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N은 인터넷 언론사다. 뒤에는 미디어 그룹이 버티고 있다. 출판부에서 좋은 책이 나왔다고 연락한다. 그리고 악의와 조롱으로 가득찬, 아직 포탈에 송고되지 않은 기사 한편을 카톡으로 같이 보낸다.
책도 강매하고 기사도 사란 얘기다. 안 그러면 내일 이 기사를 포탈에서 보게 될 터이니.
사장은 기사를 보더니 황당하단 듯 결재판을 덮었다.
“이색희들 뭐라는 거야? 이게 기사야?”
사장의 분노가 날 것 그대로 내게 다가왔다.
“O차장 이거 어쩔 거야?”
“밟아주려고 합니다.”
“......뭐?”
사장은 당황한 듯, 그러나 내 반응이 마음에 든다는 듯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밟는다니... 고소하게?”
“아닙니다. 기사로 싸움을 걸었으니, 기사로 밟아줘야죠.”
“어떻게 처리하려고?”
“밀어낼 생각입니다. 10만 원짜리 기사를 10개든 100개든 사서 기사를 밀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큰 거 하나 사서 빵 터트려야죠.”
“큰 거는 또 뭐야? 쉽게 설명해 봐.”
“B 기사를 사려고 합니다.”
찌라시 따위가 설레발 친다면, 기사를 사서 밀어버리면 된다. 네이버에서 언론 코드를 받은 수백 수천의 ‘이름 없는’ 언론사들을 동원해 기사를 날리면 된다. N이 아무리 난리를 친다 해도, 기사는 밀려날 거다. 그쪽이 10개를 올리면, 이쪽은 100개를 사서 기사를 밑으로 내리면 된다. 10만원, 20만원에 기사를 올려줄 인터넷 언론사는 넘쳐난다(딴지도 포탈에 기사를 송고하는 언론사라 최근 딴지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에게 당신들도 이렇게 기사 좀 팔아보라고 한 적 있다. 자기들은 그런 거 안 하고 그냥 가난하게 살 거랜다......). 이것들을 다 동원해서 기사를 밀어낸 다음 피날레로 중앙경제지의 심층 분석 기사를 때리면 된다. 그때 쯤이면 N의 기사는 화석이 돼 지하 3백 미터 천연암반수 사이에서 헤맬 것이다.
“가능하겠어?”
“어차피 인터넷 언론입니다. 작정하고 밀어내겠다고 하면,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근거도 없고, 흠집 내는 게 목적인 기사입니다. 계속 질질 끌려간다면, 곶감 빼먹듯이 때 되면 광고 달라고 협박할 겁니다.”
“좋아! 마음에 들어. 그래 밟아주자고!”
사장은 흔쾌히 찬성했다.
“어디 O차장 하고 싶은 대로 해봐. B 기사 산다고? 좋아, 나도 그동안 신경 쓰였어. 인터넷 신문이라고 계속 우리 뒤통수만 치고, 그래 신문 기사를 사든, 광고를 사든 다 사서 밟아 줘.”
사장은 찬성을 넘어 흥분을 하고 있었다. 그 동안 인터넷 언론에 대한 불만이 쌓였었나 보다. 사장이 흥분을 하자 되레 내가 사장을 뜯어말리는 형국이 됐다.
“만약 N에서 꼭지가 돌면, 우리를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십중팔구 그럴겁니다.”
“밀어낸다면서?”
“밀어내면 되는데, 수가 다 막히면... 사장님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날?”
잠시 멈칫하던 사장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공격하라고 그래.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보자고”
“사장님”
“걱정 마. O차장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이 참에 콧대를 꺾어놔. 까짓거 이 참에 이름 좀 알리지 뭐.”
기사를 밀어내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N쪽에서 작정을 하고 공격을 한다면, 당분간 계속 기사를 사야 한다. 사장에게 화살이 날아가기 전에 끝내야 한다. 그것 때문에 B에서 기사를 사려는 거다.
N과 B.
하나는 인터넷 신문, 하나는 중앙 경제지. 어느 쪽에 더 신뢰가 갈까? 똑같은 회사, 똑같은 상황을 다룬 2개의 기사가 있는데, 하나는 덮어놓고 ‘까는’ 기사이고, 하나는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분석한 기사라면 어느 쪽에 시선이 돌아갈까?
