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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데 그중에서도 기온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지구가 기울어진 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으므로 기온은 주기적으로 변하며 계절의 변화를 만든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의 제도라는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데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사회적 환경도 변한다. 사회적 변화는 수만 년 동안 대부분 힘을 가진 소수집단이 만들어서 그리 자주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최근 수십 년 전부터는 많은 지역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사회적 환경을 자주 바꾸고 있다. 이러한 변화 중에서 가장 큰 변화를 선택하는 시기가 바로 선거철이다.


계절이 바뀌면 주변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생물들이 털갈이하거나, 색을 바꾸거나, 이동하거나, 짝짓기하거나, 꽃을 피우거나, 잎을 떨어뜨리는 등 평소에는 잘 일어나지 않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선거철에도 정치권에서는 정치색을 바꾸거나, 이동하거나, 연대하거나, 정책을 내놓거나 폐기하는 등 평소에는 잘 보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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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런 거



환절기에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적당한 체력을 다지기만 하면 몸의 수많은 세포가 대부분 알아서 적응하지만, 사회적 변화는 인위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적절한 지능을 갖고 학습하지 않으면 잘 적응하기 어렵다. 면역력이 낮아지는 환절기에 잠복해 있던 전염병이 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거철에도 사회의식과 상식이라는 면역력을 충분히 갖지 못하면 구성원들 사이에 불필요한 감정이 생기고 잘못된 정보나 판단이 전염되기도 한다.



1. 선거철 전염병


해방 이후 지금까지 집권세력에 반대하는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이승만의 자유당 시기와 반란군 지도자들이 돌아가며 대통령을 하던 시기에 집권세력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많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으며 죽임을 당하기도 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6월 혁명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룬 이후에도 반란군 독재자들이 할퀴고 간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깊은 상처가 남아 있었기에 집권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꽤 오랫동안 그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 어려웠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는 오히려 더 어려웠다.


돌이켜보면, 민주정부 시기는 보수 야당인 한나라당, 진보 야당인 민주노동당, 보수언론, 진보언론, 각종 시민단체 등 너나 할 거 없이 집권세력을 맹비난했던 시기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로 끝나는 '노무현 까기'는 국민 스포츠가 되었고, 유시민은 여러 시민단체가 선정한 '역대 최악의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지지율 10%대까지 추락한 집권세력의 국회의원과 대선후보는 그들이 참여해서 만들고 운영했던 정부를 부정하며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정도까지 되었다.


물론 참여정부는 많은 실책이 있었고, 그로 인해 지지자들이 떠나간 이유도 있겠지만, 당시 분위기에서 ‘난 참여정부의 이러이러한 것은 싫다'라는 사람은 많아도 '그래도 이러이러한 것은 지지한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부가 공개한 각종 정책자료를 내려받아 읽는 사람은 드물었고 대부분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색을 가진 언론사에서 내는, 또는 포털에서 무의식적으로 접하는 단편적이고 부정적인 기사를 근거로 정부를 평가했다. 이렇게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정부였기에 그런 정부가 생겨나는 데에 나도 한 표를 보탰다거나 지지한다고 하려면 각종 비아냥을 감수해야 했다. “너 이번에 또 뚜껑열린당 찍을 거냐?” 라는 꼰대 직장 상사의 조롱은 기본이고, “노무현이가 농민을 때려죽였단다”, “노무현이가 이라크에 파병도 한단다”라고 시작해서 그럴 줄 알았지로 끝나는 혼자 잘난 진보 새끼들의 조롱까지(그럴 줄 알았으면 노무현이 됐을 때 왜 좋아했나).


이럴 때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쉬운 장치는 역시 “그놈이 그놈이네”라는 양비론적 태도일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을 제삼자로, 구경꾼 내지는 해설자의 위치로 이동시켜 주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진보나 보수 양쪽 모두의 태도를 비판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이것은 어떤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판단하려는 골치 아픈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모든 주장을 똑같은 것으로 빠르게 결론짓게 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든 정치는 더러운 꼰대들이나 하는 것또는 기득권의 밥그릇 싸움일 뿐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만연하게 된 상황에서는 정치에서 자신을 분리함으로써 ‘나는 매우 중립적이고 깨끗하며 합리적인 인간이다’라고 포장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한 도구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많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의 정치적 논쟁에서, 그들의 삶의 지혜인 그놈이 그놈이라는 필살기를 통해 더 이상의 논쟁을 멈추게 해왔던 것 같다.


