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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6. 목요일

독투불패 갈매나무









10여년 전, ‘의약 분업이다 보험 재정 통폐합이다’ 격변이 있었을 때, 맡은 일 때문에 관련 분야를 1년 동안 주야장천 팠더니, 어디가서 토론해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 됐었다. 내가 하는 일 자체가 음지에서 일하고, 또 위치가 을중의 을이라서 늘 조용히 있었기에 막상 현업에 있었을 때는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더라만, 대충 어리버리한 기자가 쓴 글을 읽으면 이 사람이 누굴 만나 어떤 소리를 들었기에 이런 쓰레기 같은 글을 썼는지 구별할 정도는 된다.


아마 이 문제에 대해서 딴지에서도 이전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요즘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닥 변한 건 없는 것 같다.


자꾸만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것 같다. 여기저기 헛소리들이 난무하니까, 누구 말을 믿을지 몰라 우왕좌왕한다. 게다가 딴지에서는 피아골이 분탕(?)을 치고 있고, 게다가 개인적인 경험까지 얽히고 섥혀서…….


감기로 병원에 갔을 때 한 번에 10여만 원을 내거나 맹장 수술 한 번 하고 천만 원 이상 내는 게 버거운 사람일 경우, 헷갈린다 싶으면 ‘당연지정제 폐지’ 한 가지만 빼고는 그냥 의사편에 서라. 의사가 그나마 우리 편이다. 우리 편을 들어줄 여유도 있고, 우리와 비슷한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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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우리 편이라고?



이렇게만 적으면 본인의 출신 성분을 의심하거나, 괜히 말투가 건방져서 싫다는 등 부정적인 반응만 보일 거 다 안다. 그래서 좀 더 덧붙여 본다. 일단 이 글의 목적은 왜 의사들이 그나마 우리 편인지 아는 데 있으므로, 전문적으로 보이려고 하는 각종 용어나 사태에 대한 자세한 면은 과감히 생략한다.


먼저, 건강 정책과 관련된 우리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저렴한 보험료와 확장된 보장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온 국민이 행복한 건강보험건강한 삶 평생토록 등 (오해 마라. 앞의 두 문장 다 방금 생각해 낸 거다. 혹시라도 비슷한 말을 사용하는 단체를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다.) 개풀 뜯어 먹는 소리를 하는 단체 있으면 간단히 무시해라. 얘네들은 잘 모르면서 그냥 헛소리 하는 것이거나, 구체적인 활동 없이 어디서 눈 먼 돈만 먹으려는 애들이다.


정책과 관련한 구호는 구체적일수록 좋다. 일단 암에 대해 보장성 강화차상위계층 의료보험 반액 지방 정부 지원 등의 구호를 외치는 단체는 일단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번 살펴볼 가치는 있다. 이때도 조심해야 되는 게, 지들이 가지고 있는 시커먼 의도는 숨기고 말만 앞으로 내세우는 단체일 가능성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자.


저렴한 보험료와 확장된 보장성에서의 저렴한과 확장된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돈 많은 사람에겐 월 100만 원도 저렴할 것이고, 평생 암에 걸릴 이유 없는 건강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그냥 맹장수술 정도까지만 보장되어도 보장성이 충분할 것이다. 이 모호함을 어떻게 구체화 할 것인지가 보건 정책의 핵심이다. 다시 말하면, 건강보험료를 수입의 몇 %로 정할 것인지, 암에 대한 보장성을 어디까지 해 줄 것인지 말이다. 얼마나 중요하면 모든 대통령 후보가 이 부분을 공약에 넣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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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라포르시안



적어 놓고 보니 쉬운말을 졸라 길게 쓴 거 같아 거시기하기는 한데, 지우고 다시 쓰기 귀찮으니까 계속 간다.


우리 입장에서는 건강보험료가 적고 보장성이 높을수록 좋은 것이다. 근데 뭐가 문제인가? 돈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돈이냐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관리하는 건강보험 재정이다. 각 이익 단체별로 별소리를 다하는데, 이걸 한 마디로 압축하면 “돈 더 줘!”가 되겠다.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의료서비스 제공자나 관련자, 즉 의사, 약사, 간호사, 제약회사, 병원 등에 최소한의 비용만 지불하는 것이다. 겨우 죽지 않고 살 정도만 말이다. 다시 말하면 도시 근로자 평균 소득 정도.


근데, 이렇게 하면 망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보건 정책의 핵심은, 국민이 낸 보험재정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나눠주는가에 있다. 이것만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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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의 눈으로 보자. 어디서 돈을 더 가져가는지.



온갖 감언이설은 무시하고, 결국은 그 정책을 했을 때 어떤 단체가 얼마의 돈을 더 가져가는가만 보면 된다. 물론 의사협회, 병원협회, 약사협회, 다국적제약협회, (국내)제약협회, 간호사협회, 한의사협회 등 각 단체들마다 이해관계가 다르다. 정부의 입장은? 재정 빵꾸 안나고, 국민들이 만족해서든 무지해서든, 심각한 저항만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덧붙여 각 이익단체나 이 이익단체의 사주를 받은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나 청와대 모 인사의 압력만 없으면 된다. 나쁜 말로 가치 중립적이다.


이건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이고, 우리가 굳이 오지랖 넓게 얘네들 사정까지 봐줄 필요는 없다. 여기서 질문. 위의 보건 관련 직업 중 우리의 건강, 질병 치료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의사다. 의사가 제일 중요하다. 다들 지들이 국민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라고 하는데, 막말로 맹장 터지면 믿을 건 의사 밖에 없다. 물론 마취제 생산하는 회사는 지들 약 없으면 수술 못한다고 악을 쓸 수 있으나, 실패할 확률이 높아서 그렇지(잘은 모르겠다만 예전에는 얼음물이 든 욕조에 담아 가사 상태로 만든 후 수술을 했다고도 들은 것 같다.) 대체재가 있다. 하지만 의사가 없으면 아무리 약이 좋아도 말짱 도루묵이다.


