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편집부 주



'찌라시 한국사'는 재미난 역사적 사건을 대화체로 풀고 썰을 마구 첨가하여 남녀노소 상하좌우 친박반박까지 한국사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 새 연재입니다.


찌라시만큼 흥미진진하고 쫄깃하여 찌라시인 것이지, 진짜 찌라시와는 무관하니, 맘 편히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line.jpg  


태조 왕건이 죽은 후, 2대왕 혜종과 3대왕 정종이 재위기간을 5년도 넘기지 못하는 등 고려는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4대왕 광종에 이르러 왕권이 안정되기 시작했으나, 그의 공포정치로 인해 지방 호족들이 피의 숙청을 당하는 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 혼란이 한창이던 964년, 왕건의 손녀로 천추태후가 태어난다.



line.jpg  



역사저널-그날1220_2M.MP4_20160502_155144.229.jpg


왕족이 아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복동생이랑 결혼하면 막장드라마라고 손가락질 하는데, 왕족의 가계도를 보면 이건 머 구역질이 날 정도야. 유럽의 왕들이 근친결혼으로 인해 몹쓸 유전병으로 고생 한 건 많이들 알고 있잖아. 이렇게 거미줄처럼 얽힌 근친간 결혼을 통해서 자기들만의 세상을 지키고 싶었던 건 이해 하는데 그래서 얻은 건 머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권력? 가족끼리 피를 튀기는 전쟁?


오늘의 주인공인 고려시대 천추태후도 사촌이랑 결혼을 했어. 천추태후의 부모님은 심지어 이복남매야. 할아버지가 고려를 세운 왕건이시지. 한국 막장 드라마의 독보적 원탑 임성한 씨도 이런식의 가족 관계도는 감히 생각도 못했을 거야.


고려 초창기 로얄패밀리 가족사가 유달리 꼬인 것은 고려 건국의 아버지 왕건께서 무려 29명의 부인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야. 한 나라를 통일 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왕건은 팔도의 난다 긴다 하는 호족집안들과 결혼을 함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다졌어.


장인어른! 사위한테 힘 좀 한 번 실어 주세요! 어디 저 혼자 잘 되자고 이러는 겝니까?


알았네. 왕건 사위, 내 우리 집안의 힘을 보태 자네 앞길을 밝힐 터이니 대신 우리 집안을 무시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야!


장인어른! 당연한 말씀 입니다.”


이렇게 공수표 아닌 공수표를 날리기도 했겠지. 일단 통일된 나라를 세우고 신생국가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는 각 지역에서 콧방귀나 뀐다는 호족들과 결혼동맹을 맺어야 했던 거야왕건 자기 때는 좋았지. 그 똥을 후손들이 치우느라 고생했지만.


각 호족들은, 내 사위가 고려 초대임금 왕건이다. 어험!했던 배경을 우리는 일단 알고 넘어 가야 해. 자 다음 스텝으로 고고!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천추태후는 964년에 태어나서 1029년에 생을 마감했어. 호환마마가 기승을 부리던 천 년 전에 환갑을 넘기셨으니 천수를 누리셨지. 인생이 엄청나게 다이나믹 한데 이런 천수를 누렸다니 놀라울 뿐이야. 인생이 얼마나 드라마틱 했으면 그녀의 일생이 채시라 씨가 주연한 드라마로도 나오지 않았겠어?


capture_1 (1).jpg


천추태후는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 자랐어. 할머니가 앞에 소개한 짱짱한 호족 집안의 여장부였다고 해. 그런데 이 당시 임금이 너무나 커버린 호족들의 세력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견제세력을 키우기 위해 구 신라출신들을 등용하기 시작했던 거야. 이러니 지방호족들이 가만히 있겠어?


임금님! 지금 실수 하시는 거 같은데요? 지금 이 나라가 누구 때문에 이리 됐는데 우리를 홀대하고 신라출신 나부랭이들로 나라를 끌어 가시겠다고요?


그래! 니들 호족들 너무 컸어! 짐이 왕이다 이것들아! 어느 안전이라고 이 따위로 말을 씨부려! 실수? 오늘 니들 다 죽었어!


임금은 호족들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내렸어. 그리고 지방호족들의 대대적인 숙청이 있었는데, 천추태후의 부모님도 이때 숙청되고 말아. 하지만 집안의 재산은 지키게 되었고, 부모님이 없어도 훌륭한 가정교사와 승마교육까지 충분히 받는 등 경제적 어려움은 모르고 살았다고 해.