이런 양비론적 태도는 어떤 주장의 논리적 타당성과 근거의 적절성 등을 잘 판단하지 못하는 자신의 빈약한 사고체계를 숨김으로써 큰 노력이 없이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으므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타날 뿐만 아니라 집단 사이에서 쉽게 전염되기도 한다. 특히 온갖 주장과 어려운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선거철에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그러면, 어떤 사안에 대해 상반되는 주장이 있을 때, 그에 대해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성급하게 양비론적 태도를 보이면 누구에게 이득이 되고 누구에게 손해가 될까?


충분한 근거에 기반을 둔 논리적 주장을 하는 쪽과 근거도 없고 비논리적인 주장을 하는 쪽을 ‘다 똑같은 놈들이다’라고 평가하면 당연히 논리적으로 주장한 쪽은 늘 손해를 본다. 비논리적 주장과 논리적 주장을 똑같다고 평가했기 때문에. 반면, 근거도 없고 아무 말이나 한쪽은 늘 이득을 본다. 왜냐하면 그 논쟁에서 벗어난 고귀하신 해설자께서 그 둘을 똑같다고 평가하셨기 때문에!


그런데 만약 그들의 논쟁이 앞으로 몇 년 동안 내가 살아갈 나라를 운영할 정부를 선택하는 매우 중대한 일이라면, 과연 그 상황에서도 양비론적 태도로 인해 손해를 보는 쪽이 과연 논리적 주장을 하는 쪽뿐일까? 혹시 그런 성급한 평가를 한, 스스로 해설자로 착각하는 그 자신과 다른 국민도 같이 손해를 보게 되지 않을까?


양비론 그 자체가 꼭 문제는 아니다. 둘 다 멍청한 주장하는 경우도 아주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더라도 자신이 특별한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 두 멍청한 정책 중에서 그나마 덜 멍청한 쪽의 손을 들어줄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부동산 가격의 경착륙을 막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 정책 과제에 대해 온갖 방안들을 마구 쏟아내지만 이론적으로,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맞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실효성이나 현실성 없기는 다들 비슷한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들은 그런 거 몰라서 실패했을까) 이럴 때, 다 똑같이 멍청하니까 아무거나 하든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 그에 따라 이득을 보는 몇몇을 제외한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된다.


자신을 해설자로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장기에 훈수 두는 사람이 아니라 장기판의 말이다. 죽어도 우리가 죽는다.



2. 그 놈은 정말 그 놈인가?


나는 지난 10년 동안 이명박, 박근혜가 한나라-새누리-자유-바른당과 함께 운영한 정부가 대한민국을 아주 크게 망쳐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 전에도 그리 공정하거나 정의로운 나라는 분명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국민을 윽박지르고 통제하는 분야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정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나라는 아니었다. 지난 10년간 너무 크게 망쳐서 지금 당장 바로 잡지 않으면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분야는 경제와 외교부문이라는 생각에 나는 이번 대선에서 그 두 가지를 중심으로 새 대통령과 정치집단을 선택하려 한다.


물론, 사회정의라는 가치가 무너진 것이 근본적 문제이지만 그건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가 운영을 잘못해서 망치기는 쉬워도 좋은 대통령 하나가 정부를 잘 이끌어서 단기간에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공무원의 부정부패와 불공정성이 문제라고 하지만 민간에서는 얼마나 깨끗하고 공정한가? 언론의 편파성을 비난하지만 바로 지난달까지 최고의 언론으로 추켜세우던 JTBC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비판했다고 그들을 쓰레기 언론이라고 몰아세우는 사람들은 얼마나 공정한가? 무너진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정부의 능력보다는 철학의 문제이며, 구성원 모두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이므로 후보의 구체적인 정책보다는 그동안의 언행과 살아온 과정을 통해 실현 의지를 확인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대표로서 실무를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정책 결정을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꼭 경제학을 전공해야 하거나 외국어를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훌륭한 참모들이 만든 정확한 정책자료와 제안을 통해 상황을 분명히 판단하고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지금 내놓는 공약들은 지금 정부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정책의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따져서 나온 정책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대선 후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를 보면 그들의 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질지와 지금 만든 정책공약의 실현 의지를 짐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실적으로 대세인 두 후보만 비교해보자.


