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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라우마 

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퇴임 직전까지 계속 외국에 있었기에 기적의 역전극 감동을 경험하지 못했다. 해외에 5년간 살면서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다양한 신문과 언론을 접했다(물론 딴지기자 출신이었기에 조중동을 읽는 비중은 매우 낮았다)


한국의 신문기사들을 통해 느낀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몰락'이었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밖에서 본 언론에 따르면, 경제도 사회도 정치도 다 무너져 귀국하면 주인 잃은 빈집과 길에는 거지들이 득실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를 어떻게 하길래 나라가 저 꼴이 되는 것일까.


막상 귀국하고 나서 놀랐다. 사람들의 표정은 내가 떠나갈 때보다 훨씬 밝았고 여유로웠다. 경제는 성장하고 있었으며 사회는 안정되고 생활에는 자유로움이 가득했다. 심지어 차들도 전보다 훨씬 질서를 지켜 운행했다. 해외에 5년간 나가 있었기에 느낄 수 있는 변화였으리라. 


헌데 이상하게 모두들 노무현을 "놈현"이라고 부르고 욕하며 모든 나쁜 일을 그의 책임으로 돌리며 비웃고 있었다. 조중동만이 아니다. 거기에 편승하지 않은 언론과 국민이 거의 없다시피 한 모습을 보며, 집단최면에 걸린 게 아닌지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었다.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 분명했고, 얼마 후 노 대통령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죽을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이 전반적인 상황이 우리 사회에, 특히 노무현을 지지했던, 혹은 오해했던 사람들에게 남긴 트라우마는 엄청나다. 이 트라우마가 치유될 기회가 없었던 암흑의 9년 - 단지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 을 지나 이제 문재인 시대에 다시 부상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우리들 자신의 죄의식과 불안이 투영되는 것도 당연하며, 그것이 때로 일부 언론이나 인사들의 태도나 언행에 대한 예민함과 분노로 발현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해야겠다.





2. 언론과 국민   

지금 이 사태에는 문재인 지지자들의 오해도 섞여 있다. 지나친 예민함과 과격함도 있다. 하지만 진보 지식인이나 언론의 워딩, 표현들 속에 문재인과 지지자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각, 학창시절 운동권 용어로 말하자면 쁘띠 브루주아를 바라보는 듯한 냉소도 느껴진다. 지지자들은 은연중에 그걸 캐치하고 있는 거다.


나는 이런 다툼이 싫다. 이명박의 차벽처럼,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위처럼, 세월호의 비극처럼, 박근혜의 무능과 부패처럼 우리 앞에는 '악'이라고 규정할만한 훨씬 위험한 공통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기득권의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며 버티고 있다. 단지 포복하며 자세를 낮추고 있을 뿐이다. 외계인이 쳐들어 왔을 때 지구인들끼리 싸우고 있다면 그처럼 바보 같은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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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쪽에 무게를 더 실을 수밖에 없다. 왕정이니 나치니 하는 비난까지 나오는데 핵심을 놓치고 있다. 지지자들이 원하는 것은 문재인을 김정은처럼 받들자는 게 아니다. 만약 문재인이 헌법을 유린하고 독재를 펼친다면 가장 먼저 버릴 사람들이 그들이다. 단지 지금, 누가 봐도 좋은 방향으로 세상을 바꿔 가는 대통령에 대한 존중과 예의와 성의를 보고 싶은 거다. 노무현에게 들이댔던 잔인함이 반복될까 두려운 거다. 충분히 이해할만 하잖은가.


그런 의미에서, 인간 존재의 현재와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이라면, 노무현에 대한 조롱에 동참하고 그를 죽게 만든 듯한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며 이번 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염원하는 국민들을 좀 따뜻하게 감싸 줄 수는 없는 건가. 다소 억울하더라도 그들의 트라우마와 예민함을 이해하고 발을 맞춰 줄 수는 없는 건가.


거기에 문재인 지지자에 대한 쌍욕과 빈정거림으로 대응하는 게 지식인의 책무라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논설우원 파토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