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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교육의 시대는 갔다’


교육계의 대표적인 헛소리 중 하나다. 지식의 습득과 암기보다 ‘활용’이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교육현장에 이를 무비판적으로 대입하려는 시도는 교육과 인간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사실적 지식, 반복, 연습, 훈련을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해 교육 현장에서 배척하려는 움직임은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위험하기 그지없다.


내가 개인적으로 교육부 폐지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시기도 교육부가 ‘창의인성’과 ‘융합인재교육’을 강조했을 때부터였다. 교육부가 쥐죽은 듯 가만히 있는 편이 학생들과 현장교사들을 도와주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국가주도로 학생들의 ‘창의인성’을 기르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부도덕한지에 대해서는 11편 ‘참을 수 없는 도덕교과서의 경박함’에 의견을 기술했다. 이번에는 지난 수년간 교육부에서 역점을 둔 ‘융합인재교육’의 예를 들어, 국가가 주도하는 창의성 교육정책이 어떻게 현장과 불화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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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인재교육(STEAM)은 Science(과학), Technology(기술), Engineering(공학), Arts(예술) 그리고 Mathematics(수학)의 약칭이다. 한국의 많은 교육 정책이 그렇듯 STEAM 역시 미국의 교육흐름을 모방했다. 미국의 ‘STEM’에 ‘Arts’ 항목을 더해 인문학을 포괄하는 한국식 융합인재교육을 실현하겠다는 교육프로젝트가 바로 ‘STEAM’이다. 학생의 실생활과 연계된 주제 중심의 과학수업으로 학생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해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하고, 창의적인 과학인재를 양성해 미래의 국가경쟁력까지 제고하겠다니 그 뜻이 참으로 원대하다. 하지만 사회에서 유용한 융합의 개념이 교육에도 늘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다음은 2016년도에 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STEAM 프로그램 보고서의 일부다.



주제: 생물은 어떻게 에너지를 얻을까? (초등 5,6학년)


소개: ‘식물의 구조와 기능’ 단원과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 단원을 연계함.


‘식물의 광합성’과 ‘우리 몸의 소화 기능’에 대해 학습하고, 식물의 수송기관과 우리 몸의 순환기관에 대해 통합적으로 학습.



차시

주제

주요 활동

1/10

생물의 특징 찾기

활동1우리 주변의 생물의 특징 살펴보기

생물의 특성 살펴보기

활동2생물과 에너지의 관계 

에너지 알아보기

식물과 에너지

동물과 에너지

2~3/10

생물이 양분을 얻는 방법

활동1식물이 양분을 얻는 과정 알아보기

식물이 양분을 만드는 과정 살펴보기

식물의 잎차례 알아보기

활동2우리 몸이 양분을 얻는 과정 알아보기

우리 몸이 양분을 얻는 과정 살펴보기

각 소화기관에서 소화되는 영양소 살펴보기

활동3양분을 얻는 과정의 공통점과 차이점

식물과 우리 몸의 양분을 얻는 과정에서 공통점 찾기

식물과 우리 몸의 양분을 얻는 과정에서 차이점 찾기

4~5/10

생물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물질

활동1식물의 에너지원 알아보기 

식물이 에너지원으로 만드는 물질 알아보기

활동2우리 몸의 에너지원 알아보기

소화 알아보기

소화를 이용하여 녹말 배지 위에 무늬 만들기

활동3광합성과 소화의 관계 이해하기

에너지의 흐름 알아보기

6~7/10

생물이 양분을 이동시키는 방법 

활동1생물은 어떻게 양분(영양소)을 이동시킬까? 

생물이 양분(영양소)을 이동시키는 방법 추측하기

식물이 물질을 이동시키는 방법 알아보기

우리 몸의 순환기관 살펴보기

           【활동2식물이 물질을 이동시키는 원리 알아보기

             •간이가습기 만들기

           【활동3동물이 물질을 이동시키는 원리 알아보기

             •수중 모터 활용한 분수 만들기

           【활동4혈액 순환 모형 만들기 

             •혈액순환모형을 만들고 실험하기

8-9/10

생물의 에너지 생성 e-book 만들기

활동1생물의 에너지 생성 e-book 구상하기 

생물이 가지는 특성을 알릴 수 있는 자료집 구상하기

활동2생물의 에너지 생성 e-book 제작하기 

생물이 가지는 특성을 알릴 수 있는 자료집 제작하기

10/10

생물의 에너지 생성 e-book 발표하기

활동1생물의 에너지 생성 e-book 발표회

• e-book 발표회

활동2자기 평가 및 상호 평가를 통한 우수 모둠 선정하기

모둠별 평가 결과 발표하기

자기 평가 및 상호 평가를 통한 우수 모둠 선정하기

(*출처http://steam.kofac.re.kr/)




‘융합’, 학습에 늘 효과적인가?