2.1 경제


문재인 캠프에서는 박근혜의 경제교사로서 줄푸세를 고안했다고 알려진 김광두와 재벌개혁 및 경제민주화의 아이콘 김상조를 영입했다. 이걸 두고 문재인을 싫어하는 진보적 시민들은 거봐라, 문재인이나 박근혜나 똑같잖아라고 비판했고, 재벌 기득권 언론은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김상조를 영입한 걸 보니 역시 좌파정권이군이라고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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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측부터 김호기, 김광두, 김상조 



그런데 난 이 둘의 영입을 보고 이 사람들은 진짜로 집권하려고 하는 거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5월 9일 당선되면 5월 10일부터 임기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은 당분간 황교안을 총리로 하는 박근혜 내각과 한 테이블에서 국무회의를 해야 한다. 곧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인간들과 함께 하는 국무회의는 가장 피해야 할 일이므로 취임과 동시에 내각을 해임하고 바로 장관 인사부터 해야 국정 공백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집권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장관을 비롯한 참모들을 내정해두고 청문회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는 청문회 결과와 상관없이 장관을 임명하기도 했지만, 민주당의 새 대통령이 그렇게 하면 자유바른국민의당과 거의 모든 언론에서는 곧바로 탄핵을 얘기할 것이다(노무현 때는 취임한 지 2주 후부터 조선일보에서 탄핵 얘기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자유바른국민의당쪽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사람이면서 민주당과도 정책이 통하는 사람을 장관으로 내정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고 빠르게 시작하는 길이 될 수 있다. 김광두가 민주당과 정책이 얼마나 통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박근혜 쪽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자유바른국민의당이 청문회에서 마구 흔들만한 사람은 아닐 것 같다.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은 대통령이 임명하면 청문회 절차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된다. 어차피 대통령은 경제수석을 통해서 경제정책을 진행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장관보다 더 막강할 수도 있다. 김상조를 장관으로 내세우면 청문회에서 자유바른국민의당이 크게 반대할 수 있지만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임명한다면 청문회 없이 실권을 갖는 자리에 재벌개혁 전문가가 앉는 셈이다. 나는 만약 민주당과 문재인 캠프가 이런 의도로 김광두와 김상조를 영입했다면 그들이 지금 당장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집권 이후를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안철수 캠프는 최근 경제특보로 변양호를 영입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금융정책 관료로 활동했던 인물로서 외환은행-론스타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변양호라는 이름이 크게 낯설지 않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들으면 모피아, 이헌재, 강만수가 동시에 떠오를 수도 있다. 실제로 변양호를 검색하면 비슷한 결과와 함께 사모펀드도 나온다. 모피아라면 재무부와 마피아를 섞은 용어로서 관치금융 시대의 관료, 이헌재라면 바로 그 모피아의 대부라고 알려진 인물, 강만수라면 뭐, 이명박의 강만수, 바로 그 강만수다.


변양호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그를 영입한 사람들이 권력을 쥐게 되면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는 그가 최근 의료산업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조선일보 칼럼을 쓴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 (주의:조선일보 링크)


변양호를 계속 괴롭혔던 론스타 사건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했던 쪽은 김상조가 속해 있던 경제개혁연대라는 것이 좀 흥미롭다.


