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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집보다 뉴욕 타임즈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영어학습은 듣기 한 시간, 읽기 한 시간, 이렇게 하루 두 시간을 꾸준히 영어에 투자하는 것이다. 더 해봐야 피곤하기만 하고 능률이 안 오른다. 하루 이틀 정도는 너댓 시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일주일도 채 못 되어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지난 글에서는 듣기 공부를 위해 하얗게 불태웠지만, 읽기도 중요하다. 물론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당연히 일순위는 듣기이다. 제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저절로 귀가 뚫리는 일은 없다. 그렇지만 하루에 듣기 훈련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영어 문장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더 많은 영어 단어와 문장을 접하기 위해서는 읽기가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토익이나 토플 문제집에서 접하는 대여섯 단락 정도의 독해는 내 기준으로는 단문이다. 그건 듣기 훈련하기에 딱 적당한 분량이지 그걸 읽기라고 하면 곤란하다. 그 정도 분량의 글을 읽고 문제 푸는데 시간을 허비하니, 투자하는 시간은 엄청 많은데 정작 공부량은 절대 부족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문제집은 나중에 토익이나 토플 시험 볼 일 있을 때 한 달쯤 전에 어떤 식으로 문제가 나오나 확인 차 한 번 훑어보는 용도로 쓰는 책이지, 그게 주된 공부가 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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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읽으려면 좋은 스크립트를 구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뉴욕 타임즈를 추천한다. 뉴욕 타임즈 웹사이트에 가서 관심 가는 기사 제목이 있으면 프린트한다. 처음에는 하루에 12포인트 기준 A4용지 두 장 정도로 시작해서 점차 늘려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종 목표는 영어 원서 한 권을 완독하는 실력을 기르는 것이다. 


뉴욕 타임즈의 기사는 가장 최근의 영어로 작성된 문장들이다. 고등학생 때는 오래된 종합영어책이 닳아서 새로 살 정도로 읽었는데 그런 영어는 과거의 영어다. 외국인이 한국어 공부한답시고 관동별곡을 읽고 있거나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을...' 뭐 이런 글을 읽는다고 생각해보라. 그냥 웃음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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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사전을 읽느니 관동별곡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뉴욕 타임즈를 권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적절한 난이도이다. 뉴욕 타임즈를 줄줄 읽을 정도 수준이 되면 원어민과 대화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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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나 사두는 건 나쁘지 않겠지



시사 상식에 밝아지는 건 덤이다. 대학생들이 취업 준비하느라 시사상식을 따로 공부하는데 영어공부도 하면서 시사상식도 넓히고 이런 걸 일석이조 내지는 일타쌍피라 부른다.


한 시간 동안 A4 두장 분량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시간 동안 한국어 문장 A4 2장을 읽는 것이 어려운가? 우리가 원어민 수준까지는 못 되어도 비슷한 수준까지는 가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독해 습관을 바로잡으면 나중에는 A4 2장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는 독해훈련을 타임으로 했는데 이건 너무 어려웠다. 문장마다 모르는 단어가 최소 한 개 이상은 튀어나오고 두 시간을 읽어도 한 단락을 채 못 끝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부지런히 사전 찾아가며 악전고투하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시간 동안 두 단락을 채 못 읽었네. 그런데 내가 실제로 영어 문장을 읽은 시간이 얼마나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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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영어 공부라고 부르는 행위의 절반 이상은 사전 넘기는 시간으로 소모되고 있었다. 그때만해도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습관적으로 사전을 뒤지던 때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독해를 한다. 그래서 한 번 실험을 해봤다. 모르는 단어 나와도 사전 찾지 말고 그냥 읽어나가자. 그 다음부터 모르는 단어에는 밑줄만 그어놓고 그냥 읽어나갔다. 그러자 신기한 현상이 발생했다. 굳이 사전 안 찾아도 앞에 밑줄 그어놓은 단어의 의미가 유추되는 것이다. 물론 끝까지 모르겠는 단어도 많았다. 하지만 일단 기사 전체를 읽기 전까지는 사전에 손을 대지 않았다. 기사를 끝까지 읽고나면 비로소 밑줄 그은 단어를 찾아보았다. 이런 식으로 독해를 하니 훨씬 능률적인 독해가 가능해졌고 전체 글의 윤곽이 눈에 들어오자 이해도 빨라졌다. 나중에는 한 시간에 기사 한 꼭지를 읽는 것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도 안 쓰는 단어가 많으니 여전히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다시 실전 읽기 훈련으로 돌아가자. 뉴욕 타임즈 기사 한꼭지 내지는 두꼭지(A4 2장 분량)를 출력한다. 모니터 화면으로는 집중이 잘 안 된다. 출력이 안 되는 상황이라면 다른 책을 구해도 상관 없다. 다만 시중 독해 교재는 길이가 짧으니 피해라. 글을 읽을 때는 입으로 소리를 내어 읽어나간다. 속도는 최대한 끌어올려서 원어민 아나운서가 방송하는 정도까지 맞추는 것이 목표이다. 모르는 단어가 튀어나오고 내용이 이해가 잘 안 되어도 무시하고 그냥 읽어나가라. 당장 눈 앞의 기사 내용을 파악하는 것보다 당신의 두뇌가 빠른 스피드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읽는 것에만 집중하라. 이 훈련이 잘 되면 나중에는 말하는 속도로 영문을 읽어나가면서도 의미파악을 할 수 있다. 끝까지 읽었으면 전체 기사 내용을 머리속으로 정리해본다. 대강 정리가 되었으면 이번에는 첫 단락을 읽는다. 이때도 가급적 빠른 속도로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는 사전 찾지 말고 밑줄만 그어놓아라. 다 읽었으면 단락의 내용을 정리해보고 중간에 튀어나온 모르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문장 전체를 통해 유추해본다. 첫 단락 독해를 마쳤으면 이제 사전을 찾으면서 본격적으로 의미파악에 들어간다. 사전은 당연히 캠브리지 영영사전을 말한다. 나는 국내 영한사전은 그냥 단어장으로 간주한다. 첫 단락 독해가 끝나면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 반복한다. 이렇게 마지막 단락까지 독해가 끝나면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최대 출력으로 한 번 읽는다. 뉴욕타임즈의 난이도가 평이하다고 느껴지면 영어 원서에 도전해보는 것도 매우 좋은 공부이다. 다만 가급적 신간을 택해 현재 원어민들이 쓰는 표현을 익히도록 한다.