위 프로젝트 수업의 예를 살펴보자. ‘식물이 에너지를 얻는 과정(광합성)’과 ‘동물이 양분을 얻는 과정(소화)’은 융합하기에 구조적으로 적절해 보인다. 성인인 우리는 해당 내용을 초, 중, 고등학교에서 수차례 반복적으로 학습했고, 개념을 실생활에서 끊임없이 적용해봤다. 하지만 식물의 광합성과 동물의 소화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들에게 이를 융합해 교육하는 것이 과연 학습을 위한 최적의 조건일까?


해당 프로그램 2~3차시를 그대로 이행한다면, 학생들은 첫 번째 실험을 통해 칼륨용액이 녹말과 반응해 청람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식물이 빛을 이용해 녹말을 만든다는 것을 확인한다(실험재료: 고구마, 쌀, 아이오딘-아이오딘화 칼륨용액, 페트리접시, 스포이트 등). 그 후 곧바로 두 번째 실험을 통해 녹말 배지 위에 무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인간이 소화 과정을 거쳐 녹말을 소화시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실험재료: 증류수, 한천, 녹말, 무즙, 알코올램프, 거름종이 등). 마지막으로 학생들은 두 가지 실험을 바탕으로 식물과 인간이 양분을 얻는 과정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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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때 이와 같은 수업은 광합성과 소화를 처음 배우는 초등 5~6학년 학생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교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기 십상이다. 여기서 ‘아수라장’이란 아이들이 정신없이 바삐 움직이며 재미있어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수업이 끝나면 어떤 내용을 공부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학생이 거의 없는 수업이라는 뜻이다.


위와 같은 수업의 본래 의도는 광합성과 소화를 자연스럽게 연결지어, 식물과 인간의 구조적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합적으로’ 학습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학습은 '생각'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 '생각'은 장기기억(long-term memory)에 저장된 사실지식들과 연결된다. 먼저 학습한 내용이 장기기억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내용이 추가되면, 두 가지 내용이 자연스레 융합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작업 기억에 과부하가 걸리기 쉽다. 인간의 작업기억 (working memory)에는 한계가 있으며, 수업을 설계할 때 학생들의 인지적 한계를 늘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똑같이 단어 3개를 가르치더라도 apple / apple juice / apple tree 처럼 알고 있는 지식에 기반해 내용을 얹어 나가면 많은 아이들이 수업에 쉽게 집중한다. 반면, apple / melon / pear 으로 내용을 전개하면 무리 없이 따라오는 아이들이 반으로 줄어든다(물론 경우에 따라 이런식으로 전개될 필요도 있다).

 

학생들은 주어진 과제가 너무 쉬울 때, 또는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고 느낄 때(작업기억의 용량이 초과되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 인간의 뇌는 본래 호기심이 강하면서도, 생각하길 싫어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실험결과에 잠시 호기심을 보이다가도, 어떤 원리로 이러한 실험 결과가 도출되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가 되면 그 작은 호기심마저 곧 사라지기 마련이다.

 

 

구체적 조작활동을 많이 하는 것은 항상 옳은가?

 

위 프로그램에는 조작적 탐구활동 즉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이 참 많다. 예를 들어 2~3차시에 식물이 양분을 얻는 과정을 공부하면서 식물의 잎차례 모형을 만든다. (재료: 수수깡, 이쑤시개, 잎 모형, 손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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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깡에 잎 모형을 붙여 보는 활동은 흥미는 유발하겠지만, 이것이 ‘광합성과 소화’라는 주제의 학습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해당 활동이 주제와 다소 동 떨어져 있다는 것은 둘째 문제다. 학생들은 필수학습내용을 깡그리 잊고, 어떻게 하면 수수깡에 모형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할 수 있는지 따위에 주의를 뺏길 가능성이 다분하다.


인간은 ‘생각’하는 내용을 기억하고, ‘기억’하는 내용들을 기반으로 학습한다. 발달단계에 맞게 구체적 조작활동을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학생들의 흥미 유발을 위해 밑도 끝도 없이 구체적 조작활동만을 많이 하게 되면 학생들은 조작행위 그 자체만을 ‘생각’하고, ‘기억’하게 되면서 궁극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추상적인 개념들에 대해서는 끝내 배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한 교수들과 현직 교사들이 이러한 위험에 대해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창의적인 융합교육이라는 국가적인 교육프로젝트를 수행하려면 (혹은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조작과 창조, 학생 주도의 창의적 설계과정, 교과 간 융합이 필수적이다(위 수업도 과학, 실과, 수학, 미술, 국어가 융합됐다). 그러다 보니 5~6학년 학생들이 광합성에 대해 배우다가, 느닷없이 수수깡에 모형 나뭇잎을 묶으면서 잎차례 유형을(마주나기, 어긋나기) 구분하는 엉뚱한 활동이 설계되는 것이다. 교육부가 설계하고, 교사들이 이에 맞춰 이행하기에 급급한 현장은 이렇게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는 촌극을 빚곤 한다.


