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선거 벽보가 공개됐다.
안철수 후보의 포스터가 이슈화되면서 디자인에 돈을 안 썼다거나 선거캠프가 일을 못한다는 얘기, V3 백신을 전국에 광고한다는 얘기도 나오게 됐다. 광고천재라 불리는 이제석 광고연구소의 작품이란 얘기가 알려지면서 뭔가 있어보이는 착시가 일어나기도 한다. 글쎄다.
일단 어떤 생각으로 대선 포스터를 저걸로 해쓰까, 소설을 써 보도록 하자.
자, 이게 문재인 포스터다.
아니, 이게 문제인 포스터다.
어색하게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위쪽 손에 가려진 기호 3번과 화면에 살짝 짤린 '수'자다. 양쪽 주먹도 화면에서 짤렸다. 단일 이미지만 놓고 보면 도대체 이유를 모를 부분이다. 일반 스냅사진을 찍어도 손이 짤리게 찍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근데 왜 그래쓰까.
공개된 내용을 보면, 실제 유세현장 사진을 썼고, 얼굴은 합성, 사선으로 메고 있는 띠의 슬로건도 합성으로 바꿔 넣었단다. 사진만 언듯 보면 위의 글씨랑 주먹 짤린 거 빼곤 자연스럽다. 그럼 다른 후보들과 같이 걸리게 될 벽보사진으로 보자.
얼레, 이제 뭔가 좀 이상해 보인다. 다른 후보에 비해 작다. 뭐야 이거. 6번부터는 모르겠지만 5번 후보까지의 포스터와 비교하면 가슴에서 짤라 얼굴이 커다랗게 나온 것과 다르게, 꼬추 위에서 사진을 짤라 사람이 상대적으로 작게 나왔다. 정당을 적지도 않았고 다른 포스터와 다르게 인물 뒤에 그림자도 있다.
냉정하게, 다른 사진에 비해 사람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다들 어색하게 웃는 건 같지만 평소와 다른 얼굴로, 어찌보면 권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기존 스타일의 큰 얼굴 정치인 포스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두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은 되려 눈에 띈다. 사선으로 메고 있는 슬로건 띠도 다른 후보와는 다르게 계속 활동하는 느낌을 준다.
이 포스터들이 실제 인쇄되어 벽에 붙일 때는 이렇게 모니터로 보는 것보다 훨씬 클 게다.
투표권이 있는 성인들이 저 5명의 얼굴을 모를 리 없을 테고, 길거리에서 포스터를 바라볼 때, 실제 느껴지는 포스터 속 인물의 크기는 되려 다른 후보의 큰 얼굴이 부담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에 반해 안철수 후보는 실제 유권자와 비슷하거나 더 작게 보일 수 있다. 유권자와 같은 크기, 비슷한 눈높이가 될 수 있단 얘기다.
다음으로, 무채색 계열의 다른 포스터와 다르게 초록색 배경, 작은 사람, 게다가 저렇게 5명을 묶어놓고 보면 좌/우 양 옆의 후보들 사이에서 후보들의 포스터를 열어 젖히며 나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는 양쪽 주먹이 사진상에서 짤린 것과 함께, 안 후보 뒤로 보이는 그림자가 홍준표와 유승민의 포스터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하는 입체감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들이 인물 뒤 그림자를 없애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이긴 하지만 반대로 입체감이 없어져 버렸다. 안철수 후보 빼고는 평면이 돼 버린 거다.
이런 모든 걸 시뮬레이션한 뒤, 의도적으로 대선 포스터를 만들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쨌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슬로건도 포인트다. 다른 후보들은 ㅇㅇ대통령, ㅇㅇ의 희망 등 마치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자신있는 슬로건을 달았다. 자신이 있는 건 좋지만, 자칫 리더 오아 보스의 느낌이 날 수 있다. 그에 비해 안 후보의 슬로건은 어깨에 걸쳐진 띠가 전부다. '국.민.이.이.긴.다'. 이건 주체가 다르다. 눈높이에 맞춘다. 그 외 소소 포인트, 슬로건을 사선 띠에 적어 놓아 다른 후보들처럼 가로, 세로가 아닌 대각선으로 읽혀 변화를 준다는 점 정도겠다.
이 글은 포스터 한번 기똥차게 잘 만들었다 칭찬하려는 거 아니다. 안 후보측이 다른 후보들 같은 포스터 디자인 시안이 없었을리 만무하다. 아마 지난 합동 토론회 이후 비상이 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비상이 안 일어나면 이상했을 게다). 해서 최소한 포스터에서라도 변화와 친근함을 주기 위해 고심끝에 결정하지 않아쓰까.
광고천재라는 사람이 있는 디자인회사에서 만들었다 해도, 사람들에게 신선함과 기억에 남을 카피나 브랜드, 상품 이미지를 단 시간에 주입하는 상업 광고와 대선후보의 그것은 좀 다르다. 전자의 것은 어떤 측면에서 성공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사람들이 대선 후보 포스터만 보고 투표할 후보를 결정할 가능성, 거의 없다. 후보들의 공약과 됨됨이를 보고 선택한다(물론 졸라 주관적으로). 더군다나 대통령 선거라면 한 장의 이미지가 아닌 내러티브에 사람들이 더 주목하게 된다.
이미지가 다는 아니다. 우리 개그맨 홍준표 후보도 따끔한 한마디를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지난 토론회에서
'이미지보다 프레임이다'를 몸소 실천해 주셨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 포스터가 튄다는 효과만 있을 뿐, 천재의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대선이 한 달도 안 남은 지금, 다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고민하고 시도하는 점만은 분명하다. 다들 긴장 정도는 했으면 한다.
이제 막 봄이 왔는데 다시 겨울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P.S.
선거 벽보가 보통 일렬로 붙긴 하겠지만 만약 벽이 길지 않아서 이렇게 붙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안 후보는 좀 뻘쭘하겠다.
P.S.
예전에 정말 포스터 못 만드신 분이 계셨지.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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