2.2 외교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라니스터가문은 설정상 엄청난 돈을 가진 가문이다. 어마무시한 돈보다도 그들이 사람들로부터 두려움을 받는 이유는 탁월한 외교력 때문이다. 물론 돈이 바탕이 되어야 하겠지만 라니스터는 항상 빚을 갚는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협박과 회유를 적절히 섞은 외교 실력으로 극한의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모습은, 비록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참 얄미울 정도로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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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주변에는 현재 지구에서 가장 센 나라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서로 대화와 타협을 계속하지 않으면 언제든 극단적인 긴장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미국 패권이 줄어들고 중국이 다시 떠오르는 시기라서 아주 민감한 시기인 데다 그 주요 지점에 한국과 북한이 있다. 이것은 그냥 아무런 일이 없더라도 우리가 중심을 잘 잡고 조심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을 기본적인 배경으로 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부시의 카트를 조종하던 뼛속까지 친미라는 이명박 정권의 친미 정책과 이를 이어받은 박근혜-최순실 정권이 미군의 사드까지 끌어오는 바람에, 한국의 외교안보는 흔들리는 줄 위에서 중심을 잃고 떨어지기 직전까지 온 것 같다. 지금 한반도의 가장 큰 외교적 문제는 사드 배치와 북한 핵 문제이다. 북한 핵 문제는 우리만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사드 배치는 박근혜와 최순실이 크게 저질러 놓은, 우리 정부가 저지른 문제이기 때문에 이게 미국의 무기일지라도 우리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사드가 배치되기 이전의 정부와 사드가 이미 배치된 이후의 태도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한국 정부를 빼고는 대부분의 사람이 사드가 북한 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다 알고 북한 미사일을 막기 위해 가져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다 안다. 이제 사드는 그 성능에 상관없이 이제 그 자체로서 그냥 외교적 무기가 되었기 때문에 그게 되니 안 되니, 레이더가 어쩌고 하는 소리는 이제 하나 마나 한 얘기가 되었다.


