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사장은 시무식 겸해서 팀장급 이상 모든 간부들을 모아서 미팅을 잡았다. 미팅보다는 시무식에 가까운 행사였다.


사장은 칼을 바짝 곧추세웠다.


“우리 간부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프로페셔널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어요. 각각의 능력은 정말 출중한데, 리더십이 부족한 거 같아요.”


정적.


Custom-Made-Light-font-b-Gray-b-font-Groom-Tuxedos-font-b-3-b-font-font.jpg


사장도 알고 있다. 지금 회사 내부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벌이 나눠져 있고 저마다 사장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안다. 사장이 6개월간 ‘세상을 즐긴 기간’ 동안 회사는 저마다 비선실세인냥 나섰지만, 회사는 산으로 갔다(너무도 당연한 결과겠지만). 다시 친정체제를 구축해야 했던 사장은 피바람과 칼바람을 휘몰아쳤다.


“다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어보세요.”


(이 말을 듣고 뜨악했다. 지난 연말에 책을 읽는다고 했는데, 그 책이 ‘군주론’이었던 거야?)


“다 좋은데, 딱 한 가지만 버립시다. 제발 착한 사람 콤플렉스 버리세요.”


사장이 간부들을 모아놓고,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버리라고 말한다. 사원들을 쥐어짜라는 것이다. 사장이 보기에 간부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너무 물러 터졌다고 보는 것이다. 앞으로의 회사 분위기가 예상된다.


내 옆에 있는 임원, 팀장들의 표정은 살펴보지 않았지만, 과히 밝은 표정은 아닐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사장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요즘 세대들을 난 이해하지 못한다. 트로피 세대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경쟁과 그 경쟁의 부산물로 나오는 ‘칭찬’에 목말라 있는 이들은 자기만을 생각한다. 자기의 스펙을 올리고, 경쟁하고, 그 경쟁에서 성공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것에 집착한다. 남들이 내린 평가에 민감하고, 어쨌든 이기려 든다. 이러다 보니 자기에게 손해되는 일에는 발끈한다. 그게 사회참여의 문제라면 상관없는데, 회사 업무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자기의 인사고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그리고 티나는 일이 아닌 잡무나 타부서에서 업무협조 들어오는 일에 대해서는 정색을 하고 거부한다.


“그걸 왜 해야 하죠?”


이건 개념의 문제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의 차이다. 즉, 설명할 수 없고, 이해시킬 수도 없는 문제이다. 그들을 이기적이라고 욕할 마음은 없다. 그들은 그런 환경에서 그렇게 자라왔다. 이해한다. 그러나 그들이 내 부하로 들어오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회사 전 직원이 모이는 연말 송년회 기획이 인사과에서 넘어왔다. 원래 이런 일은 인사과에서 해야 하는 일인데, 인사과의 실력이란 게...밥만 축내는 놈들이었다. 사장도 인사과의 일처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날 불러 사장 인사말씀을 정리하라 직접 오더를 내렸고, 덤으로 PPT와 동영상 제작도 말했다.


당시 직원들은 일 하는 내내 투덜거렸다.


“이걸 왜 우리가 해야 하죠? 이거 인사과 일 아니에요?”


짜증이 났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송년회 자리에서 영상이 나오고 사장이 발언을 했다. 회사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마케팅 팀이 했다는 걸 알고, 오며가며 고생했다, 확실히 티가 난다. 잘 만들었다며 인사를 건넸다. 덕분에 인사과 애들 표정은 똥씹은 표정이 됐다. 사장 역시 사전 보고용으로 들고 간 영상과 인사말씀을 보고는 흡족해 했다.


20141610328.jpg


그런데, 우리 팀 사원들은 테이블에 앉아서 송년회 내내


“저걸 왜 우리가 해야 하지? 짜증나게...”


“마케팅 하러 왔지 우리가 백오피스 뒤치닥꺼리 하러 왔어?”


라며 쉴새없이 불만을 토로했다. 황당했다. 우리 테이블 앞이 헤드 테이블인데, 이 개념 없는 후배들이 계속해 투덜거렸고, 나는 얼굴을 붉힐 수 없어서 몇 번이나 이들을 다독였다.


“그만하자. 우리가 한 거 다 알고 잘 만들었잖아? 연말에 얼굴 붉히지 말자.”


이 정도면 알아들어야 하는데, 이들은 계속 해 떠들었고 결국 나는 손가락 하나를 입에 갖다대고 정색을 했다.


“조용히 해라.”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개념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분명한 건 난 이것들에게 확실히 보복을 할 것이다. 군기를 한 번 잡아야겠다. 정 안되면, 인사부적격자로 날려버리든가, 업무 부적격자로 몰아서 돌릴 생각이다. 송년회 자리는 이들을 어떻게 조질까를 고민하던 시간이었다.


사장의 훈시는 이어졌다.


“그리고, 사내에서 내가 무섭다는 말들이 들리는데...”


