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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찌라시 한국사'는 재미난 역사적 사건을 대화체로 풀고 썰을 마구 첨가하여 남녀노소 상하좌우 친박반박까지 한국사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 새 연재입니다.


찌라시만큼 흥미진진하고 쫄깃하여 찌라시인 것이지, 진짜 찌라시와는 무관하니, 맘 편히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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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장군의 살수대첩은 수 나라의 병사들이 강을 건너려고 할 때, 기가 막힌 타이밍에서 둑을 터트려, 30만 대군을 수장 시킨 걸로 알고 있잖아.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포크레인이나 건설장비도 없이 그 엄청난 양의 물을 담을 댐이나 보를 전쟁 도중에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 또 다이너마이트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보나 댐을 터트려 엄청난 양의 물을 내려 보낸다? 1400년 전 일이야.


수공으로 전쟁을 이겼다는 역사의 기록은 삼국시대에는 없었고,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최초로 나왔다고 해. 살수라는 이름 자체가 왠지 물을 이용해서 죽였다는 의미가 포함 된 거 같지만, 살수는 단지 지명 이름일 뿐 이라고 해. 결정적으로 살수는 30만 대군을 수장 시킬 수 있는 강폭도 수심도 갖고 있지 않아. 그럼 왜 이런 추측을 하게 됐던 걸까?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력의 대군을 이긴 데에는 자연의 힘을 이용 한 신묘한 전술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어. 이런 추측을 하게 된 배경에는 국내에서 이순신 장군 다음 네임벨류의 명성을 가진 미스터리 한 남자 을지문덕 장군의 신묘한 전쟁수행 능력도 한 몫을 했을 거라고 봐.


을지문덕 장군이 왜 미스터리 하냐고? 살수대첩 외에 당신이 알고 있는 을지문덕 장군에 대해서 머리에 떠올려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 거의 없을 거야. 당연한 일이야. 기록자체가 전무 하다시피 하니까.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지만,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기록도 없고, 심지어 관직명에 대한 기록도 없어. 또한 살수대첩에 대해서는 너무나 자세히 기록 되어 있지만, 을지문덕장군은 살수대첩의 대승을 이끌고 난 후에는 역사 기록에서 귀신 같이 사라져. 이름 자체도 우리나라 사람 같지 않은데, 혹시 엄청난 능력을 갖춘 용병이라 전쟁 후 홀연히 사라진 건가? 그도 아니면, 백두산에서 도를 닦으시던 전쟁 도사가 홀연히 내려와 위기에 빠진 우리 백성을 구하고 다시 근두운을 타고 사라진 건 아닌지 혼자 신나는 상상을 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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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제, 살수대첩이 일어 나게 된 경위와 고구려 군의 미친 전투력 및 신비주의로 무장한 을지문덕장군의 활약상을 둘러보자고.


수 나라는 약 400년 가까이 분열되어 있던 중국을 통일하여 왕조를 막 세운 상황이었어. 우리가 삼국시대, 통일신라, 후삼국시대, 고려 등 분열과 통일을 반복했듯이, 중국도 마찬가지. 지금의 중국처럼 계속 통일된 나라가 아니었어.


주위에 모든 나라들이 수 나라에 머리를 조아리고,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는데, 단 한 나라 고구려만이 도도하게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로써 버티고 있었던 거야. 멋지다. 이때 고구려의 왕은 영양 왕이었는데, 광개토대왕, 장수 왕 할아버지의 빛나던 전성시대를 재현해 보자는 파이팅을 다지고 있었던 거야.


영양 왕은 고개만 숙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수 나라 바로 턱밑인 요서지방에 대한 선제공격까지 감행해. 수 나라는 황당하기 그지 없었어, 중국본토를 통일했는데, 발 아래 위치한 작은 나라가 고개 쳐들고 있다 공격까지 해오니, 기가 찰 노릇이지.


여기에 수 나라가 100만 대군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장면이 등장 해. 돌궐이라고 고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민족이 있는데, 현대의 지정학적 위치로 굳이 분류 하자면 투르크메니스탄이야. 맞아, 우리와 중국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돌궐은 유럽인에 가까워. 소비에트연방에 소속 되어 있다가 1991년에 분리 독립한 나라야. 수 나라는 중국대륙을 통일하면서 특히 돌궐 족의 통제와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어.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가졌으니까.