사드는 처음부터 아예 들어오지 않았어야 하는 무기인데 우리는 그것을 막지 못했다. 이제 사드는 하나씩 들어오고 있고 중국은 보복 조치를 하고 있다. 이 와중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중국은 한국에 더 심한 조치를 하려 할 것이고 북한과 친해지려 할 게 뻔하다. 미국은 당연히 그래야지라며, ‘이제 계획대로 동북아는 일본에 맡기면 되겠군이라고 할 것이다. 사드를 철수하겠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사드 철수를 요구하면 미국이 한국 정부를 ‘역시 못 믿을 한국 정부라고 비난하고 일본과 더 친해지려 할 것이다. 중국이 당연히 그래야지라며 이번 기회에 한국 업체를 좀 몰아내고 부품을 국산화해야겠군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국에 불편한 감정은 남을 것이다. 만약 사드를 공공연히 반대하던 후보가 새 대통령이 되고 나면, 그 지지자들은 왜 사드를 철수시키지 않냐고 따질 거고 거기서 머뭇거리면 트위터와 게시판은 대선 때 그를 지지했으나 오늘부로 지지를 접습니다라는 뭔 대단한 결심이나 한 것 같은 댓글로 가득 찰 것이다. 집권당에는 온갖 비난이 쏟아질 거고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에서는 거봐라, 거짓말쟁이 친미정권, 그럴 줄 알았다. 공약을 지켜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국내정치로 인해 외교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당장 5월 10일부터 정부를 맡아 운영할 사람들이라면 사드 찬성이든 반대든구체적인 입장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녀서 도움될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만약 사드를 결정하기 전에는 반대하다가 사드가 들어온 후에는 별 언급을 안 하더니 북한이 도발하면 배치할 수밖에 없다라고 모호한 입장을 보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중국과 미국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게 될까? 난 중국과 미국이 새 한국 정부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뭔가 지금과는 다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한국의 새 정부는 중국에 미국 압력이 너무 세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는데, 우리 국민 반발이 너무 심하니까 우리가 미국에 다시 얘기해 볼게. 그런데 그럼 중국도 서해 불법 조업도 좀 단속하고, 한국 기업에 대한 제재도 좀 풀고, 북한에도 좀 그러지 말라고 얘기도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에는 중국이 경제보복을 해서 우리가 너무 힘들고 우리 국민도 반발이 너무 심하다. 우리가 중국에도 얘기를 좀 해 볼 테니까 미국도 SOFA 개정도 좀 나서고, 일본이 자꾸 위안부 문제랑 독도 문제로 시끄럽게 하는 거 미국에서 관리 좀 해야 우리도 국민들 여론에 대응할 수 있지 않겠냐라고 할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물론, 한국 외교 관료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거 다 안다). 이런 걸 가능하게 하려면 시민 사회와 의회가 높은 반대여론을 유지해서 정부를 압박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어쨌거나 후보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사드에 대해 찬성이나 반대를 공약하면 그들이 집권했을 때 정부 입장에서 쓸 수 있는 옵션의 많은 부분이 없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이것을 분명히 하라는 후보의 말은 사람들을 시원하게 해줬고 그에 대해 모호한 입장이었던 후보는 말 바꾸는 사람 내지는 사드를 찬성하는 사람으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510일부터 정부를 맡아 운영하겠다는 사람들이 한 달 뒤에 자신들이 운영할 정부가 쓸 수 있는 대안의 절반을 없애고 시작할 정도로 상황 파악이나 예측 능력이 없으면 국민은 매우 불행해진다. 현재까지 이 문제에 대해 자유바른국민의당은 미국과의 약속이므로 예정대로 진행, 민주당은 다음 정부에서 결정, 정의당은 즉각 중단을 공약하고 있다. 난 대한민국을 이끌 새 행정부는 가능한 한 많은 카드를 들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최근 미국은 한미연합훈련 끝나고 돌아가던 항공모함을 돌려세웠고, 중국도 뭔가 군사적 움직임을 보인다. 미국은 북한이 김일성의 생일을 기념해서 핵실험을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김일성 생일이 415일인 것을 미국이 몰랐을 리는 없을 거고 돌아가던 항공모함을 돌린 이유는 아무래도 중국과 북한 앞에서 근육 자랑을 하고 싶어서이거나 아니면 진짜 뭐든 벌이려는 것 같다(이 시점에서 일단 4월 15일은 넘기긴 했지만). 사람들은 주식이나 환율도 안정적이라고, 한국에 사는 미국인들이 아직 빠져나가지 않았다고 전쟁은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데, 그건 미국이 전쟁을 시작할 때나 그런 것이지 북한이 미국인들 철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쟁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건 전쟁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 때문에 생긴 확증편향이라고 본다전쟁은 여러 가지 비이성적 판단들이 만나면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고, 미국인들이야 그때 가서 철수시킬 수도 있다오바마나 클린턴이라면 모르겠지만 트럼프가 미국인들 때문에 공습할 걸 안 한다고? (뭐, 미국은 시스템이 얼마나 잘 작동하길래 트럼프 딸이 백악관에서 설치고 다니나)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는 긴말 필요 없이,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대사가 모든 것을 얘기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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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친구가 아니라 적들과 평화를 이룬다"


평화는 적과 만들어야 한다. 적이랑 대화를 안 하면 어떻게 평화를 만들 것인가? 외교는 상대방을 돈이나 힘이 아닌 대화로 설득하는데 능통한 사람들이 해야 한다.


<한국일보>에서 후보들의 공약을 보기 쉽게 간추려 놓았다언뜻 봐서는 1번과 5번이 똑같지 1번과 3번이 똑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오히려 3번은 4번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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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누르면 커지니까 눌러서 한 번 좀 들여다 보자 (한국일보 링크)



, 아직도 그놈이 그놈인가? 그놈이 그놈으로 보이지 않는 내 눈이 삔 건가?


간만에 월급사장 뽑는데 주주들 모두 자세히 살펴보고 이번에는 금융사기단이나 떼강도 말고 좀 괜찮은 사람들이 정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잘 뽑았으면 좋겠다.