만일 각 종사자에게 돌아가는 에 차등을 주려면, 의사가 가장 높아야 되는 게 맞다. 요즘은 그런 의사도 별로 없더만, 의사가 반말지거리한다고 해서 욕하지 말고 존경 좀 해줘라. 우리가 의사들을 존경해 줄수록, 의사가 만족하는 경제적 보상의 수준이 내려가기 마련이다. 실증적인 데이터 같은 것은 당연히 없지만, 그런 게 사람 사는 게 아닌가 싶다.


다들, 무언가를 하고 지낼 거다. 집에서 노는 사람도 있기는 하겠지만, 완벽한 은둔자가 아닌 이상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하다 못해 모임을 주선하는 일을 하든, 뭔가를 한다. 그럴 때 주위에서 그 일에 대해서 졸라 씹는다 하더라도 결국 잘 되면 뿌듯하지 않냐? 의사도 같을 거라 생각한다. 게다가 거기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아니냐. 자기 환자나 주변이나, 지가 잘해서든 아니면 재수가 좋아서든, 병을 고치는 꼴 보고 싶지, 심각한 인격장애자가 아닌 한, 사람 죽어가는 거 보기 싫은 거 아니냐.

 

사람의 병을 고치려면, 필요한 처치나 투약을 적절한 시기에 해야 한다. 근데 이게 잘 안된다. 처치를 해도 건강보험에 기술된 대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건강보험에서 돈을 못 받을 수도 있고, 환자에게 비보험 급여로 청구해야 한다. 이거 못한다는 말은, 미국에 있는 거래처에서 계약을 따오라고 하면서 국제전화 비용이나, 미국행 비행기 값을 안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경우에도 자기 돈을 쓰지 않고 하는 방법이 있다. 회사에서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회사 전화로 미국에 있는 거래처와 통화하면서 일하는 방법, 아니면 하루에 이메일 하나씩 쓰는 방법. 하지만 그러다가 계약은 날아간다. 계약이야 날아가든 말든 어차피 월급쟁이에겐 똑같지만, 의사는 사람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에, 정말 필요하면 절차를 무시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엔 결과가 좋든 아니든 욕 졸라 처먹고, 심하면 징계도 받는다. 의사들도 기본적으로 환자들에게 필요한 처치를 마음껏 해서 환자가 건강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거다.

 

약사도 그렇고 제약회사도 같은 사람이라 근본적인 것에서야 차이는 없겠지만, 이 쪽은 간접적이라는 거다. 어디서 누가 죽었다는 말은 그냥 지나치지만, 내 주변에 누가 죽었다면 이는 굉장히 큰 사건이다. 이런 말이 나오면, ‘의사들은 다들 이런 꼴을 너무 많이 봐서 사이코패스 비슷하게 무감각해지는 경우가 있다더라’ 카면서 반론을 펴는 사람들 있는데, 실제로 그런 예가 없지는 않겠지만 극단적인 예는 서로 자제하면서 생각해 보자.


이게 다 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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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황에서 의사에게 돈을 더 주려면, 보험료를 늘려서 재정을 확보하든, 세금에서 일정 부분 지원을 하든, 다른 분야의 지출을 줄이든 해야 한다. 앞의 두 가지는 결국 국민이 부담하는 거니까(보험료 더 내야 한다고 하면 다들 싫어하고 굉장히 시끄럽잖아.) 일단 제외하면 남은 방법은 다른 분야 지출을 줄여야 되는데, 문제는 의사를 제외한 나머지 단체가 정치적인 힘이 세다. 로비도 잘하고, 자기들 말을 잘 듣는 국회의원도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이 많이 왜곡되어 있다. 의사들이 괜히 약사들을 까는 게 아니다. 제로-섬 게임에서 자기들이 보기에 약사가 필요 이상으로 돈을 많이 가져가니까, 까는 거다.

 

제약회사, 의사의 영원한 을이다. 제약 영업이 얼마나 힘든지, 상대하는 의사 중 진상이 얼마나 많은지, 입아프게 말할 필요 없다. 하지만 말야, 제대로 된 제약회사 영업 직원이면, 웬만한 의사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그 쪽은 제대로 된 약도 못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약사에게 들어가는 보험 지출과 약가를 삭감해야 한다. 얘들이 무슨 말을 하면 일단 색안경을 쓰고 보고, 대충 이상하다 싶으면 무시해도 큰 무리 없다.

 

위의 논리가 먹히는 경우는, '당연지정제'가 유효한 경우다. '당연지정제'는 모든 병/의원이 건강보험의 체제하에 있는 걸 말한다. 최근에 의사 혹은 대형병원 위주로, 이 당연지정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경우가 생겼다. 이유가, 쉽게 말하면 얘네들 삐친 거다. 졸라 힘들게 공부해서 의사됐는데 여기저기서 욕은 처먹고, 그렇다고 건강보험 체제내에선, 경제적으로 충분히 보상 받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아예 시스템 자체를 바꿔보자는 거다. 막가자는 거지. 물론 대형 병원은 어떻게 해서든 돈을 더 벌 궁리를하는 거고.

 

난 정부하고 시민단체가 실패한 거라고 본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렇게 돌아온 거다. 최소한 처음부터 의사를 이쪽 편으로 만들고 보건 정책을 수립해 나갔으면, 이런 꼴까지는 안 왔을 텐데. 정부나 시민단체나, 의사를 너무 몰아 붙였다.

 

 

이렇다. 태클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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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투불패 갈매나무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