천추태후의 할머니가 보통 분이 아니야. 엄마 아빠가 없으니 손녀들을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자신의 성인 황보를 사용하게 해. 여가수 황보의 여장부 기질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DNA 일지도!


그리고, 한 명도 아닌 손녀 둘을 경종임금에게 시집을 보내. 18살의 천추태후와 그녀의 동생까지 1+1으로 말이야. 경종 임금은 이미 두 명의 왕비가 있었지만, 할머니가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서 우겨 넣은 거지. 이에 천추태후는 후발주자 임에도 앞선 두 왕비를 제치고 순풍 왕자를 생산해 내. 할머니의 과감한 작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야. 고려왕실의 유일한 왕자 천추태후의 아들이름은 송이야. 왕송!


천추태후는 생각했겠지. '이제 내 아들 왕송이 무탈하게 자라나 자연스럽게 왕위를 계승한다면? 으흐흐흐!' 생각만 해도 신나는 날의 연속이었을 거야. 그랬다면 천추태후는 역사에 이렇게 회자되지 못했을 거야. 남편인 경종이 아들이 돌이 겨우 지난 나이에 죽어버려. 2살도 안 된 왕자가 왕위를 이어 받을 수 없으니 천추태후의 오빠가 고려 6대왕 성종으로 등극을 해. 천추태후는 18살에 결혼을 했고 왕이 남편이었는데, 6년 만에 왕이 4살 많은 오빠로 바뀐 거야.


capture_6.jpg


아무리 여동생이지만 전 왕의 왕비를 궁에 머무르게 할 순 없었어. 오빠이자 새 임금인 성종은 모든 비를 궁에서 쫓아내 버려. 과부가 된 것도 서러운데 아들까지 빼앗기고 사가에서 지내게 되니... 외롭겠지? 천추태후는 사랑에 빠져! 그 상대는 김치양이라는 자인데 둘의 러브스토리는 성종의 귀에 들어가고 성종은 천추태후의 정인 김치양을 귀향 보내버려.


아줌마는 강하고 엄마는 위대하잖아. 아줌마이자 엄마인 천추태후는 18살 수줍은 소녀가 더이상 아니었어. 오빠이자 왕 성종에게 독대를 요청해.


오라버니!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고려시대 입니다. 오라버니의 왕비도 재혼한 여자인데 과부로 지내는 동생이 연애 좀 한다고 어찌 이럴 수 있소?


어허. 누가 듣겠다. 궁에서는 그 오빠 소리 좀 치워라. 나도 안다, 지금이 꽉 막힌 조선시대가 아닌 걸. 너도 처녀적 황보라는 할머니 성도 따랐다는 걸. 하지만 내 입장도 좀 이해해라. 내가 이제 막 유교이념을 받아 들여 국가통치에 써먹으려는데, 여동생이 수절을 하지 않고 연애를 한다고 하면 백성들이 머라고 하겠냐? 집안도 못 다스리는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이러면 어디 내 말발이 서겠냐?


위의 대화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에 둔 대화임을 알려 드립니다.


(고려초창기 여자의 사회적 지위는 유산상속 시에도 남자와 동등한 위치에 있었고, 대신 제사 같은 의무도 똑같이 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자의 재혼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다만 성종이 국가통치의 수단으로 유교이념 도입 단계였기에, 천추태후의 사랑은 정치적 이유로 저지 당하고 말았지만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고려시대는 어찌 보면 지금보다 더 담대한 시대였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고려 귀족층을 후끈하게 달구는 또 다른 격정 러브스토리에 대한 찌라시가 돌고 돌아 성종의 귀에 까지 들어가. 아까 천추태후와 1+1으로 경종임금에게 시집 간 친동생 기억하지? 그녀의 이름이 헌정왕후인데, 천추태후와 마찬가지로 경종이 사망하자 사가로 쫓겨 나서 과부로 지내게 되었어. 남편도 죽었지. 자식도 없지. 외롭겠지?


전하!!! 진상을 조사하라고 하신 찌라시 내용이 사실로 판명 되었사옵니다.”


멋이라? 설마 했더니, 아 이것들이 어찌 이 오빠 죽는 꼴 보고 싶어 작정을 한 것이냐? 아니 어찌 하나도 아니고 둘 다 수절을 하지 못하고 정분이 났다는 말이냐!


전하, 두 분 다 아직 혈기왕성한 나이 인지라...