3. 주주들의 선택


선거철이 되면 왕이니 머슴이니 뭐 이런 수백 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표현들이 난무한다. 비유적 표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좋은 수단이긴 하지만 자꾸 그 틀 안에서만 생각하는 부작용이 있다. 국민이나 대통령이 왕이나 머슴도 아니다. 그냥 우리는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니까, 일정 기간 동안 우리가 낸 세금을 갖고 정부를 잘 운영할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왕이 머슴을 뽑는다기보다는 주주로서 월급사장을 뽑는 것에 더 가깝다. 내 돈으로 나를 돕는 일을 하는 사장을 뽑으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상식이 있는 사람인지, 그동안 어디서 무슨 생각과 어떤 말을 하며 살았는지, 앞으로 뭘 하겠다는지를 살펴보고 뽑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최근 팟캐스트나 트위터에서 나름 유명한 진보 지식인들의 트윗을 보고 있으면, 과거의 진영논리에 빠져 있거나 정치혐오를 부추길만한 양비론적 태도, 아니면 이건 전략적으로 매우 좋은 선택이다라는 식의 선거 전략에 대한 스포츠 중계 같은 글이 자주 보인다. 그들이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의 지평을 넓혀주는데 기여한 바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들이 지금 보이는 태도는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정책 선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뭔 원수가 그렇게 세게 졌는지아직도 문재인이나 박근혜나 안철수나 똑같아서 어차피 죽 쒀서 개 줄 선거, 자유바른당 아니면 정권교체는 하는 거니까 아무나 돼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정책 선거라는 게 유권자가 꽤 부지런해야 하는데, 그걸 내내 얘기하던 진보성향의 사람들이 그놈이 그놈이라고 할 때는 그들도 참 게으르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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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남기지 않고 먹어야 하는 도시락 세트, 또는 큰 사고가 나기 전에는 취소할 수 없는 패키지 여행 상품을 사는 것이다. 그 패키지 안에 뭐가 있는지 다 꺼내서 열어보고 써보고 골랐으면 좋겠는데, 그런 건 없고 그냥 메뉴판만 있을 뿐이다. 메뉴판을 보고 몇 개는 맘에 들고 나머지는 다 맘에 안 들어도 패키지로 사야만 하기 때문에 싫은 것이 끼어 있더라도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두 가지가 맘에 안 든다고 전부 다 똑같다고 징징대면, 당신들이 끌고 다니는 팬들은 그게 맞는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왜냐하면 대부분 우린 너무 바쁘고 그런 거까지 다 확인하기엔 너무 게으르거나 지쳐있기 때문에.


당신에게 딱 맞는 정치는 당신만이 할 수 있다. 당신들이 똑똑하고 까칠한 건 알겠는데, 당신들이 직접 나서서 할 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지금 나와 있는 정치 집단 중에서 골라야 하고 그러면 최소한 당신도 몇 개는 포기해야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모두 다 가지려고 하나? 당신들은 도대체 얼마나 큰 숟가락으로 밥을 먹길래 이제 겨우 첫 숟가락 뜨고 배부르지 않다고 밥상을 걷어차려 하는 건가? 원래 선거철만 되면 다들 미친다지만, 작작들 하시라 좀...


그리고 시민들도, 당신들이 지쳐있고 게으른 거, 그거 더 이상 핑계가 될 수 없다. 나중에 가서 속았다는 비겁한 변명도 이젠 지겹다. 누구를 왜 지지하는지당신이 그를 지지할 이유를 적어도 한 개라도 찾아보고, 당신이 사장으로서 종업원을 뽑을 때도 그런 이유로 뽑을 건지 다시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당신 머리로 생각하고 선택해라, 지나친 게으름은 민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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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서 다음 정부를 구성하더라도 행정부의 운영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연립정부 구성을 생각하는 것 같던데, 그러려면 국민의당이나 정의당에 장관 자리 몇 개를 줘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갈라서지 않았던 시기에, 집권하지 못한 민주당 시절에도 그 난리를 겪었던 사람들이 집권한 후에 실권을 가진 자리를 두고 다툰다면 그때보다 훨씬 심한 일들을 겪을 게 분명하다. 민주당은 정의당에 끗발 없는 장관 자리 하나를 제안할 것 같은데, 정의당은 노동부 장관을 달라고 할 것이기 때문에 아마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당은 지금 종편 막말꾼과 조선일보 출신들을 마구 끌어모으는 걸 보면 선거에 이기고 싶은 것이지 연립정부를 만들 때 협조하고 싶은 생각은 아예 없어 보인다. 장관 자리 몇 개씩 나눠주고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다. 다른 정당에서 온 장관들은 자기 정당의 의석을 늘리는데 유리한 정책을 우선 추진하려 할 것이고 만약 그 장관이 민주당 정부에 유리한 정책을 하면 당에서는 그를 배신자로 낙인 찍어 당으로 복귀했을 때 그의 입지가 줄어들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현행 선거제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연립정부 구성은 이미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갈라지는 과정에서 봤듯이 그 과정과 운영이 그렇게 생각만큼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2017년의 남은 8개월은 박근혜, 최순실의 냄새가 가득한 예산을 갖고 정부를 운영해야 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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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용어 중에 고급문화를 흉내 내려는 저급문화를 지칭하는 키치(kitsch)라는 것이 있다. 명화를 복제한 싸구려 그림이라든가, 유럽의 성을 본 따서 만든 결혼식장이나 러브호텔의 외부장식처럼 겉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없는, 즉 본질이 뭔지 모르고 겉 모양만 그냥 막 갖다 베껴낸, 알맹이가 없는 것을 말하는 용어다.