학생들의 사고 능력은 ‘추상화, 개념화’ 된 상태로 장기기억에 보관되는 지식의 성장과 맞물린다. 직접적 경험이 학습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이것이 궁극적으로 추상화, 개념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이 학생들의 깊이 있는 사고능력을 길러주기 위함인지, 단지 수업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함인지 고민해야 한다.

 

 

학생들이 전문가처럼 지식을 ‘융합’, ‘창조’할 수 있을까?

 

지식기반사회는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요즘은 많은 교육프로그램에 ‘융합’과 ‘창의’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주어진 지식의 암기와 이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식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최근 교육계의 트렌드다. 교사들 또한 학생들에게 과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과학자처럼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치라고 교육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배경지식의 중요함’, ‘학생과 전문가의 인지구조가 현저히 다르다는 사실’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과학자처럼 사고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에게 과학적인 ‘배경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고를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러한 사고 전략과 함께 지식도 함께 쌓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학생들에게 ‘과학자들은 상식에 늘 의문을 제기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에 주목한다’고 가르친다. 의문을 제기한다는 말은 기존의 상식에서 빈틈과 균열을 본다는 뜻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의문을 품거나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또한 예상치 못한 결과에 주목하려면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예측이라는 것을 먼저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은 과학적 사고는 쓸모없을뿐더러, 지적으로 건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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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학년 아이들 사이에 성별 간 갈등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이 ‘멍청하고, 말도 못 알아듣고, 비협조적이라 조별활동에 방해만 된다’고 했고,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이 ‘잔소리가 많고, 교묘해서 함께 장난을 쳐도 선생님들에게 남자들만 혼난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에 관해 토론이 벌어진 첫 날 학생들은 토론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감정적이고 피상적인 해결 방법만을 내놓았다. 그래서 나는 도덕 시간을 이용해 2시간 동안 여자와 남자의 발달순서, 언어와 근육 발달의 차이, 뇌 구조의 차이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교육했다(물론 편견의 위험성도 강조했다). 그 후 같은 주제의 토론을 했더니 훨씬 다양하고 깊이 있는 해결책들이 나왔다. 한 여자아이는 “남자는 여자에 비해 청각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덜 발달한다. 그래서 한 번에 말을 못 알아듣고, 자꾸 다시 묻거나 동문서답을 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교실에서 자리를 정하고 조를 짤 때 이런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한 남자아이는 “남자는 대근육이 먼저 발달하고, 여자는 소근육이 먼저 발달한다. 발달순서가 다르니 서로를 무시하거나, 주늑 들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초등학교는 남자애들에게 불리한 면이 많다. 대근육 활동이 적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을 위해 학교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배경지식 없이 사고방법의 연습만으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기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망상이다. 탄탄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의 ‘사고기술’을 학생들에게 교육한다고 해서, 학생들이 전문가처럼 사고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인지과학 분야의 수많은 연구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대학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T. 윌링햄은 초보자와 전문가는 인지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초보자가 전문가의 방식을 따라하는 것이 학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문가는 ‘기능’, 즉 심층구조를 중심으로 추상적으로 사고한다. 반면 초보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과 피상적인 특징에 주목한다. 초보자들이 전문가처럼 사고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끝없는 반복, 훈련, 연습을 해야 한다. 이는 과학만이 아니라 언어, 역사, 미술과 같은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역사전문가가 사료를 읽고 해석과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은 해석과 비판이라는 사고 기술을, 역사관련 배경지식을 기반으로 끝없이 연마해왔기 때문이다. 학생과 전문가의 인지구조의 차이를 인식하지 않은 채 학생에게 지식을 ‘발견’하고, ‘창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아래의 수행평가 계획을 보자. 수행평가란 말 그대로 수행'과정'을 평가하겠다는 것인데 현장에서는 모순되는 지점이 정말 많다. 맨 위 항목을 보면 '광합성과 소화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구상할 수 있는가?' 라고 묻고 있다. 광합성과 소화를 아직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창조하고 구상할 수 있는가? 교실에는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 같은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8~10차시에 학생들은 학습 결과물을 e-book으로 산출해 발표한다. e-book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만들었는지도 평가 기준에 포함되어 있다. 이제 학생들은 컴퓨터실에 모여 앉아 e-book을 ‘창의적으로’ 만들고자 화려한 플래시 자료, 예쁘고 독창적인 폰트 등을 찾는데 열을 올릴 것이다.



