취재 길을 따라붙더군요. 합천 읍내로 들어가는 길은 경치가 괜찮은 강변도로였습니다. 뉘엿뉘엿 기우는 해가 퍼뜨린 불줄기가 산과 강을 뒤덮는 장관에 경탄하면서 이 강은 낙동강인가? 하고 혼잣말로 물었을 때 함께 타고 있던 합천 군민 한 분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해 주셨지요.
"이기 황강입니더. 그 와 전두환 대통령 전기 제목이 '황강에서 북악까지' 였거등예. 바로 이기 황강입니더."
오호라 여기가 전두환의 고향이었는가? 야릇한 흥미가 돋았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PD가 신기한 눈빛을 빛내는 걸 본 합천 아저씨가 더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주시더군요. 그 중의 하나는 이랬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어렸을 적에 한 스님이 집에 왔다 카대요. 근데 관상을 탁 보고 하는 말이 참 귀할 상인데 아깝다 카능기라. 그래 전두환 대통령 어머니가 스님 스님 우짜면 됩니꺼 물으니께네 당신 뻐드렁니가 아들 이빨을 가로막는다 캤다네요. 그래 가지고 엄마가 뻰찌 가지고 생니를 뽑았다 안 캅니꺼. 아들 장래를 위해서예."
자식 사랑의 모정이라고 해야 할지, 무지한 이의 광기라고 해야 할지 그 어느 쪽으로든 뺀찌의 차가운 금속 촉감이 문득 앞니에 와 닿는 느낌에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저는 여러 가지 뜻이 담긴 "참 대~~~단한 어머니네요."라는 말로 끔찍한 화제를 막음 하려고 했습니다만 아저씨는 이미 신명이 나신 듯했고 제 비윗장을 결정적으로 뒤집는 멘트를 날리셨습니다.
"그렇게 강한 어머니가 있으니 전두환 대통령도 있었던 거죠."
이럴 때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예 그러네요 하고 넘어가는 것이 원만한 세상살이에 도움이 될 텐데, 저는 결코 원만한 사람은 못되나 봅니다. 이를 한 번 질끈 다문 다음 아저씨를 빤히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해 주었으니까요.
"그러네요. 참 지독한 것들이네요."
전두환의 자당께는 죄송한 노릇이었습니다만, 그 무례한 한 마디로 저는 바야흐로 제 인내의 댐 위를 넘어오려 하던 수다의 물결을 봉쇄할 수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침묵을 지켰고 저 역시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앞니 두 개를 생으로 뺀 어머니와 제 나라 국민들 수백 명을 죽여 없앤 아들의 조합은 눈을 즐겁게 하던 노을의 정취마저 피비린내 물씬한 불쾌감으로 바꾸어 놓았으니까요.
취재하던 마을 전경을 찍을만한 곳을 찾다가 마을 뒷산 중턱께에 말끔히 단장된 묘역을 발견했습니다. 시야를 가리는 나무 하나 없이 전망이 탁 트여 있어서 촬영하기에도 딱이었지만, 사방 십리는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이며 묘 앞의 우람한 석수와 하늘 같은 갓을 쓴 비석으로 두루 살펴볼 때 최소한 당상관 이상은 지낸 분의 유택일 것 같았지요. 지나가는 촌로에게 역시 지나가는 소리로 이 묘의 주인이 누구신가 여쭈었을 때 제 얼굴은 또 한 번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삼촌 묘라요."
온통 한문으로 칠갑한 묘비문을 제대로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 비석이 세워진 것은 1985년이었습니다. 그 장중한 묘역의 입구까지는 차량이 올라올 수 있도록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었지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빈농의 한 사람으로 일생을 마감했을 전두환 씨의 삼촌은 죽은 뒤 팔자를 고쳤습니다. 물론 전두환 씨의 처삼촌처럼 살아서 팔자를 고치진 못하였지만......
