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지난 이야기


『N의 H기자입니다. 팀장님 계속 카톡 씹으실 겁니까? 섭섭합니다. 부탁하는 입장에서 불쾌합니다. 제가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 출판부에서 나온 좋은 책 알려드리는 것 뿐인데, 너무 하시지 않습니까? 결정에 도움이 될 만한 글이 있어 첨부합니다.』


첨부문서를 열자 괴문서 하나가 등장했다. 악의와 조롱으로 가득 찬 기사다. 대상은 당연하게도 우리 회사였다.




Afex-Covent-Garden-Office.jpg



출근하자마자 박과장을 불렀다. 우물쭈물 하는 박과장에게 H기자가 보낸 카톡을 들이밀었다.


“그, 그게... N에서 책을 100만원어치만 사 달라고 해서...”


“그래서?”


“팀장님께 상의해 보고 연락하겠다고...”


“그런 보고 들은 적 없는데?”


“......”


인터넷 쪽을 맡게 된 박과장은 어쨌든 자기 책임이라고, 자신이 처리하려고 했다. 처리하려고 했으면, 끝까지 처리하면 될 일인데, 광고가 아니라 책 구매라는 상황은 처음 접해 당황했다고 한다. 박과장의 대답이 없자 N은 팀장인 내게 압력을 넣은 것이고...


박과장도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김과장이 자기를 앞지르는 것 같다는 불안. 아무리 초연하다고 말해도 사람인 이상 감정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들 것이고, 마음과 달리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H기자에게 말했어. 인터넷 관련은 박과장에게 일임했다고”


“......예”


“그래도 내게 연락 올 거야.”


“예?”


“박과장 능력이 부족하다고 그러는 게 아냐. 기자들이 그래. 밑에 사람 백날 조지는 것보다 오야지 치는 게 빠르다고 배운 애들이야. 또 그게 맞고...”


“그래도 난 계속 무시할 거야. 안 그러면, 나도 불편하고 박 과장도 불편할 테니까.”


“......예”


기자들이 단계를 무시하고, 내게 계속 연락 오면 담당인 박과장도 괴로울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인터넷. 아니, N을 눌러놔야 한다. N은 지금 우릴 호구로 생각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하다. 두 번 쑤셨는데, 두 번 다 손을 들어줬다. N이 그렇고 그런 인터넷 신문이라면 무시하고 넘어가겠지만 N의 뒤에는 거대 언론사... 아니, 미디어 그룹이 버티고 있다. 그들도 뒷배가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기업들을 뜯어먹는 거다. 골치가 아프다. 당장 신문사 상대하기도 벅찬데, N까지 눈앞에서 얼쩡거리다니...


“위기관리비용에서 3백까지 줄 테니까 알아서 해결해.”


“예?”


“3백 이하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박과장이 알아서 처리해. 그게 광고가 됐든, 협찬이 됐든 인터넷 쪽이라면 박과장이 처리하라고”


“......예”


사람을 키우는 것 중 가장 빠른 게 권한과 책임을 쥐어주고 한 동안 내버려 두는 것이다. 이 경우 인간성도 드러나지만, 그 사람의 능력도 확인할 수 있다. 3백이면, 어지간한 인터넷 언론사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어차피 위기관리비용이란 게 이런데 사용하라고 만든 것이고, 최종결제는 어차피 내가 한다. 박과장을 믿어 보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인터넷 쪽을 돌아볼 여유는 없다. 당장 코 앞에 닥친 신문사 상대하기도 벅차다. 이 참에 박과장의 능력을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박과장 밖에 없다. 가용 인원을 어디서 더 끌어 올 수도 없다.


결과는 곧 나타났다.


내게 날아오던 카톡이 멈췄다. 그리고 내 책상에 ‘아름다운 우리 강’이라는 이상야릇한 책 한 권이 놓였다.


5.jpg


“이게 뭐야?”


“N에서 발행한 겁니다.”


“뭐?”


“100만원어치 사달라는 걸 50만원으로 후려 쳤습니다.”


박과장은 뿌듯한 듯 책 산 걸 자랑했다. 원래는 100만원어치 사야 하는 건데, 그걸 반만 샀으니 나름 성과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허탈했다. 미친 거 아닌가? 뭐라 한 마디 하려는데, N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것들 단체로 날 엿 먹이려는 건가?


“예, O팀장입니다.”