아놔, 사장이 무섭지 않은 회사원이 있을까? 게다가 몇 번의 피바람이 불어 닥친 이 시국에 사장이 무섭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 그 이전에 사장이 사내 소문을 다 캐치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나,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닌데... 아, 그래 O차장! 나 무서워?”


공이 왜 내게 날아오는 건가? 시선이 내게 모아졌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융통성 있고, 제가 보고 드릴 때도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대면 보고 하는 것에 부담 같은 건 없습니다. 업무 핵심을 잘 파악 하셔서 설명 하고 재가를 구하는 쪽도 편합니다.”


거짓도 아니지만, 진실도 아니다.


사장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O차장은 사장을 다루는 기술이 정말 뛰어나. 진짜 깜짝깜짝 놀라. 일처리도 철두철미하고, 아이디어도 많고, 추진력도 좋고... 게다가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좋아. 처음 면접 볼 때 알아봤다니까.”


‘사장을 다루는 기술’ 사장의 입에서 나온 그 기술을 얻기까지 10여년이 걸렸다. 다른 간부들의 시선이 따갑게 내 뒤통수에 꽂히고 있었다. 뭐, 어차피 견적은 나온 상태고 사장과의 관계를 일정 부분 유지하면서 다른 라인에 적당히 한 발 걸쳐놓기로 했으니 지금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장을 다루는 기술... 아마, 사장은 P의 신년하례 건에 관한 보고를 기억하고 있는 것일게다.



art of interviewing.jpg



“이게 앞으로 우리한테 요구할 거란 건가?”


“추측입니다. 아마, 그렇게 진행 될 겁니다.”


“OO대상, 컨벤션, 포럼... 다들 군소리 없이 이런 걸 한다는 건가?”


“안 했을 때 돌아 올 디메리트를 생각한다면, 싸게 먹히는 거죠.”


“싸게 먹힌다? 지금 광고협찬 하잖아? 그 정도 선에서...”


“단위가 다를 겁니다.”


“신년하례 라는데,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가지고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닌가?”


쓴 웃음이 넘어왔다. 사장의 위험감지능력, 위험회피능력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그런 면에서 사장과 난 동류다. 사장은 지금 날 떠보는 것이다.


“요즘 매체환경은... 잉크 한 방울입니다.”


“잉크?”


“유리컵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요? 순식간에 다 퍼지죠. 아무리 매체 파워가 없는 곳이라도 잉크 한 방울이 됩니다. 물론,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곳은 단호하게 대처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봐야 합니다.”


“잉크를 떨어뜨리지 않게?”


“그렇죠. SNS와 블로그가 넘쳐나는 세상이니까 기사가 나온 뒤에 막는 건 어렵습니다. 사전에 길을 닦아놓는 이유죠.”


liquidinkv2-600-5.jpg


사장은 한참 보고서를 내려다보더니 오너리스크 항목을 살펴본다.


“이건 또 뭐야? 오너리스크? (웃음) 나도 휠체어 타야 하는 거야?”


“협찬에 응하지 않으면, 가장 손쉬운 게 사장님을 공격하는 겁니다.”


“아... 진짜 이것들이... 이런 건 재벌들한테나 하라고 해.”


“이미 그 반열에 올랐다고 판단한 겁니다.”


정적.


사장은 보일 듯 말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내가 어쩌면 되지?”


“당장 신년하례 때 만날지 말지부터 결정해 주십시오. 그 이후 문제는 언론들 동향 지켜보다가 차차 수위를 결정해서 정리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정말 이것들 먹고 살기 힘든가 보네.”


...독재자의 침대로 제일 먼저 들어가는 매춘부가 언론이라고 했던가?


“원래 그런 애들입니다.”


내 말에 사장은 또다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오케이, O차장에게 일임할게. O차장만 믿을 테니 잘 추진해 봐.”


계산이 단순해졌다. 사장이 오케이를 했다면, 예산은 반 이상 확보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위기관리 비용도 다시 계산해야 한다.


사장실을 나오면서 온갖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이걸 굳이 왜 해야 하지?”


원론적인 질문을 내게 던졌다. 우리 회사는 내수보다는 수출이다. 그것도 중국. 한국에서의 홍보도 지면은 소용이 없다. TV도 광고를 하는 것 보다는 PPL이 효율적이다. 중국 시장에는 이미 CF를 돌리고 있지만, 국내는 CF를 돌려도 면세점 쪽에 올리는 게 고작이다.


광고 효과도 없는 곳에 억지춘향 격으로 광고를 올리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매체파워도 없는 곳에 광고를 집행하느니 그 돈으로 왕홍 한명을 섭외해 웨이보에 뿌리는 게 훨씬 효과가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어쩌면 이들은 우리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아닐까? 어떤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뭘까?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게 있을까?


당장 우리 회사만 해도 10여명에 달하는 홍보 마케팅 인원이 애초의 업무와 거리가 있는(상식적으로 보면, 홍보마케팅이 기자 관리를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일을 하느라 다른 업무를 뒤로 미룬다. 게다가 들어가는 ‘협찬비용’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가 언론사를 대비해 ‘위기관리비용’을 책정해 놓는 것부터가 코미디가 아닐까?


a-d-main-press.png


연말에 동기회 모임에서 나온 말이다.