N이 반지의 제왕을 능가하는 판타지 소설을 기사라고 내놓는다면, 이쪽은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이게 안전장치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사장의 재가를 얻었으니, 이제 기사를 ‘사러’ 가야 한다. 시간이 없다.
“O차장”
“예?”
사장실을 나가려는데, 사장이 불러 세웠다.
“...요즘 사내 분위기 알지?”
“예? 어떤...”
“거 뭐... 본부장이 한참 조직개편 한다고 여기저기 들쑤시는 거 말야.”
“오다가다 듣긴 들었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새로 들어 올 브랜드 매니저를 말하는 거다. 내가 섭섭해 할까봐... 당연히 섭섭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본부장이 들쑤시고 다니는 거, 따지고 보면 사장의 묵시적인 동의가 아닌가? 어차피 최종결재권자는 사장이 아닌가? 자기 손에는 피 묻히기 싫다는 거. 이게 대부분의 결재권자가 가지는 욕망이 아닌가? 언제나 자기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생각.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그 목이 위험하다는 단순한 진리를 본부장은 알고 있을까? 무제한적인 권한을 손에 쥐고, 조직개편을 하고, 자기 사람들 위주로 인력 충원을 하고 있지만,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다음 차례는 본부장이다. 사장은 느긋하게 이걸 지켜보다가 한 번에 목을 칠 수도 있다.
브랜드 매니저.
본부장은 날 견제할 사람을 외부에서 끌어 들였다. 사장은 그걸 알면서도 결재를 했다. 내가 마음에 들지만, 내 고삐를 잡아채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다. 이해한다. 그게 조직이니까. 그러나 감정적으로 승복하긴 힘들다.
“그럼 광고 집행하러 가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장실을 나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다.
전투준비
사장실을 나오자마자 카톡은 기다렸단 듯 울렸다. H기자다. 기사를 어떻게 할지를 묻는다. 반론권은 줬다. 이에 대한 반응을 보이란 의미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어떻게 할래? 이 기사 살 거야? 안 살 거야?'
라고 묻는 거다. 무시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힐끔 법무팀 사무실에 시선이 갔다.
'준비를 할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법무팀과 협의를 할까? 잠깐 망설이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아니다. 여기서는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 법무팀은 위기관리 상황에서 움직여야 한다. 지금은 위기가 아니다. 지금은 우리도 성질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위력과시 상황이다. 법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이건 내 싸움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에도 카톡은 계속 울렸다. 무시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있는 박과장의 모습이 보였다. 카톡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박과장!”
“예? 예...”
“N에서 뭐래?”
“그게...”
“말 흐리지 말고! N에서 뭐라고 했을 거 아냐.”
“팀장님이... 답변이 없다고, N을 무시하는 게 아니냐고...”
“무시한다고 그러지.”
“그게... 내일 오전 중으로 기사 올린다고...”
“지들 기사 올리는데, 왜 보고를 해?”
“팀장님, 제가 실수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N에 연락해서”
“연락해서 뭐? 광고 사주겠다고 달래?”
“......”
“내일 오전 중으로 기사 올린다는 거 맞아?”
“...예, H기자가 준비하고 있다고”
“알았어. 김과장! 보도자료 완성했어?”
“예”
김과장이 출력한 보도자료를 가져왔다. 대충 훑어봤는데, 무난하다.
“오케이. 이거랑 우리 쪽 영업이익 자료, 분기별 매출 자료 모아서 출력해 놔.”
“...예”
“홍XX 씨 대행사들 연락은 다 해놨죠?”
“예, 모두 준비하고 있답니다.”
“좋아. 시작하자고.”
‘시작하자’란 말에 사무실 안은 조용해졌다. 도대체 뭘 시작하자란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모습이다. 하긴, 이제까지 기자들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던 시간들이었으니 이런 경험은 처음이겠지.
“O차장입니다. 결재 떨어졌습니다. 지금 섭외할 수 있는 광고국 몇 개입니까?”
“7~8개 정도 돌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가는 10만 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얼추 맞을 거 같습니다. 아, 잠시만요... 20만 원짜리도 있는데요?”
“20만 원짜리 제외하세요. 10만 원짜리로 최대한 많이 확보하세요.”
“예”
“우리 쪽에서 자료 보내겠습니다. 그거 토대로 써주셔도 되고, 아니면... 뭐 편한대로 써달라 하십시오.”
“예, 그런데 언제 올립니까?”