천추태후의 여동생 헌정왕후의 정인도 왕족으로서 신라계 쪽 지지를 받고 있던 사람이야. 후에 의도적인 접근이 아니었냐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이들의 러브스토리 결과도 남자의 유배 행! 하지만 헌정왕후는 천추태후처럼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는 되지 못했어. 자신의 정인이 유배를 떠나자 그 충격 때문인지 아들을 낳던 도중 목숨을 잃고 말아.


이렇게 10대 때 고려왕비로 성공적인 취집을 한 자매 중 언니는 왕의 아들을 낳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고, 동생은 남편과 사별 후 또 다른 왕족과 연애를 하다 낳은 아들만 남겨 두고 눈을 감게 되었어.


capture_43.jpg


과부가 된 두 여동생을 궁에서 쫓아낸 것도 모자라 둘의 남자친구를 자신의 통치이념에 위배 된다는 이유로 유배를 보내 버린 성종. 자신이 단명할 것을 미리 예측 했던 걸까? 아직 팔팔한 나이임에도 천추태후의 어린 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 해. 이래서 거지로 살아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나온 걸까? 천추태후는 죽지 않고 힘겨운 날을 이어갔지만 그녀의 인생에 다시 조금씩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거야.


마침내? 오빠가 마흔도 채우지 못하고 승하를 하게 되자 천추태후의 아들이 18세의 나이로 목종에 등극. 두둥! 일반적으로 저 나이면 섭정이 필요 없는 나이지만 천추태후의 정치적 역량인지 다 큰 아들을 병풍으로 세우고 섭정을 하게 돼.


그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사랑~ 사랑내 사랑아~ 김치양의 사면이야! 그냥 유배지에서 풀려난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정치권력을 주어서 궁으로 불러 들여. 사랑도 찾고 든든한 정치적 파트너도 얻는 일석이조! 사가에 묻혀 있던 여인이 아들이 왕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섭정을 시작하고 연인을 궁으로 불러 들이기가 쉬운 일이었을까? 그녀는 분명히 그때까지 상당한 정치적 파워를 가지고 있었을 거야.


천추태후의 아들 목종은 역사사료를 보아도 참 착한 아들이었어. 마마보이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야. 역사를 돌이켜 보면 권력 앞에서는 애미 애비도 없잖아. 18세의 목종은 이후로 쭈우욱 엄마마마의 섭정에 토를 달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을 이어가. 특이하게도 로얄패밀리 치고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닐까도 싶어.


목종의 특이한 취향은 또 다른 찌라시를 낳았어. 결국 그 찌라시는 사실로 판명이 났지만 말이야찌라시 내용을 잠시 살펴 보면 아래와 같아.


천추태후의 아들 목종은 세간의 소문과 달리 마마보이나 유약한 남자가 아니라고 함.

- 즉위 6년이 지나도록 공주 하나 얻지 못한 데는 그의 특이한 취향 때문.

- 목종은 잘 생기고 건장한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에게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함.

- 목종의 연인 중 한 명은 발해출신의 문신인 유충정 이라는 인물. 문신인데도 불구하고 몸이 아주 좋다 함.’


capture_35.jpg


원래 천추태후의 플랜A는 자신의 아들 목종을 내세워 섭정을 하고, 목종이 아들을 줄줄이 생산하여 또 다시 왕위를 잇는다면, 자신의 노후까지 완벽하게 보장 된다고 생각했겠지그런데, 사랑하는 아들이자 고려의 왕이 남자를 좋아하다니! 미치고 환장 할 노릇이지이에 천추태후는 플랜B를 가동해. 어떻게? 매일 밤 김치양과 합방을 해!


어서 이리 오세요! 목종은 글렀소. 우리 둘 사이에 낳은 아이로 다음 왕위를 계승 해야겠어요.”


아니, 그래도 태후마마 제가 무슨 아이 만드는 기계도 아니고, 오늘은 너무 피곤합니다.”


닥치세요. 불 끄세요.”


천추태후는 낮에는 섭정을 위해 머리를 쓰랴 원자를 생산하기 위해 밤에도 노력하랴. 심신이 피곤하였지만 최선을 다했어. 그리고 마침내 방년? 42세에 드디어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왕자를 보게 돼.


대.다,.