수문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수양제가 관리 차원에서 휘하 돌궐지역에 방문을 했을 때였어. 비밀 순시 차원에서 들른 돌궐청사에 고구려 외무부 장관이 와 있는 걸 수양제가 목격을 한 거지.


“이대로는 안 된다 해. 안 그래도 고구려 손 좀 보려 할 참이었다 해. 말 잘 듣고 있는 돌궐까지 고구려가 물들일까 겁난다 해. 천하통일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고구려를 이번 기회에 손 보지 않으면 우리가 당한다 해”


실제로 수양제의 우려는 맞았어. 고구려는 군사적 측면에서도 수 나라와의 일전을 착실하게 준비를 하면서, 외교적으로도 돌궐 포섭 작전에 돌입했었던 거야. 아무 준비 없이 대의명분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안팎으로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야. 이런 게 제대로 된 나라고, 열강들 틈에서도 살아 남을 줄 아는, 작지만 알찬 나라가 취해야 할 전략이 아닐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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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00에서 페르시아군이 스파르타를 공격 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수 나라가 고구려 공격을 감행하는 모습과 얼추 비슷할 거야.


전투병만 100만 명이야. 고대 지상전에서는 보급부대가 반드시 따라 와야 해. 밥도 먹고 생활도 해야지. 여기에 군악대에 황제 특별 경호부대, 압록강을 건널 때 다리를 놓을 공병대에 각종 거대 무기들을 운송할 부대원까지. 항공모함을 타고 이동하는 것도 아니니 100만 명이 이동하려면 딸린 식구가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해. 저 당시 고구려 인구가 300백만 명으로 추산 되니, 나라가 움직인 거야. 중국에 프로 탁구 선수가 4천만 명 이라고 하던데, 대륙의 스케일이란.


세계 전쟁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이 병력은 1300여 년이 지나 세계1차대전 전까지 세계 기록을 유지하게 돼.


페르시아군이 코끼리를 끌고 왔듯이, 부교를 설치해 요하강을 건너서 요동성 앞에 불개미 떼처럼 도열을 해. 요동성에서 100만 대군을 마주친 고구려의 장수와 군인들은 어떤 심경 이었을까? 이 당시 수 나라 부대를 일렬로 도열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닿는다고 하니, 전쟁 전부터 기세에 압도 되었을 것 같아.


그런데 이 요동성이 백만 대군 앞에서도 함락이 되질 않아. 고구려의 기가 막힌 작전이 있었어. 그 작전이란 다름 아닌, 수 나라 공격에 대해 어느 정도 방어를 하다가, 항복 선언을 해버려.


“이보라우! 수 나라 장군. 우리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어 야. 항복할 테니께니 고만 하자우”


“고뤠? 잠시만 기다리라 해, 우리 황제한테 가서 여쭤보고 오겠다 해. 근데 우리 황제가 고귀한 몸이라 황제 처소까지 가는 데 3일, 오는 데 3일 걸리니 딱 일주일만 기다리라 해"


“고조 알았으니 날래 날래 갔다오라우”


수 양제가 항복을 받아 주겠다는 전갈을 들고 파발 병이 요동성에 다시 돌아왔는데, 고구려군의 요동성에서는


“이보라우, 우리 니네 황제전갈 기다리는 동안 맘이 바껴 버렸어야. 다시 앙칼지게 싸우기로 했으니 항복 취소야. 지금 이 시점부터 다시 전쟁 개시야. 화살 날라가니 싸게 싸게 잘 피하라우.”