“이쪽에서 콜 넣겠습니다. 아니, 인터넷 서치 중이시죠? N에서 기사 올라오면 연락하지 마시고 바로 밀어내세요.”
“제가 밀어내도 되겠습니까?”
“결재 났고, 밀어내는데 이쪽저쪽이 어디 있습니까? 아마, 내일 오전 중으로 기사 올릴 거 같다는데, 그거야 그쪽 마음이니까... 지금부터 계속해서 서치해 주세요.”
“예, 그럼 몇 개 정도 할까요?”
“지금 몇 개 준비할 수 있죠?”
“기본 10개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사 하나면 10개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본 20개 준비하고, 후속기사 나올 수도 있으니까 50개 정도 세팅해 두세요. 양으로 밀어버립시다.”
“업체는 다 달라야겠죠?”
“기왕 하는 거 모양새 좋게 가야죠. 10만원 선에서 섭외할 수 있는 언론사 다 뽑아내세요. 한 업체당 1개씩... 아니, 2개도 좋습니다.”
“예, 그럼 섭외하고,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서치하고 계셔야 합니다.”
“지금부터 24시간 돌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소주 한 잔 사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회사가 대행사 복은 있다. 우리 쪽 직원들은 밀어내기 경험이 없다. 기자라면 일단 고개부터 숙여야 한다고 배워왔던 탓에 언론사와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 이렇게 배워나가는 거지. 하긴, 나 역시도 언론사와 각을 세웠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요즘 같은 시절에는 언론사들도 몸을 사리고 있기에 어지간하면 좋게 좋게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안타까운 게, 이렇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언론사는 ‘매체파워’가 있는 곳 뿐이란 점이다. 매체파워가 없는 곳에서 광고를 얻기 위해서는 N과 같이 악다구니를 써야 한다. 그렇다고, N이 매체파워가 없다는 건 아니다. N 자체로도 제법 힘이 있고, 그들의 본사와 계열사들을 보면 중견 언론사로 분류된다. 그러나 N은 인터넷 언론이다. 애매하다. 아무리 그쪽에서 탑을 찍는다 해도, 기본적으로 인터넷이다. 그 한계는 명백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만만한 호구 몇몇을 붙잡아 빨대를 꽂는다.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건 이해하나, 우리가 그 먹이가 될 수는 없다.
“박과장! 아, 그리고 모두들 잘 들어.”
“예”
“...예”
“...예”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지금 우리가 준비하는 거 N에 새어나가지 않게 해. 아니, 내일 오후까지 입도 뻥긋 하지마. 특히 박과장!”
“예...”
“괜히 마음 약해져서 N에서 전화 오는 거 받지 마. 대거리 할 자신 없으면, 전화, 카톡, 이메일 모두 씹어. 알았어?”
“예”
“이건 모두한테 적용되는 거야. 내일 오후까지 N에서 오는 전화 다 받지 마! 그리고 당분간 N 관리는 대행사로 넘겨. 우리 쪽 직원 중에 N 전화 받는 사람 나오면, 시말서 쓸 준비해. 아니, 올해 인사평점은 D야. 그리고 이번 건에 대해서 우리 쪽에서 새어나가는 경우 나오면 내가 책임지고 사표 받아 낼 거야. 회사 그만두고 싶은 사람 있으면, 떠들고 다녀.”
절대영도. 사무실 안은 냉기 가득한 적막으로 가득 찼다. 여사원들 몇몇은 눈썹이 바르르 떨리는 게 보일 정도다.
“없지? 김과장!”
“예!”
“자료 다 뽑았어?”
“아... 예, 출력만 하면 됩니다.”
“출력하고, USB에 따로 저장해서 가져와. 아... 말레이시아 컨벤션이랑, 중국 쪽 우리 매장 사진도 첨부해. 난 주차장에 가 있을 테니까, 외근 준비해서 내려와.”
“어디로 가십니까?”
“B"
칼을 뽑아들었다. 이제 휘둘러야 한다.
추신
이 시리즈를 투고하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내부자의 안전과 비밀보장을 최우선시 한다는 딴지일보를 믿으나
이 연재가 중단되면 나에게 클레임이 들어왔거나 딴지 편집부가 쫄았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하시라.
언제나 그렇듯, 이 이야기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날리 없는 소설이라고 믿어주면 좋겠다.
지난 기사 언론이 기사와 광고의 교환을 요구할 때, 우리는 이렇게 움직인다 |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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