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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좋은 단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무언가를 만드는 행동.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여러명이 함께 할 수도 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류의 문명과 발전을 가져온 가장 기본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말로는, 모든 수의 약수인 유일한 정수 ‘1’과 발음이 같고, 또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의 한자어 발음과도 같다. 의미상 ‘노동’이라는 말의 의미도 지니지만 안타깝게도 이념적 색체가 드리워진 ‘노동’과는 달리 ‘일’은 보다 보편적인 친근함을 지닌다. 이 글은 이념이나 체제, 사회경제적 맥락은 아니니 노동보다는 일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암튼 좋은 단어라는 얘기다. 



1. 1999년 2월의 기억


나는 고등학교 스쿨밴드의 멤버였다. 해마다 2월에는 졸업기수가 주축이 되는 공연을 했다. 공연 자금 마련을 위해 A4용지로 복사해서 만든 팜플렛에 광고를 실어준다는 명목으로, 학교 근처 문구점이나 분식집에서 만원 2만원씩 스폰을 받았다. 말이 광고스폰이지 그냥 친해진 가게 사장님에게 용돈 좀 달라는 식에 가까웠다. 


내가 3학년으로  진학하던 그 해, 나는 새로 생긴 꽃집에 그리 친하지는 않았던 사장님을 찾아갔다. 사장님은 30대 남자였는데 광고스폰을 빙자한 용돈 구걸 행위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눈빛이 어딘가 갸륵해졌다. 알고보니 사장님은 불과 몇년 전까지 밴드를 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광고스폰 액수도 바로 옆 분식집의 몇배에 달했고, 공연전날 이는 형을 데리고 공연장 세팅을 봐준다는 말을 했다. 사실 큰 기대는 안했다. 음악하는 사람들 중에는 종종 허세가 심한 경우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던 나이였으니까. 


공연전날이 됐고, 우리는 음향기기를 미리 빌려 세팅을 시작했다. 장소는 학교 시청각실. 중간에 큰 기둥이 있어 공연으로는 최악의 장소였지만, 당시로썬 달리 도리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들이 나름대로 악기와 장비들을 설치했다. 거의 모든 자리에서 하울링이 났고, 어느 악기가 들리면 다른 악기가 들리지 않았다. 사운드의 밸런스 같은건 기대할 수 없는, 그냥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다행인 상황. 


그러던 어느 시점에 아저씨 세명이 들어왔다. 꽃집 사장님이 아는 형 두명을 데려온 것이다. 어라 진짜 오셨네 싶을 때 쯤 깨달았다. 그 중 한명은 당시 언더그라운드의 큰형님 격인 M밴드의 드러머 K씨였다. 다른 한명은 그 밴드와 오래 작업한 사운드엔지니어. 그들은 나름 장비 연결을 엉터리로 하지는 않은 고등학생들을 보며 귀여워했고, 이내 자연스럽게 한명은 드럼세트에, 한명은 콘솔믹서에 자리했다. 


마법과 같은 현장을 목격한 건 그때였다. 드럼 튜닝을 하고 고개를 갸웃 하더니 라이터로 드럼 피를 지지는, 당시 우리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행위를 하고, 역시 당시로선 미지의 영역이었단 콘솔믹서의 여기저기를 조물거리고, 소음에 가까운 기괴한 드럼소리들이 한 5분쯤 이어졌을까. 갑작스레 한순간, 외국 메탈밴드의 앨범에서나 들을 수 있을법한 완벽한 드럼 사운드가 시청각실을 가득 매웠다. 이후 불과 30분도 되지 않아, 기타, 베이스, 키보드, 보컬의 모든 소리가 완벽한 앙상블을 내도록 세팅됐다. 


우리 모두는 한껏 들떠서 그 두 아저씨들에게 온갖 찬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겸연쩍지만 싫지만은 않은듯한 웃음을 띈 채 손사래를 치며 K씨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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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거 갖고 그래. 형 프로야.”


프로. 18살 나에게 그 두음절 단어가 갖는 울림은 깊었다. 아마도 그 때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자기 일을 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10대 소년들의 열정과 절박함만으로는 절대 이뤄낼 수 없는 어떤 영역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2. 2014년 4월의 기억


우리 모두가 잊을 수 없는 그 날. 나는 늦잠을 자서 부랴부랴 출근준비를 하던 도중 거실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다. 마음쓰임을 누르지 못한 채 후다닥 샤워를 마치고 집을 나서면서 문제의 전원 구조 오보를 봤다. 오보라는 사실을 상상도 못한 채 안도를 하며 출근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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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길에 트위터를 통해 오보 사실을 깨닫고,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뉴스 생중계를 화면 한켠에 띄워두었다. 그리고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말았다. 선장과 선원, 그 몇몇의 어른들만이 헬기를 타고 구조되는 그 장면. 삼십대 중반이라는, 누가봐도 어른임이 분명한 나이의 사람으로서, 나는 마치 그 헬기에 내가 탄 채로 아직 침몰하는 배 안에 있는 고등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무거운 죄의식과 자기혐오를 느꼈다.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단어는 ‘무능함’이었다. 그 배의 선장과 선원들부터, 구조를 맡은 해경, 그 지휘조직인 해수부, 더 나아가 당시 정부, 가장 말단부터 최상위 권력까지 어디하나 무능하지 않다 할 구석이 없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그 무능함의 여파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하지만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가. 나는 무능하지 않은가.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 나는 나의 무능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내 일을 수행하는 능력은, 저 헬기에 옹졸히 앉아있는 저들과 과연 다른가. 