듣기와 읽기를 이런 식으로 한 시간씩 도합 두 시간(일요일에는 쉬어도 무방하다)씩만 영어에 투자해도 일 년 뒤의 당신은 스스로가 놀랄만큼 성장하게 될 것이다. 영어 관련 직종으로 진출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계속 난이도를 높여가며 훈련하면 된다. 그게 목표가 아닌 사람은 그 시점에 토익이나 토플 학원 한 달 정도 등록해서 점수 따고 심심풀이로 CNN방송 보고 미드 보고 모르는 표현 나오면 찾아보고 관심 있는 분야의 영문 서적 읽어보고 그렇게 살면 된다.


그리고 모르는 단어 외우려고 기를 쓸 필요 없다. 빈도수가 높은 단어는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공부하다보면 싫어도 저절로 외워지고 빈도수가 낮은 단어는 그만큼 일상에서 쓸 일이 없는 단어다. 잊어버려도 무방하다. 영어가 늘려면 단어 집착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학원에서는 하루에 백 단어씩 학생들에게 외워오라고 숙제를 내준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말을 전해준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려면 최소 3000단어를 알아야 한다는데 하루에 백 개씩이면 그 학원 한달만 다니면 원어민 되겠네? 영어 수준이 낮은 나라니까 가능한 미친 교육방식이다. 언어능력은 그런 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문법, 잘 몰라도 된다



듣기와 읽기를 하다보면 자꾸 한국어로 번역하는 습관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문법 공부이다. 오래된 문법책은 잊어버리고, 지난 번에 소개해준 세 권의 책(영어약장수PCMI영문법, 애로우 잉글리시, understanding and using English grammar) 을 읽으면서 문법을 잡아나가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세부적인 것은 애로우 잉글리시를 반드시 읽기 바란다. 특히 시리즈 가운데 전치사 편은 예술이다. 문법책을 읽으며 감동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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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 얘기만 나와도 머리가 아플텐데, 문법은 외우려고 하지 말고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만 사전 찾듯이 찾아서 읽으면 된다. 우리가 한국어 문법 잘 알아서 한국말을 마스터한 것이 아니다. 문법 자세히 몰라도 된다. 


우선 영어의 어순에 대해서만 좀 짚고 넘어가자. 누구나 처음 영어를 배우게 되면 어순이 우리말과 달라서 헷갈리고 짜증이 난다. 다 필요없다. 한 가지 원칙만 알면 된다. 


"영어는 무조건 중요한 순서대로 말한다"


우리는 한국어 어순이 몸에 배었기 때문에 그게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논리적으로 보면 대단히 불편한 어순이다. 문장 서두에 중요한 것을 배치하고 부차적인 요소는 뒤로 빼는 게 더 의사소통하기에 쉽다. 우리말은 끝나는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구조이다.


영어가 안 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이렇게 간단한 구조의 언어를 굳이 복잡한 우리말로 바꾸려는 습관 때문이다. 이미 중요한 정보를 모두 듣고도 굳이 서술어를 뒤로 배치시켜 한국어 문장을 완성하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상대는 두 번째 문장, 세 번째 문장을 막 쏟아낸다. 그런 부질없는 노력 하지 말고 상대가 말하는 그대로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말 어순과 달라서 좀 어색해도 익숙해지면 이게 더 편한 말하기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지난번에 올린 글에 대한 댓글들을 보면 확실히 영어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조언이 될만한 것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꾸준히 해라, 열심히 해라, 이런 것 말고 색다른 것은 없을까 생각하다가 전부터 느꼈던 것을 한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질없는 완벽주의에 빠져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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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을 완벽히 알아야 영어를 잘 할 수 있다 생각하고 미친듯이 문법을 파는 사람들, 단어를 완벽히 알아야 영어를 잘 한다고 생각하고 보케불러리 22,000, 33,000 나아가 44,000가지고 단어만 외우는 사람들, 발음에 집착하는 사람들. 완벽주의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런 게 다 갖춰져야 영어를 할 수 있다면 세상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언어는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기왕 영어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완벽주의에 빠지기 보다는 실제 영어구사능력을 키우는 것에만 집중하고 공부하시길 바란다.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놓아줄줄도 알아야 한다. 너무 세부적인 것에 집착하다보면 전체를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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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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