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JTBC> 뉴스룸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인터뷰가 방송된 후 각종 SNS와 게시판에는 개탄, 분노, 폭소가 한데 어우러졌다. 손석희가 앵커를 맡은 뉴스 방송에 홍준표 후보가 나온 것인지, 홍준표가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손석희 사장이 게스트로 나온 것인지 심히 헷갈리는 수준의, 보도와 예능을 넘나드는 역사적 기록물로 남을 것임은 틀림 없다. 사람들은 홍준표의 꼰대 스러움에 개탄했고, 안하무인적 예절머리없음에 분노했으며, 타고난 만담 감각에 폭소했다.
하지만 나는 그 ‘폭소’ 뒤에 슬며시 찾아오는 검푸른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어딘가 서글픈 느낌이 어깨와 목덜미를 휘감으며 괜시리 울적해지기까지 했다.
왜일까.
홍준표. 깡촌 흙수저출신 모래시계 검사. 삼김시대 영입쟁탈전. 한나라당 당대표. 홍그리버드. 19대 총선 패배. 야인에서 경남도지사로 복귀. 그리고 끝끝내.
자유한국당 19대 대선 후보.
이력은 화려하다. 탄탄대로 꽃길을 걸어 화려한 것과는 크게 다르다. 심하게 굽이진 파도가 화려한, 지방 출생 50년대 생 세대의 한 면을 대표할 수도 있을 듯 다채로운 굴곡이 화려한, 그런 이력이다. 전형적으로 깡촌에서 몸뚱아리 하나 믿고 악으로 깡으로 공부해서 사시에 합격한 케이스이며, 머리가 좋기야 하겠지만 사시 합격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천재 유형은 아닌, 다분히 노력형 인물임은 확실하다.
자 그러면,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60대 초반의 노력형 자수성가형 인생의 파도 많은 사람을 떠올려보자. 머리를 스쳐 가는 많은 사람들의 면면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이것으로 귀결된다.
부장님 개그. 그것도 10년 전 버젼.
“ 니 설운도가 입는 옷이 뭔지 아나?”
“잘 모르겠는데요.”
“ 그것도 모르나 임마.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으며) 상하의~상하의~상하의~”
바로 이런 감성.
그렇다. 내가 인터뷰를 모두 본 후 은연중에 느꼈던 검푸르고 묵직한 슬픔의 그림자는 바로, 내가 띠동갑 팀원들에게 나름의 개그를 던졌다가 폭망한 아재개그라는 자각을 했을 때 느껴지는 그 자괴감이 앞으로 30년의 시간을 거쳐 차츰차츰 진화하갈 때, 그 진화의 최종 단계에서 맞이하게 될 비참함을 30년 먼저 경험하고만, 바로 그러한 종류의 운명적 카르마에 내재된 심연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홍준표를 보라.
왕년에 이런 느낌이었던 부장님이라면 설운도의 ‘상하의~상하의~’를 할 때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서 구성지게 노래하면서 한편으로는 성심껏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을 그런 류의 부장님이다. 그런 만큼 그 부장님 개그가 안겨주는 뜨악함은 일순간 그 공간의 공기를 얼려버릴 듯한 공력을 지니는 법. 그런 공력이 전 우주로 뻗쳐나갈 기세로 진화한 최종 지점이 바로 이 뉴스룸 인터뷰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각해야 한다. 우리의 인생이 그의 이 인터뷰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말이다. 하나씩 정리해보자.
포인트 1. 상황판단의 부재
ㅈ됐..
부장님 개그는 몇 가지 조건을 전제로 그 파괴력을 지닌다. 그 중 첫째는 ‘제로에 수렴하는 상황판단력’이다. 듣는 사람들이 구구단에도 기꺼이 웃어줄 만한 컨디션일 때에는 근엄과 체통을 지키다가, 그들 눈앞에 개콘 출연진 전체를 갖다놔도 웃어줄 여력이 없는 때에 개그를 치는 바로 그 엿바꿔먹은 판단력.