자기가 정말로 사랑하는 남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기이니 얼마나 더 사랑스럽겠어. 이때 천추태후의 레이더에 몹시 거슬리는 존재 하나가 눈에 띄어. 바로 자신의 친동생이 낳은 아들 대량원군이야. 그는 어느 새 12살 소년이 되어 있었던 거야아까 말한 1+1으로 시집 같이 왔던 동생 기억하지? 그 동생의 아들이야. 자신의 아들이 왕이라 섭정을 하고 있는데 무슨 신경을 쓰냐고? 여당이 있으면 야당이 있듯이 이때도 호족을 등에 업은 천추태후가 여당이라면, 신라계가 미는 대량원군은 야당의 대권주자였어. 늦게 본 아들이 얼마나 애지중지 했겠어. 또한 자신의 정치 생명과 노후도 달린 문제야. 1%의 가능성도 남겨 두고 싶지 않았겠지.


엄마는 마흔이 넘어 낳은 아들을 위해서 12살짜리 조카를 강제 출가시켜대량원군은 지금의 북한산에 있는 어느 절에 맡겨지는데, 바로 죽이면 너무 욕 먹을 것 같았나 봐절에 미녀들과 각종산해 진미를 보내 가든파티를 주최해. 이때 절을 지키던 진관 스님이란 분이 수상한 낌새를 채고 대량원군을 굴 속에 숨겨. 그리고 가지고 온 음식들에 아무도 손을 못 대게 해.


태후마마께는 성의만 받는다고 전해 주십시오. 저희 비록 땡추 들이나 지금은 100일 기도 금식기간이라 하사하신 음식을 먹을 수가 없사옵니다.”


알겠사옵니다. 허나 저희도 상부의 지시라 음식은 세팅을 해 놓고 가겠습니다. 대신 제발 잘 먹었다고 소문은 내셔야 합니다. 부탁 드립니다.”


모두가 물러가고 진관스님이 음식들을 마당에 뿌리니 새 들과 온갖 짐승이 모여 들어 맛나게 시식 후 그자리에서 즉사를 했다고 해. 대량원군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엄마 없는 하늘아래에서 이모가 자기를 죽이기 위해 음식에 독을 타서 보내 다니! 천추태후는 이후로도 꾸준히 자객도 보내고 했지만 번번히 진관스님이 대량원군의 목숨을 구해줬다고 해.


이쯤에서 눈치 챈 사람들도 있겠지? 맞아! 대량원군이 나중에 진관스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북한산에 절을 지어 주어서 이 절을 진관사 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해. 진관사 뿐만 아니라 진관사 계곡도 서울 도심치고 괜찮으니 운동을 위해 등산도 할 겸 북한산을 가게 되면 들러 보기를 권하는 바야.


1326855065.jpg


자 이제 천추태후의 아들이자 장성한 왕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늦둥이 아들과 친조카의 왕좌의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 미드 왕좌의 게임처럼 흥미진진 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이 게임은 조금은 싱겁게 끝이 나버려. 어쨌거나 누군가에게는 Winter is coming!


겨울이 오기 전에 뜨거운 불바람이 천추전에 불어 닥쳐. (천추전(千秋殿)에 머문다고 해서 천추태후 라고 함. 생각보다 심오하거나 깊은 뜻이 있는 게 아니어서 글쓴이도 실망때는 1009년 불교를 권장하며 호족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천추태후는 화려한 연등행사를 열었어. 그런데 방화인지 실수로 인한 화재인지 천추전에 큰 불이 일어나.


안 그래도 정치에 큰 관심이 없던 목종 이잖아. 이 대 화재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 방화로 생각하고 궁을 전격 폐쇄하고 모든 사람의 면회를 거부해. 혹시라도 자신의 어머니와 애인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을 거야. 그도 아니면 자신의 외사촌 동생을 왕으로 등극 시키려는 신라 계의 음모일지도.


목종이 어떤 사람이야? 엄마가 섭정을 한다고 해도 ‘어마마마 그리하세요.’ 엄마의 애인이 권력남용을 해도 ‘아저씨 그리 하세요였어.


"이 보시요 들. 난 말이요. 이까짓 권력 따위 누가 가진다 해도 상관없소. 내 비록 남들과 조금 다른 성향을 가졌지만 그저 한 인간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었소. 그런데 왜 이런 나를 죽이려고 하오!"


그 누가 목종을 마마보이나 야망이 없는 남자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겠어! 모든 국민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거잖아. 목종은 강조라는 장군에 의해서 폐위가 돼. 강조는 이 당시 5천명의 고려 최정예 부대를 이끌던 자였어궁을 완전히 장악한 강조는 김치양은 물론이고 천추태후 사이에서 난 어린 아들마저 죽여 버리고, 천추태후의 조카인 대량원군을 새로운 왕좌에 올려. 외사촌 형제간의 왕자의 게임은 싱겁게도 남의 손에 의해서 결정이 나.


capture_64.jpg


새 정부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천추태후와 목종을 죽이지 않고 궁에서 내쫓아 버려. 말 한 필만 달랑 주고서 말이야목종이 참 착했다기 보다 난 세상을 초월한 진정한 위너가 아닐까 싶어. 전직 왕이었던 목종은 겨우 한 필 얻은 말에 전직 태후인 어머니를 태우고 직접 고삐를 끌었다고 해. 외가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 중에 끼니 때마다 반찬이나 밥을 직접 챙겨 어머니 앞에 갖다 바치고 음식이 모자라면 자신이 입고 있던 어의를 팔았다고 해.