죽은 뒤 팔자를 고친 건 그 삼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구태여 가볼 생각이 없어 들르진 않았지만 전두환 씨의 선친묘역의 삐까번쩍함 또한 왕릉 못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묘 아래에는 전두환의 생가가 밤에도 불을 밝히고 있다고 했습니다.
살인의 추억을 애써 지우려던 노력의 일환이었는지 아니면 승리감에 도취된 탓인지 전두환은 자신이 분탕질했던 도시와 자신의 성장 배경이 된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를 건설했고 자신의 최대 치적(?)이라 내세울 만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것이 88 올림픽 고속도로지요.
출처 - <KBS>
합천에서 대구를 가려면 고령까지 나와 이 88도로를 타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88올림픽 고속도로는 국내 최악의 고속도로로 남아 있습니다. 2차선 급커브길의 '고속도로'가 뻔질나게 등장하고 중앙 분리대조차 없어 교통사고 치사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요. '군바리 수송로 뚫듯' 마구잡이로 '전광석화와 같이' 공사를 밀어붙인 후유증이겠습니다만 그 어림짝도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저는 계속 전두환과 이어진 불쾌한 추억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88올림픽 고속도로 개통일을 앞두고 있었다는 일화 때문이었지요.
88올림픽 고속도로 개통을 앞두고 도로가 관통하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경 고을에서는 행정 기관까지 개입된 짝짓기가 실시되었다고 합니다. 동서화합의 기치 아래 전라도 총각과 경상도 처녀, 또는 그 반대의 조합을 짜맞춰 억지 춘향 아닌 억지 사돈을 맺었다는 거지요. 이 얘기를 해 주신 분에 따르면 이 때문에 한 마을에서 좋아 지내던 남녀가 그만 서로 헤어져 옛 노래 속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남남이 된 일까지 있었답니다.
얘기를 들으며 저는 껄껄대며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흥얼거렸습니다. "어느 날 갑순이는 시집을 갔더래요~~ 시집가서 첫날밤에 한없이 울었더래요~~~~,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더래요~~~ 장가간 날 첫날밤에 달보고 울었더래요~~~ "
88올림픽 도로를 타고 전해지는 이 전설이 사실인지 허풍일 뿐인지는 저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만 그런 스토리가 형성되고 전파될 만큼 황당한 시대가 우리의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 도사리고 있다는 꺼림칙함은 너털웃음으로도, 장난기 넘치는 노래가락으로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집권을 위하여 사람의 목숨을 파리의 그것으로 치부하고, 정권에 위협이 된다면 서슴없이 교수대의 밧줄을 들이밀던 시대와, 스스로 저지른 범죄의 흔적을 엷게 하려는 제 발 저림으로 군용도로 건설하듯 도로를 밀고 억지 사돈 전설이 나올 정도로 '동서화합'을 부르짖는 모순과 역설의 주인공, 아버지에 삼촌 묘역까지 으리으리하게 단장시키고 도로 포장까지 해치운 한때의 '나랏님'은 합천에 머무는 내내 지근거리에서 제 심기의 창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와장창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그 돌멩이는 한 공무원의 말이었지요.
"(합천)군 들어가시다가 황강 옆에 보문 숲 우거진 거 있지예. 아마 그기 일해 공원이 되지 싶습니더. 여론이 그렇네요. 우쨌든 이 고장에서 난 인물 아닙니꺼......"
이 말을 들은 저는 "돌았능갑다"로 시작하여 원단 경상도 사투리를 끄집어내 "그 자슥 대가리 팍 뽀개고 쎄를 만발로 뽑아뿌야 하는데."로 마무리하여 경상도 합천 분위기를 시베리아 하프로천스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만 일해 공원은 세워졌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때도 늙었던 군바리 각설이는 10년이 지나도 죽지도 않고 사람 울화통 뒤집는 '자서전'을 부창부수로 쓰고 자빠졌습니다. 참 근 40년을 열 받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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