사실 이건 말이 좋아 제로지, 상황을 판단하겠다는 의도 자체가 아예 없을 때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대부분의 경우 부장님들은 자신의 흥이 넘쳐 흐르는 나머지 주변 상황과 맥락을 전혀 판단할 의도 자체가 없는 바로 그 타이밍에 이런 만행을 저지른다. 이날의 홍준표가 바로 그러한 ‘무 판단’의 끝을 달린다.
온 국민을 암담하게 만든 스캔들에 이은 탄핵 정국. 전 세계적 개망신의 한가운데에서 드디어 라인업이 완성된 조기 대선. 바로 그 날, 현재 가장 높은 신뢰를 받는 뉴스 방송에 주요 야당의 대선 후보 인터뷰가 연이어 잡혀있었다. 부장님 개그의 시도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조차 금기시될 법한 그런 상황적 맥락이다.
하지만 그는, 한나라당의 당대표에서 야인으로 한순간 전락한 그 아픔과, 가까스로 거머쥔 도지사에서 순식간에 뇌물수수 혐의로 피고인이 되는 굴곡을 벗어나, 60%가 넘는 득표로 다시금 같은 당의 공식 대선 후보의 자리에 올랐다는 성취감에 흠뻑 빠져있었다. 그 성취감이 너무 달콤했던 나머지, 당선 가능성은 최종 유죄판결 가능성보다 더 낮을 것만 같은 이 상황에서도 ‘흥’에 빠져 버린 것.
결국 그는 앵커의 질문에, 마치 ‘거 같이 재판받는 사이에 껄껄껄’이라는 류의 어프로치로 자기 혼자 허락한 ‘얼렁뚱땅 웃음으로 무마 찬스’를 시도한다. 맷돌 손잡이를 잃은 듯한 앵커는 충분히 알아듣게 상황을 인지시키려 하지만, 흥이 뻗친 부장님은 지금 나를 말리는 사람이 대리인지 젊은 전무인지 분간이 안되는 법.
결국 이 말은, 이 중요한 시국에서의 이 중요한 인터뷰의 총 방송시간 중 60% 가량을 아무 의미 없는 실랑이로 채워지게 만든다.
포인트 2. 시대착오
최신 유행 하이틴 스타
부장님에게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 20년 전에 새로운 개그를 들은 순간, 그 개그가 너무도 새롭고 재미진 나머지, 그 후로 20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 20년 동안 강산이 2회나 교체되어 이제는 더이상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를 못 하는 시대가 도래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하는 게다. 그런 부장님들에게 5년 전 정도는 바로 엊그제 정도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그들은, 5년 전에 개그를 듣긴 들었으므로 자신이 노년층치고는 매우 트렌디한 사람이라는 알 수 없는 자신감에 휩싸여있다.
그는 지난 대선 시즌 직전인 오세훈 급식투표 시국에 나꼼수에 몇 차례 출연한다. 당시는 종편이 막 개국됨과 동시에 나꼼수로 인한 팟캐스트 열풍이 겹쳐지던 시기. 나꼼수는 팟캐스트이면서도 종편은 물론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메이저 언론과 영향력을 겨루던 시절이었고, 그 가운데에서 홍준표는 나름의 입지를 구축한 바 있다. 5~6년 전 이런 류의 경험을 했던 왕년의 부장님들은 보통 ‘종편, 팟캐스트, 인터넷 방송 뭐 그런 거 내가 잘알아.’라는 식의 태도를 지니곤 한다.
결국 그는, 2017년 4월 기준 <JTBC>라는 종편 채널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의 맥락과, 2011~2012년 기준 나꼼수라는 팟캐스트의 맥락을 자기 멋대로 혼합시킨다. 그래서 그는 ‘손박사’라는 맥락에 안 맞는 호칭, 작가가 써준 질문지 보지 말고 자기 얼굴을 보라는 예능적 태도, 장난기 어린 썩소 등으로 인터뷰에 임한다.
그 나름의 판단에는, 요즘 방송 트렌드가 이런 거라고 생각했을 게다. 나꼼수 이후 수많은 팟캐스트와 인터넷 방송에서 정치에 대한 노골적이거나 직접적인 대담은 일종의 트렌드를 형성했고, 이 영향으로 ‘썰전’류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뉴스에도 그대로 적용될 거라는 건 그저 시대착오적 망상일 뿐 이해해줄 만한 껀덕지가 전무하다.