전쟁이 다시 시작 되고, 고구려군은 힘이 떨어 질만 하면, 다시 위장항복을 반복해. 100만 대군이니 명령체계도 많고, 현장의 지휘관이 선 조치 후 보고를 할 상황도 아니야. 현장의 지휘관은 나중에 만에 하나 일이 잘못 되었을 때 어떤 화를 입을지 몰라. 거짓 항복인지 알면서도 수양제에게 거듭되는 보고 후 확인절차의 참으로 비능률적인 과정을 3-4차례 더 반복을 해. 이런 공방전이 3개월이 넘어가니. 공격하다 제 풀에 지친 수 나라 군은 요동성 함락을 마침내 포기하고, 30만의 별동대를 조직하여, 수도 평양성을 공격 하기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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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별동부대 라면 왠지 소규모의 인원으로 날렵하게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닌자처럼 임무를 완성해야 할 거 같지 않아? 무슨 별동부대가 병력이 30만 명이야. 사람이 많아지니 진군 속도도 당연히 느려지고, 보급부대 없이 순수전투병력만 가게 되니, 전투요원이 식량을 메고, 이고, 지고 가는 상황이야. 람보가 기관총에 햇반에 김치에, 육포에, 참치 통조림에 생수까지 메고 적진 깊숙이 가는 거지. 이 별동부대가 메고 간 군장의 무게가 80키로 가까이 되었다고 해. 탈영병이 속출하고, 식량을 버리고 이동하는 부대원들이 부지기 수였다고 하니 평양성 도착 후, 전쟁 전에 다 굶어 죽거나 과로사 할 판이었어.


이때, 안개처럼 을지문덕 장군이 평양 성을 지키기 위해 전면에 나서. 두둥.


을지문덕장군은 치고 빠지는 전술을 시연하셔. 


수 나라군이 80키로 군장을 메고 계속 고구려군을 쫓아 오게 만들어. 공격 살짝 하다가 도망가니 수 나라군은 미친 개처럼 따라오고, 추격하다 지쳐 해 떨어지면 진지 구축하느라 힘 쓰고, 다음 날 아침 댓 바람부터 고구려군은 다시 공격해 와. 오후에는 또 다시 술래잡기 놀이를 반복해. 수 나라군이 터미네이터가 아닌 이상 탈진을 할 수 밖에 없었어. 주도권은 을지문덕 장군이 이미 쥐고 있었어.


하지만, 아무리 유리한 상황에서 전투가 이루어 진다고 해도 우리 강토에서 전쟁이 일어나니 백성들의 피해가 없을 수가 없잖아. 우리 땅에서 수 나라 대군을 몰아내는 것이 급선무였어.


이에 을지문덕장군이 항복 퍼포먼스를 시연하셔.


“이보라우. 니들도 명분이 있어야 철군을 할 테니, 우리가 항복 하는 퍼포먼스를 해줄 테니, 날래 고구려 땅을 벗어 나라우. 이미 전략 전술에서 니들은 우리한테 졌어. 고롬. 지금 당장 철군하면 우리 왕까지 나와서 항복 퍼포먼스를 해 줄끼야. 그러면, 니네 황제 체면도 서지 않캈어? 이건 부탁도 아니고 선택 옵션도 없어야. 이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 크게 후회 할끼야”


수 나라군은 굴욕적으로 을지문덕장군의 제안을 받아 들이고 철군을 시작해. 수 나라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 갈 생각에 지친 발걸음을 재촉 하는데, 이미 군대의 대오가 아니야. 타지에서 죽도록 고생만 하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체력 방전된 민간인일 뿐이었어.


전쟁의 신 을지문덕 장군의 최후의 기만 전술이었어. 고구려 군은 사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패잔병들을 추격하여 살수에까지 이르렀어. 사방이 탁 트인 강 주변에서 충분한 시야를 확보하고 도강 하는 수 나라 병사들을 공격하니 30만에 이르던 별동부대원 중 2700여명 만이 살아 남아서 수 나라로 돌아갔다고 해. 우리 역사에 남을, 아니 세계전쟁 사에 한 획을 그은 어마어마한 승리야.


수 나라는 이후 2차례나 더 고구려를 공격 하는데 다 실패로 돌아가. 고구려와의 전쟁여파로 중국을 통일하고도 채 40년을 채우지 못하고, 멸망을 해. 수 나라를 멸망시킨 당 나라가 건국 기념 앨범을 발매 했다면 Thanks to 고구려를 반드시 포함 시켰을 거야.


고구려 만세, 을지문덕 만세, 요동성의 이름 모를 고구려인들 다 만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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