최근,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에서는 KBS 대선 후보 토론을 미국 대선처럼 서서 하는 스탠딩방식으로 하자고 요구했고 선관위도 세 번의 토론 중에서 두 번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한다. 민주당에서는 "스탠딩 토론의 취지가 100% 살아나려면 완전한 자유토론 형식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120분 토론을 한다고 했을 때 후보자 다섯 분, 사회자까지 하면 여섯 분이 평균 20분 정도 말하게 될 것이다. 20분 동안 말을 하고 나머지 100분 동안은 가만히 서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것은 의미 없을 뿐 아니라 어색한 일"이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뷰스앤뉴스 링크)


토론방식을 자유토론으로 바꾸는 일이라면 우리나라의 선거 토론 문화가 진보한다는 차원에서 반가운 일이지만, 토론방식을 그대로 두고 그림만 베끼는 거라면 그건 자신들의 저급함을 드러내는 것 말고는 토론 문화를 진보시키는데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미국 대선에서 벌어지는 토론은 자유토론이 핵심이지 스탠딩이 아니기 때문에 토론 방식을 그대로 둔 채 서 있기만 요구하는 것은 키치적 발상으로 보인다. 난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일부를 대표하는 정당과 대선 후보들이 가진 문화적 저급함에 또 한 번 크게 실망했다. '이거 미제야'라고 좋은 거라고 자랑하던 시기는 한국이 '쓰메끼리' 하나 제대로 못 만들던 시기에나 그랬던 거지, 아직까지도 그러고 있으면, 너무 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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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의자 갖다 두고 앉아서 설렁설렁 하는구만,


아마도 보수세력은 지금 후보들 중 가장 나이 많은 문재인에게 힘없는 늙은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 프레임이 먹히지 않더라도 최소한 미운 놈 벌이라도 세우자는 심정인 것 같다(교무실 앞에 학생을 세워두는 것은 인권침해이기도 하다).


어이, 세금 도둑 방송들아, 대선 후보들을 카메라 앞에서 벌 세우고 그러니까 막 좋고 그래? 신나? 이제부터 대선후보 불러다가 체력장도 하고, 이빨로 비행기 끌고 막 그러기로 한 건가? 유치한 새끼들


게다가, 2012년에 누군가를 보호하려 한다는 의혹이 생길 정도로 방송사와 선관위가 토론규칙을 어느 정도로 멍청하게 만들었는지 똑똑히 기억하는 나로서는 선관위의 태도도 참 한심하다. 공정선거? 잘도 그러겠다. ㅆ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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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동안에 민주당에서 '키치적인 스탠딩 토론'을 받아들인 모양이다("토론을 하면 할수록 저는 국민의당 후보가 갈수록 불리해질 것 같은데, 스탠딩 토론이든 끝장토론이든 얼마든 자신 있다", 뷰스앤뉴스 링크).


근데 그게 하필이면 '산악인과의 만남'에서 한 얘기라니 민주당 대선 후보를 '쓰러져가는 기운없는 노인네'로 만들고 싶었던 인간들은 참 운빨도 없지...쯧.




멀더요원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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