일례로, 그는 지난 2월 말, 경남 <MBC> 뉴스 인터뷰에서는 매우 진중한 태도로 임한다. 앵커들의 질문이 옛날 스타일 그대로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본인이 도지사인 지역 뉴스인 탓도 있겠다. 그러다가 지난 3월 <SBS> 뉴스에서 앵커에게 ‘쫓겨났다 언제 복귀했냐’는 막말을 했다. 당시 김성준 앵커는 다소 요즘 스타일인 ‘단도직입적 질문’을 했고 이에 대한 나름의 리액션이었던 셈이다. 이런 게 요즘 스타일이지 허허 라는 식.
결국 홍준표의 시대착오는 ‘겉치레적 질문을 걷어낸 톤’과 ‘노골적이고 정치예능적인 톤’의 구분을 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마치 라운지 클럽에서 지루박을 추는 듯한 낯뜨거움만을 남겼다.
포인트 3. 실패한 개그의 반복, 그리고 최후
제발
부장님 개그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도 안 웃는 이 차가운 현실 속에서 같은 개그를 반복하며 심지어는 그 개그를 설명하기에 이르는 종말에 있다. 그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포유류의 사지 관절을 함몰마비시키는 그 공력.
"상하의, 웃옷 아래옷, 상의랑 하의, 발음이 샹하이랑 비슷하잖아 응? 응? 상의 하의 몰라? 응? 임하룡 다이아몬드 스텝, 응?"
홍준표의 계속된 작가 질문지 드립, 손 박사 재판 드립에 짜증은 둘째치고 방송의 보도성에 문제를 자각한 앵커가 이를 제재하자, 홍준표는 그냥 그걸 될 때까지 반복하는 하이라이트를 만들어낸다. 그러고는 결국, 자기를 한번 불러달라, 여기 있으니까 웅웅 거리고 잘 안 들리고 좀 그렇다는 식의 되도 않는 측은지심 코드의 드립을 잇는다.
실패한 개그를 계속 반복하는 부장님의 최후는 종종 이렇게 끝난다.
"아 참 이렇게까지 진지하면 내가 민망해서 농담을 못 하겠네. 그래그래 앞으로는 안 할게"
그 공간의 질소마저 액화질소로 만들었을법한 만행을 저질러놓고도 자기반성이나 객관화는 안중에도 없이 ‘삐졌어염 뿌웅’류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이 적반하장적 최후.
결국 패배자는 너와 나 우리 모두와 정대만이 되는 이 헛된 절대온도적 냉담함.
그렇게 손석희는 오늘도 늘어만 가는 암발병률을 등에 진 채,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홍준표는 요란한 지루박 스텝을 허공에 뿌린 채 입을 대빨 내밀고는 페이드아웃으로 사라진다.
그렇다. 이거슨 비단 일개 수구당에서 새로 선출된 일개 주변장식용 대선후보의 인성에서 비롯된 참사가 아니다. 만담에 있는 소질을 뒤늦게 깨달은 60대의 적성 발견도 아니다.
이거슨, 슬슬 다음 세대들에게 더이상은 웃음으로 다가가지 못하기 시작한 우리네들이, 마치 격언처럼 가슴에 아로새겨야 할, ‘실패한 개그는 어디까지 가는가’의 저만치 끝자락에 놓인, 우리가 자칫하면 훗날 직접 목도하게 될 그 처참한 종말의 프리뷰인 것이다.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내 흥에 못 이겨 젊은이들 앞에서 웃겨보겠다는 마음이 들 때, 주문처럼 외우며 정신을 번쩍 차리길, 독자열분들에게 제안한다.
홍.준.표.손.박.사.작.가.질.문.지.웅.웅
홍.준.표.손.박.사.작.가.질.문.지.웅.웅
홍.준.표.손.박.사.작.가.질.문.지.웅.웅
춘심애비
트위터: @miiruu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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