“아, H입니다. H부장님이 그래도 반론권은 보장해 주라고 하셔서...”


“무슨 소립니까?”


“카톡으로 기사 보내드렸는데, 못 보셨어요?”


“예?”


회의 들어가기 전에 무음으로 해놨는데, 역시나 카톡이 와 있었다. 확인해 보니 지난 분기 우리 회사 실적 저하에 관한 내용이다. 사실은 사실인데, 이를 분석한 기사가 악의(惡意)와 적의(敵意)로 가득 차 있다. 한 마디로 소설이다.


“이게 뭐죠?”


“뭐라뇨? A社 지난 분기 실적 저하에 관한 분석 기사 아닙니까?”


“영업실적은... 이 소스는 어디서 구하셨죠?”


“어디서 구하다뇨? A社가 제공하지 않았습니까? 말씀하시는 게, 우리가 빨대 꽂아서 빼돌린 것처럼 들리는데, 그쪽에서 제공한 겁니다.”


순간 박과장이 있는 책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저 미친 새끼... 박 과장도 그제야 카톡을 확인했는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래서요?”


“부장님도 화가 많이 나셨어요. 지난 번 광고 건도 있고... 어지간하면, A와 잘 지내려고 하는데... A가 좋은 회사인건 아는데, 이 좋은 회사를 이렇게 단기간에 말아먹는 걸 보니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고...”


“...회초리 보다는 칭찬이 아이를 성장시키지 않나요?”


“칭찬이 아이를 망치기도 하죠.”


“...그래서요?”


“반론권 보장차원에서 보냈으니, 살펴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예”


전화를 끊자마자 박과장이 내 앞으로 달려왔다.


“한 가지만 묻자. 이 영업실적 네가 보냈어?”


“아... 그게...”


“보냈어 안 보냈어?”


“예, 보냈습니다.”


“왜 보냈어?”


“그쪽에서 하도 졸라서...”


‘조르면 아무거나 막주냐?’란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꾹 눌러 담았다. 영업이익은 어차피 공시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건네주면서 어떤 코멘트를 달았냐 하는 건데, 기사에 나와 있는 ‘관계자’는 분명 박과장이다. 작년 4/4분기 실적은 사드 직격탄을 맞아서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국경절 연휴까지만 하더라도 별 문제가 없었는데, 사드배치가 본격화 되면서 중국 쪽 압박이 계속 들어왔다. 회사도 이를 대처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쪽으로 수출노선을 다변화 하겠다고 영업팀을 굴리고 있다. 나 역시도 다음 달에 있을 말레이시아 쪽 프로모션을 돌리느라 정신이 없다. 이 사정을 N이 모를리 없다. 아마, 박과장도 그런 설명을 붙였을 테지만, N은 이를 무시했다. 기사는 우리 회사의 방만한 경영과 국제정세를 예측 못한 경영진의 무능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젠장, 사드가 터질지 누가 알았는가?


7e40eda8857a9112181fb9329b1af325.jpg


지금 중국 쪽 바라보고 사업하던 이들은 전부 절벽에 매달려 있는 상황인데, 어디서 이런 논리구조가 나온 걸까? 내 앞에 서 있는 박과장은 눈 둘 데를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됐어. 일단 가서 대기해.”


측은한 마음에 박과장을 자리로 돌려보낸 뒤 대행사로 전화를 넣었다.


“도차장님, O팀장입니다.”


“예,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N 기사 보셨어요?”


대뜸 본론부터 치고 들어간다. 지금 수인사 할 여유 따윈 없다.


“예, 저도 좀 전에 확인했습니다.”


“대충 알겠는데, 왜 이러는 겁니까?”


“그게...”


“직구 던지십시오. 저 변화구 싫어합니다.”


“......H부장이 길길이 날뛰고, 난리 났답니다.”


순간 지난번 550으로 날아왔던 세금계산서가 스쳐지나갔다.


“A社 두고 보겠다고, 한번 걸리면 조지겠다고...”


“이게 조질 거리나 됩니까?”


“없으니까 억지 쓰는 거죠.”


“조진다는 게 진짜 조지는 겁니까, 아니면 돈입니까?”


이럴 땐 확실히 하는 게 좋다. H부장이 아무리 날뛰었다고 해도 결국 그도 언론사 직원이다. 언론사는 돈 주고 살 수 있다.


“아무래도 광고겠죠?”