“앞으로 언론 환경은 더 나빠질 거야. 그리고 기자들은 다 날카로워 질 거고.”


“무슨 일 있어?”


“D도 내년도에는 원턴만 하겠대.”


“D도?”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내부적으로 그렇게 결정한 거 같아.”


원턴광고라는 건 기업이 광고효과나 모든 산정방식을 무시하고(구독률, 열독률 따위의 헛소리를 다 빼고) 모든 매체에 다 광고를 하는 것이다.


“누구는 입이고, 누구는 주둥이냐?”


라는 말이 안 나오게 모든 언론사에 전부 다 광고를 하는 것이다. 기업 쪽에서는 기껏 광고했는데, 다른 쪽에서 말 나오는 게 싫은 것이다. 일종의 ‘언론사 관리’다. 까놓고 말해 대기업들의 국내 광고비 지출은 계속해 줄어들고 있다. 특히나 신문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신문사들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못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 그러나 그 광고효과는 바닥을 기고 있으니, 신문사들은 자신의 영향력으로 억지로(!?) 그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대포광고가 일상이 됐다는 말이 들릴 정도다(대포광고는 광고료를 받지 않고, 그냥 광고를 싣는 것이다). 이런 신문사들이 목숨 걸고 만든 것이 종편인데, 그 형편도 신문과 거의 엇비슷하다.


자기들 말로는 지상파와 맞먹을 수준이라고 말했지만(개국 초기에 지상파 대비 70%의 광고비를 요구한 걸 보고 기함을 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채 1년도 안 돼 지상파 대비 20%대로 떨어졌다), 광고효과는 이미 나와 있고(보험, 상조 등등), 판매율도 바닥을 긴다. 이러니 덤핑이 난무하고, 광고 비수기 때는 죽을 맛이다.


지면광고는 기업들이 꺼려하는 상황이 됐다. 대기업들이 계속 국내광고를 줄이고, 그 중에서 신문은 원턴으로 다 대체하려는 상황(거꾸로 말해 원턴이 아닌 광고는... 기업간의 어떤 거래라는 의심을 할 수 있다). 이런 기업들보고 무턱대고 광고를 하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제 협찬이 광고를 추월할 거야.”


“말도 마라. 올 한해 협찬으로 뜯긴 게 얼만데...”


“벌써 추월하지 않았냐?”


“아직 추월하진 않았어. 광고대비 한 8할? 그 정도 될 걸?”


광고수입이 10이라고 본다면, 협찬이 7~8 정도 된다. 어느새 협찬이 신문사의 주요 수익원이 된 것이다.


거대언론이라고 불리는 곳이 이럴진대 인터넷 언론들의 상황은 오죽할까?


“비정상이란 건 알겠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도 없고... 기자들 만나보니 그쪽 애들도 자괴감이 장난 아니더라고.”


“(웃음) 이러려고 기자했는지 심한 자괴감이 든대?”


“어, 심한 자괴감이 든다고 하더군(웃음)”


틀린 말은 아니다. 기자들 만나보면, 겉으론 아닌 척 하지만, 영업을 도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자기네 시상식을 위해 기업들이나 출입처 돌면서 읍소해야 하고, 어떨 땐 협박하고... 그런식으로 사람과 돈을 끌어오고, 협찬사 임원들 의전도 온전히 도맡아야 하고...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그들도 알 것이다. 자기들이 지금 하는 게 무슨 짓인지를...


banner-press@hires.jpg


이미 홍보쪽이나 CR쪽에서 언론이란 각다귀의 다른 말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모든 환경이 비정상이란 것이다. 기자나 언론쪽은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말하겠지만, 뜯기는 기업 입장에서 이들은 조폭의 다름이고, 기생충의 동의어이다. 그람시가 말했지 않은가, 위기란 오래된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기 전인 상황이라고... 우리나라의 언론환경은 위기다.



추신 

이 시리즈를 투고하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 

내부자의 안전과 비밀보장을 최우선시 한다는 딴지일보를 믿으나 
이 연재가 중단되면 나에게 클레임이 들어왔거나 딴지 편집부가 쫄았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하시라.


언제나 그렇듯, 이 이야기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날리 없는 소설이라고 믿어주면 좋겠다. 




지난 기사


기업 홍보팀, 그리고 국제청 조사 4국

기자와 기업은 어떻게 거래하는가

김영란법 폭풍전야, 나는 음지에서 이런 일을 합니다

어짜피 삥뜯는 거 서로 알잖아

중앙지 광고거래는 다르다

지면 광고 그리고 인터뷰

사내정치가 시작된다

손석희는 한 명이다

사내정치와 라인이라는 환상

광고의 세대교체, 그리고 중국시장

기자와의 전쟁 2차전 시작

언론이 기사와 광고의 교환을 요구할 때, 우리는 이렇게 움직인다








빨간두건


편집 : 꾸물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