이 보시오! 나 전직 왕 목종 이오. 여기 내가 궁에서 입던 어의가 있는데 기념품으로 제법 쓸 만 할게요. 쌀 한 섬이랑 바꿉시다. 허허허


이거 진품 맞소? 우리야 머 언제 왕 얼굴을 본 적이 있어야지. 머 여튼 좋수다. 비단 자체만으로도 쌀 한 섬 가격 넘을 듯 하니 저기 곶간에서 쌀 가져가슈.”


그렇게 왕의 상징인 어의와 바꿔온 쌀로 밥을 지어 어머니께 해 드리면서.


어머니! 이렇게 어머니랑 밖에서 밥도 해 먹고 이야기도 하고, 걸으니 전 오히려 좋습니다. 어머님은 분하고 원통하신 것 같아 보이지만...


외가로 돌아가는 길에 극진히 어머니를 모셨다고 하니 목종은 천성이 선한 사람이었어. 하지만 고려 새 정부는 목종의 존재가 못내 맘에 걸렸나 봐. 한창 혈기왕성한 전직 왕이 아직 살아 있다는 존재 자체만으로 말이야. 뒤 늦게 모든 것을 잃은 이 모자에게 군사들을 보내.


자결을 하라는 정부의 명령입니다.”


아니 된다. 이놈들아! 우리 착한 아들을 무슨 명목으로 죽이려 하는 거냐!


이 보시게. 난 왕 자리에 아무 미련도 없는 사람이네. 그저 우리 어머니 모시고 외가로 가서 조용히 여생을 보낼 것이니 제발 우리 모자 좀 그냥 보내주게.”


이 당시 고려의 민심은 천추태후와 목종의 강제 하야에 대해서 엄청난 반대 여론이 있었다고 해. 천추태후의 섭정기간 동안 정치도 잘하고 민생도 잘 돌보았다는 증거지. 이런 상황이니 천추태후는 감히 해할 생각도 못했고, 목종에게만 자결을 유도했던 거야정치란 비정하다 못해 잔인한 거잖아. 이 모자가 다시 길을 떠나자 자객들은 뒤에서 목종의 등에 칼을 꽂아. 천추태후는 이렇게 두 아들과 진실로 사랑했던 남자까지 다 잃고 고향으로 내려와 21년을 더 살게 돼.


1111.jpg


혹시 말이야. 왕비가 되어 권력의 맛을 본 것이 천추의 한이 되진 않았을까? 그냥 호족의 부인으로 살면서 사랑하는 남자와 아들들과 살아가는 것이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하지 않았을까? 고려정부에서는 천추태후의 사후에 능을 크게 지어 그녀에 대한 예후를 해.


왜일까? 권력에서 내려 온 지 21년이 지나도 민심은 그녀를 지지하니 고려정부도 그런 결정을 내린 거야그런데 말이야. 왜 천추태후의 이야기를 교과서에서 전혀 볼 수 없었을까?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천추태후가 수절을 안 하고 김치양이란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는 걸로 엄청난 비난을 가해. 천하의 몹쓸 여자로 만들어 버린 거지. 인생자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따위는 집어치워! 어디 여자가 수절을 하지 않고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이런 식의 앞 뒤 안 가리는 비난만 이어진 거지.


하지만 최근 학계에서도 천추태후의 재평가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어. 불륜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오직 수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평가를 한 쪽으로 몰고 간다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어.





지난 기사


1. 허초희(허난설헌), 못다 핀 꽃 한 송이

2. 신사임당을 율곡의 어머니로만 기억하지 말자

3. 단종이 직접 들려주는 로얄 패밀리 잔혹사

4. 탐라의 거상 김만덕, 제주도를 건져내다

5. 허균,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1

6. 허균,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2

7. 신라의 비밀병기, 구진천 노

8. 숙종을 장희빈의 남자로만 기억하면 안 되는 이유





슈퍼팩토리공장

블로그 : blog.naver.com/jy3180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