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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우리의 총파업

2013-12-27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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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추천5 비추천0

2013. 12. 27. 금요일

이동현


















사진은 고동민 선생님 페이스북에서 가져옴

 
12월 22일 일요일 오후, 정동에 갔다. 한참을 대치하던 중 경찰이 쏜 최루액을 얼굴에 맞았다. 정면으로 최루액을 맞은 것은 처음이었다. 무척 괴로웠다. 눈이 매워서 눈을 뜰 수가 없었고 콧물과 침이 줄줄 흘렀다. 다급하게 물로 캡사이신 성분을 씻어 내느라 옷이 젖어버렸다. 추운 날씨에 젖은 옷을 입은 채 버티려니 힘이 들었다.

시위현장에서 경찰과 대치할 때면 나는 언제나 공포를 느꼈다. 군복무를 대신해 이런 일을 해야만 하는 이들이 가엽고 안타깝다가도 그들의 눈빛에서 적개심이 보이는 순간 두려움에 몸이 떨린다. 검은 갑옷을 입고 줄지어 서 있는 젊은 남자들은 보통 나보다 키가 크고 건장하다. 그들은 조직적인 훈련을 받았을 테고 자기가 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지도 않을 것 같다. 이들을 대면하고 있으면 내가 한 없이 작고 약하게 느껴져서 괴롭다.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격해질 때는 그나마 감정적인 소모가 덜하다. 허나 요즘에는 체력적으로 버겁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여자라고 하더라도 젊은 나이니까 내 아버지 뻘 되는 아저씨들 보다야 낫겠지 싶어 앞에 나서는데 이런 저질체력으론 그닥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공포와 불안감을 가지고 앞에 서는 것이 전략적으로 보면 우리의 투쟁을 방해하는 일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한다.
 
정동대첩, 캡사이신 공격 이후로 겁이 나서 후방으로 빠져나왔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다고 편해지지는 않았다. 춥고 배가 고팠다. 어렸을 때 부당한 체벌을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와 같이 분노와 저항감이 커지는 만큼 공포심과 무기력감도 커졌다. 결국 경찰이 해산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경찰대원들이 실수로 서로에게 캡사이신을 쏘고 말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다.
 
<뉴시스>, 고승민 기자, 링크

나도 저런 모습이었겠지.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본인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타자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구나. 비극의 희극화.


다음 날, 딴지일보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1. 정동대첩 당시 경찰이 정말 원하던 것은 무엇이었나?


1) 맥심

2) 맥심


글을 읽으며 한참을 웃었다. 경찰이 체포영장만을 가지고 수배자가 있지도 않은 건물을 깨부수고 들어가 저항하던 노동자들을 연행해간 뒤 아무 성과 없이 돌아서는 와중에 사무실 비품을 도둑질하려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 우리에게 비극적인 일을 희극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없다면 어떤 저항도 계속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파업

-정끝별
 
21세기는 파업의 시대가 아니라고
세계를 바꾸던 파업의 시대는 갔다고 나는 말했다

파업 백 일을 맞아 서울역 광장에서 거리 축제를 열던 저녁
택시는 좀체 무악재를 넘지 못했다 금요일이었고 퇴근 시간이었고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늦저녁부터 비가 그칠 것이라고 기상 캐스터가 말했다
황사도 좀 씻겨 내리겠다고 택시 운전사가 말했다
너무 막힌다고 나는 말했다
지금은 실업천만이니
아카시아나 파업을 하는 시대라고
아카시아가 꿀을 만들지 않으면 꿀벌이 사라지고 꿀벌이 사라지면 농산물 대란이 일어날 것이니 파업을 하려면 아카시아쯤은 해야 한다고
얼마 전에는 꿀벌이 파업을 했는데
꿀벌 유충이 곰팡이를 뒤집어쓴 채 줄줄이 죽어나가 꿀벌이 멸종될지 모르고 아카시아 파업도 꿀벌 파업과 연대되어 있을 것이니 파업은 꿀벌이나 하는 거라고 나는 말했다.
폐쇄된 직장 앞에서 오지 않는 기자들을 향해 기자회견을 할 때 당신의 명분이 너무 옳은 것이어서
사장집 앞에서 샌드위치맨이 되어 1인 시위를 할 때 당신의 요구 조건이 너무 당연한 것이어서
낡은 메가폰을 들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다짐할 때 당신의 외침이 너무 오래된 것어이서
당신의 파업은 위험천만이라고 나는 말했다
가다 서다 무악재를 넘어 서울역 광장에 도착했을 때
빗 속의 로커가 목이 마르도록 사막의 갈증을 외칠 때
덜 젖으려는 사람들이 잰걸음으로 광장을 빠져나갈 때
축제의 무대가 우산에 가리고 마이크까지 젖어버렸을 때
당신의 파업은 파업 중인 거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밤, 거리 행진을 뒤따르다
손에 든 촛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비를 가리다
기어코 헛발을 내딛고 말았던
삔 발목을 주무르다 택시에 우산을 두고 내렸던
세기의 상현달이 반괄호처럼 먹구름에 꽂혀 있던
당신의 파업이 늦은 밤이었다


친구가 정끝별의 시 <당신의 파업>을 사진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왔다. 2007년에 발표한 작품인데 지금 보아도 우리의 상황은 여전하다. 암울한 기분으로 친구에게 이 '여전함'에 대해 토로하자 친구는 '더 함'을 말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하구나. 시간이 지나니 더 한 거겠지.

우리는 어떤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규명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경찰의 폭력과 정부의 폭주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알고 있다. 아프고 화가 난다. 그러니까 웃으며 파업을 해야겠다.

고용주가 없는 프리랜서로서 파업에 동참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몇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토요일에 쉬기 위해서는 주중에 바쁘게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결심, 금요일 저녁에 원고의 수정요청이 들어온다면 무시하겠다는 다짐, 추운 겨울날 길거리를 헤매다 보면 기관지염이 악화되리라는 자명한 사실.

나에게는 왕좌를 깨부술 능력이 없고,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재산을 팔아주겠노라 약속한 대통령을 저지할 힘이 없고, 어머니의 가면을 쓰고 조잘대는 교활한 코레일사장의 낯짝에 접근할 방법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내 몸을 움직여 거리로 나가는 것뿐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 어떤 상황이든 그 날 거리로 나가지 않는다면 나에게 변화를 요구할 자격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나마도 하지 않는다면 너무 부끄러운 일.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으며 모두의 행복은 연대와 우애와 연민과 웃음에서 출발한다. 나 하나는 작고 무력하지만 우리는 강하다. 이제는 보여줄 때가 됐다. 12월 28일, 노동을 멈추고 거리로 나와 함께 하기를 요청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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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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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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