이 생각은 이후 지금까지 내 가슴 깊숙히 문신처럼 새겨져있다. 내 일을 잘해야 한다. 일을 못하는 건 그 자체로 언제든 충분히 무거운 죄가 될 수 있다. 



3. 이제, 2017년 5월


나는 지난 몇년간 정치인 문재인을 비판했고, 표심 유보기간을 거쳐,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다가, 투표 당일 투표소에 도착해서 마음을 바꿨다. 욕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솔직히 고백한다. 문재인을 찍는 두번째 투표가 됐다. 


정치인 문재인을 비판하기 전에, 나는 나름 열렬한 지지자였다. 기억하는 분이 있을 지 모르지만, ‘문재인 천재설’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비판적 자세로 바뀐 건, 아마도 18대 대선 이후에 문재인 당시 의원이 박정희 묘소에 참배를 했을 때였다. 내 나름의 기준으로, 임계점을 넘어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놈의 ‘친문패권주의’라는 말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지지와 비판을 넘어서, 그 어리광스러운 정치공세가 꼴보기 싫었다. 결국 그 어리광을 부리던 집단이 다른 당을 차려나갔다. 이은 총선에서 내가 사는 지역에 손혜원 현 의원이 당선됐다. 아무래도 내 주변인들이나 내가 팔로하는 트위터 계정들 성향이 있다보니, 박주민, 표창원 같은 의원들이 은수미, 진선미 등과 함께 만들어가는 울림이 눈에 띄었다. 그 울림의 파형은, ‘친문패권주의’ 노래를 부르던 그들이 있던 당시의 새정치민주연합의 파형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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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차이는, 말하자면 일을 더 잘하게 된 것 같다는 느낌의 차이였다. 정치적 수사나 정치공학적 전략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라면, 제1야당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그 ‘일’을, 그 전보다 더 잘하고 있다는 느낌. 물론 완벽하다고 할 수 없겠다. 누가 일을 완벽하게 한단 말인가. 다만 더 못하는 사람과 더 잘하는 사람은 확실히 구분되지 않던가. 자기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고, 또 그런 사람들이 가려지는 게 아니라 드러나는 구조로 변한다는 것. 이건 분명, 내 성에 차고 안차고를 떠나, ‘발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겠다. 


왜 투표소에 들어가서는 마음을 바꿨는지, 사실 아직도 그 확실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입에 올리기도 지겨운 그놈의 사표심리가 내 안에서 꿈틀댄건지. 홍준표와 보수집결에 대한 공포가 있었는지. 이 글을 쓰면서 생각컨데, 앞서 말한 그 파형의 변화가 못내 맘에 들었던 것 같다. 탄핵 과정에서의 미묘한 잡음과, 대선 과정에서의 크고작은 실망감, 그 밖에 여전히 개인적으로는 성에 안차는 면면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가 ‘발전’임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당의 발전은, 문재인이 그 당의 중심에서 기여한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게, 투표소에 발을 딛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리속에서 벌어진 생각의 흐름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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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이후, 우리는 잊고있던 ‘대통령의 일하는 모습’을 불과 이틀만에 만족스레 목격한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원칙에 입각한 인사지명, 청와대 비서들과의 회의 및 대화, 주요 각국 정상들과의 통화, 시시각각 공개되는 모든 내용과 앞으로의 구체적 일정.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초장부터 거짓으로 발각될 수사만은  아니었음이 확실해지는 중이다. 


분명, 잡음과 갈등은 있을게다. 앞서 말했듯 일이란 건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대선 기간이 짧았던 만큼이나, 언론이 허용하는 허니문 기간도 짧을 거다. 아마도 가을은 커녕 장마가 채 오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헐뜯기 시작 할거다. 그러다보면 실책도 나오겠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잘못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그걸 또 여기저기서 헐뜯으며, 이 잠깐의 청량감을 피로감으로 바꿔낼거다. 


그 모든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거 하나만은 기대한다. 적어도 이 나라의 역대 정부 중에서는, 정부의 일을 제일 잘한 정부로 기억되길. 오히려 정치공학적 전략이 미흡했더라도, 훗날의 학생들이 정부의 역할을 공부할 때 교재로 쓸 수 있는 수준의 유능함을 보여주길. 이미 큼직큼직한 주요 사안은 어느정도의 아웃라인을 갖추고 있고, 그 안에 들어갈 디테일을 잘 만들어낼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를 애초부터 알고 있는 듯한 신뢰감을 지니길. 


자신의 일을 못하는 것이 얼마만큼의 아픔을 줄 수 있는지는 우리모두 이제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부디, 반대로 자신의 일을 잘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얼마나 더 좋은 삶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엿볼 수 있는, 그런 정부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아마도, 이 나라에 어느덧 뿌리 깊어진 갈등의 그물을 끊어낼 수 있는 가장 멋들어진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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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애비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