평가 영역

평가 항목

평가 관점

창의적 설계

아이디어 발현

∙ 식물의 광합성과 우리 몸의 소화식물의 수송기관과 우리 몸의 순환기관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구상할 수 있는가?

자료 수집

∙ 생물에서의 영양분의 이동에 대하여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가?

문제 해결

∙ 영양분의 이동과정을 알아보는 모형을 제작할 수 있는가?

산출물 도출

∙ 학습내용을 알려줄 수 있는 e-book을 제작 할 수 있는가?

감성적 체험

창의성

∙ 학습내용을 알려줄 수 있는 e-book을 창의적으로 제작 할 수 있는가?

협동심

∙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모둠 내의 친구들과 협력적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가?

흥미

∙ 프로젝트 수행 과정을 통해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는가?




융합교육, 발견학습, 창의성 신장교육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예로 들고 있는 융합인재교육 프로그램을 나는 주로 인지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했지만, 교육은 인지와 정서적인 측면을 아울러야 한다. 위와 같은 창의성 계발 수업은 학생들의 열의와 동기를 이끌어내는 측면에서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다. 학생들은 과학 전문가가 아니지만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분석할 수 있으며, 미술 전문가가 아니어도 작품 비평을 할 수 있다. e-book을 만들다보면 주의는 분산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협동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다만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활동과 과제를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내용을 배우고,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는가에 대해서는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들이 과학실험을 설계하고 미술작품 비평을 하면서 얻는 것은 호기심과 포부 같은 것들이지, 과학과 미술 분야의 깊이 있는 지식이 아니다.


지금까지 교육부가 주도하는 교육 트렌드가 현장에 무비판적으로 도입되었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간단히 살펴봤다. 내 주장의 핵심은 STEAM이 틀렸다 혹은 저 보고서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보고서 자체는 훌륭한 측면이 분명히 있고, 예로 든 수업에 대해 다른 이들은 전혀 다른 의견을 낼 수도 있으며 나는 그것을 존중한다. 내가 힘주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교육정책 수립을 교육현장과 동떨어진 사람들이 이끌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교육개혁은 트렌드를 쫒는 것이 아닌, 깊이 있는 인간학에 기반해 현장교육 전문가들이 주도해야 한다.

 

 

이제는 변증법적 합(合)을 도출할 때


21세기에 필요한 비판적, 창의적 사고능력, 문제해결능력, 토론-발견-창조 등의 능력은, 지식을 쌓는 노력과 함께 길러진다. 10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지만, 나는 그간 현장에서 토론 수업, 프로젝트 수업, 협동학습 등이 얼마나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몹시 민망하면서도,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물론 훌륭하게 이행하고 있는 사례도 아주 많고, 모든 ‘선진적인’ 학습 형태가 잘못되었다는 뜻도 결코 아니다. 토론이나 프로젝트 수업 등을 제대로 하려면, 일반 강의식 수업보다 몇 갑절의 치밀한 계획, 실행, 평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노력을 기울일만한 가치도 있다. 하지만 교육부의 정책에 따라 본질은 없고 껍데기만 있는 '소위' 진보적 교육커리큘럼과 철학에 일선 학교가 부화뇌동하는 짓은 이제 정말 멈춰야 한다. 특히 나는 영어 교과를 몇 년간 지도해온 입장에서 7차 교육과정의 흥미, 재미, 활동중심 요구가 초등영어 공교육을 경박한 아수라장으로 내몰았고 이로 인해 교육 불평등까지 매우 심화됐다고 주장하는 바다. 


과거의 교육형태로 회귀하자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교육분야의 모든 측면에 변증법적 합(合)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뜻이다. 지금 현장에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지식교육과 교육전문가들이다. 정신없이 달라지는 교육부의 정책과 사업에 휘둘리지 않고, 학생들에게 최선의 결정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구성원들, 특히 교사와 학부모들은 창의, 융합, 감성 교육 시장의 격랑 속에서 절대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앞으로 지식교육, 교육철학, 뇌과학, 교육과 민주주의 등에 대한 내용들을 공부하고, 공유해 나가려 한다.


그간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자유와 정의를 위한 교육

2017년 4월





지난 기사


10년 차 초등교사가 푸는 교육계 미스터리

권력에 취한 교사들

교권추락은 교사 스스로 만든 역사

보통 사람들

교사는 신이 아니다

관성의 법칙

교사의 적은 학부모?

결국 교사가 답이다

교대는 바보를 길러낸다

전교조, 분열 아닌 확장으로

참을 수 없는 도덕 교과서의 경박함 上

참을 수 없는 도덕 교과서의 경박함 下

불량급식을 만드는 학교

영양교사의 현실(급식불량편 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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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고민하지 않는 교사를 말한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SickAlien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