도차장은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H부장이 기사로 압박해 광고를 얻어내려 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H부장은 500만원을 채우겠다고 작정한 모양이다. 머릿속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H부장의 자존심일까? 아니, 그 이전에 우리가 만만하게 보인 거다. 광고도 선뜻 주고, 책도 사줬다. 호구 잡힌 거다. 이러니 평기자 나부랭이가 내게 카톡을 보내 ‘협박질’을 하는 거다.


“씨발”


나지막하게 욕이 흘러나왔다. 수화기 저편의 도차장도, 사무실 안의 직원들도 표정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박과장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는 하고 있을까? 아니, 박과장에 대한 문책은 이후의 문제다. 지금은 이걸 해결해야 한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N의 기사를 받을 건지, 살 건지다.


몇 초간의 침묵.


“O팀장님?”


“잠시만요.”


이대로 호구 잡힐 순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N이랑 맞짱을 떠야 한다.


“도차장님.”


“예!”


“오늘 대기하십시오.”


“예?”


“2시... 아니, 3시까지 연락 드릴테니 확보할 수 있는 광고국 모두 리스트업해 주세요.”


“O팀장님... 그게...”


“저도 성질 있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지금 눌러놓지 않으면 뒤에 더 골치 아프단 거 잘 아시잖아요?”


“......예”


전화를 끊었다. 팀원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telephone.jpg


“홍XX씨!”


“예!”


“홍보대행사 다 연락 넣어요! 3시까지 스탠바이하고, 기레빠시 살 준비하라고”


“기...레빠... 뭐라고 하시는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런 핏덩어리를 데리고 뭘 하자는 건지... 하긴,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 나도 기레빠시란 용어를 내 사수한테 들은 거니까. 이게 모두가 인정하는 업계용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대기하고, 확보할 수 있는 광고국 모두 연결할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면 알 겁니다.”


“박과장!”


“예? 예!”


“날아온 기사 출력해서 가져와!”


“예...”


“김과장!”


“예!”


“영업이익, 사드, 중국발 위기, 동남아시아 시장 판로 개척 등등해서 보도자료 만들어.”


“릴리스용입니까?”


“아니, 유가기사로 만들 거야. 에피소드 넉넉하게 넣어서... 종이신문 쪽 나간다고 생각하고, 스토리 잘 짜서 하나 만들어.”


“언제까지 작성합니까?”


“2시 전까지 만들어.”


요즘 제대로 된 보도자료는 ‘에피소드’다. 개발비화나 수출입 과정에서의 어려움 등등을 이야기처럼 풀어내야 한다. 이야기를 찾는 게 인간이라고 하지 않는가? 덤으로 숫자나 통계 같은 양념을 풀어두는 것도 좋다. 어차피 기자들은 앞단과 뒷단을 치고, 그대로 우라까이 해서 올리지 않는가? 하긴, 우라까이 해서 올리는 게 어딘가?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보도자료 그대로 지면에 올린다.


박과장이 쭈뼛거리며, 출력한 기사를 결재판에 넣어 들고 왔다. 낚아채듯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주춤거리며 말꼬리를 흐리는 박과장.


“11층”


눈이 동그래지는 박과장. 법무팀에 들고 가 고소라도 할 요량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뭣대로 생각하도록 내버려 뒀다. 언젠가 N과 한판 붙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날이 빨리 왔다.



suit-portrait-preparation-wedding.jpg


   

추신 

이 시리즈를 투고하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 

내부자의 안전과 비밀보장을 최우선시 한다는 딴지일보를 믿으나 
이 연재가 중단되면 나에게 클레임이 들어왔거나 딴지 편집부가 쫄았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하시라.


언제나 그렇듯, 이 이야기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날리 없는 소설이라고 믿어주면 좋겠다. 




지난 기사


기업 홍보팀, 그리고 국제청 조사 4국

기자와 기업은 어떻게 거래하는가

김영란법 폭풍전야, 나는 음지에서 이런 일을 합니다

어짜피 삥뜯는 거 서로 알잖아

중앙지 광고거래는 다르다

지면 광고 그리고 인터뷰

사내정치가 시작된다

손석희는 한 명이다

사내정치와 라인이라는 환상

광고의 세대교체, 그리고 중국시장

기자와의 전쟁 2차전 시작

언론이 기사와 광고의 교환을 요구할 때, 우리는 이렇게 움직인다

우리나라 언론환경은 위기다

김과장과 박과장








빨간두건


편집 : 꾸물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